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월10일 내가 더 주었다고 믿는 것이 율법주의

작성자 : 김 안나    작성일시 : 작성일2014-10-10 06:42:06    조회 : 550회    댓글: 0

◈ [인천] 2014년 가해 10월10일 연중 제27주간 금요일
 
제1독서 갈라 3,7-14

형제 여러분, 7 믿음으로 사는 이들이 바로 아브라함의 자손임을 알아야 합니다. 8 성경은 하느님께서 다른 민족들을 믿음으로 의롭게 하신다는 것을 내다보고, “모든 민족들이 네 안에서 복을 받을 것이다.” 하는 기쁜 소식을 아브라함에게 미리 전해 주었습니다. 9 그러므로 믿음으로 사는 이들은 믿음의 사람 아브라함과 함께 복을 받습니다.
10 율법에 따른 행위에 의지하는 자들은 다 저주 아래 있습니다. “율법서에 기록된 모든 것을 한결같이 실천하지 않는 자는 모두 저주를 받는다.”고 성경에 기록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11 그러니 하느님 앞에서는 아무도 율법으로 의롭게 되지 못한다는 것이 분명합니다. “의로운 이는 믿음으로 살 것이다.” 하였기 때문입니다. 12 율법은 믿음과는 관련이 없습니다. “그 규정들을 실천하는 이는 그것들로 살” 따름입니다.
13 그리스도께서는 우리를 위하여 스스로 저주받은 몸이 되시어, 우리를 율법의 저주에서 속량해 주셨습니다. 성경에 “나무에 매달린 사람은 모두 저주받은 자다.”라고 기록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14 그리하여 아브라함에게 약속된 복이 그리스도 예수님 안에서 다른 민족들에게 이르러, 우리가 약속된 성령을 믿음으로 받게 되었습니다.

복음 루카 11,15-26

그때에 예수님께서 벙어리 마귀를 쫓아내셨는데, 군중 15 가운데 몇 사람은, “저자는 마귀 우두머리 베엘제불의 힘을 빌려 마귀들을 쫓아낸다.” 하고 말하였다. 16 다른 사람들은 예수님을 시험하느라고, 하늘에서 내려오는 표징을 그분께 요구하기도 하였다.
17 예수님께서는 그들의 생각을 아시고 이렇게 말씀하셨다.
“어느 나라든지 서로 갈라서면 망하고 집들도 무너진다. 18 사탄도 서로 갈라서면 그의 나라가 어떻게 버티어 내겠느냐? 그런데도 너희는 내가 베엘제불의 힘을 빌려 마귀들을 쫓아낸다고 말한다.
19 내가 만일 베엘제불의 힘을 빌려 마귀들을 쫓아낸다면, 너희의 아들들은 누구의 힘을 빌려 마귀들을 쫓아낸다는 말이냐? 그러니 바로 그들이 너희의 재판관이 될 것이다. 20 그러나 내가 하느님의 손가락으로 마귀들을 쫓아내는 것이면, 하느님의 나라가 이미 너희에게 와 있는 것이다.
21 힘센 자가 완전히 무장하고 자기 저택을 지키면 그의 재산은 안전하다. 22 그러나 더 힘센 자가 덤벼들어 그를 이기면, 그자는 그가 의지하던 무장을 빼앗고 저희끼리 전리품을 나눈다.
23 내 편에 서지 않는 자는 나를 반대하는 자고, 나와 함께 모아들이지 않는 자는 흩어 버리는 자다.
24 더러운 영이 사람에게서 나가면, 쉴 데를 찾아 물 없는 곳을 돌아다니지만 찾지 못한다. 그때에 그는 ‘내가 나온 집으로 돌아가야지.’ 하고 말한다.
25 그러고는 가서 그 집이 말끔히 치워지고 정돈되어 있는 것을 보게 된다. 26 그러면 다시 나와, 자기보다 더 악한 영 일곱을 데리고 그 집에 들어가 자리를 잡는다. 그리하여 그 사람의 끝이 처음보다 더 나빠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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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에는 운전하면서 거의 모든 분들이 교통 안내를 해 주는 내비게이션을 이용하십니다. 굳이 지도를 찾아볼 필요도 없고, 더군다나 위험한 구간을 친절히 안내까지 해주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이 내비게이션이 점점 업그레이드되면서 이제는 일일이 목적지를 다 적을 필요가 없습니다. 그냥 한글 자음만 쳐도 목적지를 찾아줍니다.

어떤 형제님께서 경기도 가평에 있는 ‘유명산’ 근처 캠핑장에 모임이 있었다고 합니다. 그래서 내비게이션에 ‘ㅇㅁㅅ’이라고 입력했고 안내에 따라 운전을 했습니다. 그런데 조금 이상한 길로 가는 것 같더랍니다. 그래도 ‘나보다는 내비게이션이 믿을 만하겠지.’라는 생각으로 그대로 쫓아갔습니다. 약속 시간이 점점 가까워지는데 유명산에 가까워지지 않아서 속도를 더 냈습니다. 결국 형제님께서는 깜짝 놀랄 일을 경험했습니다. 글쎄 도착한 곳은 경기도 가평의 유명산이 아니라, 경기도 양평의 용문산이었습니다. 자음만 입력했던 ‘ㅇㅁㅅ’은 유명산뿐 아니라, 용문산에도 해당되는 것이었지요.

목적지를 제대로 입력하지 않았기 때문에 일어난 사건이었습니다. 그리고 목적지가 제대로 되지 않았기 때문에, 속도를 내면 낼수록 원래 가려는 목적지와는 더 멀어질 수밖에 없었습니다.

이 이야기를 들으면서 우리의 삶도 이렇지 않을까 싶습니다. 즉, 우리의 목표를 제대로 알지 못한다면 엉뚱한 길로 갈 수 있으며, 바쁘게 속도를 내면서 살면 살수록 더욱 더 원래 가려는 목표와는 다른 곳으로 나아가서 더 멀어질 수밖에 없다는 것이지요.

우리 삶의 목표는 하느님 나라입니다. 그래서 주님을 바라보며 살아야 하며, 주님의 뜻에 맞게 살아가야 목표를 향해 제대로 나아갈 수 있습니다. 그러나 하느님 나라를 목표라고 하면서도 다른 곳을 바라보고, 주님의 뜻이 아닌 다른 것을 더 중요하게 생각합니다.

오늘 복음에서 군중 몇 사람이 예수님께서 마귀 우두머리 베엘제불의 힘을 빌려서 마귀를 쫓아낸다고 말합니다. 예수님을 제대로 알아보지 못하는 것이지요. 왜냐하면 주님의 뜻보다는 자신의 뜻이 더 위에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그토록 하느님 나라의 신비를 가르쳐줘도 계속해서 하늘에서 내려오는 표징을 보여 달라고 청했던 것이지요.

주님이 아닌 내가 중심이 될 때에 우리는 주님의 편에 설 수 없게 되어 주님을 반대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리고 주님의 뜻보다는 세상의 뜻을 더 윗자리에 두게 됩니다. 그래서 우리의 목표인 하느님 나라에 더욱 더 멀어지게 됩니다.

다시금 나의 목표를 점검해야 할 때입니다. 지금이라도 제대로 목표를 잡고 나아가야 가장 빨리 원하는 곳으로 갈 수 있기 때문입니다.

지금 내 목표는 어디에 있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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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모두 특별하며, 때문에 목표와 포부도 다르다. 똑같은 지문을 가진 사람이 없듯 우리가 세상에 남길 지문도 다르다. 누구도 대신 인생 횡단 지도를 그려 줄 순 없다(에릭 J.아론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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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을 대신 이루어 준 어머니

1994년 10월 21일, 성수대교가 붕괴되는 깜짝 놀랄만한 사건이 있었습니다. 이때의 사건으로 고인이 되신 이승영 자매의 사연이 너무 감동적이어서 함께 나누고자 합니다.

당시 서울교대 국어교육과 3학년에 재학 중이었는데, 강북에 있는 초등학교에 교생 실습을 나가고 있었지요. 출근 닷새만이던 그날 아침도 버스를 타고 출근하는 길이었습니다.

사실 그 일이 있기 11개월 전, 군인이던 아버지가 과로사로 돌아가셨습니다. 남편과 딸을 거의 동시에 잃은 어머니. 누가 그 슬픔을 어찌 안다고 할 수 있을까요.

사고 직후 어머니는 딸의 유품을 챙기다가 일기장을 열어보게 되었습니다. 그 속에서 발견한 것이 '내가 일생동안 하고 싶은 일'이란 구절 밑에 빽빽하게 적힌 '14가지 소원'이었습니다.

장학금을 만든다.
이동도서관을 강원도에 만든다.
복지마을을 만든다.
한 명 이상을 입양한다.
시각장애인을 위해 무언가를 한다.
장기를 기증한다.
신앙소설을 쓴다.
 ........

그때부터 어머니는 딸의 소원을 이루어주기 위한 삶을 살기 시작했습니다.

어머니는 딸이 입버릇처럼 말하던 "죽으면 장기를 남에게 주겠다"는 약속을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장기 기증을 위한 시한인 6시간을 이미 넘긴 뒤여서 고려대 의과대학에 시신을 해부 실습용으로 기증했습니다.

손에 쥔 보상금 2억 5천 만원 전액을 남서울 교회에 장학금으로 기부해 '승영 장학회'를 만들었습니다. 형편이 어려운 신학대학원생 50여명이 목숨과 바꾼 장학금을 받았습니다. 장학금을 받은 사람들 중에는 본인이 청각장애인이면서 같은 처지의 장애인을 모아 공동체를 꾸리는 사람이 있습니다. 암을 이겨낸 뒤 말기 환자 병동에서 기타로 음악을 들려주는 사람도 있습니다. 또 65세 이상 노인 11명을 모아 '작은손길 공동체'를 만들어 함께 생활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이동도서관'의 꿈은 군인 아버지를 따라 강원도 전방 부대를 다닌 어린 시절 기억이 만든 소원이었는데, '승영장학회'에세 이동도서관 차량 무쏘를 기증함으로 이루어졌습니다.

신앙소설을 쓴다는 꿈은 어머니가 승영양의 초등학교 시절에 쓴 시를 묶어 '연기는 하늘로'란 제목으로 출간함으로 이루어졌습니다.

시각장애인을 위해 무언가 한다는 꿈은 점자책 보급을 시작하면서 조만간 이루어지게 됩니다.

한 명 이상의 아이를 입양한다는 꿈은 올해 초 결혼한 동생이 실천하겠다고 약속한 상태고요.

딸의 소원 실현을 위해 사는 어머니는 교회 근처 연립 8평 원룸에 살면서 호스피스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찾아간 기자에게 "나는 한 일이 없기 때문에 해줄 말이 없다.... 세상에 사랑이 이어지고 있으니 우리 딸, 아직 살아있는 것 아니냐"는 말만 남기고 더 이상의 질문도, 사진 촬영도 응하지 않으셨습니다.
 
- 인천교구 성소국장 조명연 마태오 신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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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수원] 요셉 신부님의 매일 복음 묵상 -
내가 더 주었다고 믿는 것이 율법주의

2014년 가해 10월10일 연중 제27주간 금요일

< 내가 하느님의 손가락으로 마귀들을 쫓아내는 것이면, 하느님의 나라가
 이미 너희에게 와 있는 것이다. >
복음: 루카 11,15-26

< 내가 더 주었다고 믿는 것이 율법주의 >

한나라 5대왕 무제는 귀천을 따지지 않고 인재를 등용하였다고 합니다. 그 중에서 주매진이란 사람이 있는데 그는 집이 가난하여 나무를 베어 팔던 사람이었습니다. 주매진은 나무를 하면서도 글 읽기를 좋아하여 길을 가면서도 글을 읽었다고 합니다.

그러나 남편의 무능력함을 못마땅하게 여기는 아내는 함께 나무를 이고 가면서 남편을 책망했습니다.

“천한 나무꾼의 신세로 길에서 글을 읽고 다니면 남들이 미친 사람이라고 비웃으니 제발 그만 좀 하시죠.”

그러나 주매진은 들은 척도 않고 더욱 높은 소리로 읽으니 아내가 더 이상 못 참겠다며 남편을 떠나려했습니다. 반면 남편은 웃으면서 50만 되면 크게 성공할 테니 몇 년 만 참으로 될 것이라고 타일렀습니다. 그러나 아내는 이러다가는 굶어죽기 딱 알맞다며 욕을 하고 집을 나가버렸습니다.

주매진은 여전히 나무를 팔면서 다니다가 그 해 인부로 뽑혀서 수도성에 들어가게 되었고, 좋은 기회가 생겨 임금에게 글을 지어 바쳤습니다. 임금은 그의 글 솜씨를 보고는 바로 주매진의 고향 군수로 임명하였습니다.

그가 말 탄 경호무사들과 백여 대의 수행마차를 거느리고 네 마리의 말이 끄는 마차에 타고 고향으로 입성하니 사람들은 다 그 귀공자가 누구인지 모려고 모여들었습니다. 새 군수의 높은 관모를 쓰고 비단 관복을 입은 위엄은 당당하였습니다.

그런데 사람들이 얼마 전까지 나무 짐을 지고 다니던 주매진이 새 군수가 되었음을 보고는 모두 깜짝 놀라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주매진을 버린 여인도 새 남편과 함께 길을 쓸러 나왔다가 그를 보고는 부끄러워 도망쳐버렸습니다. 아닌가? 모든 동네 사람들이 깜짝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주매진을 버린 여인은 남편과 같이 길을 닦으러 나왔다가 그 광경을 보고 부끄러워 도망치고 말았습니다. 이것을 안 주매진은 그 부부를 정중히 모시고 태수관사의 정원 끝에 살게 하였습니다. 그러나 한 달이 지난 어느 날 그 아내는 부끄러움을 이기지 못하고 목매어 죽었다고 합니다.

우리가 남을 못마땅하다고 여기는 이면에는 자신이 손해보고 있다는 생각이 강합니다. 자신이 이만큼이나 하는데 그것에 합당한 몫을 상대고 못해주고 있다고 믿을 때 서운해 하고 화를 내고 미워하기까지 합니다.

이런 사람들이 율법주의자의 모습을 그대로 지니고 있습니다. 율법주의자란 자신이 하는 일이 곧 자기 자신의 위치를 말해준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자신보다 열심히 살지 못하는 이들은 자신보다 못하다고 판단하는 것입니다.

율법주의는 옛 계약, 즉 구약에서 비롯되었습니다. 하느님께서 내려주신 율법을 잘 지키면 하느님께서 계약의 백성을 당신의 백성으로 삼아주시겠다는 약속이 구약입니다. 그러나 구약은 폐지될 수밖에 없었는데 어떤 누구도 주님의 계명을 온전히 지킬 수 없었기 때문입니다. 결코 행위로는 하느님 앞에서 합당한 사람이 될 수 없음을 깨달으라고 그 오랜 시간 준비시키신 것입니다. 그리고는 새로운 계약, 즉 신약의 시대가 오는데, 행위가 아니라 예수, 즉 구원하시는 분을 믿음으로 받아들임으로써만 의롭게 될 수 있게 된다는 것이 신약입니다. 즉 그리스도를 내 안에 품음으로써 내 존재가 변화되어 구원되는 것이 신약인 것입니다. 이 신약을 위해 우리가 해야 하는 단 하나의 행위는 믿음으로 받아들이는 것뿐입니다. 내 행위가 아니라 그리스도의 희생으로써 구원이 이루어지기에 사실 구원을 위해서는 다른 부수적인 행위들은 불필요하다고까지 말할 수 있습니다.

구약의 특징은 “내가 이러저러한 계명을 지키고 공을 세웠으니 합당한 보상을 주세요”라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무언가를 했다고 생각하여 그에 합당한 보상을 바라는 것은 그리스도의 희생공로를 감소시키며 무의미하게 만듭니다.

바오로가 걱정하는 것은 신약을 받아들인 이들이 다시 구약으로 되돌아가려고 하기 때문인 것입니다. 구약으로는 구원이 불가합니다. 나의 행위가 구원을 살 수는 없는 일입니다. 그런데도 우리는 내가 하니까 다른 사람이 하지 않는 것을 비판하기까지 합니다. 율법주의자나 바리사이는 그렇게 다른 사람을 판단하며 그 행위로 인정받으려고 하는 사람들입니다. 신약을 사는 이들의 특징은 ‘감사’입니다. 나의 행위나 공로가 아니라 오로지 그리스도의 희생으로 구원받았기에 어찌 감사하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그 마음만 있으면 다른 사람들을 판단할 수도 없고 항상 기쁘고 감사하여 결코 구약으로는 되돌아가지 않게 될 것입니다.

요셉 신부님 미니홈피: http://minihp.cyworld.com/30joseph  

- 수원 교구 복음화국 부국장 전삼용 요셉 신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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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울] 하늘이 공감해야 되지요.
 
2014년 가해 10월10일 연중 제27주간 금요일

<내가 하느님의 손가락으로 마귀들을 쫓아내는 것이면, 하느님의 나라가
 이미 너희에게 와 있는 것이다.>
 + 루카 11,15-26

하늘이 공감해야 되지요.

합동 공동 단체를 이루며 사는 방법이 안전하다고 생각들 합니다.
물론 맞습니다. 그러나 잘못 발을 들여놓으면 인생을 망칠 수 있지요.
둘만의 사랑이란 힘, 재물, 정치, 권력, 욕심 등이 끌리는 힘이지요.

실은 그게 다 아닙니다. 지적 심적인 차원으로 정의 진리가 있습니다.
죽어도 변함없이 통하는 힘이 바로 진리며 정의라는 것쯤 알 겁니다.
당대의 공통적 힘이 수용하고 후손이 긍정하며 하늘이 공감해야 되지요.

“내 편에 서지 않는 자는 나를 반대하는 자고,
나와 함께 모아들이지 않는 자는 흩어 버리는 자다.(루카 11,23)”

- 서울 대교구 이기정 사도요한 신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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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타] 모두가 죄인입니다.

소나무 신부와 함께 하는 마음의 산책

'선과 정의를 믿습니다. 그리고 참된 평화를 희망합니다.'

2014년 가해 10월10일 연중 제27주간 금요일 복음묵상

“사람들은 예수님을 시험하느라고, 하늘에서 내려오는 표징을 그분께 요구하기도 하였다.”(루카11,16)
 ---
부둣가에 매달린 노란 넋들이 파도와 함께 한 맺힌 춤사위를 흔들어댄 지 오래입니다.
나흘 모자라는 반년. 그 무심한 파도와 바람.
속절없는 안타까움과 횅한 시간만이 갈 길을 재촉합니다.

황망한 마음과 간절한 소망을 담고, 갖은 마음들이 그리도 서럽게 울음을 토해냈지만,
하늘이 입을 닫고 있는 것인지,
푸른 기와를 중심으로 모인 추한 몰골들이 하나되어 하늘을 막고 있는 것인지,
우는 마음들이 이내 가슴을 찢다 고개를 떨굽니다.

손바닥으로 하늘을 가릴 수 있다고 믿는 천치들이 있습니다.
질기고 억센 쇠심줄같이 독한 역사. 그것이 우리 민족이 견디어낸 삶입니다.
짓밟힌 이들의 마음은 한을 만들어냈고,
그 한은 끝내 누구도 막을 수 없는 하나의 힘이 된 과거를 만들었습니다.
그리고 그 과거는 오늘도 살아있습니다.

추한 영혼들은 기억해야 합니다.
움켜쥐고 있는 오늘이 자신들의 미래를 죽이고 무덤을 만들 것이라는 것을.

모두가 죄인입니다. 우리가 허락한 세상이 빼앗아간 아들이요, 딸들입니다.
마음이 병들었는데 무엇을 볼 수 있고, 무엇을 들을 수 있었겠습니까?

추슬러야 합니다. 허상에 반은 벗겨져버린 마음을 다시 추슬러야 합니다.
그리고 희망해야 합니다. 눈물로라도 다짐하고 희망해야 합니다.
내 비록 너를 가슴에 묻었지만,
더 이상은 똑같은 죄인이 되지 않겠노라고 외쳐야 합니다.

추악한 욕망.
온갖 종류의 파괴.
더 이상은 안 됩니다.

선과 정의를 믿습니다.
그리고 참된 평화를 희망합니다.
이것이 하느님을 믿는 이유입니다.

(세월호 침몰 178일째 아침을 맞이하며)
 
- 사이타마 교구 오타(太田)본당 주임 김 대열 프란치스코 사베리오 신부

https://www.facebook.com/WithfatherPinetree

소나무 신부와 함께 하는 마음의 산책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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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울] 연중 제27주간 금요일
 
2014년 가해 10월10일 연중 제27주간 금요일

<내가 하느님의 손가락으로 마귀들을 쫓아내는 것이면, 하느님의 나라가
 이미 너희에게 와 있는 것이다.>
 + 루카 11,15-26
 
자전거를 배울 때입니다. 자전거는 서 있을 때보다는 움직일 때 균형을 더 쉽게 잡을 수 있었습니다. 겁이 나서 페달을 밟지 않으면 쓰러지곤 했습니다. 하지만 용기를 내서 페달을 힘차게 밟으면 균형도 잡히고, 시원한 바람을 느끼며 달릴 수 있었습니다.

물리학에서는 ‘엔트로피 법칙’을 이야기 합니다. 모든 자연의 물질들은 무질서로 돌아가려 한다는 말입니다. 지구상에 인류가 어느 날 사라지면 인류가 만들었던 모든 흔적들이 10,000년 후에는 사라지고 만다고 합니다. 생명이 있는 모든 것들도 언젠가는 죽어 사라지기 마련입니다. 불가에서는 이를 ‘제행무상’이라고 합니다. 이것에서 벗어나는 길이 ‘사성제’라고 합니다. 모든 고통은 집착에서 나오고, 그 집착에서 벗어나면 도에 이른다고 합니다. 이것이 바로 깨달음의 경지입니다.

예수님께서도 ‘엔트로피 법칙’을 말씀하십니다. 우리는 기도하지 않으면, 하느님과 함께 하지 않으면 무질서한 삶을 살게 된다고 하십니다. 아무리 잘 지은 집도 3년만 사람이 돌보지 않으면 먼지가 쌓이고, 무너지곤 합니다. 집 앞의 텃밭도 한해만 돌보지 않으면 잡초가 무성하기 마련입니다. 그래서 제자들에게 말씀하셨습니다. ‘나는 포도나무요, 여러분은 가지입니다.’ 가지가 나무에 붙어있지 않으면 말라 버린다고 하셨습니다. 그리고 ‘나는 착한 목자라고 하셨습니다. 양들은 목자와 함께 있어야 안전하다고 하셨습니다.’

아는 자매님께서 손가락이 골절되셨습니다. 한 달 정도 깁스를 하셨는데 손가락이 굳어서 잘 움직이지 않았다고 합니다. 한동안 물리치료를 받고 나서야 손가락을 편하게 움직일 수 있게 되었다고 합니다. 운동선수들도 한 달만 운동을 쉬면 몸이 굳는다고 합니다. 그래서 제 기량을 발휘할 수 없다고 합니다.

악한 세력은 힘들고 어려운 일 속에서도 우리를 넘어트리지만, 즐겁고 기쁜 일을 통해서도 우리를 하느님과 멀어지게 합니다. 힘들고 어려운 일일지라도 흔들리지 않는 믿음이 중요합니다. 기쁘고 즐거운 일일지라도 교만하지 않고 겸손하게 받아들이는 믿음이 중요합니다. 결국 우리에게 주어지는 일들이 우리를 구원에로 이끄는 것은 아닙니다. 율법이 우리를 구원에로 이끄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에게 주어지는 일들 속에서 드러나는 하느님의 뜻을 찾고, 하느님의 영광이 드러날 수 있도록 살아가는 우리들의 믿음이 우리를 구원에로 이끄는 것입니다.
 
- 서울 대 교구 성소국장 조재형 가브리엘 신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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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수도회] '텅 빈 충만'의 하느님 나라 -
2014년 가해 10월10일 연중 제27주간 금요일,
이수철 프란치스코 성 요셉 수도원 신부님


 (십자성호를 그으며)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2014년 가해 1010일 연중 제27주간 금요일, 갈라3,7-14 루카11,15-26

<내가 하느님의 손가락으로 마귀들을 쫓아내는 것이면, 하느님의 나라가
 이미 너희에게 와 있는 것이다.>
 + 루카 11,15-26                            

'텅 빈 충만'의 하느님 나라

"신부님, 끝없는 순례를 하시다가 조금은 허전하실 것같아요."
저를 아끼시는 분의 우려섞인 카톡 메시지입니다.

답을 한다면 전혀 허전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마음의 고요와 평화를 느낍니다.

하느님의 집에 돌아온듯 텅 빈 충만의 행복입니다.
그저 당분간은 이대로 머물고 싶습니다.

"아닙니다. 지금은 그냥 쉬고 싶습니다. 미안하고 고맙습니다. 고마움은 늘 잊지 않고 있습니다."
진정성 가득한 어느 분의 초대도 겸손히 사양했습니다.

하느님의 나라는 저 멀리, 밖에 있는 것이 아니라, 죽어서 누리는 사후 세계의 행복이 아니라,
지금 여기서 누리는 텅 빈 충만, 행복의 현실입니다.
텅 빈 허무가 아닌 텅 빈 충만입니다.

이런 믿음의 사람들에게 삶은 고해가 아니라 축제입니다.

똑같은 현실이라도 믿음의 유무에 따라 천국 혹은 지옥입니다.
믿음 있어 하느님 태양을 향하면 빛의 천국이지만, 믿음 없어 하느님 태양을 등지면 어둠의 지옥입니다.

외적순례가 지향하는바 내적순례요 지금 여기서 하느님을 향해 하느님의 나라를 사는 것입니다.
오늘 복음이 바로 그 좋은 실례입니다.

"그러나 내가 하느님의 손가락으로 마귀들을 쫓아내는 것이면,
하느님의 나라가 이미 너희에게 와 있는 것이다."

마귀의 우두머리 베엘제불의 힘을 빌려 마귀들을 쫓아낸다고
 딴죽을 거는 이들이 어둠속에 머무는 것과는 반대로
 하느님의 빛 속에 머물어 텅 빈 충만의 하느님 나라를 살고 계신 주님이십니다.

믿음 충만, 사랑 충만의 하느님 나라입니다. 바로 바오로의 말씀대로
 믿음으로 사는 이들이 아브라함의 자손이요 지금 여기서 하느님 나라를 사는 이들입니다.

'모든 민족들이 네 안에서 복을 받을 것이다.'라는 말씀대로
 믿음으로 사는 이들만이 아브라함과 함께 복을 받아 텅 빈 충만의 행복을 삽니다.

의로운 이는 믿음으로 삽니다. 아브라함에게 약속된 복은, 약속된 성령은
 그리스도 예수님 안에서 믿음으로 받습니다.

바로 이 거룩한 미사은총입니다. 이래야 악한 영의 공격을 받지 않습니다.

믿음 부재의 텅빈 허무는 악령의 놀이터가 됩니다.
오늘 복음의 후반부가 그 생생한 증거입니다.

'그 집이 말끔히 치워지고 정돈되어 있는 것을 보게 된다.
그러면 다시 나와, 자기보다 더 악한 영 일곱을 데리고 그 집에 들어가 자리를 잡는다.
그리하여 그 사람의 끝이 처음보다 더 나빠진다.'

믿음으로 텅 빈 충만의 하느님 나라를 살아야 악령의 공격을 받지 않습니다.
그러니 악령에게 허무의 여지를 남겨주지 않는 것이 지혜입니다.

주님은 매일의 이 거룩한 미사를 통해 우리 모두에게 성령을 선사하시어 텅
 빈 충만의 하느님 나라를 살게 하십니다.

아멘.
 
- 이수철 프란치스코 성요셉 수도원 신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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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청주] 마귀를 물리치는 길|반신부의 복음 묵상
 
2014년 가해 10월10일 연중 제27주간 금요일(루카11,15-26)

<내가 하느님의 손가락으로 마귀들을 쫓아내는 것이면, 하느님의 나라가 이미 너희에게 와 있는 것이다.>
 + 루카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11,15-26

마귀를 물리치는 길

마귀라는 말은 ‘중상자’, ‘고자질쟁이’ 라는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마귀는 하느님에 대적하는 이 세상의 왕 또는 악한 세력입니다(루카4,6. 2고린4,4). 그래서 하느님을 사칭하고(2테살2,4) 하느님 일에 반대하며(마태16,23), 악인을 조종(에페2,2)합니다. 인간을 모함(욥기1,9-11)할뿐 아니라 유혹(2코린11,3)하고 심지어 예수님을 유혹(루카4,5-7)했습니다.

오늘 복음을 보면 예수님께서는 벙어리 마귀를 좆아 내셨는데 그에 대한 반응이 다양합니다. 어떤 사람은 “저 자는 마귀 우두머리 베엘제불의 힘을 빌려 마귀를 쫓아낸다.”고 했고 예수님을 시험하느라 “하늘에서 내려오는 표징을 요구하기도 하였습니다.” 군중의 반응은 이렇게 좋지 않았습니다. 예수님은 좋은 일을 하고도 뺨 맞는 격입니다. 바로 이러한 태도를 보이는 것이 마귀의 속성입니다. 마귀는 선한 것 안에서도 악한 것을 고의적으로 만들어 냅니다. 그러나 주님께서는 악한 것 안에서도 선을 이끌어 내십니다.

예수님께서는 하느님의 손가락으로 마귀들을 쫓아냈습니다. 그리고 하느님의 권능으로 마귀를 쫓아내는 자리가 바로 하느님의 나라입니다. 시기와 질투, 중상, 모략, 미움, 분노, 적개심의 마음을 버리고 하느님의 능력으로 사는 상태는 이미 천국입니다. 우리가 하루에 한번 만이라도 천국을 생각하면 이 지상의 집착과 애정이 얼마나 덧없는 것인지를 알게 될 터인데 그렇지 못함이 안타깝습니다. 천국의 문은 이미 지상에서 열리기 시작한다는 것을 인식해야 하겠습니다.

예수님께서는 광야에서 40일 동안 악마에게 유혹을 받으셨습니다. 그러나 말씀으로(루카4,1-14) 물리치셨습니다. 또한 마태복음12장 28절에는 “성령의 힘으로 마귀를 쫓아내고 있다”고 하셨습니다. 바오로 사도는 “화나는 일이 있더라도 죄를 짓지 마십시오. 해질 때가지 화를 풀지 않으면 안됩니다. 악마에게 발붙일 기회를 주지 마십시오”(에페4,26-27)…... “속임수를 쓰는 악마에 대항할 수 있도록 하느님께서 주시는 무기로 완전히 무장 하십시오”(에페6,1)하고 권고합니다. 묵시록에서는 “우리 형제들은 어린 양이 흘린 피와 자기들이 증언한 진리의 힘으로 그 악마를 이겨냈다. 그들은 목숨을 아끼지 않고 죽기까지 싸웠다”(묵시12,11)고 말합니다. 결국 마귀를 물리치는 길은 말씀과 성령 안에 사는 것입니다.

우리가 살아가면서 다른 사람에게 힘과 위로가 되고 너그럽고 자비롭게 대하며 살고 있다면 그를 천사라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다른 사람을 미워하고 흉보며 헐뜯는 사람이 있다면 그는 분명 마귀에게 지배당하고 있는 사람입니다. 어둠의 세력에 휘둘리지 말고 여러분이 선을 선으로 볼 수 있고 악을 악으로 볼 수 있는 눈을 뜨길 희망하며 마귀를 물리치는 사람 되시길 빕니다. 사랑합니다.
 
- 청주교구 감곡 매괴 성모성당 반영억 라파엘 신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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