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월28일 치유

작성자 : 안나    작성일시 : 작성일2015-06-28 08:07:02    조회 : 454회    댓글: 0

◈ [서울] 연중 제13주일

2015년 나해 6월28일 연중 제13주일

제1독서 
<악마의 시기로 세상에 죽음이 들어왔다.>
◎ 지혜서의 말씀입니다. 1,13-15; 2,23-24

제2독서 
<여러분이 누리는 풍요가 가난한 형제들의 궁핍을 채워 줍니다.>
◎ 사도 바오로의 코린토 2서 말씀입니다. 8,7.9.13-15

복음 
<소녀야, 내가 너에게 말한다. 일어나라!>
+ 마르코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5,21-43 <또는 5,21-24.35ㄴ-43>

6월의 마지막 주일입니다. 2015년도 이젠 반환점을 돌았습니다. 내일부터 수요일까지 예비 신학생 담임 부제, 수녀님들과 함께 여름 연수를 떠납니다. 뜻 깊은 시간이 될 수 있도록 기도 부탁드립니다. 기도는 메마른 나무에 물을 주는 것과 같기 때문입니다. 오늘은 교황주일이기도 합니다. 교황님을 위해서도 함께 기도했으면 좋겠습니다. 고속도로 휴게소에서 이런 글을 읽었습니다. ‘영원히 살 것처럼 희망을 가지고, 오늘 세상을 떠날 것처럼 뜨겁게 살자!’ 참 좋은 글이었습니다. 우리 모두 천상에서 영원한 삶을 꿈을 꾸며 살아야 합니다. 하지만 오늘 하느님을 만날 것 같은 마음으로 충실하게 살아야 하겠습니다.

교황님은 어떻게 사목을 해야 할까요? 오늘의 성서는 교황님이 해야 할 사목의 방향과 목적을 명확하게 말해 주고 있습니다. 하느님께서는 이 세상을 선하게 창조하셨고, 이 세상을 풍요롭게 창조하셨습니다. 교황님은 하느님께서 이 세상을 아름답게 창조하셨고, 모든 이가 평화롭게 살도록 하셨으니 하느님의 창조 질서를 보존하도록 해야 합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구체적으로 교황님이 해야 할 일들을 알려 주셨습니다. 가난한 사람, 아픈 사람, 소외된 사람, 외로운 사람들의 친구가 되어 주어야 하는 것입니다. 아무런 조건 없이 아픈 사람들을 고쳐 주고, 외로운 이들에게 희망을 주는 것입니다. 이것이 3년 동안 예수님께서 하신 일이고, 목숨을 바치면서까지 하셨던 일입니다. 교황님께서 그렇게 하느님의 창조질서를 보존하고, 높은 산은 평평하게 하고, 낮은 골짜기를 메우기 위해서 필요한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무엇일까요? 그렇습니다. 기도입니다. 예수님께서도 복음을 전하시면서 늘 기도하셨습니다. 따로 한적한 곳에 가셔서 밤을 새워 기도하셨습니다. 기도는 뿌리 깊은 나무와 같고, 샘이 깊은 물과 같습니다. 기도하는 교황님은 바람이 불어도 견디어 낼 수 있고, 기도하는 교황님은 가뭄이 와도 영혼의 샘물이 마르지 않습니다.

기도란 무엇입니까? 하느님과의 대화이며, 하느님과의 관계입니다. 남자와 여자가 처음 만나면 서로 어색합니다. 하지만 대화를 하면 조금씩 어색함이 사라집니다. 자주 만나고, 대화를 하면서 서로를 알아 갑니다. 서로를 알게 되면 친해지고, 친해지면 보고 싶어집니다. 이런 것이 사랑이고, 사랑하니 결혼을 해서 가정을 이루는 것입니다.

기도란 하느님과 친밀한 관계를 맺는 것입니다. 하느님과 친밀한 관계를 맺는 기도에는 몇 가지 방법이 있습니다. 첫째는 소리로 하는 것입니다. 신자들이 외우는 12가지 기도문, 묵주기도, 십자가의 길 기도와 같은 기도는 우리의 소리를 이용해서 기도하는 것입니다. 소리를 내서 하는 기도도 훌륭한 기도 방법입니다. 이것만 잘해도 하느님과 친밀한 관계를 맺을 수 있습니다. 두 번째는 머리로 하는 기도입니다. 생각으로 하는 기도입니다. 이것은 흔히 묵상이라고 합니다. 성서 말씀을 읽고 그 뜻이 무엇인지 생각하는 것입니다. 성당이나 성체조배 방에서 나의 하루를 돌아보고, 하느님의 뜻은 무엇인지를 찾는 것입니다. 사제나 수도자들, 성경공부를 많이 하시는 분들은 이렇게 묵상기도를 자주 합니다. 세 번째는 가슴으로 하는 기도입니다. 이제 하느님께서는 나와 친해지셔서 내가 하는 이야기를 듣기도 하시고, 내게 말을 건네기도 하십니다. 하느님께서는 저 멀리 하늘에 계시는 분이 아닙니다. 하느님께서는 내가 청하는 것을 들어주시는 힘이 강한 분이 아닙니다. 하느님께서는 나의 친구처럼 나와 하나가 되어 주시는 분입니다. 나도 이제 하느님께 무엇을 청하는 것만이 아닙니다. 하느님께서 원하시는 것이 무엇인지를 들어주고, 하느님께서 원하시는 것을 해 드리려고 합니다.

네 번째는 온 몸으로 하는 기도입니다. 예수님께서 하신 기도입니다. 아버지와 내가 하나 되는 기도입니다. 우리의 내면 깊숙이에는 하느님께서 계십니다. 하지만 우리는 거짓 자아 때문에 우리의 내면으로 들어가지 못합니다. 태어날 때 아이가 우는 것은 편안한 어머니의 태중에 나와 낯선 곳으로 나오는 두려움 때문이라고 합니다. 아이는 자라면서 많은 사람을 만나고, 상처를 받게 됩니다. 이런 상처들 때문에 우리는 우리 내면에 있는 하느님을 만나지 못하고, 하느님과 하나 되지 못합니다. 나의 거짓자아를 없애주고, 치유시켜 주는 것은 오직 하느님만이 하실 수 있습니다.

그러기에 온 몸으로 하는 기도는 나를 하느님께 맡겨 드리는 것입니다. 바오로 사도도 그렇게 기도하였습니다. 나는 좋은 일을 하고 싶은데 내 안에 또 다른 나는 나를 나쁜 일로 인도합니다. 나에게는 또 다른 내가 있기 때문입니다. 바오로 사도는 모든 것을 하느님께 맡겨 드리면서 이렇게 기도했습니다. 이제는 내가 사는 것이 아니고, 그리스도께서 내 안에 사는 것입니다. 많은 성인 성녀들은 온 몸으로 기도를 했습니다. 그분들은 거짓자아를 없앴을 수 있었고, 내면에 있는 하느님을 만날 수 있었습니다.

하느님께서는 언제나 우리의 마음이 열리기를 기다리십니다. 내가 가지고 있는 상처, 욕심, 분노를 하느님께 맡겨드리기를 원하십니다. 하느님께서는 우리 안에 오셔서 당신의 크신 사랑과 자비로 우리와 하나가 되어 주십니다.

교황님도, 교구장님도, 본당신부도, 신자들도 예외는 없습니다. 우리는 기도 중에 하느님과 친밀해 져야 합니다. 기도를 통하여 우리의 내면에 있는 거짓된 자아를 몰아내야 합니다. 나와 하느님은 하나가 되어야 합니다. 그래서 하느님께서 만드신 창조질서를 보존해야 합니다. 가난한 이, 병든 이, 외로운 이들의 친구가 되어야 합니다. 예수님께서는 부유하셨지만 가난해 지시면서 우리를 부유하게 해 주셨기 때문입니다.

- 서울 대교구 성소국장 조재형 가브리엘 신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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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천] 감사의 생활

2015년 나해 6월28일 연중 제13주일

제1독서 
<악마의 시기로 세상에 죽음이 들어왔다.>
◎ 지혜서의 말씀입니다. 1,13-15; 2,23-24

제2독서 
<여러분이 누리는 풍요가 가난한 형제들의 궁핍을 채워 줍니다.>
◎ 사도 바오로의 코린토 2서 말씀입니다. 8,7.9.13-15

복음 
<소녀야, 내가 너에게 말한다. 일어나라!>
+ 마르코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5,21-43 <또는 5,21-24.35ㄴ-43>

제가 책을 구입하는 웹사이트가 있습니다. 이곳에서 저는 최고등급 회원입니다. 특별히 아는 사람이 있거나, 책을 출판했다고 최고등급 회원이 된 것은 물론 아닙니다. 그저 책을 많이 사기 때문입니다. 석 달에 50만 원 이상을 구입하면 되는데, 저는 이를 훌쩍 뛰어 넘거든요.

수필, 시, 소설, 자기계발서 등등, 가리지 않고 책을 구입하는 저를 보면서 “학술 서적이 아니라면, 도서관 같은 곳에서 빌릴 수도 있는데 아깝지 않아요? 어차피 한 번 보고 나면 다시 읽는 것도 아니잖아요.”라고 말씀하시는 분이 계십니다. 이분 말씀처럼 빌려보면 경제적인 이익은 분명이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저는 그러고 싶지 않습니다. 저의 이름을 건 책을 출판해보니 책을 힘들게 냈을 작가의 마음을 알 수 있기 때문입니다. 작가의 지식과 정성, 그리고 이 책을 통해서 갖게 되는 저의 새로운 관점과 생각들을 만 원 정도의 비용으로 얻을 수 있는 것인데 어떻게 아깝다고 할 수 있습니까? 그래서 보고 싶은 책은 모두 구입하려고 합니다. 경제적으로 풍족하기 때문이 아니라, 작가에 대한 예의와 함께 이 책을 통해 얻게 될 것들에 대한 감사의 마음 때문입니다. 더군다나 취미 활동을 줄이고 책을 사는데 집중해보니 그리 불가능한 것도 아님을 발견할 수 있거든요.

책값이 너무 비싸다는 분을 만나곤 합니다. 그러나 한 권의 책을 출판하기 위해 쏟아 붓는 작가의 노력과 정성을 볼 수 있다면, 그런 말은 하지 않을 것입니다.

마음을 읽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을 깨닫습니다. 마음을 읽지 못하면 모든 것이 불평불만입니다. 그러나 마음을 읽으면 모든 것이 감사요 기쁨일 수밖에 없습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야이로라는 회당장의 딸을 살려 주십니다. 사람들은 이 딸이 이미 죽었다고 판단하지요.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두려워하지 말고 믿기만 하여라.”라는 말씀을 하시면서 살려 주셨습니다. 이 놀라운 일에 사람들의 반응을 봅니다. 복음은 사람들의 반응을 이렇게 말하고 있지요.

“사람들은 몹시 놀라 넋을 잃었다.”

주님의 치유에 대해 기뻐하고 감사하지 않고 그저 놀라기만 뿐이었습니다. 주님께는 불가능한 일이 없음을 믿지 못하고, 세상의 관점으로만 받아들이려고 했으니 이해할 수 없었던 것입니다. 주님의 마음을 받아들이지 못하고 있기에 그저 넋을 잃고 놀랄 뿐이었습니다.

주님의 마음을 읽을 수 있도록 노력하는 것이 바로 믿음의 시작입니다. 그 믿음을 통해서만이 두려움을 없애고 대신 기쁨과 감사의 생활을 할 수 있습니다.

주님의 마음을 읽기 위해 노력하는 오늘을 만들어 보십시오. 어렵고 힘든 삶이 아닌, 기쁨과 감사할 수 있는 삶이 분명 내게 다가올 것입니다.

*****


본질적인 것에는 일치를, 비본질적인 것에는 자유를, 모든 것에는 사랑을(리처드 백스터).
 
*****
 
하루를 자주 점검해 보세요.


저는 새벽 묵상 글을 일기처럼 생각하기에 자주 그 전날 있었던 특별한 일들이 많이 등장하게 됩니다. 즉, 묵상 글을 쓰기 전에 특별한 일들을 떠올리면서 복음의 말씀과 연결 지으려 합니다. 그런데 어느 날, 묵상 글을 쓰려고 하는데 특별한 일들이 전혀 기억나지 않는 것입니다.

문득 '내가 뭐하면서 살았지?'라는 의문이 들었고, 저는 전날 있었던 일들을 사소한 일까지 종이에 차례차례 적기 시작했습니다. 그런데 정말로 특별한 일이 하나도 없는 것입니다. 하지만 더 놀라운 것은 하루 중에 쓸데없이 보낸 시간이 너무나 많다는 것이었지요.

자신의 하루를 자주 점검할 필요가 있음을 깨닫습니다. 잠자리에 일어나는 순간부터 잠자는 그 순간까지를 차곡차곡 보아야 합니다. 그래야 얼마만큼 충실했는지를 알 수 있습니다. 특별한 일들 안에서 충실함을 발견하는 것이 아니라, 평범한 일상 안에서의 충실함이 내 자신을 더욱 더 성장시키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 인천교구 조명연 마태오 신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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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수도회] 소녀에게 먹을 것을 주라.... -한상우 바오로 신부 

(십자성호를 그으며)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2015년 나해 6월28일 연중 제13주일(교황 주일).

'소녀에게 먹을 것을 주라고 이르셨다.'

소녀는 부모님의 소유물이 결코 아닙니다.
지극히 순수한 사춘기의 시간을 겪고있는 자연스러운 우리의 딸들입니다.
주님께서는 빠르게 성장하는 자녀들을 바라지 않으십니다.
저마다 제대로 성장하기를 바라십니다.

공부와 취업때문에 누려야할 기본적인 삶도 빼앗긴 채 살아가는
이땅의 많은 젊은이들을 위해 기도드립니다.

예수님께서는 소녀의 아픔이 무엇인지를 정확하게 아십니다.
먼저 이야기를 들어주는 것에서 치유는 시작됩니다.
소녀의 아픔을 다 안다고 생각하고 있는 우리들의 가족
우리들의 부모님들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저 아이는 죽은 것이 아니라 자고 있다."

두려움때문에 잠 들어있는 소녀를 예수님께서는 사랑으로 깨우십니다.

"탈리타 쿰!"

'그러자 소녀가 곧바로 일어서서 걸어 다녔다.'

소녀는 예수님의 따뜻한 마음을 보게 된 것입니다.
예수님의 마음을 소녀에게 보여주셨기 때문입니다.
부모와 자식간의 만남이 행복한 만남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소녀와 소녀의 아버지 야이로를 괴롭히는 두려움이 예수님을 통해
새로운 희망을 발견합니다. 사랑하는 방법을 배우게 됩니다.
예수님처럼 일상안에서 이야기를 다시 시작하는 것입니다.
마음을 나누는 이야기는 거창한 것이 아니라 소박한 마음을 나누는
거기에 있습니다.

- 구속주회 한상우 바오로 신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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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수도회] 알타반의 말씀사랑

2015년 나해 6월28일 연중 제13주일 교황 주일
 
<“탈리타 쿰!” 이는 번역하면 ‘소녀야, 내가 너에게 말한다. 일어나라!’
는 뜻이다.> (마르 5,41)
 
새로 태어난 아기가 아직 깨어나지 못하고 있으니 기도해 달라는
잘 아는 지인의 부탁을 받고 그러겠노라 하였는데 오늘 예수님의 말씀으로
기도하고 싶습니다.

"프랜시스 마리아야, 어서 일어나거라!"
"탈리타 쿰!"

여러분도 오늘 저와 함께 이 아이를 위해 탈리타 쿰을 외쳐 주십시오.
이 아이만이 아니라 우리 주위에 실의와 절망에 빠져있는
이가 있다면 그를 위해서도 "탈리타 쿰"을 외쳐 주십시오.
 
오늘은 교황님을 위해 기도하는 날이기도 합니다.
교회와 세상이 더욱 정의롭고 평화롭게 되도록
노력하시는 교황님이 늘 영육간에 건강하여 힘차게 일어서실 수 있도록
교황 프란치스코를 위해서도 "탈리타 쿰" 하고 기도합시다.

- 작은 형제회 오상선 바오로 신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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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울] 치유

2015년 나해 6월28일 연중 제13주일

제1독서 
<악마의 시기로 세상에 죽음이 들어왔다.>
◎ 지혜서의 말씀입니다. 1,13-15; 2,23-24

제2독서 
<여러분이 누리는 풍요가 가난한 형제들의 궁핍을 채워 줍니다.>
◎ 사도 바오로의 코린토 2서 말씀입니다. 8,7.9.13-15

복음 
<소녀야, 내가 너에게 말한다. 일어나라!>
+ 마르코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5,21-43 <또는 5,21-24.35ㄴ-43>

상처가 있는 사람은 압니다.

어떻게 상처가 깊어지고 무거워지는지. 상처는 우리의 육체에만 자리 잡지 않습니다.

마음을 살피다가도 우리는 주저하지 않고 상처가 있다고 말합니다.
상처는 시간이 흘러감에 따라 그 의미를 더해 갑니다.

그 끝을 알 수 없을 만큼 깊이를 더해 가는 고통은 가히 당사자 아니고서야 절대 같이 나눌 수 없는 심연입니다.

어떤 이는 분명 과거를 아파하는 고통을 가질 것이고, 어떤 이는 현재를 몸서리치도록 아파할 것이며, 또 어떤 이는 아직 현실은 아니지만 곧 들이닥칠 미래의 상실에 가슴 미어지는 아픔을 새길 것입니다.

오늘 복음에 등장하는 회당장은 딸의 죽음이라는, 아직 현실은 아니지만 곧 닥칠 고통을 아파하는 사람입니다.

또한 열두 해나 하혈하는 고통을 예수님을 만나는 순간까지 안고 있어야 했던 여인은 분명히 현재를 아파하는 사람입니다.

아울러 기다림의 끈을 놓아 버린 채 자신의 현재를 죽음 저편으로 넘겨 버린 소녀는 과거형이 되어 버린 아픔 그 자체입니다.

이들 모두를 예수님께서 치유하십니다.

예수님의 치유는 이들의 상처를 더 이상 과거, 현재, 미래에 묶어 두지 않으셨습니다.

그들은 모두 아파하는 과거를 통해, 현재를 통해, 미래를 통해 예수님의 현존(치유)을 살게 되었습니다.

그렇다면 여러분은 어디에서 아파하고 계십니까?

아파하는 거기에 예수님이 함께 계십니다.

◎ 혹시 말 못할 아픔이 있다면 예수님께 보여드리며 치유를 청하십시오.
기꺼이 어루만져 낫게 해 주실 것입니다.

- 김태홍 사도요한 신부(서울대교구 수유동성당)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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