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종, 바레인 순방 후 기내회견 일문일답 요약 (편집 : 장기풍)

작성자 : 최고관리자    작성일시 : 작성일2022-11-09 22:02:55    조회 : 93회    댓글: 0

교종, 바레인 순방 후 기내회견 일문일답 요약

(편집 : 장기풍)

“교회는 나쁜 일을 부끄러워하고 선에 대해 하느님께 감사해야 합니다”

프란치스코 교종은 11월6일 바레인 사도적 순방 마치고 귀국하는 비행기에서 기자들의 다양한 질문에 일문일답식으로 답했다. 교종은 회견에서 우크라이나를 비롯한 세계의 많은 전쟁과 갈등 그리고 회교 알 아즈하르 대이맘과의 우정, 여성의 권리와 평등, 이주 문제, 아동 학대 등의 중요성에 대한 견해를 밝혔다. 기자회견 녹취록 요약.

(문) 파티마 알 나젬, 바레인 뉴스 에이전시 : 질문에 앞서 먼저 말씀드리고 싶은 것이 있습니다. 교종님은 제 마음에 아주 특별한 자리를 차지하고 있습니다. 교종께서 저의 나라를 방문했기 때문만 아니라 제 생일에 교종님이 교종으로 선출되셨기 때문입니다. 질문 있습니다. 역사적인 바레인 왕국 방문 결과를 어떻게 평가하고 바레인이 사회 모든 영역에서 모든 종교, 성별 및 인종의 공동생활을 통합하고 증진하기 위해 기울이는 노력을 어떻게 평가하십니까?

(답) 저의 방문 목적은 실제로 이슬람과의 종교간 대화와 바르톨로메오 정교회 총대주교와의 에큐메니칼 대화에 있는 것이었기 때문에 만남의 여행이었습니다. 알 아즈하르 대이맘이 만든 아이디어는 뉘앙스, 차이점을 존중하는 이슬람 내의 일치, 그리스도교와 다른 종교와의 일치, 종교간 대화와 에큐메니칼 대화였습니다. 그러나 대화에 들어가기 위해서는 자신의 것이 필요합니다. 분산된 정체성에서는 대화를 시작할 수 없습니다. "나는 무슬림이다", "나는 그리스도교인이다" 각자 이 정체성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대화를 할 수 있습니다. 자신의 정체성이 없거나 조금 허공에 있을 때는 앞뒤가 맞지 않기 때문에 대화가 어렵습니다. 이번에 이곳에 오신 알 아즈하르 대이맘과 바르톨로메오 총대주교 두 분은 모두 강력한 정체성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것은 매우 바람직한 것입니다. 

저는 이슬람의 관점에서 대이맘의 세 연설을 주의 깊게 들었고 그에게 “당신들 사이의 이슬람 내 대화, 차이점을 지우지 않고 서로 이해하고 반대하지 않고 함께 일하십시오. 우리 그리스도교인들은 서로 종교전쟁으로 이끈 나쁜 역사를 갖고 있습니다. 가톨릭은 정교회 또는 루터교에 반대합니다. 그러나 이제 공의회 후 하느님께 감사를 드리며 우리는 서로 친밀감 있게 함께 대화하고 일할 수 있습니다. 중요한 것은 다른 사람들에게 선을 행하는 간증입니다. 전문가, 신학자들은 신학적인 것을 논하지만 우리는 믿는 자로서 친구로서 형제로서 선을 행하며 함께 걸어가야 합니다”라고 말했습니다. 

저는 또한 이슬람 장로 회의에서 창조와 창조의 보존에 관해 언급한 내용에 깊은 인상을 받았습니다. 이것은 이슬람교, 그리스도교인과 모든 사람의 공통 관심사입니다. 이제 바티칸 국무장관과 알 아즈하르 대이맘은 형제처럼 같은 비행기를 타고 바레인에서 카이로까지 갑니다. 이것은 상당히 감동적인 일입니다. 이것은 좋은 일을 한 것입니다. 에큐메니칼 분야 권위자 바르톨로메오 총대주교 참석도 좋은 결과를 가져왔습니다. 우리는 전에 가졌던 에큐메니칼 예배와 이전에 그가 하신 말씀에서 그것을 보았습니다. 요약하면 만남의 여정이었습니다. 저에게는 누구에게나 열려 있는 문화를 알게 되는 참신함입니다. 당신의 나라 바레인에는 모든 사람을 위한 공간이 있습니다. 저는 보았습니다. 국왕은 제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이 나라에서는 모두가 원하는 대로 하고, 여자가 일하고 싶으면 일하도록 완전 개방합니다.” 그래서 저는 국왕에게 말했습니다. "당신은 종교적 부분의 개방성을 위해 일합니다. 저는 이 나라에서 살고 일하는 수많은 그리스도교인, 필리핀인, 케랄라 출신의 인디언에 충격을 받았습니다"라고 말했습니다,

(문) 파티마 알 나젬 기자 : 그들은 교종님의 안녕을 기도합니다.

(답) 그것이 아이디어입니다. 저는 참신함을 찾았고 사람들을 이해하고 더 많이 상호작용하는 데 도움이 됩니다. 일치의 키워드는 대화이며 대화를 하려면 자신의 정체성에서 시작하여 정체성을 가져야 합니다.

(문) 파티마 알 나젬 기자 : 성하, 감사합니다. 저는 교종께 건강과 행복과 장수를 축복하기 위해 전능하신 알라께 기도할 것입니다.

(답) 네, 반대가 아니라 저를 위해 기도해 주십시오.(웃음)   

(문) 이마드 아트라치 기자 : 교종님, 3년 전 ‘인간 형제애에 관한 문서’ 서명부터 바그다드 방문, 그리고 최근에는 카자흐스탄 방문까지 이러한 방문이 가시적 열매를 맺고 있다고 생각하십니까? 그 열매가 바티칸 회의에서 절정에 달할 것으로 기대할 수 있습니까? 그렇다면 오늘 레바논에 대해 말씀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레바논 국민으로서 저는 교종님 방문이 정말 시급하다고 말씀드릴 수 있습니다. 특히 지금은 대통령도 공석으로 교종께서 오실 수 있기 때문입니다. 레바논 사람들을 직접 포용하십시오.

(답) 고맙습니다. 아부다비 문서에 대한 아이디어가 어떻게 생겨났는지, 처음으로 함께 만든 문서에 대해 대이맘과 함께 많은 생각을 하게 된 요즘입니다. 그는 예의 바르게 바티칸을 방문했습니다. 우리 회의가 끝난 후 거의 점심시간이었고 그는 떠나려 하고 있었고 저는 그와 좀 더 대화하기 위해 그에게 물었습니다. “자, 같이 점심식사합시다.” 그런 다음, 그와 그의 비서, 보좌관 두 명과 저와 제 비서와 고문이 식탁에 앉아 빵을 들고 떼어 서로 나누어 주었습니다. 빵을 떼어 주는 우정의 제스처. 그것은 매우 훌륭하고 형제적인 식사였습니다. 그리고 마지막에 누가 아이디어를 냈는지 모릅니다. 우리는 스스로에게 말했습니다. “이 회의에 대해 글을 쓰지 않겠습니까?” 그리하여 탄생한 아부다비 문서입니다. 비서 두 명이 일했고, 초안과 그래프는 서로 돌아갔고 마침내 우리는 아부다비 회의를 이용해 그것을 출판했습니다. 그것은 하느님의 일이었습니다. 누구도 이것을 처음 염두에 두지 않았기 때문에 달리 이해할 수 없습니다. 그것은 우정의 점심식사에서 탄생했습니다. 그것은 매우 좋은 일입니다. 

다음 저는 계속 생각했고 아부다비 문서는 저의 회칙 ‘모든 형제들’의 기초였습니다. '모든 형제들'에서 인간의 우정에 대해 쓴 것은 아부다비 문서를 기반으로 합니다. 주님의 특별한 축복을 생각하지 않고는 그것을 생각할 수 없었다고 믿습니다. 정의를 위해 주님께서 이 길에 영감을 주신 방법을 아는 것이 옳은 것 같습니다. 저는 대이맘이 무엇인지도 몰랐고, 다음에는 친구가 되었고, 친구처럼 무언가를 했고, 이제는 만날 때마다 이야기를 나눕니다. 문서는 오늘의 현실과 관련이 있으며 이를 세상에 알리기 위한 작업이 진행 중입니다. 

다음 레바논은 저에게 고통입니다. 레바논은 국가가 아니라 메시지입니다. 레바논은 우리 모두에게 매우 큰 의미가 있습니다. 지금 레바논은 고통을 받고 있습니다. 저는 기도합니다. 그리고 이 기회를 통해 레바논 정치인들에게 호소합니다. 이기심을 제쳐 두고 나라를 바라보고 합의하십시오. 먼저 하느님, 그 다음은 국가, 그 다음이 이익입니다. 그러나 하느님과 나라. 지금 당장은 우리가 구원자가 아니기 때문에 ‘레바논을 구하라’고 말하고 싶지는 않지만 레바논이 위대함을 되찾을 수 있도록 이 하락에서 멈출 수 있도록 도와주십시오. 수단이 있습니다. 레바논의 관대함이 있습니다. 레바논에는 얼마나 많은 정치적 난민이 있습니까! 너무 고통스럽습니다. 저는 이 기회를 통해 레바논을 위한 기도를 요청합니다. 기도는 우정이기도 합니다. 여러분은 언론인입니다. 레바논을 보고 이에 대해 이야기하며 인식을 제고하십시오. 고맙습니다.

(문) 캐롤 글라츠 <CNS> 기자 : 교종님, 바레인 방문 동안 여성의 권리, 여성의 존엄성, 사회적, 공적영역에서 자신의 공간을 가질 권리를 포함한 기본권에 대해 말씀하셨고 젊은이들이 용기를 갖고 소리를 낼 수 있도록 격려하셨습니다. 정의로운 세상으로 나가기 위해 일부 여성과 더 많은 자유를 원하는 젊은이들이 촉발한 시위가 진행 중인 이란의 상황을 고려할 때, 인간 형제애에 관한 문서에서도 볼 수 있는 기본권을 요구하는 사람들의 이러한 노력을 지지하십니까?

(답) 우리는 서로에게 진실을 말해야 합니다. 여성의 권리를 위한 투쟁은 계속되는 투쟁입니다. 어떤 곳에서는 여성이 남성과 동등하지만 다른 곳에서는 그렇지 않습니다. 저는 1950년대 우리나라에서 여성의 시민권, 즉 여성 투표권을 요구하는 투쟁이 있던 것을 기억합니다. 그때만 해도 남성만 투표할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저는 미국에서 여성 투표권 투쟁을 생각합니다. 그런데 왜 여성이 자신의 권리를 지키기 위해 이렇게 투쟁해야 합니까? 여성에 대한 수많은 상황의 잔혹성을 설명하는 여성 장신구 기원에 대한 전설, 어쩌면 전설일 수도 있습니다. 어떤 나라에서는 여성들이 장신구를 너무 많이 착용한다고 합니다. 기억은 나지 않지만 역사적 사실일 것입니다. 남편이 부인에게 싫증이 나면 “나가라”고 말하는 풍습이 있었습니다. 그녀는 다시 들어가 아무것도 얻을 수 없었습니다. 몸에 있는 것만 가지고 떠나야 했습니다. 그리고 그것이 여성들이 적어도 무언가를 지키기 위해 금을 모으는 이유이며, 이것이 보석의 기원이라고 합니다. 

사실인지는 모르겠지만 그 이미지가 설명에 도움이 됩니다. 권리는 기본입니다. 하지만 오늘날 우리는 어린 소녀에 대한 ‘할례’의 비극을 막을 수 없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오늘날에도 이런 관행이 있다는 것은 끔찍합니다. 인류가 이 범죄 행위를 막을 수 없다는 것! 제가 들은 두 가지 편견에 따르면 여성은 ‘일회용’ 물질의 하나이거나 또는 ‘보호종’입니다. 남성과 여성의 평등은 여전히​​ 보편적으로 발견되지 않으며 다음과 같은 끔찍한 말이 있습니다. “여성은 2등 이하다. 여성은 선물이기 때문에 우리는 그것을 위해 계속 싸워야 한다.” 그러나 하느님은 인간을 창조한 다음 남성의 재미를 위해 여성을 선물해 주지 않았습니다. 하느님은 동등하게, 남자와 여자로 만드셨습니다. 그리고 성 바오로가 오늘날에는 구식처럼 보이는 남녀 관계에 관한 그의 편지 중 하나는 당시에는 너무 혁명적이어서 남성과 여성 사이의 충실도에 관한 스캔들이었습니다. 성 바오로는 남자는 여자를 자기 몸처럼 돌보아야 한다고 말씀했습니다. 당시로서는 혁명적인 말이었습니다. 

모든 여성의 권리는 평등에서 나옵니다. 그리고 여성에게 자리를 내주지 못하는 사회는 앞으로 나아가지 못합니다. 우리는 이에 대한 경험이 있습니다. 제가 쓴 책 "Let Us Dream(꿈으로 돌아가자)"에서 경제학에 관한 부분을 예로 들면, 세계에는 경제 비전을 바꾸고 추진할 수 있는 여성 경제학자들이 많습니다. 서로 다른 은사가 있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열등하지도 않고 보완적인 다른 방식으로 일을 운영하는 방법을 알고 있습니다. 한번은 어느 나라 정부 원수로 어려운 상황을 해결하는 데 큰 성공을 거둔 여러 자녀를 둔 여성과 인터뷰 한 적이 있습니다. 그리고 저는 그녀에게 말했습니다. "부인, 그런 어려운 상황을 어떻게 해결하셨습니까?" 그녀는 조용히 손을 움직이기 시작했습니다. 다음 그녀는 저에게 말했습니다. "‘우리 엄마’는 어떻게 합니까?"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여자는 남자의 길이 아닌 자신만의 방법이 있습니다. 두 가지 방법이 함께 작동해야 합니다. 여성은 남성과 동등하게 여성이 가진 통찰력으로 공동선을 위해 일합니다. 저는 여성이 바티칸에서 근무하기 위해 들어올 때마다 상황이 나아지는 것을 보았습니다. 예를 들어 어느 부서 부장관은 여성인데 상황이 많이 달라졌습니다. 경제평의회에 추기경 6명과 평신도 6명이 있었는데 모두 남성이었습니다. 저는 평신도를 남성 1명과 여성 5명으로 교체했습니다. 이것은 혁명이었습니다. 여성들이 올바른 길을 찾는 방법과 앞으로 나가는 방법을 더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이제 저는 마리아나 마주카토라는 여성을 바티칸 생명아카데미에 임명했습니다. 그녀는 미국의 위대한 경제학자입니다. 저는 그녀에게 조금 더 인간성을 부여했습니다. 여성들은 자신의 것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들은 남성처럼 될 필요가 없습니다. 아니! 그들은 여성이고 우리는 그들이 필요합니다. 그리고 공적인 삶에서 여성을 지우는 사회는 스스로를 궁핍하게 만드는 사회입니다. 권리의 평등 또한 앞으로 나아갈 기회의 평등, 그렇지 않으면 우리는 가난해집니다. 저는 이것으로 전 세계적으로 무엇을 해야 할지 말했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아직 가야 할 길이 많습니다. 뿌리 깊은 남성주의가 있기 때문입니다. 저는 남성주의를 가진 사람들이 많은 나라에서 왔습니다. 아르헨티나인은 거의 남성주의자들입니다. 그것은 나쁜 일입니다. 그러나 무슨 문제가 있을 때면 우리는 문제를 해결해 주는 어머니에게로 갑니다. 이 남성주의는 인류를 죽입니다. 저에게 이 말을 할 수 있는 기회를 주셔서 감사합니다. 권리만을 위해 싸우는 것이 아닙니다. 그러나 우리가 변화하는 데 도움을 줄 여성이 사회에 있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문) 안토니오 펠라요 <뉴 라이프> 기자 : 교종님이 이번 여행에서 예정에 없이 하신 말씀은 '고통받는 우크라이나'와 '평화 협상'에 대한 말씀뿐이었습니다. 혹시 말씀해 주실 수 있는지 묻고 싶습니다. 이러한 협상이 바티칸 측에서 어떻게 진행되고 있는지. 그리고 최근 러시아 푸틴 대통령과 대화를 나눴거나 가까운 장래에 대화할 의향이 있으십니까?

(답) 무엇보다 바티칸은 끊임없이 세심한 주의를 기울이고 있으며, 국가 관계국은 잘 작동하고 있습니다. 장관 갤러거 대주교가 잘하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약간의 역사를 말씀드린다면 전쟁이 발발한 다음 날, 저는 이것이 불가능한 이례적인 일이라고 생각했고, 러시아 대사와 이야기하기 위해 대사관을 방문했습니다. 인본주의자인 그가 대사로 온 후 저는 그를 6년 동안 알고 지냈습니다. 그가 저에게 한 말을 기억합니다. “우리는 돈의 독재에 빠졌습니다.” 그는 문명에 대해 이야기하고 휴머니스트, 평등을 위해 싸우는 좋은 남자였습니다. 저는 그에게 필요하다면 모스크바에 가서 푸틴 대통령과 이야기할 용의가 있다고 말했습니다. 그는 러시아 외무부에 이를 전달했습니다. 세르게이 라브로프 러시아 외무장관은 정중한 답변을 보내왔습니다. “감사합니다. 그러나 당장은 필요하지 않습니다.” 

저는 젤레스키 대통령과도 두 번 통화했습니다. 그런 다음 대사와 몇 번 더. 그리고 더 가까워지고 해결책을 찾기 위해 노력하고 있습니다. 바티칸은 또한 포로들과 관련해 해야 할 일을 하고 있습니다. 이런 일들은 바티칸이 항상 행하는 일입니다. 제가 평화를 위한 연설에서 우크라이나에 ‘고통받는'이라는 단어를 사용하는 이유는 러시아군의 잔인함 때문입니다. 저는 아마도 러시아 국민은 위대한 국민이고, 잔인한 병사들은 모험으로 전쟁에 뛰어든 용병들일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을 선호합니다. 러시아 국민들의 휴머니즘에 대한 존경심을 가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오늘날까지 우리에게 그리스도교에 대해 생각하도록 영감을 주는 도스토예프스키를 생각해 보십시오. 저는 러시아 사람들과 우크라이나 사람들에 대한 큰 애정이 있습니다. 제가 11살이었을 때 집 근처에 우크라이나어로 미사를 거행하는 제단 소년(복사)도 없는 사제가 있었는데, 그는 저에게 우크라이나어로 미사를 드리는 법과 모든 우크라이나 노래를 그들의 언어로 배웠습니다. 그래서 저는 우크라이나 미사에 큰 애정을 가지고 있습니다. 저는 제가 사랑하는 두 나라의 한가운데 있습니다. 하지만 바티칸은 많은 비밀 회의를 가졌으며 많은 일들이 좋은 결과를 낳았습니다. 처음에는 전쟁이 우리를 용감하게 만들지만 나중에는 지치고 아프고 전쟁이 주는 악을 보게 된다는 사실을 부정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저의 연설은 더 인간적이고 가까운 부분을 위한 것입니다.

저는 이 질문을 이용하여 제기하고 싶은 것이 있습니다. 한 세기 안에 세 번의 세계대전이 일어났습니다! 1914-18년, 1939-45년, 그리고 지금도 세계대전입니다. 어느 쪽이든 제국이 약해지면 강해지기 위해 전쟁해야 하고 무기를 팔기 위해 전쟁해야 하는 것이 사실이기 때문입니다. 오늘날 저는 세계에서 가장 큰 재앙이 무기산업이라고 믿습니다. 사실인지 아닌지 모르겠지만 1년 동안 무기를 만들지 않으면 세계 기아를 종식시킬 수 있다는 말을 들었습니다. 무기산업은 끔찍합니다. 3-4년 전 어떤 나라에서 무기를 가득 실은 배가 제노바까지 왔고, 예멘으로 가져가기 위해 더 큰 배로 무기를 건네주어야 했습니다. 제노바 노동자들은 그것을 원하지 않았습니다. 그것은 옳은 행동이었습니다. 예멘은 10년 이상 전쟁으로 아이들은 먹을 것이 없습니다. 미얀마에서 쫓겨난 로힝야족은 항상 전쟁 중입니다. 미얀마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끔찍합니다. 에티오피아에서도 조약으로 무언가가 오늘 중단되기를 바랍니다. 우리는 모든 곳에서 전쟁을 하고 있지만 이것을 이해하지 못합니다. 

우리는 유럽에서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으로 큰 영향을 받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현상은 수년 동안 어디에나 있습니다. 시리아에서는 13년 동안 전쟁이 벌어졌고 포로가 있는지, 그곳에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아무도 모릅니다. 그런 다음 레바논, 우리는 이 비극에 대해 이야기했습니다. 제가 가끔 여러분에게 이런 말을 했는지 모르겠습니다. 2014년 제가 레디폴리아에 갔을 때 그것을 보았습니다. 그리고 저의 할아버지는 피아베에 계셨고 그곳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말씀해 주셨습니다. 저는 거기서 울었습니다. 울었어요. 부끄럽지 않아요. 그러다 11월2일에 제가 항상 묘지에 가던 날, 안치오에 가서 상륙 작전에서 사망한 미국 소년들의 무덤을 보았습니다. 그들은 19-20-22-23살이었습니다. 그리고 또 울었습니다, 정말, 그것은 제 마음에서 우러나온 것입니다. 저는 그들의 어머니들을 생각했습니다. 어머니들은 문을 두드리는 소리를 듣고 나가 우체부가 들고 온 봉투를 엽니다. 편지에는 “부인에게 조국의 영웅인 아들이 있다는 것을 알려드릴 수 있어 영광입니다.” 이것이 전쟁의 비극입니다. 누구를 비방하고 싶지는 않지만 마음에 와닿았습니다. 노르망디 상륙 기념 행사가 열렸을 때 수많은 정부 수뇌들이 그것을 기념하기 위해 그곳에 왔습니다. 노르망디 상륙은 나치즘 몰락의 시작인 것은 사실입니다. 그러나 노르망디 해변에 묻힌 소년은 3만 명이라고 합니다. 그 소년들을 누가 생각합니까? 전쟁은 이 모든 것을 일으킵니다. 그렇기 때문에 언론인 여러분, 평화주의자가 되어 전쟁에 반대하고 전쟁에 맞서 싸우십시오. 여러분의 형으로서 부탁드립니다. 고맙습니다.   

(문) 위그 르페브르 <I.Media> 기자 : 교종님께서 오늘 아침 바레인의 성직자들에게 한 연설에서 그리스도인 기쁨의 중요성에 대해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나 지난 며칠 동안 많은 프랑스 신자들이 언론에서 2021년 은퇴한 주교가 1990년대 성적 학대를 저질렀다는 유죄 판결을 교회가 비밀로 유지했다는 사실을 언론에서 알게 되자 이 기쁨을 잃었습니다. 이 이야기가 언론에 보도되자 새로운 희생자 5명이 나왔습니다. 오늘날 많은 가톨릭 신자는 교회법적 정의의 비밀 문화가 변하고 투명해졌는지 알고 싶어 합니다. 교종께서는 교회법적 처벌이 공개되어야 한다고 생각하시는지 알고 싶습니다. 고맙습니다.

(답) 질문에 감사드립니다. 저는 이것에 대한 약간의 역사를 말하고 싶습니다. 학대 문제는 교회뿐 아니라 모든 곳에서 항상 존재해 왔습니다. 성적 학대 42-46퍼센트가 가족이나 이웃에서 일어난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이것은 매우 심각하지만 항상 은폐하는 습관이 있었습니다. 오늘날에도 가정에서는 모든 것이 은폐되고, 이웃에서도 대부분 은폐됩니다. 버나드 로 추기경 시절 보스턴 대교구 사제들의 성추문이 폭로되고 추기경은 추문의 은폐로 사임했습니다. 교회의 성학대 사건이 스캔들로 나온 것은 처음이었습니다. 그 이후 교회는 이것을 자각하고 일하기 시작했지만 사회와 다른 기관에서는 일반적으로 아직도 은폐합니다. 이 문제에 관한 주교회의 회장 회의가 있을 때 저는 유니세프에 가족, 이웃, 학교, 스포츠 등에서 일어난 성학대 현상에 대한 백분율 데이터 통계를 요청했습니다. 누군가는 우리가 소수라고 말하지만, 단 하나의 경우라도​​ 비극적입니다. 왜냐하면 사제들은 사람들을 성장시키는 소명을 가지고 있고, 그렇게 행동함으로써 사람들을 파괴하기 때문입니다. 

사제에게 학대는 사제적 본성과 사회적 본성에 어긋나는 것입니다. 그것이 비극적 이유이며 우리가 멈추어서는 안 되는 이유입니다. 성학대 사건에 대한 조사와 고발 진행은 항상 모든 곳에서 동일하지 않으며 일부는 숨겨져 있습니다. 보스턴 대교구의 스캔들이 마무리되기 전에 성직자들이 움직였습니다, 이제 모든 것이 명확하고 우리는 이것에 대해 앞으로 나아가고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이 같은 사례가 밝혀진다고 놀라지 않아야 합니다. 이제 다른 주교의 또 다른 경우를 생각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우리는 몰랐다”, “그건 그 시대 문화였고, 계속 숨기고 있는 사회문화다”라고 말하기도 쉽지 않습니다. 저는 교회는 이것에 대해 확고하다고 말하고 싶습니다.

그리고 저는 이것을 미성년자 보호위원회와 함께 제도화할 필요성을 감지한 훌륭한 카푸친 수도사인 오말리 추기경의 영웅적 행동에 감사하고 싶습니다. 그는 이 작업을 수행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것은 우리 모두에게 유익하고 용기를 줍니다. 우리는 우리가 할 수 있는 모든 일을 하고 있지만, 여전히 명확하게 보지 않고 공유하지 않는 사람들이 교회 안에 있다는 것도 알고 있습니다. 그것은 우리가 착수하고 용기를 가지고 수행하는 과정이지만 모든 사람에게 용기가 있는 것은 아닙니다. 때로 타협하고 싶은 유혹이 있고, 우리 모두도 죄의 노예이지만, 교회의 뜻은 모든 것을 명확히 하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저는 최근 몇 달 동안 교회에서 잘 알려지지 않은 학대 사례에 대해 두 건의 불만을 접수했습니다. 즉시 두 사례에 대한 조사를 요청했고 지금 새로운 판단이 내려지고 있습니다. 이것은 또한 잘 만들어지지 않고 적절하게 주어지지 않은 오래된 판단을 수정한 것입니다. 우리는 우리가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하고, 우리 모두는 죄인입니다. 아시죠? 그리고 우리가 가장 먼저 느껴야 할 것은 깊은 수치심입니다. 저는 부끄러움을 은혜라고 믿습니다. 우리는 세상의 모든 악과 싸울 수 있지만 부끄러움 없이는 쓸모없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저는 영성수련에서 성 이냐시오가 “당신이 지은 모든 죄에 대해 용서를 구하게 할 때 당신을 부끄럽게 만들고, 만일 당신에게 은혜가 없다면 부끄러운 당신은 계속할 수 없습니다”고 말했습니다. 저는 우리가 받는 모욕 중 하나는 '당신은 뻔뻔하다'이고 저는 교회가 '부끄럽지 않다'는 것을 믿습니다. 교회는 나쁜 일을 부끄러워하고 선에 대해 하느님께 감사해야 합니다. 그것이 교회가 하는 일이라고 당신에게 말할 수 있습니다. 우리는 여러분의 도움 덕분으로 계속할 모든 선의를 가지고 있습니다.

(문) 바니아 드 루카 <Rai-Tg3> 기자 : 교종께서는 최근 이민자들에 대해서도 말씀하셨습니다. 수백 명의 여성, 남성, 어린이와 함께 시칠리아 해안에서 네 척의 배가 어려움에 처했지만 모두가 내릴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중도 우파의 '항만 폐쇄' 정책이 이탈리아에 다시 돌아오는 것이 두렵습니까? 이에 대한 일부 북유럽 국가들의 입장은 어떻습니까? 그리고 저는 또한 일반적으로 묻고 싶었습니다. 처음으로 여성이 이끄는 새로운 이탈리아 정부에 대해 어떤 인상과 어떤 판단을 갖고 계십니까?

(답) 이민자에 대한 원칙은 다음과 같습니다. 이민자를 환영하고, 동반하고, 승진시키고, 통합해야 합니다. 이 4가지 단계를 거치지 않으면 이민자들과의 작업이 잘 될 수 없습니다. 환영, 동반, 승격, 통합까지 가야 합니다. 그리고 두 번째로 말씀드리고 싶은 것은 각 EU 정부는 얼마나 많은 이민자를 수용할 수 있는지에 동의해야 합니다. 대신 지중해와 가장 가까운 키프로스, 그리스, 이탈리아, 스페인 등 이민자를 받는 4개국이 있고 내륙에는 폴란드, 벨라루스가 있습니다. 그러나 이해관계를 떠나 바다의 이민자들의 생명을 구해야 합니다. 오늘날 지중해가 묘지라는 사실을 알고 계십니까? 아마도 세계에서 가장 큰 묘지일 것입니다. 지난번 제가 "남동생"이라는 제목의 스페인어로 된 책을 읽었다고 말씀드린 것 같습니다. 크기가 작아 빨리 읽을 수 있고, 프랑스어와 이탈리아어로도 확실히 번역된 것 같습니다. 두 시간이면 읽을 수 있습니다. 그것은 아프리카에서 온 소년의 이야기입니다. 그가 탄자니아에서 왔는지 또는 어디에서 왔는지 동생의 발자취를 따라 스페인에 도착한 소년의 이야기입니다. 그는 배를 타기 전에 다섯 번이나 고통을 겪었습니다! 그는 많은 사람이 매매된다고 말합니다. 다른 역할을 하는 큰 배는 안 됩니다. 그리고 그들이 타고 싶지 않다면 그들은 그들을 해변에 내버려 두었습니다. 그 사람들이 하는 일은 실제로 독재적인 노예제입니다. 그러면 바다에서 죽을 위험이 있습니다. 시간이 있다면 이것을 읽으십시오. 이것은 중요합니다.

이주정책은 모든 국가 간 합의가 선행되어야 합니다. 합의 없이는 정책을 만들 수 없습니다. 유럽연합은 협력과 도움의 정책을 채택해야 합니다. 해변에 도착한 모든 이민자에 대한 책임을 키프로스, 그리스, 이탈리아, 스페인에만 맡길 수는 없습니다. 지금까지 정부의 정책은 생명을 구하는 것이었습니다. 사실입니다. 어느 정도까지는 그렇게 했고, 자세한 내용은 모르겠지만 이번 이탈리아 새 정부도 같은 정책을 가지고 있는 것 같습니다. 적어도 어린이, 어머니들, 병자들에 대한 구조는 계속될 것 같습니다. 이탈리아를 생각해 봅시다. 이 정부는 좌파의 삶이 유럽의 동의 없이는 아무것도 할 수 없다고 생각합니다. 책임은 유럽인입니다. 그리고 저는 아프리카와 관련해 또 다른 유럽의 책임을 언급하고 싶습니다. 제 생각에 이것은 우리가 가진 위대한 여성 정치인 중 한 명인 메르켈이 말한 것 같습니다. 그녀는 이주민 문제는 아프리카에서 해결해야 하지만 '아프리카는 착취당해야 한다'는 모토로 아프리카를 생각하면 이주민, 사람들이 그 열매에서 도망치는 것이 논리적이라고 말했습니다. 우리는 유럽이 아프리카를 위한 개발 계획을 세우도록 노력해야 합니다. 아프리카 일부 국가는 자신들이 주인이 아니며 여전히 식민주의 세력에 의존하고 있다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유럽에서 이주민 문제를 해결하는 것은 위선이라는 개념 때문에 아프리카 사람들을 착취하는 것은 끔찍합니다. 

저는 지난 1월1일 아프리카에서 온 대학생들과 모임을 가졌습니다. 미국 로욜라 대학에서 했던 것과 같은 만남이었습니다. 그 학생들은 능력, 지성, 그리고 중요한 문제에 대한 비판적 감각이 뛰어나고 앞으로 나가자는 열망을 갖고 있지만 때때로 유럽이 그들 정부에 가지고 있는 식민주의 세력 때문에 그렇게 할 수 없습니다. 이주민 문제를 영원히 해결하고 싶다면 아프리카를 해결합시다. 다른 곳에서 온 이민자들은 훨씬 적습니다. 하지만 우리에게는 아프리카가 있습니다. 아프리카를 도웁시다. 새로운 이탈리아 정부가 시작됩니다. 저는 그 정부가 최고가 되기를 바랍니다, 정부는 국민 모두를 위한 것이기 때문에 항상 최선을 다하고 이탈리아가 앞으로 나아갈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기 바랍니다. 그리고 그 정부를 반대하는 다른 모든 사람에게 비판적 감각으로 협력해 도움을 주셨으면 합니다. 그들은 당신을 움직이고, 넘어지게도 만듭니다. 당신이 정부에 좋아하지 않는다면 제발 그것에 대해서만 책임을 물어야 합니다. 금세기에 지금까지 이탈리아에 20개 정부가 있었다는 것이 공정한가요? 이런 농담은 그만합시다.

(문) 루트비히 링-아이펠, 독일 가톨릭 정보센터 : 개인적으로 먼저 말씀드리고 싶은 것은 매우 감동적이기 때문입니다. 8년 만에 교종님과 함께 비행하기 때문입니다. 다시 한번 이곳에 와 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답) 다시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

(문) 루드비히 : 감사합니다. 독일 그룹에 있는 우리는 극소수입니다. 이 비행에는 단 3명뿐입니다. 그리고 우리는 생각합니다. 바레인에서 본 것과 독일 상황을 어떻게 연결할 수 있을까요? 바레인에서 우리는 작은 교회, 작은 무리, 많은 제약 속의 가난한 교회를 보았지만 희망이 넘치는 활기찬 교회로 성장했습니다. 반면에 독일에는 위대한 전통을 지닌 큰 교회가 있습니다. 신학과 돈과 모든 것을 갖춘 부자지만 매년 30만 명의 신자를 잃고 심각한 위기에 처해 있습니다. 위대한 독일을 위해 바레인에서 본 이 작은 무리로부터 배울 것이 있습니까?

(답) 독일에는 오래된 종교 역사가 있습니다. 저는 횔덜린의 말을 인용하여 '많은 것이 살았다, 많이'라고 말할 것입니다. 독일의 종교 역사는 위대하고 복잡하며 투쟁의 역사입니다. 저는 독일 가톨릭 신자들에게 말합니다. 독일에는 위대하고 아름다운 복음주의 교회가 있습니다. 저는 그것보다 좋지 않을 다른 것을 원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저는 복음주의자들과 형제 관계에 있는 가톨릭 하나를 원합니다. 때때로 우리는 백성, 거룩하고 신실한 하느님 백성의 종교적 감각을 상실하고 윤리적 토론, 우연한 일에 대한 토론, 신학적 결과이지만 신학의 핵심이 아닌 토론에 빠지게 됩니다. 거룩하고 신실한 하느님의 백성은 어떻게 생각합니까? 하느님의 거룩한 백성은 무엇을 감지합니까? 그곳으로 가서 조부모에게서 찾을 수 있는 단순한 종교성을 찾아보십시오. 저는 뒤로 가라고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러나 뿌리에 담긴 영감의 근원으로 가십시오. 우리 모두는 믿음의 뿌리에 대한 역사를 가지고 있습니다. 사람들에게도 있습니다. 찾으십시오! 저는 우리 시대를 위한 횔덜린의 말이 생각납니다. "노인은 어렸을 때 약속한 것을 지켜야 합니다." 젊었을 때 우리는 많은 것을 약속했습니다. 이제 우리는 윤리적인 토론과 우연한 토론으로 들어갑니다. 그러나 종교의 뿌리는 복음이 여러분에게 주는 뺨을 때리는 것은 살아 계신 예수 그리스도와의 만남입니다. 거기에서 사도적 용기, 거기에서 주변부로, 심지어 사람들의 도덕적 주변부로 가서 도움을 청합니다. 그러나 그것은 예수 그리스도와의 만남에서 시작됩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만나지 못한다면 그리스도교로 위장한 윤리가 있을 것입니다. 이것은 내가 말하고 싶었던 것입니다. 그러나 진심으로 감사합니다.


장기풍(스테파노)
전 <평화신문> 미주지사 주간

<가톨릭뉴스 지금여기 http://www.catholic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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