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월25일 늙지마라, 성숙해져라.

작성자 : 김 안나    작성일시 : 작성일2014-10-25 07:35:41    조회 : 463회    댓글: 0

◈ [수원] 요셉 신부님의 매일 복음 묵상 - 늙지 말라, 성숙해져라

2014년 가해 연중 제29주간 토요일

< 너희도 회개하지 않으면 모두 멸망할 것이다. >
복음: 루카 13,1-9

< 늙지 말라, 성숙해져라 >

 어떤 다큐멘터리 프로그램에서 재밌는 실험을 했습니다. 실험 의도를 알려주지 않은 채 실험 대상자들을 방송국으로 불러서 젊은이에 해당하는 단어들이 쓰인 카드들을 나열해 놓고 문장을 만들어보라고 하고 또 다른 대상자들에게는 노인과 관련된 단어로 작업을 해 보라고 하였습니다.

그러나 실제 실험은 실험자들이 일정 구간을 걸어가는 속도를 몰래 측정하는 것이었습니다. 실험하러 들어갈 때 방송국 로비를 통과하게 되어 있는데 그 때 한 번 걷는 시간을 재고 또 실험을 마치고 나올 때 재서 그 차이를 알아보는 것입니다.

그런데 놀랍게도 젊은이에 관한 단어들로 문장을 만들고 나온 사람들은 들어올 때보다 모두 걷는 속도가 빨라졌지만 노인에 관한 단어들로 작업을 하고 나온 사람들은 급격하게 걸음 속도가 느려졌다는 것입니다. 속도만 느려진 것이 아니라 표정도 어두워졌고 몸도 축 쳐져있었습니다. 이는 우리가 듣는 단어들의 영향을 자신도 모르게 받고 있다는 결과입니다. 이는 혼자 걷는 것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을 만나 이야기할 때도 반드시 영향을 미칠 것입니다. 내가 힘이 있고 행복해야 다른 사람에게도 좋은 영향을 줄 수 있는 것입니다.

오늘 독서에서 바오로는 교회 공동체에 관해 설명하고 있습니다. 바오로는 교회를 인간의 몸과 비유합니다. 물론 머리는 그리스도이십니다. 몸은 머리의 명령에 따라야합니다. 그런데 머리의 명령에 따라 움직여 하나의 인격체가 되기 위해서는 몸에 ‘영양분’이 공급되어야합니다. 그 영양분은 몸 안에 있는 70조 개의 세포에 모두 공급되어져야지 만약 그 영양분이 공급되지 않는 부분이 있다면 그 세포가 썩기 시작해서 결국엔 그 지체를 절단해야 하는 상황에까지 다다를 수도 있습니다.

그리고 바오로는 각 세포에 일일에 공급되어져야 하는 영양분을 ‘성령의 은혜’라고 정의합니다.

“그리스도께서 나누어 주시는 은혜의 양에 따라, 우리는 저마다 은총을 받았습니다.”

여기서 ‘저마다’ 은총을 받았다고 할 때 바오로는 한 사람도 빠짐없이 ‘각자’에게 은총이 알맞게 주어지고 있다고 말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어떤 이들은 사도로, 어떤 이들은 예언자로, 어떤 이들은 목자나 교사로 교회 내에서 각자의 역할을 담당해 내게 되는 것입니다. 머리이신 그리스도께서 주시는 은총이 각 기관에 알맞게 기능을 하여 온 몸이 자라나는 것이 교회라고 비유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바오로의 교회관에서 배워야 하는 것을 무엇일까요? 바로 각자가 공동체의 성장을 위해 성령의 은혜를 받아들이고 있느냐는 것입니다. 성령은 육적 욕망과 반대가 됩니다. 육에 뿌리면 영이 죽고 영에 뿌리면 육이 죽게 됩니다. 성령으로 불타고 있다면 마더 데레사나 여러 성인들처럼 자신의 몸을 소진할 수 있는 에너지가 생기게 되고, 육과 세상에 집착하게 되면 더럽혀진 성전처럼 하느님을 모시기에 합당하지 않게 되어 지치고 무기력하게 되는 것입니다. 바오로는 교회 내의 우리 각자가 성령의 은혜를 받아들여 계속 ‘성장’하는 몸과 같이 되기를 바란다고 말합니다.

그러나 지금 한국 교회는 바오로가 말하는 성장하는 힘 있는 “사랑으로 성장하는 교회”의 모습입니까? 물론 다른 종교들보다는 성장하는 모습을 명확히 보이고는 있습니다. 그러나 근래에는 급격히 노화되는 모습들을 보이고 있습니다. 세례자 감소, 냉담자 증가, 미사 참례율 감소, 성직-수도성소 감소 등이 눈에 띄는 지표들입니다.

어떤 시인이 “늙지 말라, 성숙해져라”라는 말을 했다고 합니다. 아무리 시간이 지나도 지치지 말고 더 성장해야 한다는 뜻입니다. 시간이 지나면서 힘이 빠져야 당연한 것이 아니라 더 성숙해야 당연한 것입니다. 교회 또한 늙지 않고 성숙해지기 위해서는 우리 각자가 성령님을 받아들이는 노력을 더 기울여 각 기관이 다시 힘을 회복하게 하는 수밖에 없습니다. 성령을 받아들이기 위해 미사, 기도, 성경, 영적독서 등이 더 불붙게 운동으로 일어나야 합니다. 그리스도는 당신 영을 ‘말씀과 성체’를 통해 우리에게 내려주시기 때문입니다. 더 말씀과 가까이 하는 시간을 늘리고 더 성체와 함께 하는 시간을 늘려야합니다. 우리 각자가 한 몸의 지체들이기 때문에 우리 각자 모두가 영적 성장을 위해 노력한다면 교회는 다시 활력을 얻을 수 있을 것입니다.

어느 노인이 은퇴하고 나서 30여전을 아무 생산적인 일을 하지 못하고 산 것이 후회 되어 90세가 되었지만 외국어 공부를 시작할 결심을 했다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은퇴를 하면 노인이 되어 아무 일도 해서는 안 되는 것처럼 생각했는데 그렇게 귀중한 30년 동안 무의미하게 지냈다는 것입니다. 모세는 80세에 이스라엘을 해방시켰고 아브라함은 100세가 넘어서야 이사악을 낳았습니다. 우리는 성령께서 함께 계시면 나이와 상관없이 교회를 위해 좋은 일을 많이 할 수 있습니다. 우리 각자 모두가 교회의 일원이고 교회를 성장시켜야 하는 역할을 맡고 있음을 잊지 말고 성령의 에너지를 끊임없이 받아들이는 일을 멈추어서는 안 되겠습니다.

요셉 신부님 미니홈피: http://minihp.cyworld.com/30joseph
 
- 수원 교구 복음화국 부국장 전삼용 요셉 신부 -

##### ##### #####

◈ [기타] 절대적 가치란 무엇일까요?

소나무 신부와 함께 하는 마음의 산책

'모든 가치는 절대적인 가치에 의해 매겨져야 합니다.'

2014년 가해 10월25일 연중 제29주간 토요일 복음묵상

“내년에는 열매를 맺겠지요. 그러지 않으면 잘라 버리십시오.” (루카13,9)
 ---
주인이 무화과 나무가 삼 년간 열매를 맺지 않자, 자리만 차지하지 않게 관리인에게 잘라버리라 합니다.
그러자 관리인이 주인에게 정성을 다해 무화과 나무를 돌보겠으니 일년만 참아달라면서 한 말입니다.

주인은 하느님이시고, 관리인은 예수님이시고, 열매를 맺지 못한 무화과는 우리라고 가정해보는 것이 가장 쉬운 이해가 될 것입니다.

누구의 삶이던 반드시 열매를 맺어야 하는 소명을 가지고 이 세상에 나왔습니다.
결국 왔던 곳으로 돌아가야만 하는 것이 우리의 삶임에도 불구하고,

마치 평생 돌아가지 않을 듯 한 모습으로 살아가다가 대부분의 시간을 소비해버리는 것이 우리의 삶이 아닐까 싶습니다.

우리는 많은 것들에 대해 가치들을 매기면서 살아갑니다.
그리고 가치가 있다고 생각하면 열심히 그 뒤를 좇고자 합니다.
그런데 우리는 자신이 좋다고 하는 것들을 가치가 있는 것으로 생각해버리는 경향이 있습니다.
그래서 상대적 가치가 만들어집니다.
이 상대적 가치가 나쁘다는 말이 아닙니다.
하지만, 여기에는 위험이 도사리고 있습니다.

어떤 위험일까요?
욕망의 결과를 가치로 착각해버리는 위험이 그 한 가지입니다.
예를 들어,
“돈과 명예와 건강이 허락되어야 무시 받지 않는 행복한 삶이 된다.”
“일단 성공해야 한다.”
“져서는 안 된다.”
“남들을 다스리는 사람이 되라.”
“여자는 일단 예뻐야 한다.”
“남자는 현실적 능력이 우선이다.”
이 밖에도 수없이 많은 어리석은 욕망을 드러내는 거짓 가치들이 우리의 영혼을 망치고 있습니다.

상대적 가치가 남기는 가장 큰 상처는 절대적 가치를 못 보게 한다는데 있습니다.
그렇다면 절대적 가치란 무엇일까요?
모두에게 해당하는 최고의 좋은 삶을 허락하는 가치입니다.
어떤 역경도 옳음을 위해 넘어설 수 있는 가치입니다.
변할 수 없는 가치입니다.
배신을 모르는 가치입니다.
우리가 가장 사람답게, 그리고 아름답게 살 수 있는 가치입니다.
삶과 죽음을 넘어서는 영원한 가치를 의미합니다.
무엇보다도 죽이는 가치가 아닌 살리는 가치입니다.
바로 하느님으로부터 온 가치이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이 삶을 통해서 맺어야 할 열매란 다름아닌 절대적 가치를 위한 삶이고, 그로 인해 얻어지는 열매일 것입니다.
다시 한 번 기회를 달라고 관리인은 주인에게 부탁을 합니다.
우리는 항상 그 부탁의 의미를 생각할 줄 알아야 합니다.
또한, 삼 년을 기다려도 열매를 맺지 못한 무화과 나무를 없애버리라는 주인의 명령도 생각할 줄 알아야만 합니다.
(20131026)
 
- 사이타마 교구 오타(太田)본당 주임 김 대열 프란치스코 사베리오 신부

https://www.facebook.com/WithfatherPinetree

소나무 신부와 함께 하는 마음의 산책 -

##### ##### #####

◈ [청주] 예수님을 만난 것이 축복입니다|반신부의 복음 묵상
 
연중 제29주간 토요일 (루가13,1-9)  

2014년 가해 10월25일 연중 제29주간 토요일

<너희도 회개하지 않으면 모두 멸망할 것이다.>
+ 루카 13,1-9

예수님을 만난 것이 축복입니다.

마음을 바꾼다는 것이 쉽지 않습니다. 그래서 ‘작심삼일 이다’.‘마음이 흔들비쭉이다’. ‘사람의 마음은 하루에도 열두 번’이라거나 ‘똥누러 갈 적 마음 다르고 올 적 마음 다르다’. ‘마음처럼 간사한 것은 없다’고 합니다. 마음을 가다듬으려 하지만 본래 마음과는 다르게 행동할 때가 많습니다. 그야말로 ‘내 마음 나도 몰라!’입니다. 저는 하루에도 수없이 천국과 지옥을 왔다 갔다 하는 마음을 지닌 연약한 인간입니다. 이러한 저를 주님께서는 어떻게 보고 계실까?

주님께서는 언제나 우리를 지켜보십니다. 심판의 눈으로 보시지 않고 자비와 연민의 마음으로 보십니다. 오늘을 살고 있는 모두에게 관심을 두십니다. 죽은 자는 죽은 자이고, 지금 살아있는 우리가 주님께 마음을 돌려 영원히 살기를 원하십니다. 그래서 혹시라도 마음이 굴곡 되었다면 지금이라도 돌이키라고 하십니다. “나는 의인이 아니라 죄인을 불러 회개시키러 왔다”(루가5,32). ‘회개하지 않으면 모두 멸망할 것이다’(루가13,5)하고 말씀하십니다. 협박이 아니라 기회를 주십니다.

에제키엘서에는“주 하느님의 말이다. 너희는 회개하여라. 너희의 모든 죄악에서 돌아서라”(에제18,30).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베드로 사도도 “어떤 이들은 미루신다고 생각하지만 주님께서는 약속을 미루지 않으십니다. 오히려 여러분을 위하여 참고 기다리시는 것입니다. 아무도 멸망하지 않고 모두 회개하기를 바라시기 때문입니다”(2베드3,9).라고 말씀하시며 회개를 촉구하십니다. 기회는 놓칠 수 없는 찬스입니다. 찬스를 현명하게 사용하는 것은 지혜롭습니다.

야고보 사도는 “하느님께 가까이 가십시오. 그러면 하느님께서 여러분에게 가까이 오실 것입니다. 죄인들이여, 손을 깨끗이 하십시오. 두 마음을 품은 자들이여, 마음을 정결하게 하십시오”(야고4,8).하고 말씀하십니다. 묵시록은 “그러므로 네가 어디에서 추락했는지 생각해 내어 회개하고, 처음에 하던 일들을 다시 하여라. 네가 그렇게 하지 않고 회개하지 않으면, 내가 가서 네 등잔대를 그 자리에서 치워 버리겠다”(묵시2,5).고 경고 합니다. 그러므로 마음을 고쳐 하느님과의 관계를 잘 유지해야 하겠습니다. 회개한다는 것은 심보를 고치는 것입니다. 나 중심의 마음을 하느님의 눈에 드는 마음으로 바꾸는 것입니다.

열매를 맺지 못하는 무화과 나무의 비유(루가13,6-9)를 보면 포도 지배인은 3년이나 기다렸음에도 열매를 맺지 못하는 무화과나무를 베어내려는 주인에게 “주인님, 이 나무를 올해만 그냥 두시지요. 그동안에 제가 그 둘레를 파서 거름을 주겠습니다. 그러면 내년에는 열매를 맺겠지요. 그러지 않으면 잘라 버리십시오.”하고 사정합니다. 결국 무화과나무가 베어질 운명입니다. 이제 ‘올 한 해’동안에 결말이 납니다. 다행은 주인님께 사정을 하는 포도 지배인을 만났다는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우리의 인생도 죽음이 유보된 시한부 인생입니다. 그래도 다행인 것은 우리를 위해 이 세상에 오신 구세주 예수님을 통해 이 세상에서 하늘의 문이 열린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올 한 해’가 소중합니다. 아니 유보된 지금 순간순간을 어떻게 사느냐에 멸망과 구원이 달려 있습니다. 그러므로 주어진 기회를 잘 써야 하겠습니다. 우리는 주어진 축복의 때를 놓치지 말아야 합니다. 사실 주님께서 심판하기에 앞서 내가 매 순간 심판을 내리고 있습니다.

비유에서 주인은 하느님이요, 포도 지배인은 예수님이시고 포도밭은 이스라엘을 가리킵니다. 포도원지기인 예수님께서 주인이신 아버지 하느님께 아직 참아 달라고 한 것은 이스라엘 백성으로 비유되는 우리에 대한 사랑 때문입니다. 우리를 구원하시고자 하는 수고요 땀입니다. 그의 노력을 헛되이 하는 일은 없어야 하겠습니다. 주님을 만난 것이 축복입니다. 고맙습니다. 사랑합니다.

- 청주교구 감곡 매괴 성모성당 반영억 라파엘 신부 -

##### ##### #####

◈ [서울] 연중 제29주간 토요일 
 
2014년 가해 10월25일 연중 제29주간 토요일

<너희도 회개하지 않으면 모두 멸망할 것이다.>
+ 루카 13,1-9
 
‘국민소득 1,000불, 수출 100억불’이란 말이 있었습니다. 제가 어릴 때인 1970년대에 듣던 말입니다. 경제 개발 5개년 계획이란 말이 있었습니다. 국가의 주도아래 우리는 공장을 세우고, 도로를 만들고, 열심히 일을 하였습니다. 우리 국민은 열심히 일을 했고, 그 목표는 1980년도 였지만 그보다 몇 년 먼저 목표를 달성하였습니다. 2013년 우리의 국민소득은 24,500불이고, 수출은 5,596억불이라고 합니다. 참 많은 발전을 하였습니다. 지금 우리 아이들은 느낄 수 없지만 70년대를 살아온 저는 온 몸으로 느낄 수 있습니다. 냉장고는 없었고 주로 아이스박스를 사용하였습니다. 화장실은 모두 재래식이었고 집 밖에 있었습니다. 텔레비전도 동네에 겨우 한 대 정도 있었습니다. 겨울은 더 추웠고, 여름은 더 더웠습니다. 연탄가스로 숨지는 사람들도 많았습니다. 지난 40년간 우리는 경제적인 면에서 많은 결실을 거두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주어진 환경에서 열심히 일을 하였기 때문입니다.

오늘 바오로 사도는 우리 신앙인들에게도 여러 역할이 있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분께서 어떤 이들은 사도로, 어떤 이들은 예언자로, 어떤 이들은 복음 선포자로, 어떤 이들은 목자나 교사로 세워 주셨습니다. 성도들이 직무를 수행하고 그리스도의 몸을 성장시키는 일을 하도록, 그들을 준비시키시려는 것이었습니다. 그리하여 우리가 모두 하느님의 아드님에 대한 믿음과 지식에서 일치를 이루고 성숙한 사람이 되며, 그리스도의 충만한 경지에 다다르게 됩니다.” 신앙인들도 각자의 위치에서 하느님의 뜻이 드러나도록, 하느님의 영광이 드러나도록 충실하게 살아야 한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본당에도 여러 단체들이 있습니다. 사목회가 있고, 여러 신심 단체들이 있습니다. 이러한 단체들은 단체 활동을 통해서 본당 공동체가 성장 할 수 있도록 해야 합니다. 또한 단체 활동을 통해서 개인의 신앙이 자랄 수 있도록 해야 합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새로운 집이 중요하다고 말하지 않습니다. 하느님으로부터 선택받았던 과거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고 하십니다. 지금 여기에서 나의 삶을 통해 하느님의 자녀로서 충실하게 살아 신앙의 열매를 맺어야 한다고 하십니다.

이해받기 보다는 이해하며, 사랑받기보다는 사랑하고, 용서받기보다는 용서할 줄 아는 신앙생활은 우리가 어느 자리에 있어도, 어느 시간에 있어도 신앙의 꽃을 피울 수 있습니다. 신앙의 꽃은 기쁨, 평화, 감사입니다. 우리는 이 신앙의 꽃을 힘들고 지친 이웃들에게 나눌 수 있어야 합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모든 직분의 제자들에게 꼭 필요한 것을 말씀해 주고 계십니다. 그것은 내가 지금 어디에 있으며 어디를 향해서 가는지를 아는 것입니다. 그것을 알기 위해서 필요한 것은 바로 ‘회개’입니다. 회개라는 과정을 통해서 나는 지금 하느님의 편에 있는지, 아니면 악의 그늘에 있는지를 알게 됩니다. 회개를 통해서 나는 좀 더 겸손해 질 수 있고, 주님께로 나갈 수 있습니다.

“주님이 말씀하신다. 나는 악인의 죽음을 기뻐하지 않는다. 오히려 악인이 자기 길 을 버리고 돌아서서 사는 것을 기뻐한다.”
 
- 서울 대 교구 성소국장 조재형 가브리엘 신부 -

##### ##### #####

◈ [수도회] 사랑과 회개 - 이수철 프란치스코 성 요셉 수도원 신부님 

(십자성호를 그으며)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2014년 가해 10월25일 연중 제29주간 토요일, 에페4,7-16 루카13,1-9

<너희도 회개하지 않으면 모두 멸망할 것이다.>
+ 루카 13,1-9

사랑과 회개

죄가 없어 구원이 아니라 하느님의 자비로 구원입니다.
죄가 없어 구원받기로 하면 세상에 구원 받을 자 아무도 없습니다.
하여 미사 경문 중, '저희 죄를 헤아리지 마시고 교회의 믿음을 보시고' 기도하는 우리들입니다.

"너희는 그 갈릴래아 사람들이 그러한 변을 당하였다고 해서
다른 모든 갈릴레아 사람보다 더 큰 죄인이라고 생각하느냐?
아니다. 내가 너희에게 말한다. 너희도 회개하지 않으면 모두 그처럼 멸망할 것이다."

이어 주님은 복음에서 또
'아니다. 내가 너희에게 말한다. 너희도 회개하지 않으면 모두 그처럼 멸망할 것이다.'
거듭 강조하십니다.

너나 할 것 없이 모두가 회개의 대상인 죄인이라는 것입니다.
이를 알 때 진정 겸손이요 아무도 남을 판단하지 않습니다.

지체없는 회개를 명하시는 주님이십니다.
회개는 영성생활의 기초입니다.

한 번으로 끝나는 회개가 아니라
평생, 매일 끊임없는 회개를 필요로 하는, 회개의 여정을 살아가야 하는 우리들입니다.
하느님이 진정 반기는 것은 우리의 예물이 아니라 회개입니다.
우리가 하는 일이 죄짓는 일이라면 하느님의 일은 용서하시는 일입니다.

우리의 날이 연장되는 것은 회개의 기회를 주시는 하느님의 배려임을
오늘 복음의 후반부 '포도밭 무화과 나무 한 그루'의 비유가 말해 줍니다.
이런 주님의 사랑이 회개의 동기가 됩니다.

회개를 통해 하느님의 사랑을 깨닫고, 사랑은 우리의 회개를 촉발시킵니다.
사랑과 회개는 함께 갑니다.

-"주님의 집에 가자!"할 때, 나는 몹시 기뻤노라.-

오늘 화답송 시편 첫구절이 반갑습니다.
산티아고 순례중 위 시편 구절이 샘솟는 힘의 원천이었습니다.
끊임없는 사랑의 회개를 촉발시키는 말씀이었습니다.

주님께 대한 사랑이 끊임없는 회개로 이끌고, 끊임없는 회개를 통해 주님과 사랑의 관계도 깊어집니다.
하여 매일미사요 끊임없는 기도의 수행입니다.
이런 '회개의 시스템' 안에서 끊임없는 회개의 생활화도 이루어집니다.

회개를 통한 사랑의 성장입니다.
우리는 그리스도께서 나누어 주시는 은혜의 양에 따라 저마다 은총을 받았습니다.

바로 회개가 우리가 받은 은총을 깨닫게 합니다.
하여 은총에 충실함으로 우리 모두
하느님의 아드님에 대한 믿음과 지식에서 일치를 이루고
성숙한 사람이 되며 그리스도의 충만한 경지에 이르게 됩니다.

바로 이것이 회개의 열매, 사랑의 열매입니다.
그렇습니다. 사랑의 회개는 영성생활의 기초입니다.
끊임없는 사랑의 회개없이는 영정성장도 성숙도 기대할 수 없습니다.

우리는 사랑으로 진리를 말하고 모든 면에서 자라나 그분에게까지 이르러야 합니다.
그분은 머리이신 그리스도이십니다.

얼마나 원대하고 자랑스런 우리의 목표인지요.
바오로가 제시하는 비전이 참 고맙습니다.
끊임없는 회개를 통한 사랑의 성장이요 그리스도를 닮아가는 우리들입니다.

주님은 이 거룩한 미사를 통해 회개한 우리 모두를
당신 사랑으로 새롭게 하시어 당신을 닮게 하십니다.

"주님, 저희가 주님의 자비로 치유를 받고 힘을 얻어, 모든 일에서 주님의 기쁨이 되게 하소서."

아멘. 
 
- 이수철 프란치스코 성요셉 수도원 신부 -

##### ##### #####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