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월20일 사랑의 일치

작성자 : 디딤돌    작성일시 : 작성일2015-04-20 09:02:12    조회 : 420회    댓글: 0

◈ [인천] 2015년 4월 20일 부활 제3주간 월요일
 
제1독서 사도 6,8-15

그 무렵 8 은총과 능력이 충만한 스테파노는 백성 가운데에서 큰 이적과 표징들을 일으켰다.
9 그때에 이른바 해방민들과 키레네인들과 알렉산드리아인들과 킬리키아와 아시아 출신들의 회당에 속한 사람 몇이 나서서 스테파노와 논쟁을 벌였다. 10 그러나 그의 말에서 드러나는 지혜와 성령에 대항할 수가 없었다.
11 그래서 그들은 사람들을 선동하여, “우리는 그가 모세와 하느님을 모독하는 말을 들었습니다.” 하고 말하게 하였다. 12 또 백성과 원로들과 율법 학자들을 부추기고 나서, 느닷없이 그를 붙잡아 최고 의회로 끌고 갔다.
13 거기에서 거짓 증인들을 내세워 이런 말을 하게 하였다. “이 사람은 끊임없이 이 거룩한 곳과 율법을 거슬러 말합니다. 14 사실 저희는 그 나자렛 사람 예수가 이곳을 허물고 또 모세가 우리에게 물려준 관습들을 뜯어고칠 것이라고, 이자가 말하는 것을 들었습니다.”
15 그러자 최고 의회에 앉아 있던 사람들이 모두 스테파노를 유심히 바라보았는데, 그의 얼굴은 천사의 얼굴처럼 보였다.

복음 요한 6,22-29

예수님께서 오천 명을 먹이신 뒤, 제자들은 호수 위를 걸어오시는 예수님을 보았다. 22 이튿날, 호수 건너편에 남아 있던 군중은, 그곳에 배가 한 척밖에 없었는데 예수님께서 제자들과 함께 그 배를 타고 가지 않으시고 제자들만 떠났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23 그런데 티베리아스에서 배 몇 척이, 주님께서 감사를 드리신 다음 빵을 나누어 먹이신 곳에 가까이 와 닿았다.
24 군중은 거기에 예수님도 계시지 않고 제자들도 없는 것을 알고서, 그 배들에 나누어 타고 예수님을 찾아 카파르나움으로 갔다. 25 그들은 호수 건너편에서 예수님을 찾아내고, “라삐, 언제 이곳에 오셨습니까?” 하고 물었다.
26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대답하셨다.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너희가 나를 찾는 것은 표징을 보았기 때문이 아니라 빵을 배불리 먹었기 때문이다. 27 너희는 썩어 없어질 양식을 얻으려고 힘쓰지 말고, 길이 남아 영원한 생명을 누리게 하는 양식을 얻으려고 힘써라. 그 양식은 사람의 아들이 너희에게 줄 것이다. 하느님 아버지께서 사람의 아들을 인정하셨기 때문이다.”
28 그들이 “하느님의 일을 하려면 저희가 무엇을 해야 합니까?” 하고 묻자, 29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대답하셨다.
“하느님의 일은 그분께서 보내신 이를 너희가 믿는 것이다.”

***** 

실화인지는 모르겠지만, 어떤 책에서 이런 내용의 글을 보게 되었습니다.

억울하게 죄를 뒤집어쓰고 수감된 어떤 사람이 있었습니다. 너무나 억울했던 이 사람은 자신의 힘으로 죄가 없음을 증명하기 위해 탈옥을 계획합니다. 그런데 그에게는 탈옥하기에는 도저히 불가능한 신체적 결함이 있었습니다. 바로 한쪽 다리가 없어서 의족을 하고 있었다는 것이지요. 그럼에도 불구하고는 탈옥을 시도했고 당연히 얼마 못가 붙잡히고 말았습니다. 간수들은 그가 탈옥할 마음을 먹지 못하게 의족을 빼앗아 버렸습니다. 의족 없이 그는 한쪽 다리로만 살아야만 했습니다.

일 년이 지나 성탄 전야에 간수들은 이제 도저히 탈옥을 시도하지 못할 것이라는 생각에 의족을 돌려주었습니다. 그런데 이 사람은 의족이 필요 없다면서 다시 되돌려 주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정말로 탈옥을 포기한 것일까요?

아니었습니다. 그는 의족 없이 탈출할 완벽한 계획을 세웠고 실제로 한쪽 다리로 완벽한 탈옥을 했습니다.

실제의 이야기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어떤 경우에도 포기하지 않고 절망하지 않는 이 남자의 모습이 정말로 멋지게 보입니다. 사실 우리는 마음 안에 감옥을 만들어 스스로 갇히는 경우가 참 많습니다. 그리고 이 감옥에서의 탈출을 방해하는 어떤 여건 때문에 모든 것을 포기할 때도 참 많았지요. 돈이 없어서, 능력이 없어서, 권력이 없어서, 가족이 없어서, 힘이 없어서, 친구가 없어서....

나를 자유롭게 하지 못하는 감옥에서 탈출해야 합니다. 그런데 탈출해야 하는데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요건들은 원래가 없는 것이라고 생각하고 계획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래야 희망을 가지고 살 수 있으며, 언젠가는 나를 가두는 그 감옥에서 멋지게 탈출할 수 있으니까요. 그 탈출을 위해 필요한 분이 바로 주님이십니다. 그 주님만이 우리를 참 희망의 길로 인도해주시기 때문입니다.

제자들 역시 예수님의 말씀과 행적들을 통해 참 희망의 길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이제는 세상의 일보다는 하느님의 일을 해야 한다는 것을 깨닫습니다. 그래서 “하느님의 일을 하려면 저희가 무엇을 해야 합니까?”라고 묻지요. 그리고 이에 대한 예수님의 답은 간단했습니다.

“하느님의 일은 그분께서 보내신 이를 너희가 믿는 것이다.”

아버지와 아들은 하나이기 때문에, 주님을 믿고 따르는 것이야말로 하느님의 일을 하는 것이었지요. 나를 억압하는 감옥에서 벗어나, 우리를 참으로 행복하게 해주는 그 주님의 길을 가야합니다. 바로 주님을 믿고 따름으로 인해 가능합니다.

*****

만일 우리에게 겨울이 없다면, 봄은 그토록 즐겁지 않을 것이다. 우리들이 이따금 역경을 맛보지 않는다면, 성공은 그토록 환영받지 못할 것이다(앤 브래드스트리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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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꽃은 어디에 피는가?

연꽃은 산꼭대기에 피지 않습니다. 또한 마른 땅에서도 피지 않지요. 연꽃이 피어나는 곳은 보기 싫은 진흙탕입니다. 그런데 연꽃이 피면 그 진흙탕 전체를 가득 매워서 보기 싫은 진흙탕을 도저히 볼 수가 없게 됩니다. 그리고 사람들은 진흙탕을 전혀 보지 않고 연꽃의 아름다움과 향기에만 취해서 감탄하지요.

연꽃이 피는 환경은 그리 좋아 보이지 않습니다. 그러나 아름다운 연꽃을 피우면 그 안 좋은 환경은 눈에 보이지 않는 것입니다.

우리의 삶 역시 마찬가지가 아닐까요? 많은 사람들이 환경 탓을 얼마나 많이 합니까? 그래서 아무것도 할 수 없다고 불평불만을 던지곤 합니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내가 어떤 꽃을 피우고, 어떤 향기를 간직하느냐는 것입니다.

환경에만 집중하는 삶이 아닌, 바로 내 자신을 세상의 빛과 소금의 역할을 하는 소중한 존재로 만드는데 집중해야 합니다.

- 인천교구 조명연 마태오 신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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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청주] 사랑의 일치|반신부의 복음 묵상
 
2015년 나해 4월20일 부활 제3주간 월요일 (요한6,22-29)

제1독서 
<그들은 스테파노의 말에서 드러나는 지혜와 성령에 대항할 수가 없었다.>
◎ 사도행전의 말씀입니다. 6,8-15

복음 
<너희는 썩어 없어질 양식을 얻으려고 힘쓰지 말고, 길이 남아 영원한
생명을 누리게 하는 양식을 얻으려고 힘써라.>
+ 요한이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6,22-29 

사랑의 일치

사람은 음식을 먹지 않으면 살지 못합니다. 무엇을 먹든 먹어야 합니다. 다른 방법으로 영양을 보충할 수 있겠지만 일시적입니다. 단식을 한다고 해도 일정 기간이 지나면 위험하게 됩니다. 그래서 영양을 보충 시켜야 합니다. 음식을 통해서든 다른 방법을 통해서든 영양을 섭취하지 않으면 육체를 지탱할 수가 없습니다. 사순절이 되면 40일 동안 단식하시는 분이 계셨는데 그분이 말씀하셨습니다. "정신이 맑아지고 물 한 컵, 주스 한 잔이 얼마나 소중한지를 알게 되었다. 그런데 힘이 없어서 그야말로 맑아졌던 정신도 혼미할 때도 있었다." 사람은 무엇을 먹어야 삽니다. 영양이 필요합니다.

예수님께서는 “너희는 썩어 없어질 양식을 얻으려고 힘쓰지 말고 길이 남아 영원한 생명을 누리게 하는 양식을 얻으려고 힘써라”고 하셨습니다. 이 말씀은 사람은 밥을 먹어야 산다는 것을 말해줍니다. 그러나 밥을 먹는 것 보다 하느님의 말씀이 우선이라는 것입니다. 말씀 안에 모든 것이 있기 때문에 항상 말씀이 먼저 입니다. “사람은 빵만으로 살지 않고 하느님의 입에서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삽니다”(마태4,4). 그리고 말씀을 듣고 말씀대로 행하면 영원한 생명을 얻게 됩니다. 그러나 말씀을 듣고도 말씀대로 행하지 않으면 아무 소용이 없습니다. 말씀을 실천하는 가운데 하느님을 만나고 구원을 완성하게 됩니다. 요한 일서에는 이렇게 기록하고 있습니다. "누구든지 그분의 말씀을 지키면, 그 사람 안에서는 참으로 하느님 사랑이 완성됩니다"(1요한 2,5). “우리의 육신에 영양을 주기 위하여 빵을 먹어야 하듯이, 우리의 영혼을 위하여 성체를 모셔야 합니다”(성 가롤로 보르메오).

지상의 양식도 중요하지만 천상의 양식이 더 소중한데 그 천상양식을 얻기 위해서는 해야 할 일이 있습니다. 하느님께서 보내신 아들을 믿는 것입니다.(요한6,29). 결국 하느님 나라를 차지하기 위해서는 신앙이 있어야 합니다. 신앙은 하느님께서 주시는 선물이기도 하지만 인간의 동의를 통해서 완성됩니다. 하느님의 선물을 인간이 거부할 수 있으니 신앙은 하느님의 일인 동시에 인간의 일이기도 합니다.

사람들은 열심히 신앙생활을 하고 싶어 합니다. 남들이 성경에 관해 많이 알고 통성기도를 잘 하는 것을 보면 부러워합니다. 특히 전교에 동분서주하는 개신교 신자들을 보면서 열성을 부러워하고 말 잘하는 그들을 보며 주눅이 듭니다. 그러면서도 성경을 읽을 생각을 하지 않습니다. 텔레비전 앞에 있는 시간이 훨씬 많습니다. 노력하지 않으면서 거저 얻으려는 마음이 너무 큽니다. 성경을 하느님의 말씀으로 믿는다면 왜 그 말씀을 듣기를 주저하고 실천하기를 두려워합니까? 그야말로 “구슬이 서 말이라도 꿰어야 보배입니다.” 은총은 풍부하지만 인간의 협력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썩어 없어질 세상 것에는 눈이 번쩍 뜨이면서도 천상의 영원한 생명에는 굼뜬 우리의 모습을 돌아보아야 하겠습니다.

성 베르나르도는 “하느님의 위안은 다른 위로를 찾는 사람에게는 있을 수 없습니다. 진실한 것이 헛된 것과, 영신적인 것이 육신적인 것과, 최고의 것과 최저의 것과 혼동되기도 하지만 천상의 것과 지상의 것을 똑같이 맛볼 수는 없는 것입니다.”하고 말하였습니다. 그러므로 여러분은 천상의 것을 추구하십시오. 지상에 살면서도 지상에 있는 것들에 마음을 두지 말고 천상에 있는 것들에 마음을 두십시오. 그리고 영원한 생명의 양식인 말씀을 자주 접하고 말씀이 사람이 되어 우리 가운데 오신 주님을 미사 안에서의 영성체로써 신앙의 건강을 지키시기 바랍니다. “영성체보다 더 깊고 완전한 사랑의 일치는 있을 수 없습니다. 그분이 내 안에 계시고, 내가 그분 안에 있게 됩니다. 그렇게 되면 우리가 무엇을 더 바랄 수 있겠습니까?” '더 큰 사랑으로' 사랑합니다.
 
- 청주교구 청주 성모병원 부원장 반영억 라파엘 신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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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수도회] 굳이 멀리 가실 필요 없습니다!

2015년 나해 4월20일 부활 제3주간 월요일

제1독서 
<그들은 스테파노의 말에서 드러나는 지혜와 성령에 대항할 수가 없었다.>
◎ 사도행전의 말씀입니다. 6,8-15

복음 
<너희는 썩어 없어질 양식을 얻으려고 힘쓰지 말고, 길이 남아 영원한
생명을 누리게 하는 양식을 얻으려고 힘써라.>
+ 요한이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6,22-29 

굳이 멀리 가실 필요 없습니다!

빵을 많게 하신 기적을 통해 예수님께서 군중에게 바라셨던 바가 무엇일까 생각해봅니다.

하느님께서 백성들 사이에 분명히 현존하신다는 진리를 드러내기 위함이 아닐까요? 하느님 나라가 얼마나 풍요로운지 예표를 보여주시기 위함이 아닐까요? 하느님 앞에는 불가능이 없다는 것, 하느님은 전지전능하신 분이시라는 것을 확신시켜주시기 위함이 아닐까요? 결국 예수님을 뵙는 것이 곧 하느님 아버지를 뵙는 것이라는 놀라운 사실을 알려주기 위함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군중은 지금까지 단 한 번도 겪지 못했던 놀랍고도 신기한 기적에만 몰두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기적을 한번 맛본 사람들이 보이는 특징이 하나 있습니다. 그 맛을 잊지 못하고 또 다른 기적, 더 크고 대단하고 특별한 기적을 추구한다는 것입니다.

또한 군중은 대단한 능력자 예수님으로부터 또 다른 무엇인가를 기대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분께서 어쩌면 이 암담하고 부조리한 이스라엘의 고통스런 현실을 순식간에 뒤엎어버릴 수도 있지 않을까 하는 세속적인 기대 말입니다. 이런 군중의 심리를 잘 꿰뚫고 계셨던 예수님이셨기에 정곡을 찌르는 한 말씀을 던지십니다.l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너희가 나를 찾는 것은 표징을 보았기 때문이 아니라 빵을 배불리 먹었기 때문이다.”(요한복음 6장 26절)

예수님께서는 육적이고 물질적인 만족 때문에 당신을 쫓아다니는 군중을 꾸짖으시며 한 단계 앞으로 더 나아가라고 초대하고 계십니다. 먹어도 먹어도 허기가 지는 육적인 양식이 아니라 영원히 살게 하며 없어지지 않는 불멸의 양식을 찾기 위해 힘쓰라고 권고하십니다.

“너희는 썩어 없어질 양식을 얻으려고 힘쓰지 말고, 길이 남아 영원한 생명을 누리게 하는 양식을 얻으려고 힘써라.”(요한복음 6장 27절)

오늘날에도 뭔가 특별한 것, 뭔가 신기한 현상을 쫓아 멀리까지 다니시는 분들이 있습니다. 거기서 구하는 것은 또 무엇입니까? 특별하고 황홀한 신비 체험, 마치 거짓말처럼 이 고통스런 현실에서 한 순간에 벗어나는 것...이런 것들은 어찌 보면 예수님께서 꾸짖으신 세상의 양식입니다.

그래서 부탁드리는 말씀입니다. 굳이 멀리까지 가실 필요가 없습니다. 우리 본당 성당 안에 하느님 아버지께서 현존하십니다. 우리 공동체에서 매일 봉헌되는 성체성사를 통해 우리는 영원한 빵을 선물로 받을 수 있습니다. 우리 본당 고백소 안에서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모든 죄를 용서해주시는 자비하신 하느님을 만나 뵐 수 있습니다.

하느님께서 바라시는 바람직한 신앙이 어떤 것일까, 묵상해봅니다. 앞뒤 따져보지도 않고 광적이고 무조건적으로 믿는 그런 신앙은 점검이 좀 필요한 신앙인 듯합니다. 한 지도자가 지나치게 신격화되고 과장되게 포장되는 신앙은 분명히 문제가 있습니다. 인간의 가치나 존엄성이 훼손되는 그런 신앙 역시 진지한 자기 성찰이 필요합니다.

그렇다면 예수님의 가르침과 인간의 이성이 잘 조화된 신앙, 인간 사회에서 일반적으로 통용되는 기본 상식과 예의가 존중되는 신앙, 단 한 번에 모든 것이 다 성취되기보다 돌탑 쌓듯이 오랜 세월을 두고 꾸준히 쌓아 올라가는 그런 신앙, 고통과 시련 속에서도 꾸준히 희망하며 나 자신의 비참함을 견뎌내는 신앙...이런 신앙 어떤가요?
 
- 살레시오회 한국관구 관구장 양승국 스테파노 신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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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수원] 요셉 신부님의 매일 복음 묵상 -
세상의 비난받는 표적으로 만드시는 성령님

2015년 나해 4월20일 부활 제3주간 월요일

< 너희는 썩어 없어질 양식을 얻으려고 힘쓰지 말고,
길이 남아 영원한 생명을 누리게 하는 양식을 얻으려고 힘써라.>

복음: 요한 6,22-29

< 세상의 비난받는 표적으로 만드시는 성령님 >

스페인에 알폰소 12세라 불리는 선한 왕이 있었습니다. 어느 날 왕은 궁전의 시동들이 하느님께 식사 기도를 하지 않은 채 음식을 먹는다는 소식을 듣고 그들을 책망할 것을 결심하였습니다. 왕은 시동 모두를 향연에 초대하였습니다. 식탁은 모든 산해진미로 가득 차 있었으며 소년들은 매우 맛있게 음식을 먹었습니다. 그러나 그들 어느 누구도 식사 기도를 하지 않았습니다.

향연 중에 더럽고 누추한 옷을 입은 거지 하나가 들어 왔습니다. 그는 왕의 식탁에 앉아 맘껏 음식을 먹고 마셨습니다. 처음에 시동들은 경악했으며 왕이 곧 그를 쫓아내라고 명할 것을 기대하였습니다. 그러나 알폰소는 한 마디도 하지 않았습니다. 식사를 끝낸 거지는 감사의 말 한 마디도 없이 갔습니다. 그러자 소년들은 더 이상 침묵을 지킬 수가 없었습니다.

“얼마나 야비하고 천한 사람인가!”

그들은 외쳤습니다. 그러나 왕은 그들을 조용히 하도록 명하며, 뚜렷하고 조용한 음성으로 말하였습니다.

“소년들이여, 너희들은 거지보다 더 뻔뻔스럽고 대담한 사람들이다. 매일 너희들은 하늘에 계신 아버지가 주신 음식을 먹으면서 그에게 은총을 바라거나 감사를 표현하는 말 한 마디도 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누군가의 생각을 드러내기 위해서는 그 생각이 밖으로 드러나도록 만드는 ‘비난받는 표적’을 세워야합니다. 성모님께서 예수님을 성전에 봉헌하실 때 예언자 시므온이 성모님께 예수님은 세상의 비난받는 표적이 되어 그 어머니의 영혼 또한 예리한 칼에 찔리듯 아플 것이라고 예언하였습니다. 그리고 세상은 그리스도를 단죄하여 하느님과 반대되는 무리였음을 스스로 드러내게 되었습니다. 마치 주인이 포도밭 소작인들에게 외아들을 보내는 이유는 그들이 설득당하라고 그러는 것이 아니라 그들의 생각이 아들의 죽음을 통해 명확히 세상에 드러나기를 바라는 의도에서였던 것과 같습니다.

오늘 독서에서 스테파노 안에 성령께서 작용하시어 누구도 그의 언변을 이길 수 없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스테파노를 황당한 모함으로 죽음으로 몰고 갑니다. 성령께서는 우리를 세상과 대적하는 자가 되게 하여 결국 우리의 순교로 세상의 생각이 드러나게 하시는 분이신 것입니다.

따라서 언변으로 주님을 증거한다고 세상이 모두 설득당할 것이란 생각은 접어야합니다. 원치 않으면 아무리 반박할 수 없는 언변으로 증명하더라도 절대로 설득당하지 않습니다. 또한 세상이 나를 박해한다고 해서 또 아무도 나의 증언을 들어주지 않는다고 해서 실망할 필요도 없습니다. 성령께서는 세상에서 무시 받고 박해받도록 우리를 이끄십니다. 어쩌면 세상에서 칭찬받고 사람들로부터 들어 높임을 받는 것이 하느님 눈에는 가증스러울 수도 있습니다. 성과주의에 기뻐하지 말고, 세상의 몰이해에 실망하지 말아야겠습니다. 어차피 내 안에서 성령께서 모든 것을 하시고 계심을 믿는다면 크게 기뻐할 것도 많이 실망할 것도 없습니다. 또한 내가 반대하는 사람 안에 성령께서 작용하고 계실 수도 있음도 주의해야 합니다. 가말리엘의 지혜처럼 우리 모두가 반대하는 그 사람 안에서 성령께서 말씀하고 계실 수도 있는 것입니다.

어느 대학의 졸업식장에서 학생들이 차례로 졸업장을 받고 있었습니다. 순서가 진행되는 것을 바라보는 한 축하객에게 눈에 띄는 장면이 있었습니다. 어느 학생이 한 손을 호주머니에 넣고 한 손으로 졸업장을 받고 총장에게 악수도 받지 않고 지나가는 것이었습니다. 한 축하객은 “세상도 많이 변했군, 저렇게 건방진 학생도 있으니. 한 손으로 졸업장을 받다니 이 학교는 4년 동안 무얼 가르쳤단 말인가?”라며 혀를 찼습니다. 그러자 옆에 있던 한 재학생이 말했습니다.

“그게 아닙니다. 저 분은 한 팔을 잃고 대신 의족을 하고 4년 동안 훌륭하게 학교를 다닌 학생입니다.”

섣부르게 판단하는 일은 없어야겠습니다. 내가 누군가를 판단하면서 내 자신이 누군가가 드러나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누구도 판단할 수 없는 그런 처지라는 것을 알 때야만 이 성령의 심판에서 벗어날 수 있습니다.

요셉 신부님 미니홈피: http://minihp.cyworld.com/30joseph 
 
- 수원 교구 복음화국 부국장 전삼용 요셉 신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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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울] 예수님의 양식인 사랑 
 
2015년 나해 4월20일 부활 제3주간 월요일(장애인의 날)

제1독서 
<그들은 스테파노의 말에서 드러나는 지혜와 성령에 대항할 수가 없었다.>
◎ 사도행전의 말씀입니다. 6,8-15

복음 
<너희는 썩어 없어질 양식을 얻으려고 힘쓰지 말고, 길이 남아 영원한
생명을 누리게 하는 양식을 얻으려고 힘써라.>
+ 요한이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6,22-29
 
예수님의 양식인 사랑

요즈음 TV 프로그램은 웰 빙 식품 방영이 많고 시청율도 좋습니다.
맛있고 건강에 좋아 배부르게 먹고 오래 산다면 행복지수가 높아지나요?
물론 조금은, 그것도 잠시뿐, 영원생명의 행복과는 비교도 안 될 겁니다.

사랑받으면 심장은 따뜻한 피를, 뇌는 짜릿한 전류를 온 몸에 보냅니다.
이런 사랑이 첫째이고 사랑 없인 인생가치도 없어 살기 싫다 그럽니다.
죽어 끝날 사랑이 그정도면 부활하신 예수님 사랑은 영 다르지 않을까요?

“너희는 썩어 없어질 양식을 얻으려고 힘쓰지 말고, 길이 남아 영원한
생명을 누리게 하는 양식을 얻으려고 힘써라. 그 양식은 사람의 아들이
너희에게 줄 것이다.
하느님 아버지께서 사람의 아들을 인정하셨기 때문이다.(요한 6,27)”

- 서울 대교구 이기정 사도요한 신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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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수도회] 2015.04.20.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그러자 최고 의회에 앉아 있던 사람들이 모두 스테파노를 유심히
바라보았는데, 그의 얼굴은 천사의 얼굴처럼 보였다.> (사도 6,15)

오늘 장애인의 날입니다.
여러 장애인들이 많지만 특히 지적장애인들은 천사라 불립니다.
좀 모자라 보이지만 늘 잘 웃고 맑아 보입니다.

여러분은 어떤 모습인가요? 어떤 때는 천사같은 얼굴인데
또 어떤 때는 마귀같은 모습으로 보일 때도 있지요?
지금 거울 한번 보실래요?

내가 인간적인 욕심이나 다른 사심으로 가득 차 있을 때
내 모습은 미워 보입니다.
그러나 내가 늘 하느님 나라를 생각하고 맑고 선한 마음이 되어 있으면
내가 봐도 흐뭇할 정도로 내 모습이 아름다워 보입니다.

오늘 천사같은 얼굴을 되찾으시길 축원합니다.
우리는 천의 얼굴을 지니고 있습니다.
어떤 모습이 되느냐는 우리의 마음에 달려 있습니다.
무얼 보고 무얼 느끼고 무얼 생각하며 사는지에 따라
천사의 모습도 되고 마귀의 모습도 됩니다.

원래 천사보다 더 귀하게 태어난 하느님 모습을 닮은 우리 아닌가요?

- 작은 형제회 오상선 바오로 신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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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울] 부활 제3주간 월요일 
 
2015년 나해 4월20일 부활 제3주간 월요일

제1독서 
<그들은 스테파노의 말에서 드러나는 지혜와 성령에 대항할 수가 없었다.>
◎ 사도행전의 말씀입니다. 6,8-15

복음 
<너희는 썩어 없어질 양식을 얻으려고 힘쓰지 말고, 길이 남아 영원한
생명을 누리게 하는 양식을 얻으려고 힘써라.>
+ 요한이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6,22-29
 
예전에 수업시간에 들은 이야기입니다. ‘현명한 스승은 제자들에게 매일 물고기를 주지 않습니다. 물고기를 잡는 방법을 알려 줍니다.’ 그러면 제자들은 스승이 떠날지라도, 굶주리지 않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교육 현실, 우리의 자녀 교육은 문제를 해결하는 능력을 키워주기보다는 매번 문제가 생기면 해결해 주는 방향이라는 이야기를 듣습니다. 그래서 우리의 자녀들은 스스로 문제를 해결하기보다는 마치 햄릿처럼 ‘사느냐, 죽느냐 그것이 문제로다.’라는 고민을 하는 것 같습니다.

부모는 자녀들을 위해서 모든 것을 헌신합니다. 가르쳐 주고, 먹여 주고, 용돈을 주고, 결혼을 하면 집도 마련해 주고, 물심양면으로 자녀들에게 헌신합니다. 그러나 자녀들은 온실 속의 화초처럼 자라기 때문에 시련이 오면 그것을 이겨내지 못합니다. 고통이 오면 그것을 해결해 주지 못하는 부모님을 원망합니다. 온갖 사랑을 다 받고 자라지만 부모님께 대한 감사의 마음을 갖지 못합니다.

공부를 잘 하는 학생은 습관처럼 책상 앞에 있는 것이 아닙니다. 부모님께서 길을 찾아 주실 것이라는 기대를 갖는 것이 아닙니다. 내가 왜 공부를 해야 하는지를 명확하게 아는 학생입니다. 나는 무엇을 하고 싶은지, 어떤 사람이 되고 싶은지를 알고 있는 학생입니다. 그런 학생은 공부하라고 말을 하지 않아도 스스로 책상 앞에서 공부를 하기 마련입니다. 그 길만이 최선이라는 것을 알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정답을 먼저 말씀해 주지 않으셨습니다. ‘여러분은 어떻게 생각하십니까?’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리고 제자들은 각자의 의견을 예수님께 말하였습니다. 이것이 예수님께서 제자들을 가르치신 방법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이 주체적으로 행동하기를 원하셨습니다. 그래서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내가 여러분을 사랑한 것처럼 여러분도 서로 사랑하십시오.’ 또 말씀하셨습니다. ‘나의 제자가 되려는 사람은 자신의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라야 합니다.’ 예수님께서는 빵을 주는 것이 아니라, 빵을 만들 수 있는 방법을 말씀해 주셨습니다. 그리고 그것은 제자들이 직접 행동해야만 얻을 수 있다고 하셨습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말씀하십니다. ‘빵을 배불리 먹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닙니다. 표징을 보는 것이 중요합니다.’ 하느님께 대한 찬미와 감사의 마음을 갖는다면 빵은 언제든지 배불리 먹을 수 있는 것입니다. 참된 구원은 지금 당장 배부르게 하는 것이 아니라, 영원한 생명을 주는 하느님을 믿는 것입니다. 그 믿음은 하느님께서 보내신 ‘나’를 먼저 신뢰하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재물을 주시지 않았습니다. 커다란 능력을 주시지 않았습니다. 다만 하느님의 아들이 죽었지만 다시 살아났고, 부활하셨다는 믿음을 주셨습니다. 그 믿음 위에 교회가 탄생한 것입니다. 그 믿음이 온갖 박해와 죽음까지도 이겨낼 수 있게 한 것입니다.
 
- 서울 대교구 성소국장 조재형 가브리엘 신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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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수도회] 영원한 생명 체험
이수철 프란치스코 성 베네딕토회 요셉수도원 신부님 

(십자성호를 그으며)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2015년 나해 4월20일 부활 제3주간 월요일(장애인의 날)
사도6,8-15 요한6,22-29

제1독서 
<그들은 스테파노의 말에서 드러나는 지혜와 성령에 대항할 수가 없었다.>
◎ 사도행전의 말씀입니다. 6,8-15

복음 
<너희는 썩어 없어질 양식을 얻으려고 힘쓰지 말고, 길이 남아 영원한
생명을 누리게 하는 양식을 얻으려고 힘써라.>
+ 요한이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6,22-29

영원한 생명 체험

공관복음의 중심메시지가 '하느님 나라'라면,
요한복음의 중심메시지는 '영원한 생명'입니다.
다른 주제인 듯 하지만 똑같이 하느님을 대상으로 합니다.

하느님 나라 체험이 바로 영원한 생명 체험이자 모두 하느님 체험을 의미합니다.
오늘은 '영원한 생명 체험'에 대한 묵상나눔입니다.

'영원한' '생명' '체험'이란 말만 들어도 마음이 밝아지는 기분입니다.
요즘 모두 등한시 취급되고 있는 그러나 너무나 중요한 말들이기 때문입니다.
역설적으로 오늘날의 영적 삶의 빈곤을 알아 볼 수 있는 척도가 되는 말입니다.

제 지론은 세 종류의 성경이요 완전한 렉시오 디비나는
신구약성경을 교과서로 하고 자연성경과 내 삶의 성경을 참고서로 할 때 이루어진다는 것입니다.

요즘의 자연의 변화가 눈부십니다. 늘 봐도 늘 새롭고 좋은 산과 들입니다.

"하느님이 참 부지런하셔요.“
수도원을 방문한 자매가 수도원 주변의 눈부신 자연의 변화를 보며 감탄하며 던진 말입니다.
"하느님은 참 놀랍습니다. 침묵중에 끊임없이 쉬지 않고 일하시니 말입니다.“
화답했습니다. 이 또한 자연성경을 렉시오디비나 한 결과입니다.

얼마전 너무나 힘든 처지에 있는 분과 대화중
집무실 창밖 만개한 봄꽃들과 그 넘어 푸른 솔에 눈길이 멎었습니다.
'늘 푸른 솔처럼 꾿꾿히 사셔요' 말하고 싶었지만 꾹 참고
후에 '내 보는 건' 이란 시로 표현해 놓았습니다.

-내 보는 건/꽃이 아니다
 꽃 넘어/푸른 솔이다
 푸른 솔 넘어/텅 빈 하늘이다-

현실 안에 살되 현실에 집착하지 말고
그 현실 넘어 마침내 하느님을 상징하는 텅 빈 하늘을 보라는 것입니다.
바로 이것이 영원한 생명의 하느님 체험이요 결과는 초연한 자유로움입니다.

바로 예수님의 다음 복음 말씀과 맥을 같이 합니다.
보이는 빵의 현실이 전부인양 집착하지 말고
그 넘어 영원한 생명을 주시는 주님을 응시하라는 것입니다.

"너희가 나를 찾은 것은 표징을 보았기 때문이 아니라 빵을 배불리 먹었기 때문이다.
너희는 썩어 없어질 양식을 얻으려고 힘쓰지 말고,
길이 남아 영원한 생명을 누리게 하는 양식을 얻으려고 힘써라.
그 양식은 사람의 아들이 너희에제 줄 것이다.“

그대로 이 거룩한 미사를 통해 실현되는 진리입니다.

며칠 전 써놓고 행복했던 '하느님만으로 행복하기에'란 자작시가 또 생각이 납니다.

-활짝 열려/활짝 깨어/활짝 피어
 온몸이/눈이, 귀가 된 봄꽃나무들

 온몸이/눈이 되어
 온몸이/귀가 되어

 하느님을 보고 싶다/듣고 싶다
 하늘로 가득 채워진 마음

 하느님만으로/만족하고 행복하기에
 아무것도 아쉬울 것 없다/부족할 것 없다/두려울 것 없다-

깨달음처럼 스친 시이지만
정말 이렇다면 바로 이것이 영원한 생명의 하느님 체험이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복음의 예수님은 물론 사도행전의 스테파노,
그리고 무수한 성인성녀들이 행복했던 것은
바로 이런 영원한 생명 체험에서 연유됨을 깨닫게 됩니다.

독서에 나오는 스테파노에 대한 묘사는 그대로 영원한 생명 체험의 가시적 표현들입니다.

'그 무렵 은총과 능력이 충만한 스테파노는 백성 가운데에서 큰 이적과 표징들을 일으켰다.'
'그러나 그의 말에서 드러나는 지혜와 성령에 대항할 수가 없었다.‘
'그러자 최고 의회에 앉아 있던 사람들이 모두 스테파노를 유심히 바라보는데,
그의 얼굴은 천사의 얼굴처럼 보였다.'

영원한 생명의 하느님 체험의 은총이 아니곤 이해할 수 없는 사실입니다.
영원한 생명의 빛이 그 얼굴에 가득했기에 천사의 얼굴처럼 보인 스테파노임이 분명합니다.

내면 깊이에서는 누구나 영원한 생명을 주시는 하느님을 배고파하는, 목말라하는 사람들입니다.
바로 이것이 인간의 복된 숙명입니다.

고맙게도 주님은 매일의 이 거룩한 미사를 통해
우리가 모신 당신의 말씀과 성체성혈로 우리 모두 영원한 생명에 이르게 하십니다.

참으로 영원한 생명의 영식(靈食)이자 영약(靈藥)인 주님의 말씀과 성체의 효능이
하느님의 일인 주님을 잘 믿게 하는 원동력이 됩니다.

오늘은 장애인의 날인데 성체성사의 은총이 우리의 영적 장애를 치유해 주십니다.
화답송 후렴처럼 주님의 가르침을 따라 살 때 영원한 생명의 체험이요 행복한 삶입니다.

"행복하여라, 주님의 가르침을 따라 사는 이들!"(시편119.1참조).

아멘.

- 이수철 프란치스코 성 베네딕도회 성요셉 수도원 신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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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수도회] 기 프란치스코 신부님 - ‘슬픈 착각의 늪’을 벗어나    

2015년 나해 4월20일 부활 제3주간 월요일 요한 6,22-29

“영원한 생명을 누리게 하는 양식을 얻으려고 힘써라.”(요한 6,27)

‘슬픈 착각의 늪’을 벗어나

한낱 먼지에 지나지 않은 인간은 늘 영원을 갈망하며 살아간다. 그러나 대부분의 사람들이 영원하지 않은 것 안에서 영원한 것을 찾을 수 있다는 ‘착각과 착시 현상’에 빠져 살아간다. ‘자기가 원하는 일들’을 추구하면서 ‘하느님의 일’을 한다고 여기는 ‘슬픈 착각의 늪’에서 헤매기도 한다. 예수님께서 오천 명을 먹이신 뒤, 제자들은 호수 위를 걸어오시는 예수님을 보았다. 이튿날 군중은 ‘빵의 기적을 베풀던 곳’, 곧 자신들의 이기심, 욕망, 고정관념이 꽉 차 있는 곳에서 예수님을 찾으려했다. 그들은 그렇게 굶주려 있었으나 ‘생명의 빵’으로 오신 예수님을 그들이 원하는 때에, 원하는 곳에, 원하는 모습으로 만나 뵈올 수 없었다. 그래서 그들은 작은 배들에 나누어 타고 그분을 찾아 카파르나움으로 갔다(6,24).

군중들은 호수 건너편에서 예수를 찾아내고 “라삐, 언제 이곳에 오셨습니까?”(6,25) 하고 질문하였다. 예수님께서는 “너희가 나를 찾는 것은 표징을 보았기 때문이 아니라 빵을 배불리 먹었기 때문이다.”(6,26) 하고 대답하시며 그들의 본심을 들추어내신다. 그들은 예수님께서 보여주신 빵의 표징에서 신적인 의미와 ‘생명의 빵’이신 그분의 정체성을 알아차리지 못했다.

예수께서는 그들을 향하여 “너희는 썩어 없어질 양식을 얻으려고 힘쓰지 말고, 길이 남아 영원한 생명을 누리게 하는 양식을 얻으려고 힘써라. 그 양식은 사람의 아들이 너희에게 줄 것이다.”(27절)하고 말씀하신다. 곧 인간의 노력이 아니라 ‘사람의 아들’에 의해 하느님의 선물로 주어지는 ‘길이 남아 있을 영원한 생명을 주는 양식'을 얻으려고 힘써야 한다는 말씀이다. ‘사람의 아들이 줄 양식’이란 신적인 생명을 지닌 예수님 자신과 그분을 통해서 주어지는 구원의 선물, 그분의 살과 피를 가리킨다고 볼 수 있다.

그런데 군중들은 ‘힘쓰시오’라는 말을 오해하여 ‘일들’로 생각한 나머지 그분께 여쭈었다. “하느님의 일을 하려면 저희가 무엇을 해야 합니까?”(6,28) 예수님께서 “하느님의 일은 그분께서 보내신 이를 너희가 믿는 것이다.”(29절) 하고 대답하셨다. 군중이 복수 형태로 ‘하느님의 일들’이라 하는데, 예수님께서는 단수 형태 곧 ‘하느님의 일’이라고 하신 점에 유의해야 한다. 곧 하느님께서 요구하시는 일은 곧 당신을 파견하신 분을 믿는 것 단 한가지뿐임을 강조하신 것이다. ‘하느님의 일’은 하느님께서 파견한 이를 믿는 인간의 행위 또는 태도로서 하느님의 요청과 부르심에 대한 인간의 응답이다. 하느님의 뜻을 행하는 것이 또한 ‘하느님의 일’이라고 할 수 있다.

나의 굶주림은 무엇인가? 내가 찾는 것은 어떤 것인가? ‘썩어 없어지지 않을 생명의 빵’이신 예수님이 아니라 자신 중심적인 생각이나 물질, 명예를 추구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하느님과의 일치, 예수 그리스도와의 친교 없이 오직 자신의 현실적인 이득을 찾으려 하거나 자신이 원하는 틀에 그분을 끼워 맞추려 할 때 삶의 의미를 잃게 됨을 명심해야 하리라. 예수님께서는 새로운 양식, 사람의 아들, 믿음을 강조하신다. 혹시 우리도 군중처럼 티베리아스 호수 건너편, 하느님 없이 자기 이익에만 눈멀어 있는 상태에서 내가 원하는 것을 찾고 있지는 않는가? 군중은 빵의 기적을 베푸신 그곳에서 예수님을 찾으려 했으나 허사였다. 결국 그들은 카파르나움에서 예수님을 찾았고 그분과 함께 있게 되었다. 이제 우리도 마음을 모아 ‘하느님의 일’, 곧 생명의 빵 자체이신 예수와 그분을 파견하신 분을 믿는 하나인 믿음을 위하여 힘쓰도록 해야 하리라!
 
- 기경호 프란치스코 신부 작은형제회(프란치스코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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