8월14일 기다려 주시고 용서를 ...

작성자 : 안나    작성일시 : 작성일2015-08-14 07:04:23    조회 : 242회    댓글: 0

◈ [서울] 2015년 나해 8월14일 금요일
성 막시밀리아노 콜베 사제 순교자 기념일 
 
2015년 나해 8월14일 금요일
성 막시밀리아노 마리아 콜베 사제 순교자 기념일

제1독서 
 <나는 너희 조상을 강 건너편에서 데려왔다. 나는 너희를 이집트에서
이끌어 내어 약속된 땅으로 데려갔다.>
◎ 여호수아기의 말씀입니다. 24,1-13

복음 
<모세는 너희의 마음이 완고하기 때문에 너희가 아내를 버리는 것을
허락하였다. 처음부터 그렇게 된 것은 아니다.>
+ 마태오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19,3-12
 
정부에서는 오늘, 8월 14일을 임시 공휴일로 지정하였습니다. 이유는 광복 70주년이고, 15일이 토요일이기 때문이랍니다. 메르스의 여파로 국내 경기가 많이 위축되었는데 14일을 임시공휴일로 지정하면 소비가 늘어나고, 경제에 도움이 될 것이라는 기대가 있기 때문입니다. 직장인들은 유급으로 하루를 쉬게 해 준다면 싫다고 하지 않을 것입니다. 14일이 공휴일로 지정되면 여름의 마지막 휴가를 알차게 보낼 수도 있을 것입니다. 공장을 가동해서 물건을 생산하는 기업의 입장에서는 하루 쉬는 것이 그리 달가운 일이 아닐 수 있습니다. 임시 공휴일로 지정을 했지만 많은 중소기업은 쉬는 것이 녹녹한 일도 아닐 것입니다. 각자의 입장에서 바라보기 때문에 생각도 저마다 다를 것입니다. 저는 문득 생각합니다. 작년 8월 14일에 교황님께서 한국을 방문하셨습니다. 저 나름대로는 8월 14일이 임시공휴일로 지정되었다면 교황님 방한 1주년을 기억하면서 의미 있는 하루를 보냈으면 좋겠습니다.

일반 예비신학생들과 고3 예비신학생들은 이제 곧 선택을 해야 합니다. 그래서 함께 피정을 하면서 면담을 하였습니다. 어떤 친구들은 명문대학교를 나왔고, 좋은 직장을 다녔지만 사제의 길을 가고 싶어서 예비신학생이 되었습니다. 본인의 확고한 의지가 있었고, 착실하게 준비를 하였기 때문에 신학교에 들어가는 것이 어렵지는 않을 것 같았습니다. 어떤 친구들은 기도생활을 열심히 하고, 본인의 의지도 확실한데 성적 때문에 고민을 하는 것 같았습니다. 어떤 친구들은 주위의 권유도 있었고, 막연하게 사제가 되면 좋겠다는 생각으로 예비신학생이 되었습니다. 면담을 하면서 좀 더 확실한 의지가 있으면 좋겠다고 이야기를 하였습니다. 어떤 친구들은 재능이 있고, 확고한 의지도 있고, 기도생활도 충실하게 하지만 아직 신자가 아닌 부친 때문에 힘들어 하기도 합니다.

장자는 이렇게 이야기를 하였습니다.

“들보나 기둥은 성벽을 무너뜨리는 데는 유용하지만 구멍을 막는 데는 소용이 없다. 쓰임이 다르기 때문이다. 천리마는 하루에 천리를 달릴 수 있지만, 쥐를 잡는 데는 살쾡이만 못하다. 재주가 다르기 때문이다. 올빼미는 밤에 벼룩을 잡고 털끝까지 헤아릴 수 있지만, 낮에는 눈을 뜨고도 큰 산조차 보지 못한다. 본성이 다르기 때문이다.”

세상의 많은 분쟁과 문제들은 ‘다름과 틀림’을 구별하지 못하기 때문에 생기는 것 같습니다. 사랑하는 사람들이 때로 갈등하고, 다투는 것은 ‘존재와 소유’를 혼동하기 때문인 것 같습니다. 잠언은 이렇게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주사위는 사람이 던지지만 결정은 하느님께서 하신다.’ 동양문화의 ‘盡人事待天命’과 비슷한 말입니다. 나의 잣대로 세상을 바라본다면, 편견과 선입관으로 세상을 바라본다면 우리는 참된 것들을 볼 수 없을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도 부정한 여인을 향해서 돌을 던지려는 사람들에게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여러분 중에 죄 없는 사람들이 먼저 저 여인에게 돌을 던지십시오.’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 사람들은 모두 자리를 떠났다고 성서는 말하고 있습니다. 프란치스코 교황님께서도 말씀하셨습니다. ‘이혼한 사람들, 재혼한 사람들도 모두 소중한 하느님의 자녀들입니다. 그런 분들을 단죄하기 전에 따뜻하게 받아들이고, 용기를 줄 수 있어야 하겠습니다.’

오늘 성서 말씀은 하느님과 이스라엘 백성을 이야기 합니다. 하느님께서는 사랑과 자비를 베풀고, 이스라엘 백성들을 잘 돌보아 주셨습니다. 그러나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느님과 맺은 약속을 지키지 않았고, 다른 신들을 섬기곤 하였습니다. 하느님께서는 그런 이스라엘 백성들이 다시 하느님께로 돌아오도록 기다려 주시고 용서를 해 주신다고 하십니다.

주님의 사랑 안에 행복한 연휴 되시기를 기도드립니다.
 
- 서울 대교구 성소국장 조재형 가브리엘 신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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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천] 지금의 내 자리를 어떻게 바라보고 계십니까?

2015년 나해 8월14일 금요일
성 막시밀리아노 마리아 콜베 사제 순교자 기념일

제1독서 
 <나는 너희 조상을 강 건너편에서 데려왔다. 나는 너희를 이집트에서
이끌어 내어 약속된 땅으로 데려갔다.>
◎ 여호수아기의 말씀입니다. 24,1-13

복음 
<모세는 너희의 마음이 완고하기 때문에 너희가 아내를 버리는 것을
허락하였다. 처음부터 그렇게 된 것은 아니다.>
+ 마태오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19,3-12

저는 어렸을 때부터 도시에서만 살았습니다. 그러다가 방학을 이용해서 할아버지, 할머니께서 계신 시골에 놀러 가면 얼마나 좋았는지 모릅니다. 개울가에서 물장구도 치고, 개구리를 잡으면서 놀았던 일, 무엇보다도 도시에서 볼 수 없는 소나 돼지를 가까이서 볼 수 있다는 것 역시 시골의 신나는 일이었지요. 여기에 손주가 왔다가 해주시는 닭백숙도 잊지 못할 시골에서의 추억입니다. 이렇게 시골에 대한 좋은 기억만 가지고 있기 때문에, 시골에서 사는 것이 꿈이었습니다. 이런 꿈을 가지고 있어서 신학생 때에도 시골 본당신부가 되고 싶다는 생각을 많이 품었습니다. 농사도 지으면서 사목을 하는 시골신부 말이지요.

사제가 된 후, 도시를 떠나 시골에서 살 기회가 생겼습니다. 바로 강화도에 있는 갑곶성지에 부임한 것이었지요. 어렸을 때부터 가지고 있었던 꿈이었기에 처음에 얼마나 포부가 대단했는지 모릅니다. 하지만 환상으로만 가지고 있었던 시골의 삶은 그리 쉬운 것이 아니었습니다. 환상은 아름답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더라는 것이었지요.

쉽지 않는 시골의 삶을 지내면서 점점 ‘어렸을 때의 꿈은 그저 꿈일 뿐이구나.’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러면서 행복하지가 않은 것입니다. 지금의 자리가 내 자리가 아닌 것처럼 생각되었습니다. 무엇 하나 제대로 할 줄 모르는 것은 물론이고, 무엇을 해야 하는지 조차 몰랐으니까요.

시간이 흐르면서 점점 시골의 삶이 익숙해지고 받아들이기 시작했습니다. 그러자 지금 해야 할 일들이 보이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일들을 하면서 시골의 삶이 재미있고 행복한 삶이라는 것을 깨닫습니다.

먼저 지금의 자리를 인정하고 받아들이는 것이 중요합니다. 주님께서 내게 마련해주신 이 자리, 이 자리가 가장 내게 좋은 자리라는 사실을 받아들일 때에 분명히 행복 역시 발견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 자리를 나의 자리로 받아들이지 못하는 사람들이 참으로 많은 것 같습니다. 특히 가정 안에서 그런 모습이 얼마나 많은지 우리나라의 이혼율이 세계 1위에 오르기도 했습니다.

오늘 주님께서는 자신의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아내를 버리는 당신의 관습을 꾸짖습니다. 그러면서 하느님께서 맺어주신 것을 사람이 갈라놓아서는 안 된다고 하시지요. 물론 피치 못할 사정으로 인해 헤어질 수밖에 없을 때도 있습니다. 그리고 이를 교회가 무조건 반대하는 것도 아닙니다. 하지만 단순히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이유로, 다른 사랑하는 사람이 생겼다는 이유로, 자신의 이익을 취하기 위해서 헤어지는 것이라면 주님께서 원하지 않는 모습이라는 것이지요.

지금의 내 자리를 어떻게 바라보고 계십니까? 혹시 환상 속의 자리만을 생각하면서 어렵고 힘들다는 이야기만을 내뱉고 있는 것은 아닐까요? 지금의 자리를 인정하고 받아들이는 지혜가 필요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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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사는 환경은 우리가 만들어 가는 것이다. 내가 바뀔 때 인생도 바뀐다( 앤드류 매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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띄어쓰기

초등학교 국어시간에 배웠던 띄어쓰기에 관한 예문을 아직까지 기억합니다. 그때 선생님께서는 ‘아버지가방에들어가신다’라는 글을 칠판에 적고서는 어떤 뜻인지를 물으셨지요. 한 아이가 “아버지가 방에 들어가신다는 것이지요.”라고 답하자, 선생님께서는 칠판에 ‘아버지 가방에 들어가신다.’라고 다시 쓰시면서 “방이 아니라 가방에 들어가시는 것인데?”라고 웃으며 말씀하셨지요. 그리고 어떻게 띄어 쓰냐에 따라서 문장의 뜻이 달라짐을 이야기해주셨습니다.

단어와 단어 사이에는 띄어 쓰는 간격이 필요합니다. 그래야 문장을 제대로 이해할 수 있지요. 그런데 사람과 사람 사이에도 이러한 간격이 필요한 것이 아닐까 라는 생각을 해 봅니다. 솔직히 사람을 마치 자신의 것인 양 소유하려는 사람들을 종종 보게 됩니다. 자녀를, 형제를, 친구를, 그밖에 다른 사람들에 집착하면서 그들이 자신의 생각대로 움직여주기를 원합니다. 꽉 붙어서 꼼짝달싹 못하게 하는 행동입니다. 띄어쓰기가 전혀 안 되어 있는 것처럼 말이지요.

사람을 이해하려면 약간의 간격이 필요합니다. 조금 떨어져서 바라볼 때, 상대방이 진정으로 원하는 바를 발견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야 나의 만족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함께 만족할 수 있는 관계가 중요함을 깨달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 인천교구 조명연 마태오 신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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