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례자

작성자 : 김 안나    작성일시 : 작성일2014-09-25 07:25:13    조회 : 369회    댓글: 0

◈ [수도회] 순례자 - 2014.9.24 연중 제25주간 수요일(순례36일차),
이수철 프란치스코 성 요셉 수도원 신부님 

(십자성호를 그으며)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2014년 가해 9월24일 연중 제25주간 수요일(순례36일차),
잠언30,5-9 루카9,1-6

<예수님께서는 하느님의 나라를 선포하고 병자들을 고쳐 주라고 제자들을
보내셨다.>
+ 루카 9,1-6                                                          

순례자

오늘은 순례36일차 입니다. 어제는 살리아에서 이곳 폴토마린까지 24km,
새벽 5:30분에 출발하여 길을 잘못들어 1시간 헤매다 6시간 30분후 12시에 도착했습니다.
날씨는 잔뜩 찌푸린 흐린 날씨였지만 비는 오지 않아 걷기 좋은 시골길이었습니다.

"꼭 군에 입대하여 훈련 받는 것 같습니다."

이냐시오 형제의 말에 공감했습니다.
군에서 작전 때마다 새벽 배낭을 싸던 기억이 새롭습니다.
36일동안 새벽마다 배낭을 싸 출전하듯 한 순례여정이었습니다.

햇볕 쨍쨍 내리쬐던 날, 지평선만 아득하던 끝없는 길을 걷다가
쇠똥냄새 편안한 한국같은 농촌 길을 걸으니 마음도 푸근해졌습니다.

참 아름다운 스페인 나라요 사람들입니다.
그대로 보존된 자연이요 역사요 사람들입니다.
쭉쭉 길을 걸으면서 '모든 것은 지나간다.'라는 생각도 들었고,
무수히 지나가는 순례자들이 스페인 사람들에게는 살아있는 신앙교육이 될 거라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대부분 만났던 스페인 사람들은 순박했고 친절했습니다.

"인생순례 여정의 마지막도 이와 같으라는 표지같습니다."

한창 젊은 때야 광야같은 세상이지만, 노년은 편안하고 아늑한 목가적인 환경을 선호할 것입니다.
역시 이냐시오 형제의 말에 공감했습니다.
최소한의 짐을 지고 순례하는 저희가 복음의 상황에도 근접해 있음을 깨닫습니다.

"신부님은 매일 강론을 올리니 복음 선포하는 예수님의 제자와 흡사합니다."

듣고보니, 당신 제자들을 짝지어 보낸 예수님의 복음 말씀이 생각났고,
이냐시오 형제와 내가 파견 받은 것처럼 생각되었습니다.
매일 강론을 홈페이지에 올려
수백명이 읽으며 함께 순례길에 동참한다면 이 또한 현대판 복음 선포임이 분명합니다.

"길을 떠날 때에 아무 것도 가져가지 마라. 지팡이도 여행보따리도 빵도 돈도 여벌옷도 지니지 마라."

오늘 복음의 예수님 말씀이 참 엄중합니다. 철저한 무소유의 삶입니다.
무소유의 텅 빈 삶에 가득한 주님의 권능입니다.

이 점에서 저희 순례자와는 확연히 구별됩니다.
우리는 지팡이(스틱)가, 여행보따리(배낭)가 있고 빵도 돈도 여벌 옷도 있습니다.
아마 예수님이 계시다면 저희 처지를 충분히 이해하실 것입니다.

예수님 당대에야 곳곳에 믿는 이들의 전적 환대를 기대할 수 있지만
우리에게는 이것이 불가능하기 때문입니다.
물론 알베르게의 환대로 저렴한 잠자리는 보장 받지만
그밖의 모든 것은 순례자가 해결해야 되기에 배낭도 호주머니도 두툼할 수뿐이 없습니다.
그러나 제가 본 여기 순례자들은 한결같이 가난했으며 모두가 순수했고 착했습니다.
대부분 슈퍼에서 음식물을 사다가 식사를 해결했고
저렴한 알베르게를 용케도 알아 몰려 들어 늘 만원이었습니다.

복음의 예수님 제자들은 이 마을, 저 마을 다니며 복음을 전하고 병을 고쳐주었다 합니다.
저는 가는 곳마다 머물 때 새벽에 이냐시오 형제와 미사를 드리며 강복을 청했고,
동시에 홈페이지에 강론을 올렸으니 복음 선포의 임무를 다했다는 자부심이 듭니다.

오늘 잠언의 기도가 순례여정중인 우리 모두에게 해당됩니다.

"주님, 저는 당신께 두 가지를 간청합니다.
제가 죽기 전에 그것을 이루어 주십시오.
허위와 거짓말을 제게서 멀리하여 주십시오.
저를 가난하게도 부유하게도 하지 마시고, 저에게 정해진 양식만 허락해 주십시오.
그러지 않으시면 제가 배부른 뒤에 불신자가 되어 '주님이 누구냐?'하고 말하게 될 것입니다.
아니면 가난하게 되어 도둑질하고, 저의 하느님의 이름을 더럽히게 될 것입니다."

믿는 누구에게나 전적으로 공감이 가는 기도입니다.
매일 주님은 이 거룩한 미사은총으로 우리의 욕심을 비워주시어
가난하게도, 부유하게도 하지 않으시고 가볍고 기쁜 마음으로 당신만 따라 살게 하십니다.

"주님, 저를 거짓의 길에서 멀리하시고, 자비로이 당신 가르침을 베푸소서."(시편119,29).

아멘.
 
- 이수철 프란치스코 성요셉 수도원 원장 신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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