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톨릭신문 2024-11-03 제 3415호 8면
프란치스코 교황은 10월 24일(현지시간) 새 회칙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사랑하셨습니다」(Dilexit Nos)를 반포했다. 회칙은 ‘마음’을 잃어버린 세계, 그리고 낡은 구조와 관행에 얽매이는 가톨릭교회 모두를 향해 예수 그리스도의 성심, 그 사랑만이 아름다운 세상과 교회의 쇄신을 향해 나아갈 수 있는 길임을 제시한다. 주요 내용을 살펴본다.
마음을 잃어버린 세계의 고통
교황은 회칙에서 “우리는 사랑하고 사랑받기 위해 창조됐다”며 “세계가 마음을 잃어버린 것처럼 보인다”고 말했다. 이는 물질과 재화에 대한 탐욕과 참혹한 전쟁을 대하면서도 비정하고 무관심해진 세상에 대한 교황의 참담한 심정을 표현한다.
저명한 신학자이자 이탈리아 키에티-바스토대교구장인 브루노 포르테 대주교는 10월 24일 기자회견에서 새 회칙이 교황 자신의 체험으로부터 비롯된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이 회칙은 전 세계에서 벌어지고 있는 전쟁과 수많은 형태의 폭력이 야기한 고통에 대한 교황 자신의 체험에서 태어났다”며 “교황은 우리를 구원하시려는 하느님 사랑의 메시지를 전함으로써 고통받는 이들 곁에 다가가기를 원한다”고 말했다.
포르테 대주교는 이 회칙이 프란치스코 교황의 두 사회 회칙, 「찬미받으소서」(Laudato si’)와 「모든 형제들」(Fratelli Tutti)의 가르침을 이해하는 열쇠가 된다고 설명했다. 즉, 이 두 사회 회칙의 가르침은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과 따로 떼어 생각할 수 없다. 사랑의 물을 마심으로써 우리는 형제애로 서로를 연결하고 모든 인간 존재의 존엄성을 인식하며, 그럼으로써 공동의 집 지구를 돌보기 위해서 함께 노력할 수 있는 힘을 얻는다는 것이다.
인간 존엄성과 공동체성 회복 위해
주님 사랑에 의탁할 것 환기
성령의 힘으로 교회 미래 열고
이원론 벗어나 사랑 실천 강조
오직 사랑만이 우리를 구원한다
이런 맥락 안에서 교황은 소유를 통해서만 가치를 인정받는 세상의 부조리를 지적하고 그리스도의 사랑을 통해서 사랑을 회복할 수 있기를 갈망한다.
“우리는 끊임없이 소비하고, 구매하고, 스스로를 산만하게 하도록 강요받으며, 우리의 즉각적이고 하찮은 필요를 넘어서지 못하게 하는 억압적인 시스템에 갇혀 있습니다. 그리스도의 사랑은 이 뒤틀린 메커니즘 안에 자리할 곳이 없다 하지만, 오직 그 사랑만이 우리를 조건 없는 사랑을 위한 자리를 잃어버린 이 광적인 추구로부터 자유롭게 할 수 있습니다. 그리스도의 사랑은 우리 세상에 다시 심장을 불어넣을 수 있으며, 우리가 사랑할 능력을 잃었다고 여기는 곳에 사랑을 되살릴 수 있습니다.”
회칙은 또 한 가지 목표, 즉 가톨릭교회 안에서도 예수 성심과 그 사랑의 불이 필요함을 일깨우려는 뜻을 담고 있다. 그래서 교황은 “그리스도의 사랑이 시대에 뒤떨어진 구조와 걱정, 자신의 생각과 의견에 대한 과도한 집착, 그리고 다양한 형태의 광신주의로 대체되지 않도록” 교회 역시 이 사랑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러한 낡은 것들은 우리를 하느님께로 인도하기보다는, “우리를 해방하고, 생기를 불어넣고, 우리 마음에 기쁨을 주며, 공동체를 형성하는, 하느님의 대가 없는 사랑을 대체하는 결과를 낳는다.”
교황이 새 회칙을 세계주교시노드 제16차 정기총회 폐막을 며칠 앞둔 시점에서 반포한 취지는 가톨릭교회 역시 교회의 참된 미래를 열어가기 위해서는 성령의 이끄심, 예수 그리스도의 성심이 상징하는 무한한 사랑에 의탁해야 함을 시노드 대의원들과 전 세계 주교들에게 환기시키기 위한 것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