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월19일 믿고 감당하면 눈이 열린다.

작성자 : 김 안나    작성일시 : 작성일2014-10-19 07:43:18    조회 : 712회    댓글: 0

◈ [인천] 2014년 가해 10월19일 민족들의 복음화를 위한 미사
 
제1독서 이사 2,1-5

1 아모츠의 아들 이사야가 유다와 예루살렘에 관하여 환시로 받은 말씀.
2 세월이 흐른 뒤에 이러한 일이 이루어지리라. 주님의 집이 서 있는 산은 모든 산들 위에 굳게 세워지고, 언덕들보다 높이 솟아오르리라. 모든 민족들이 그리로 밀려들고, 3 수많은 백성들이 모여 오면서 말하리라.
“자, 주님의 산으로 올라가자. 야곱의 하느님 집으로! 그러면 그분께서 당신의 길을 우리에게 가르치시어, 우리가 그분의 길을 걷게 되리라.” 이는 시온에서 가르침이 나오고, 예루살렘에서 주님의 말씀이 나오기 때문이다.
4 그분께서 민족들 사이에 재판관이 되시고, 수많은 백성들 사이에 심판관이 되시리라. 그러면 그들은 칼을 쳐서 보습을 만들고, 창을 쳐서 낫을 만들리라. 한 민족이 다른 민족을 거슬러 칼을 쳐들지도 않고, 다시는 전쟁을 배워 익히지도 않으리라.
5 야곱 집안아, 자, 주님의 빛 속에 걸어가자!

제2독서 로마 10,9-18

형제 여러분, 여러분이 9 예수님은 주님이시라고 입으로 고백하고 하느님께서 예수님을 죽은 이들 가운데에서 일으키셨다고 마음으로 믿으면 구원을 받을 것입니다. 10 곧 마음으로 믿어 의로움을 얻고, 입으로 고백하여 구원을 얻습니다.
11 성경도 “그를 믿는 이는 누구나 부끄러운 일을 당하지 않으리라.” 하고 말합니다. 12 유다인과 그리스인 사이에 차별이 없습니다. 같은 주님께서 모든 사람의 주님으로서, 당신을 받들어 부르는 모든 이에게 풍성한 은혜를 베푸십니다. 13 과연 “주님의 이름을 받들어 부르는 이는 모두 구원을 받을 것입니다.”
14 그런데 자기가 믿지 않는 분을 어떻게 받들어 부를 수 있겠습니까? 자기가 들은 적이 없는 분을 어떻게 믿을 수 있겠습니까? 선포하는 사람이 없으면 어떻게 들을 수 있겠습니까? 15 파견되지 않았으면 어떻게 선포할 수 있겠습니까? 이는 성경에 기록된 그대로입니다. “기쁜 소식을 전하는 이들의 발이 얼마나 아름다운가!”
16 그러나 모든 사람이 복음에 순종한 것은 아닙니다.
사실 이사야도 “주님, 저희가 전한 말을 누가 믿었습니까?” 하고 말합니다. 17 그러므로 믿음은 들음에서 오고 들음은 그리스도의 말씀으로 이루어집니다. 18 그러나 나는 묻습니다. 그들이 들은 적이 없다는 것입니까? 물론 들었습니다. “그들의 소리는 온 땅으로, 그들의 말은 누리 끝까지 퍼져 나갔다.”

복음 마태 28,16-20

그때에 16 열한 제자는 갈릴래아로 떠나 예수님께서 분부하신 산으로 갔다. 17 그들은 예수님을 뵙고 엎드려 경배하였다. 그러나 더러는 의심하였다.
18 예수님께서는 그들에게 다가가 이르셨다. “나는 하늘과 땅의 모든 권한을 받았다. 19 그러므로 너희는 가서 모든 민족들을 제자로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주고, 20 내가 너희에게 명령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여라. 보라, 내가 세상 끝 날까지 언제나 너희와 함께 있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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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 전에 병원에 입원 중인 인천교구 신부님들을 찾아뵈었습니다. 아플 때가 가장 힘들 때라고 하지요. 그래서 시간을 내어 병문안을 했습니다. 지금 현재 인천교구 신부님 네 분이 병원에 입원 중이시거든요. 그런데 그 중 제 후배 신부를 찾아서 이야기를 나누는데, 병간호를 하는 그 신부의 어머니로부터 이런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그 신부가 많이 아파서 정신 줄을 놓을 때가 종종 있는데, 이때에는 자신의 의지와는 달리 엉뚱한 이야기를 많이 한다고 하더군요. 사실 방사선 치료를 오랫동안 받고 또 호르몬 이상까지 와서 무의식적으로 이야기를 하는 경우가 많답니다. 하지만 이때 신부님은 주로 성당 이야기만 한다는 것입니다.

“우리 아이들 간식 준비는 다 되었죠?”

“세월호 아이들이 올 지도 모르니까 병실 문을 활짝 열어 놓으세요.”

무의식의 상태가 될 때, 욕을 하는 사람도 참 많다고 합니다. 하지만 이 신부님은 항상 누군가를 걱정하는 말을 하면서, 무의식의 상태에서도 사제의 모습을 잃지 않는다고 하더군요. 하긴 아프기 전에도 늘 본당 신자들을 걱정하고, 또 열심히 사목하던 신부님이셨거든요. 그래서인지 남들이 듣기에 민망한 말은 전혀 하지 않고, 좋은 모범의 모습만을 보이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 모습을 보면서 간호사들도 이렇게 말한다고 합니다.

“신부님이라 보통 사람들과는 다르네요.”

이 이야기를 들으면서, ‘나는 어떨까?’라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혹시 ‘입에 담기 힘든 욕을 내 뱉지는 않을까?’, ‘사람들이 인상을 쓸 만한 못된 말과 행동을 하지는 않을까?’라는 걱정도 생깁니다. 그렇게 잘 산 것 같지도 않고, 또한 좋은 생각을 많이 하면서 산 것 같지도 않기 때문입니다.

아무튼 무의식의 상태에서도 ‘역시 신부님이다.’라는 소리를 듣는 후배 신부님의 모습을 보면서, 평소에 항상 좋은 생각과 좋은 행동을 해야 한다는 것을 깨닫게 됩니다. 그리고 이런 모습들이 사람들에게도 좋은 전교의 방향이 될 것입니다.

오늘은 전교주일이며 동시에 민족들의 복음화를 위한 미사를 봉헌하는 날입니다. 세상 끝까지 복음을 전파하라는 예수님의 마지막 말씀을 기억하면서 전교에 충실하고, 동시에 이 땅의 복음화를 위해 적극적으로 노력하는 날인 것이지요. 그런데 이러한 사명이 과연 하루아침에 이루어지는 것일까요? 아닙니다. 평상시에도 좋은 생각과 좋은 마음을 통해서 차곡차곡 쌓여지는 것입니다.

단순히 전교주일인 오늘만 전교에 힘쓰고 민족들의 복음화를 위한 기도 한 번으로 나의 의무를 다 했다는 생각을 가져서는 안 됩니다. 예수님의 마지막 유언인 만큼 나의 전 생애를 거쳐서 실천해야 할 것입니다. 그래야 나의 무의식의 상태에서도 주님의 뜻에 맞게 살아가는 주님의 참 제자가 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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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한 사람은 항상 선량하다(도스토예프스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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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발 한 켤레를 닳게 할 수만 있다면(‘따뜻한 하루’ 중에서)

장난꾸러기 아들 때문에 걱정이 많은 한 아버지가 있었다. 손수레를 타고 비탈길을 내려오는 놀이를 좋아하는 아들은 운동화 밑창이 금방 닳아버리곤 했다. 고장 난 세탁기를 중고로 구매하고 아들의 신발을 사주기로 결심했다. 중고세탁기를 구매하러 찾아간 판매자의 집은 교외에 위치한 넓고 아름다운 집이었다.

'이런 집에 살면 얼마나 행복할까...' 남자는 부러워하면서 초인종을 눌렀다.

곧 세탁기를 팔기로 한 부부가 밖으로 나왔다. 세탁기를 저렴한 가격에 구입한 남자는 그들과 이런저런 대화를 나누다가 문득 아이 이야기를 꺼냈다.

"저희 집 말썽꾸러기 때문에 항상 걱정이에요. 신발을 험하게 신어서 다 헤어졌어요. 학교 가기 전에 운동화를 사줘야 하는데..."

그러자 부인은 안색이 변하더니 금방이라도 울음을 터뜨릴 기색으로 집 안으로 들어가 버렸다. 영문을 모르고 서 있는 남자에게 곁에 있던 남편이 말했다.

"저희에게는 딸이 하나 있는데.. 태어난 이후로 한 번도 걸은 적이 없답니다. 만약 아이가 신발을 신고 '신발 한 켤레를 닳게 할 수만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라는 생각에 저러니 이해 바랍니다."

당신은 항상 자신이 갖지 못한 것을 부러워하지만.... 어쩌면 당신은 이미 많은 것을 가지고 있는 지도 모릅니다. 
 
- 인천교구 성소국장 조명연 마태오 신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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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청주] 믿고 감당하면 눈이 열린다|반신부의 복음 묵상
 
2014년 가해 10월19일 연중 제29주일 민족들의 복음화를 위한 미사
 
<너희는 가서 모든 민족들을 제자로 삼아라.>
+ 마태오 28,16-20

믿고 감당하면 눈이 열린다.

찬미 예수님. 사랑합니다. 주님께서는 우리를 사랑하시고 세상의 모든 이가 구원받기를 원하십니다. “하느님께서 우리에게 주시는 구원은 당신 자비의 활동입니다. 그 어떠한 인간의 활동도, 제아무리 훌륭한 활동이라도, 우리가 그토록 위대한 선물을 받기에 합당하게 해 주지 못합니다. 하느님께서는 온전히 당신의 은총으로 우리를 당신께 이끄시어 우리를 당신과 하나 되게 하십니다. 하느님께서는 우리 마음에 성령을 보내시어, 우리가 당신 자녀가 되게 하시고 우리를 변화시키시고 우리의 삶으로 당신의 사랑에 응답할 수 있게 하십니다.”그리고 우리에게 ‘모든 민족들을 제자로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베풀고 당신께서 명령한 것을 가르치라’는 사명을 주셨습니다. 이 시간 전교의 사명에 대해서 생각하는 가운데 우리의 마음을 새롭게 해 주시고 영원한 생명에로 한발 더 다가갈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전교의 사명은 우리 모두의 의무입니다. 그리스도인이 주님께서 명한 것을 지키고 가르치는 것은 당연한 것입니다. 그리고 믿음은 들음에서 오기 때문에 주님의 말씀은 선포되어야 합니다. 그래야 듣게 되고 들음으로써 주님께 문을 두드리게 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주님의 부르짖음이 우리 안에 숨겨지지 않도록 우리 각자의 능력에 따라 구원의 진리를 전해야 합니다. 주님께서 우리에게 베풀어 주신 은혜를 기억하고 감사한다면, 나에게 바라는 간절한 소원이고 명령이라면 그 사명을 새롭게 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많은 분들이 나는 말을 잘 못한다. 아는 게 없다고 하면서 개신교 신자들의 전교열정과 성경에 대한 해박한 지식, 말 잘하는 것을 부러워합니다. 그러나 축구를 잘하려면 늘 축구를 해야 합니다. 피아노를 잘 치려면 그만한 연습이 필요합니다. 마찬가지로 기도를 잘 하려면 자꾸 기도해야 합니다. 기도하면서 기도를 배우게 됩니다. 성경을 읽음으로써 하느님을 더 잘 알게 됩니다. 주님을 다른 사람에게 전함으로써 더 전할 수 있는 용기, 잘 전할 수 있는 지혜도 얻게 됩니다. 그런데 그것에 대한 수고 없이 잘하려고 하니 문제입니다. 하면할수록 더 잘하게 된다는 것을 잊지 않기를 바랍니다.

솔직히 여러분이 말씀을 잘 못하십니까? 남 얘기하는 데는 뒤떨어지지 않습니다. 정보를 어디서 그리 자세히 파악했는지 의문이 갈 정도입니다. 여러분이 아는 게 없습니까? 여러분이 좋아하는 것에는 많은 것을 알고 있습니다. 텔레비전 드라마 내용은 꿰뚫고 있고, 배우나 연예인의 신상에 대해서도 자세히 아는 사람이 많습니다. 사실 쓸데없는 것으로 가득 채우면 꼭 필요한 것이 들어갈 데가 없습니다. 주님을 전하는 것은 머리로 하는 것이 아닙니다. 예수님께서는 “너희의 빛을 사람들 앞에 비추어 그들이 너희의 착한 행실을 보고 하늘에 계신 아버지를 찬양하게 하여라”(마태5,16). 고 하셨습니다. 바오로 사도는 말합니다. “그리스도께서는 세례를 베풀라고 나를 보내신 것이 아니라 복음을 전하라고 보내셨습니다. 그것은 인간의 말재주로 하라는 것은 아니었습니다. 인간의 말재주로 전하면 그리스도의 십자가는 그 뜻을 잃고 맙니다”(1코린1,17).

말씀을 그저 귀로 듣는 것 뿐 아니라 행함으로써 더 큰 믿음을 얻게 됩니다. 믿음이 있어야 따를 수 있기도 하지만 따름으로써 믿음을 다지게 됩니다. 말씀대로 행함으로써 더 큰 믿음을 얻게 됩니다. 토요일 대전 지역에서 구역모임차원으로 순례를 오셨습니다. 수원에서는 첫영성체대상 어린이와 그 가족들이 오셔서 함께 미사를 봉헌했습니다. 대전에서 오신 어르신들은 구역반장님들과 봉사자 몇 분이 봉사를 할 수 있어서 가능했습니다. 나 혼자 신앙생활을 하는 것이 아니라 이웃을 생각하는 마음이 순례의 열매를 맺게 했습니다. 첫영성체를 준비하는 어린이들을 위해 가족이 함께함으로써 주님의 손길을 느끼게 해 주었고 좋은 기억을 심어주었습니다. 어린이들을 그냥 성당에 맡겨놓는 것이 아니라 동행함으로써 사랑을 확인해 준 것입니다. 이런 것들이 복음을 진지하게 접할 수 있게 해 주는 수고요 땀이며 중요한 복음화의 활동입니다.

선한 일을 하고자 하면 우리가 감히 상상하지 못한 은총으로 넘치도록 채워주십니다. 우리가 “내가 세상 끝 날까지 언제나 너희와 함께 있겠다”(마태28,20)하신 주님의 약속을 믿고 맡겨진 일을 성실히 감당할 때 이윽고 믿음의 눈이 더 크게 열리게 됩니다. 사도행전이 그것을 증언합니다. 사도행전을 보면 다락방에 숨어 지내던 사도들이 어떻게 변했는지 잘 알 수 있습니다. 그들은 자기가 가진 모두를 내놓고 살아도 부족함이 없이 살았습니다.

1코린2장 4절에 보면 “내가 말을 하거나 설교를 할 때에도 지혜롭고 설득력 있는 언변을 쓰지 않고 오로지 하느님의 성령과 그의 능력만을 드러내려고 하였습니다.”라고 적혀 있습니다. 그러므로 주님의 능력을 믿고 전교하시기 바랍니다. 때로는 실패도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실패는 늦춰진 성공일 뿐입니다. 더 큰 결실을 위한 믿음의 단련 시기입니다. 그러므로 상대방의 반응 여하에 실망하지 말고 기회가 좋든지 나쁘든지 하느님의 뜻을 전하시기 바랍니다. 온 세상이 우리의 활동 무대 입니다. 주님께서 원하시는 곳이라면 어디든지 주저하지 말고 나아가십시오. 우리의 신앙이 어떤지는 ‘복음’을 얼마나 열정적으로 선포하는가를 보면 알 수 있습니다. 바오로 사도는 말합니다.“기쁜 소식을 전하는 이들의 발이 얼마나 아름다운가!”(로마10,15). 여러분의 발걸음이 늘 아름답기를 바랍니다.

베드로 전서 3장 15절의 말씀을 보면 “여러분의 마음속에 그리스도를 주님으로 우러러 모시고 여러분이 간직하고 있는 희망에 대해서 설명을 듣고 싶어 하는 사람들에게는 언제라도 답변할 수 있도록 준비해 두십시오.” 라고 적고 있습니다. 우리가 먼저 주님의 말씀으로 무장 되어있어야 주님을 제대로 전할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성경을 자주 읽고 또 말씀을 실천함으로써 주님을 깊이 만났으면 좋겠습니다. 그리고 말씀이 사람이 되어 우리 가운데 사신 예수님, 오늘도 성체성사를 통하여 영적양식을 주시는 예수님을 잘 모심으로써 힘을 얻고 위로를 받으며 희망을 간직해야 하겠습니다.

요즘 한국에서는 개신교신자가 줄고 있다고 합니다. 여러 이유가 있지만 “사회봉사 및 이웃 사랑을 실천하는 데 인색하고, 전도활동이 지나쳐서 혐오감을 주며 헌금을 너무 강조한다. 진리 추구보다 교세 확장에 집착하고 너무 시끄럽고 요란하다. 물량 주의에 물들어 있다. 도덕적으로 사회에 물의를 일으키는 경우가 많다”(이원규. 감신대.종교사회학교수.)고 분석하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그러한 전철을 밟지 말아야 합니다.

천주교에서도 경계의 목소리가 나옵니다. “천주교인들이 개인화 하고 있고, 부유해 지고 있다. 가난하고 소외된 이들에 대한 관심이 줄어들고 점점 보수화, 권력화하고 있다”고 합니다. 거리홍보나 공연, 작품 활동을 통한 문화 선교를 개신교에서 배우는 것은 긍정적인데 기존의 좋은 것을 잃어서는 안 된다는 반성입니다. 그렇다면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이 주님의 말씀을 통한 새 삶을 살아감으로써 주님을 증거 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전교주일을 보내면서 무엇보다는 내 마음을 풍요롭게 하시길 빕니다.

영세 받은 지 몇 년이 되었든 나를 통해서 성당을 찾아 영세를 받은 사람이 있다면 그나마 다행입니다. 그것은 열매를 맺었다고 볼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신앙인이 되었으면서도 나의 영향으로 하느님을 찾게 된 사람이 아직 없다면 나는 열매를 맺지 못한 것입니다. 들판의 꽃들, 과일 나무도 일 년에 한번은 열매를 맺는데 우리가 일 년에 한번 열매를 맺지 못한다면 참으로 부끄러운 일입니다. 주님께서 허락하시는 구원의 은혜를 이웃과 더불어 나누는 가운데 30배, 60배, 100배의 열매를 맺길 바랍니다. 우리 성당 안내지를 한부 이상 이웃에게 전하시기 바랍니다. 남편도 좋고, 아내도 좋고, 친구에게도 좋고 누구에게든 전해서 하느님에 관해 한번 생각할 수 있는 기회를 만들어주시길 바랍니다.

우리 성당 초대신부이신 임가밀로 신부님께서는 프랑스 파리외방 전교회 소속사제로 1893년 5월27일 화창한 성모성월에 사제품을 받고 1893년7월19일 프랑스 파리를 거쳐 스페인에서 한국으로 향하게 됩니다. 배를 타고 수에즈 운하를 거쳐 인도양을 지나 베트남, 홍콩을 지나 기나긴 항해 끝에 인천항에 도착하였습니다. 이때가 1893년 9월12일 이었습니다. 신부님의 입에는 늘 “나는 여러분을 만나기 전부터 사랑했습니다.”라는 말씀을 달고 사셨습니다. 신부님께서 한국에 오신 이유가 무엇입니까? 신부님께서는 하느님의 사랑을 알았고 그 사랑을 전하기 위해서입니다. 예수님을 통해서 우리 모두가 구원받기를 소망했기 때문입니다. 신부님의 아름다운 발길이 우리에게 신앙을 전해주었고 여기서 많은 사람이 세례성사를 통해 하느님의 자녀로 태어났고 많은 성직자 수도자들이 배출되었습니다. 그렇다면 우리의 발길이 이웃을 향해야 함은 당연합니다. “구원하시는 하느님의 사랑을 진실로 체험한 사람이라면 그 누구도 밖으로 나아가 그 사랑을 선포하는 데에 오랜 준비나 긴 시간의 훈련이 필요 없습니다.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하느님 사랑을 만난 그리스도인은 모두 선교사입니다”(복음의 기쁨). 우리는 언제나 ‘선교하는 제자’입니다. “어느 상황에서든 우리는 저마다 예수님을 전하는 길을 찾아야 합니다....우리의 부족함이 변명이 되어서는 안 됩니다.”구원을 허락하신 신앙의 삶이 복되다면 그것을 전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사랑합니다.

@@ 부모와 함께 미사를 마치고 돌아오는 길에 네 살짜리 꼬마가 말했습니다. “엄마, 저는 나중에 신부가 되고 싶어요!”.“그래? 좋지! 그런데 어떻게 그런 생각을 했지?” “아무리 생각해 봐도 성당에서 지루하게 가만히 앉아있는 것보다는 서서 떠드는 것이 훨씬 재미있을 것 같아요!” @@
 
- 청주교구 감곡 매괴 성모성당 반영억 라파엘 신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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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수원] 요셉 신부님의 매일 복음 묵상 - 스승은 피로 씻어주는 이

2014년 가해 10월19일 주일 민족들의 복음화를 위한 미사

< 너희는 가서 모든 민족들을 제자로 삼아라. >
복음: 마태오 28.16-20
 
< 스승은 피로 씻어주는 이 >

지금은 고인이 된 로빈 윌리암스와 멧 데이먼이 어렸을 대 주연한 영화 ‘굿 윌 헌팅(Good Will Hunting)’의 줄거리입니다.

고아인 ‘윌(멧 데이먼)’은 양부모에게 길러졌지만 양아버지에게 어렸을 때부터 학대만 받고 컸습니다. 지금은 MIT공대에서 청소부로 아르바이트를 하고 있습니다. 반항기 어린 윌은 지나가다가 어렸을 때 유치원에서 자신을 괴롭혔던 한 친구가 보이니 달려가 마구 두들겨 팹니다. 그렇게 자주 경찰서를 드나드는 나쁜 짓만 골라하는 골칫거리입니다.

그러나 공부를 한 적은 없지만 수학엔 천재입니다. MIT공대에 노벨수학상을 수상한 교수가 복도에 써 놓은 문제를 단숨에 풀어버립니다. 누가 그 문제를 풀었는지 찾아내기 위해 그 교수는 더 어려운 문제를 복도 칠판에 써 놓았고 청수부 윌이 그 문제를 풀어내는 것을 목격합니다.

그리고 그에게 수학을 가르쳐보려고 노력합니다. 그렇지만 윌의 거친 성격 때문에 장애가 되어 여러 유명한 상담교수들을 청해 윌의 성격을 치료하려 노력하지만 윌이 마음의 문을 열지 않아 잘 되지 않습니다. 그러다가 생각해 낸 사람이 바로 시골 대학에서 심리치료교수로 있는 ‘숀(로빈 윌리암스)’이었습니다.

역시 숀을 본 윌은 2년 전에 사별한 숀의 아내를 들먹이며 화를 돋웁니다. 숀도 자신의 죽은 아내를 무시하는 윌의 멱살을 부여잡습니다. 그러나 숀은 완벽한 천재로만 보이려 하고 남에게 약점을 잡히려 하지 않는 윌의 마음을 열어주기 위해 다시 자신의 약점을 보여줍니다.

윌은 여자를 사귀었지만 헤어지게 됩니다. MIT공대의 좋은 가문에서 자란 여자는 윌과 함께 떠나기를 원합니다. 그러나 또 버려질 것 같은 두려움에 윌은 결정적인 순간에 자신의 마음을 닫고 그 여자에게 사랑하지 않는다고 말합니다. 윌은 계속 이렇게 두려움에 갇혀 살면서도 다른 이에게 더 이상 상처받지 않으려고 겉으로는 자신을 완벽하게 꾸밉니다.

드디어 자신의 문제가 무엇인지 깨달은 윌은 숀에게 양부로부터 학대받았던 모든 사실들을 털어놓습니다. 숀은 불완전함이 불완전한 것이 아니라 오히려 관계를 위해 도움이 된다고 말합니다. 숀은 자신의 아내가 잠잘 때 방귀를 뀌는 것 등을 자신만 알고 있고 아내도 자신의 단점을 알고 있는데 이런 것들이 둘의 관계를 오히려 더 깊게 만들어주는 것들이라고 말하며 완벽해지려고만 하는 자기 자신을 용서할 것을 청합니다.

“그건 네 잘못이 아니야!”라고 수십 번을 반복해서 말합니다. 처음엔 안다고 말하지만 나중엔 그만하라고 하면서 화까지 냅니다. 그러다가 그 말을 인정하고 숀을 껴안고 눈물을 흘립니다. 나의 탓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그 죄책감을 상쇄하기 위해 더 완벽해 보이려고 힘을 잔뜩 주고 살았던 것입니다. 윌은 숀의 희생을 통해 흘러내리는 자신의 뜨거운 눈물로 자신도 용서하고 자신에게 상처를 주었던 사람들도 용서합니다. 이젠 누군가에게 받아들여졌기 때문에 더 이상 자신의 탓 때문에 버림받았다는 마음을 가지지 않아도 되게 된 것입니다.

이 영화에서 아인슈타인도 그를 이끌어줄 스승을 만나지 못했다면 그저 평범한 인물에 머물렀을 거라는 대사가 나옵니다. 그렇습니다. 늑대에게 키워졌던 아이들은 자신들이 늑대라고 여기고 그 수준에서 벗어날 수 없었습니다. 누구를 만나느냐에 따라 내가 나를 초월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인생은 만남’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오늘은 전교주일입니다. ‘전교란 우리가 누군가의 좋은 만남이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 사람이 나의 수준으로 올라올 수 있도록 가르치는 것입니다. 사실 가르친다기보다는 내가 그 사람에게 먹힌다고 보아야 할 것입니다. 내가 죽지 않으면 그 사람의 속으로 들어갈 수 없기 때문입니다. 그리스도께서 우리에게 말씀과 성체성혈의 형태로 먹히시며 우리를 당신 수준까지 끌어올리시려고 하시는 것과 같습니다. 오늘 복음에서는 이것을 스승이 되는 것과 같다고 하시는 것입니다.

“너희는 가서 모든 민족들을 제자로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주고, 내가 너희에게 명령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여라.”

그렇습니다. 스승은 내가 그 사람에게 먹혀서 그 사람이 더 이상 이전의 사람이 아닌 나를 통해 새로 태어난 사람이 되게 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자칫 잘못하다가는 스승이 제자를 먹을 수도 있습니다. 그러면 둘 다 망하게 됩니다.

‘하얀면사포’라는 영화가 있는데, 고아로 자라 공부에는 전혀 관심이 없고 몸을 팔며 살아온 마틸다라는 16세 된 한 여학생이 프랑스와라는 선생님을 만나 그로부터 공부도 열심히 하고 새로운 삶의 열정도 갖게 된다는 줄거리입니다.

거기까지라면 좋겠지만 자신을 살게 해 준 프랑스와를 사랑하게 돼 버린 마틸다는 선생님을 유혹하고 가정생활을 하고 있는 프랑스와도 그 유혹에 넘어옵니다. 그러나 프랑스와는 자신의 가정이 있다는 것, 또 선생님과 미성년자의 부적절한 관계라는 것 때문에 마틸다를 거부하지만 결국 그 사실이 드러나게 되고 자신은 시골로 전근가게 됩니다. 마틸다는 그 선생님이 출퇴근하는 것을 멀리서 지켜보다가 결국 스스로 생을 마감하게 된다는 이야기입니다.

스승은 누군가를 깨끗이 만들고 힘을 주어 최종 목적지인 주님을 만나게 해야 하지 도중에 그 사랑을 자신이 가로채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바오로도 자신의 역할을 이렇게 말합니다.

“나는 하느님의 열정을 가지고 여러분을 위하여 열정을 다하고 있습니다. 사실 나는 여러분을 순결한 처녀로 한 남자에게, 곧 그리스도께 바치려고 그분과 약혼시켰습니다.”(2코린 11,2)

‘신부를 차지하는 것은 신랑’이어야합니다. 이 말은 자신의 제자들이 그리스도께로 갈 때 세례자 요한이 한 것입니다. 자신은 그저 자신의 제자들을 그리스도께로 인도하는 일꾼일 뿐인 것입니다. 그리고 신랑이 신부를 차지하는 것을 보며 함께 기뻐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모두 우리 피로 사람들을 깨끗이 씻어 그리스도께 합당한 신부로 만들고 그들을 주님께 봉헌해 드리는 사람들인 것입니다. 그리고 진정 우리 피로 씻었다면 그들은 다시 더러워 질 수 없게 됩니다. 이것이 스승이 제자에게 해야 하는 역할인 것입니다.

의사를 하다가 그리스도를 만나 자신의 전 재산을 다 팔아 가난한 사람들에게 나누어주고 맨 손으로 길거리 아이들을 주어다 키우며 살아가는 박보영 목사님이 있습니다. 길거리에서 본드와 가스를 불고 깡패 짓을 하며 사는 이들을 데려다 함께 사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이겠습니까?

그런데 이분이 길거리 거지 아이들을 키우는 데 하나의 독특한 방법이 있다고 합니다. 처음에 그들을 보면 몇 년 동안 씻지 않고 옷도 갈아입지 않아서 역겨운 냄새가 난다고 합니다. 그러면 그의 옷을 벗기고 그 옷을 비닐봉지에 봉해 보관합니다. 그런 다음 아이의 몸을 씻기고 이발을 해 주고 새 옷을 입히면 완전히 새로운 사람이 됩니다. 그렇게 3달 정도 함께 삽니다.

3달이 지나면 예식을 행합니다. 다른 것이 아니라 그 아이에게 자신이 전에 입었던 옷을 꺼내주면서 다시 입어보라고 합니다. 그러면 단 한 명도 그 옷을 다시 입으려 하지 않습니다. 그러면 적어도 옷을 얼굴에 갔다대라고 합니다. 그러나 그것도 하지 않습니다. 냄새를 맡아보라고 해도 두 손가락으로 간신히 쭉 펴서 멀리 들고 코를 막고 있습니다. 그러면 그것을 자신이 갔다버리고 오라고 합니다. 이것이 예식입니다.

예수님은 스승으로서 겉옷을 벗고 제자들의 발을 씻어주셨습니다. 말씀으로 온 몸을 씻어주셨고 마지막으로 발까지 씻어주신 것입니다. 겉옷은 성경에서 자신이 가진 전부를 의미합니다. 피도 생명을 의미하고 전부를 의미합니다. 즉 그리스도께서는 물이 아닌 당신의 피로써 제자들의 발을 씻어 정결하게 해 주신 것입니다.

우리 또한 우리 피로 제자들을 씻어주어야 합니다. 그리고 진정 그들이 깨끗하여 졌다면 그 이전 상태로 다시는 돌아갈 수 없을 것입니다. 그러나 6개월 이상 예비자 교리를 받아도 1년 내에 70% 이상 냉담을 하게 되는 이유는 아마도 그것이 그저 교리로 끝날 뿐이지 우리 피가 섞여있지 않기 때문일 것입니다.

그들을 변화시키는 것은 우리의 죽음뿐입니다. 하느님 나라는 그리스도의 피로 자신의 두루마기를 빤 이들만 들어갈 수 있습니다. 우리 죄를 씻어주는 것도 그리스도의 피입니다. 스승은 제자를 위해 죽어야만 합니다. 제자는 스승의 죽음을 먹고 새로 태어납니다. 그렇게 세상 모든 이들의 스승이 되라는 것을 잊지 말라고 하는 주일이 바로 오늘 전교주일인 것입니다.

요셉 신부님 미니홈피: http://minihp.cyworld.com/30joseph
 
- 수원 교구 복음화국 부국장 전삼용 요셉 신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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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울] 사람으로 육화하시어 직접 가르치신 계시는
 
2014년 가해 10월19일 연중 제29주일 민족들의 복음화를 위한 미사
 
<너희는 가서 모든 민족들을 제자로 삼아라.>
+ 마태오 28,16-20

사람으로 육화하시어 직접 가르치신 계시는

조상부모 선배 선생님들이 계셔서 사람들은 배우고 알아 살아갑니다.
배운 것은 상식이나 기술 노동 같은 물질계로 특히 재물 관련입니다.
학교나 배움의 목적이 진리를 익히고 맑은 마음으로 변하게 못합니다.

이러한 세상의 진행상황에 하늘의 힘님은 가만있지 않으셨던 겁니다.
하느님의 말씀님이 실제로 육화하시어 직접 가르치심을 계시라고 하지요.
인류 모두는 형제로 살고 하느님의 자녀로 살며 진리를 지키라는 거였지요.

“너희는 가서 모든 민족들을 제자로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주고, 내가 너희에게 명령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여라.
보라, 내가 세상 끝 날까지 언제나 너희와 함께 있겠다.(마태오 28,19~20)”

- 서울 대 교구 이기정 사도요한 신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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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타] 희망해야 합니다.그리고 믿어야 합니다.

소나무 신부와 함께 하는 마음의 산책

'이 유한의 세상은 결국 영원의 세상을 위한 도정임을 받아들여야 합니다.
그래야 아름답게 살 수 있기 때문입니다.'

2014년10월19일 연중 제 29주일 복음묵상

“그분께서 민족들 사이에 재판관이 되시고, 수많은 백성들 사이에 심판관이 되시리라.

그러면 그들은 칼을 쳐서 보습을 만들고, 창을 쳐서 낫을 만들리라.

한 민족이 다른 민족을 거슬러 칼을 쳐들지도 않고, 다시는 전쟁을 배워 익히지도 않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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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 시절 이 구절을 처음 대했을 때, 가슴이 뛰던 일을 기억합니다.
그런 세상은 얼마나 아름다울까를 상상하는 것만으로 행복했습니다.
그리고 이런 세상은 가능하다고 믿었던 어린 마음이었습니다.

하지만 짧지 않은 시간이 흘렀고, 이러한 소망이 어린 마음이 그려왔던 그저 동화 같은 세상이라는 것을 깨닫게 됩니다.
결국 인간이 이기심으로부터 자유로워지지 않는 한, 결코 실현될 수 없는 꿈이며,

인간 사회는 결코 이기심을 포기할 수 없는 존재로 세상을 만들어 가게 되어있다는 것을 받아들이게 됩니다.

결국 이러한 생각이 성소에 눈을 뜨게 했던 것 같습니다.
삶을 바라보는 눈이 염세적이 되어서가 아닙니다.
누가 뭐라 해도 추한 마음보다는 고은 마음이 더 많음을 믿고 싶었습니다.
사랑과 이해, 정의와 평화가 하나의 몸이 되어

노래하고 춤추는 세상을 꿈꾸는 이들이 적지 않을 것이라는 바람을 포기하고 싶지 않았습니다.

희망해야 합니다.
그리고 믿어야 합니다.
그분의 말씀처럼 우리는 분명 세상의 빛과 소금으로서 그분의 부르심을 받았습니다.
우리의 참 모습을 볼 수 있어, 그분의 자녀답게 살 수 있다면,

우리에게 허락된 시간과 공간 그리고 그 안의 생명들과의 관계에

작지만 커다란 복음이 될 수 있음을 희망하고 믿어야 합니다.
그리고 우리 각자의 삶이 미완성으로 끝난다 하더라도,

누군가에게는 삶의 이정표가 될 수 있음을 기뻐해야 합니다.

이 유한의 세상은 결국 영원의 세상을 위한 도정임을 받아들여야 합니다.
그래야 아름답게 살 수 있기 때문입니다.
 
- 사이타마 교구 오타(太田)본당 주임 김 대열 프란치스코 사베리오 신부

https://www.facebook.com/WithfatherPinetree

소나무 신부와 함께 하는 마음의 산책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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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수도회] 복음의 기쁨 - 이수철 프란치스코 성 요셉 수도원 신부님 

(십자성호를 그으며)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2014년 가해 10월19일 주일 민족들의 복음화를 위한 미사,
이사2,1-5 로마10,9-18 마태28,16-20
 
<너희는 가서 모든 민족들을 제자로 삼아라.>
+ 마태오 28,16-20                                                   

복음의 기쁨

오늘은 제88차 전교주일입니다.
프란치스코 교황님은 전교주일 담화를 통해 모든 신자들이
'하느님 나라를 향한 불타는 열정으로 복음의 기쁨을 온 세상에 선포할 것'을 독려하시며,
'인류는 더욱더 그리스도께서 가져다 주신 구원의 샘물을 길어 올려야 한다'고 강조하셨습니다.

복음의 기쁨, 복음의 평화입니다.
부활하신 주님께서 우선적으로 제자들에게 선사하신 것도 기쁨과 평화요,
현대인들이 갈망하는 것 역시 기쁨과 평화입니다.

선교는 교회의 사명이자 존재이유입니다.
최고의 선교는 우리가 복음의 기쁨과 평화를 사는 데 있습니다.
과연 어떻게 하면 복음의 기쁨과 평화를 살 수 있을까요?

첫째, 하느님 꿈을, 비전을 지니는 것입니다.

하느님 꿈과 비전이 열정의 샘입니다.
꿈과 비전이 없으면 살아도 살아있는 것이 아닙니다.
성인들은 모두가 꿈과 비전의 사람이었습니다.

오늘 1독서 이사야 역시 '비전의 사람'입니다.
그대로 우리의 비전으로 삼아도 손색이 없습니다.

-세월이 흐른 뒤에 이런 일이 이루어지리라.
주님의 집이 있는 산은 모든 산들 위에 굳게 세워지고, 언덕들보다 높이 솟아오르리라.
모든 민족들이 그리로 밀려들고, 수많은 백성들이 모여 오면서 말하리라.

"자, 주님의 산으로 올라가자. 야곱의 하느님 집으로!
그러면 그분께서 당신의 길을 우리에게 가르치시어, 우리가 그분의 길을 걷게 되리라."-

영원히 현재진행형의 비전이 되어 지금도 실현되고 있는 이사야의 비전입니다.
주님의 산이, 하느님 집이 상징하는 이 거룩한 성전 미사를 통해
우리는 주님의 길을 배우고 그 길을 걷습니다.

둘째, 주님을 고백하는 것입니다.

성경은 대부분 고백언어입니다. 고백은 기도입니다.
주님께 믿음을, 사랑을, 희망을 고백하는 것입니다.
끊임없는 고백의 기도를 통해 비전도 생겨나고 실현됩니다.

2독서 바오로의 말씀 그대로입니다.
예수님은 주님이시라고 입으로 고백하고
하느님께서 예수님을 죽은 이들 가운데에서 일으키셨다고 마음으로 믿으면 구원을 받을 것입니다.
곧 마음으로 믿어 의로움을 얻고, 입으로 고백하여 구원을 얻습니다.

구원에는 차별이 없습니다. 같은 주님께서 모든 사람의 주님으로서,
당신을 받들어 부르는 모든 이에게 풍성한 은혜를 베푸시기 때문입니다.
과연 주님의 이름을 받들어 부르는 이는 모두 구원을 받을 것입니다.

이래서 끊임없는 기도입니다. 우리 수도자들은 물론
열심한 신자들이 매일, 평생 주님의 이름을 부르며 바치는 시편성무일도는
온통 찬미와 감사의 고백입니다.
찬미와 감사의 고백을 통해 주님과 사랑의 관계도 깊어질 것이며
이런 삶 자체보다 더 좋은 선교도 없습니다.

셋째, 주님의 복음을 실천하는 것입니다.

하늘과 땅의 모든 권한을 받으신 예수님의 엄중한 명령입니다.
"너희는 가서 모든 민족들을 제자로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주고, 내가 너희에게 명령한 모든 것을 지키게 하여라."

바로 우리 교회에 주어진 선교사명입니다.
'모든 민족들'은 주님의 잠재적 제자들이자 선교의 대상으로 그 누구도 제외될 수 없음을 봅니다.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주고' 라는 실천 항목을 주목해야 합니다.

과연 선교에 앞서,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라는 십자성호를 정성껏 바치며
그에 걸맞는 우리의 신앙생활인지 말입니다.

세상에 십자성호보다 더 좋은 기도도 없고,
이런 특권의 기도를 바칠 수 있도록 모든 이들을 세례로 인도했으면 좋겠습니다.

그러니 주님께서 우리에게 명령한 것을 가르치기에 앞서,
우리가 몸소 그 계명을 실천함으로 모든 이가 그 삶을 보고 배우도록 해야 하겠습니다.
결국 우리 자신의 끊임없는 재복음화와 더불어 성공적인 선교활동임을 깨닫게 됩니다.

복음의 기쁨입니다.
복음을 전하지 않는, 선교없는 교회는 죽은 교회입니다.

그러나
선포하는 사람이 없으면 어떻게 들을 수 있으며, 파견되지 않으면 어떻게 선포할 수 있겠습니까?
하여 저절로 '기쁜 소식을 전하는 이들의 발이 얼마나 아름다운가!'라는 찬탄이 나오게 됩니다.
주님은 오늘 전교주일을 맞이하여 우리 모두에게 당부하십니다.

1.하느님 생생한 꿈을, 비전을 지니십시오.
2.주님을 끊임없이 고백하며 시도하십시오.
3.주님의 복음을 실천하십시오.

이어 이 거룩한 미사를 통해 우리 모두에게 약속하십니다.
"보라, 내가 세상 끝날까지 언제나 너희와 함께 있겠다."

아멘.
 
- 이수철 프란치스코 성요셉 수도원 신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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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울] 전교주일 
 
2014년 가해 10월19일 연중 제29주일 민족들의 복음화를 위한 미사
 
<너희는 가서 모든 민족들을 제자로 삼아라.>
+ 마태오 28,16-20
 
오늘은 전교주일입니다. 선교사들을 위해서 기도하고, 우리도 우리가 가진 신앙을 이웃들에게 전할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하겠습니다. 저는 적성 성당에 있을 때, 낚시를 자주하였습니다. 주변에 저수지도 많았고, 임진강도 있었습니다. 낚시를 해서 잡은 붕어는 탕을 내려서 혼자 사시는 어르신들께 드렸습니다. 어르신들은 자녀들이 가끔 찾아오면 본당 신부님이 붕어 달인 약을 주셨다고 자랑하셨습니다. 저는 좋아하는 낚시도 할 수 있었고, 어르신들에게 선물을 드릴 수 있었습니다. 본당을 찾아왔던 자녀들은 감사하는 마음으로 헌금도 많이 하였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말씀하셨습니다. ‘여러분은 세상 끝까지 가서 복음을 전하십시오.’ 복음을 전하는 것은 신앙인들의 책임이고 사명입니다. 복음을 전하는 것은 ‘낚시’를 하는 것과 비슷한 점이 있습니다.

첫째, 낚시를 하려면 밑밥을 많이 주어야 합니다. 물고기들은 밑밥을 많이 뿌린 곳으로 모여들기 마련입니다. 예수님께서도 많은 기적과 표징을 보여 주셨습니다. 중풍병자를 고쳐 주셨고, 소경의 눈을 뜨게 해 주셨고, 오천 명을 배불리 먹이셨습니다. 사람들은 예수님의 표징을 보았고, 예수님의 말씀을 들었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의 제자가 되었습니다. 우리는 복음을 전하기 위해서 ‘기도의 밑밥, 봉사의 밑밥, 사랑의 밑밥’을 주어야 합니다.
둘째, 낚시를 하려면 집중해야 합니다. 많은 사람들이 물고기를 놓치는 것은 ‘집중’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잠시 다른 곳을 볼 때, 화장실을 다녀올 때 물고기는 어김없이 먹이를 먹고 달아납니다. 물고기를 잡으려면 물위에 떠있는 찌를 잘 살펴야 합니다. 어느 순간 찌가 물위로 올라오게 됩니다. 그때 낚싯대를 들어 올리면 물고기를 잡을 수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많은 비유로 말씀하셨습니다. 그만큼 예수님께서는 세상 모든 것들을 유심히 보았습니다. ‘밀과 가라지의 비유, 씨 뿌리는 이의 비유, 누룩의 비유, 하늘나라에 대한 비유’를 보면 예수님께서는 스쳐가는 모든 것들을 사랑의 눈으로 보았음을 알 수 있습니다.
셋째, 낚시를 하려면 인내가 필요합니다. 때로는 밤을 새우기도 합니다. 기다리고 또 기다리면 분명히 물고기를 잡을 수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도 밤을 새워 기도하셨습니다. 잘 알아듣지 못하고, 겁이 많았던 제자들을 믿고 기다려 주셨습니다. 예수님을 세 번이나 모른다고 했던 베드로에게도 예수님은 희망을 보았습니다. 그리고 베드로를 용서하였습니다. 일곱 번씩 일흔 번이라도 용서하라는 주님의 말씀은 ‘인내’가 정말 중요하다는 것을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넷째, 낚시를 하려면 희망이 있어야 합니다. 낚시를 할 때마다 물고기를 많이 잡는 사람은 없습니다. 때로는 한 마리도 잡지 못할 때가 있습니다. 유다는 희망을 버렸기 때문에 용서 받을 수 있는 기회를 놓치고 말았습니다. 베드로는 희망을 가졌기 때문에 회개의 눈물을 흘렸고, 용서를 받을 수 있었습니다. 희망은 복음을 전하는 이들이 가져야할 덕목입니다. 희망은 하느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최고의 선물이기 때문입니다.

전교를 열심히 하시고, 잘 하시는 분들을 보면 몇 가지 공통점이 있습니다. 경제적으로 여유가 있거나, 많이 배웠거나, 시간이 많은 공통점이 있는 것은 아닙니다. 시장에서 힘들게 장사를 하시는 분도 있고, 대학 공부를 못 하신 분도 있고, 가정일도 하고, 직장 일도 하기 때문에 바쁘신 분들도 있습니다. 그럼에도 그분들이 전교를 많이 하는 것은 무슨 이유 때문일까요? 그것은 예수님의 전교 방법을 따라 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어떻게 전교했을까요?

첫째, 예수님은 몸으로 뛰셨습니다. 남녀노소를 불문하고 만나셨고, 지위고하를 불문하고 만나셨고, 부유한 자와 가난한자를 가리지 않고 만나셨습니다. 하지만 가난한자 병든 자, 외로운 자를 더욱 많이 만나셨습니다. 그리고 그들에게 위로를 주셨고, 힘을 주셨고, 용기를 주셨습니다.
둘째, 예수님은 몸소 모범을 보여주셨습니다. 전교는 말로만 하는 것이 아니라, 행동으로 하는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그래서 제자들의 발을 씻겨주시기도 하셨고, 언제나 섬기는 자가 되라 하셨고, 자신의 십자가를 먼저 지라 하셨고, 착한 목자는 양들의 음성을 알아듣고, 양들을 푸른 시냇가로 인도하고, 비가 오면 양들을 안전한 우리로 인도하며, 사나운 짐승이 나타나면 지팡이를 들고 지킨다고 하셨습니다. 그리고 십자가에 달려서 죽기까지 모범을 보여주셨습니다.
셋째, 예수님은 혼자 하시지 않고, 제자들과 함께 하셨습니다. 비록 제자들이 부족하고, 나약하지만 제자들을 신뢰하셨고, 제자들에게 힘을 주셨고, 제자들과 더불어 전교 하셨습니다. 하늘나라는 비록 겨자씨와 같이 작은데서 시작하지만 엄청난 결실을 맺으리라는 확신을 가졌습니다. 한꺼번에 모든 것을 이룰 수 있는 분이셨지만 기다려 주셨고, 인내해주셨고, 함께 하셨습니다.
넷째, 예수님은 늘 기도하셨습니다. 따로 한적한 곳에 가셔서 기도하셨고, 피눈물이 나도록 기도하셨고, 자신의 뜻보다는 하느님의 뜻이 이루어지길 기도하셨습니다. 그래서 누워 잠을 자고 있던 베드로와 야고보와 요한을 보시며 안타까워 하셨습니다. 기도는 바로 전교의 힘이며, 기도는 바로 전교의 발판이 된다고 하셨습니다.
다섯째, 예수님은 항상 당당하셨습니다. 비록 가진 것은 없으셨지만, 비록 내일 어찌될지 기약은 없으셨지만 늘 당당하셨고, 자신감이 있으셨습니다. 당당한 예수님은 불의와 타협하지 않으셨고, 권력에 무릎을 꿇지 않으셨고, 오히려 그 불의와 권력을 야단치고, 호통을 치셨습니다. 하지만 가난하고, 지치고, 힘든 자 앞에서는 늘 자비를 베푸셨고, 늘 그들에게는 약하셨습니다.

며칠 전, 병원 엘리베이터에서 이런 글을 읽었습니다. ‘행복은 좋아 하는 일을 하는 것이 아니라, 해야 할 일을 좋아하는 것입니다.’ 짧은 글인데 제게는 큰 감동을 주었습니다. 복음을 전하는 것, 자선을 베푸는 것, 사랑을 나누는 것, 이웃을 위해서 희생하는 것이 좋아하는 일은 아닐 수 있습니다. 하지만 그것이 꼭 해야 할 일이라면 그 일을 좋아 했으면 좋겠습니다. 그러면 우리의 행복은 시작될 것입니다.
 
- 서울 대 교구 성소국장 조재형 가브리엘 신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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