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월22일 곱게 물들어가는 단풍을 볼 때처럼

작성자 : 김 안나    작성일시 : 작성일2014-09-22 07:10:03    조회 : 544회    댓글: 0

◈ [인천] 2014년 가해 9월22일 연중 제25주간 월요일
 
제1독서 잠언 3,27-34

내 아들아, 27 네가 할 수만 있다면, 도와야 할 이에게 선행을 거절하지 마라. 28 가진 것이 있으면서도 네 이웃에게, “갔다가 다시 오게, 내일 줄 테니.” 하지 마라.
29 이웃이 네 곁에서 안심하고 사는데, 그에게 해가 되는 악을 지어내지 마라. 30 너에게 악을 끼치지 않았으면, 어떤 사람하고도 공연히 다투지 마라. 31 포악한 사람을 부러워하지 말고, 그의 길은 어떤 것이든 선택하지 마라.
32 주님께서는 비뚤어진 자를 역겨워하시고, 올곧은 이들을 가까이하신다. 33 주님께서는 악인의 집에 저주를 내리시고, 의인이 사는 곳에는 복을 내리신다.
34 그분께서는 빈정대는 자들에게 빈정대시지만, 가련한 이들에게는 호의를 베푸신다.

복음 루카 8,16-18

그때에 예수님께서 군중에게 말씀하셨다.
16 “아무도 등불을 켜서 그릇으로 덮거나 침상 밑에 놓지 않는다. 등경 위에 놓아 들어오는 이들이 빛을 보게 한다.
17 숨겨진 것은 드러나고 감추어진 것은 알려져 훤히 나타나기 마련이다.
18 그러므로 너희는 어떻게 들어야 하는지 잘 헤아려라. 정녕 가진 자는 더 받고, 가진 것이 없는 자는 가진 줄로 여기는 것마저 빼앗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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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주에는 의정부 한마음 수련장에서 전국 군인신학생 피정이 있었습니다. 제가 피정지도를 맡으면서 피정 기간 동안 군인신학생들과 함께 했지요. 그런데 이 피정 기간 중에 제 강의만으로는 지루할 것 같아서, 외부 강사를 불러서 특별히 자신의 소명을 되돌아보고 스스로의 자신감을 키울 수 있는 강의를 하도록 했습니다. 저 역시 이 강의를 신학생들과 함께 들었는데, 큰 충격을 받게 되었습니다. 이 외부 강사를 한 5년 전부터 알고 지냈는데, 5년 전의 강의 내용과 비교할 때 훨씬 더 깊이가 있으며 내용도 너무나 풍요로운 것입니다. 그러면서 제 모습을 바라볼 수 있었지요. 저 역시 이곳저곳 강의를 다닌 지도 벌써 10년이 넘었는데, 저의 모습은 얼마나 성장했느냐는 것입니다.

솔직히 부끄러웠습니다. 강의 내용이야 계속 바뀐다고 하지만, 강의 스타일은 거의 변함이 없었으며 또한 변하기 위한 노력도 별로 기울이지 않은 저의 게으름을 보게 된 것이지요. 요즘 젊은 신학생들이 무엇을 원하는지, 어떤 것을 좋아하는지는 생각도 하지 않고 그저 제가 편한 대로 강의를 했던 것 같았습니다. 물론 강의 후에 몇몇 신학생들로부터 고맙다고, 잘 들었다는 말을 많이 듣기는 했지만 스스로에 대한 부끄러움에 그런 말이 잘 들리지 않더군요.

주님의 기쁜 소식은 과거에 단 1회적으로 주어진 것이 아닙니다. 과거에 이 땅에 오신 예수님께서 그 당시 사람들만을 위해 하신 말씀이 아닌, 2천년이 지난 오늘날에도 똑같이 살아있는 말씀으로 우리에게 전해지는 기쁜 소식인 것입니다. 즉, 이 세상 만민을 비추고, 진리의 빛으로 모든 이들을 밝혀주며, 모든 사람의 마음을 거룩함으로 가득 차게 하는 말씀인 것입니다. 따라서 주님의 말씀이 세상 곳곳 빠짐없이 환하게 비출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주님을 믿고 따르는 모든 이들의 역할인 것이지요.

그래서 주님께서는 오늘 복음 말씀을 통해 등경 위에 놓여 올려진 등불에 대한 이야기를 하시지요. 등경 위에 올려져야 등불을 통해 환하게 밝힐 수 있는 것처럼, 주님의 말씀이 환하게 밝혀질 수 있도록 우리 모두가 노력해야 한다고 하십니다. 그러나 그릇으로 덮거나, 침상 밑에 놓아서 환하게 밝히지 못하는 어리석은 모습을 간직하곤 합니다. 앞서 저의 모습처럼 안일한 생각과 태도로 주님의 기쁜 소식을 그릇으로 덮고, 침상 밑에 두고 있는 것입니다.

주님의 말씀이 세상 곳곳을 환하게 비출 수 있도록 노력하는 우리가 되어야 합니다. 안일한 마음, 게으른 모습 모두 걷어내고 대신 주님의 뜻에 더욱 더 충실한 우리가 될 수 있어야 할 것입니다.

이를 위해 우리가 해야 할 것들이 너무나도 많음을 깨닫게 됩니다. 할 수 있음에도 하지 않았던 나의 모습을 반성하면서 지금 당장 해야 할 일을 찾아보도록 합시다. 그러한 우리의 노력에 주님께서는 크게 기뻐하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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닫힌 마음에는 먼저 한 톨 들어갈 자리가 없지만 열린 마음에는 우주를 담고도 남는다(용혜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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팀 브라운 철학(‘좋은생각’ 중에서)

2008년 ‘아트 센터 디자인 콘퍼런스’에서 세계적인 디자인 기업 아이디오의 대표 팀 브라운이 청중에게 30초의 시간을 주고 자기 옆 사람을 그리게 했다. 사람들이 스케치를 하는 동안 키득거리는 웃음소리와 끙끙대는 소리, 미안하다는 말이 여기저기서 들려왔다.

5분 뒤, 브라운이 청중을 향해 말했다.

“어린이들은 똑같은 과제를 주어도 절대 부끄러워하지 않습니다. 아이들은 자기가 그린 걸작을 상대에게 자랑스럽게 보여 줍니다. 평가를 두려워하지 않기 때문이지요. 어른이 되면 타인을 의식하는 ‘자기 검열’이 생깁니다. 다른 사람의 시선을 의식하는 순간, 우리의 창의성은 잘려 나가고 맙니다. 시작, 판단, 실패의 두려움과 같은 자기 검열로부터 벗어나 과감하게 시도할 때 비로소 창조가 가능한 것이지요.”

그는 아이디오의 디자이너들에게 창의력의 출발점은 자신으로부터 행방되는 것이라며, 일단은 검열하기 전 마음껏 디자인해 보라고 권한다.

주님의 말씀을 전하는 것에 있어도 마찬가지 아닐까요? 부끄러워하지 말고, 자신 있게 그리고 과감하게 전하는 우리가 되어야 할 것입니다. 
 
- 인천교구 성소국장 조명연 마태오 신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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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수원] 요셉 신부님의 매일 복음 묵상 - 지혜는 행복을 볼 수 있는 눈

2014년 가해 9월22일 연중 제25주간 월요일

<등불은 등경 위에 놓아 들어오는 이들이 빛을 보게 한다.>
+ 루카 8,16-18

<지혜는 행복을 볼 수 있는 눈>

올 해 여름에 개봉했던 하정우, 강동원 주연의 영화 ‘군도, 민란의 시대’에서 사실 매우 두각을 나타냈던 캐릭터는 백정에서 민란의 주동자가 된 하정우보다는, 악역을 맡았던 강동원이 아니었나 싶습니다.

강동원은 부잣집 양반과 술집 기생 사이에서 태어난 서자입니다. 그 양반이 아들이 없어서 결국 기생에게서 난 아들을 자신이 데려와 키우게 됩니다. 그때까지만 해도 좋았습니다. 그런데 딸만 낳다가 나이가 들었던 본 부인이 결국 아들을 낳게 된 것입니다. 이제 어린이 강동원은 그 집에서 찬 밥 신세가 됩니다. 그 분노로 자신의 동생에게 해를 끼치려 하다가 발각되어 심한 매를 맞고 그것 때문에 자신의 어머니까지 연루되어 죽임을 당하게 됩니다.

강동원은 서자로서의 설움을 공부와 무예로써 승화하여 어린 나이에 무관의 공직에 오르게 됩니다. 그러나 그의 꿈은 공직생활을 하는 데 있지 않았습니다. 그는 빠른 머리로 자신의 동생을 죽이는데 성공하여 유일한 상속자의 자리를 차지합니다. 그리고는 그 고을 사또와 협력하여 빚을 진 사람들에게 땅을 담보로 곡식을 꾸어주어 나중에 그들의 땅을 다 빼앗고 그들을 노비로 끌어들이게 됩니다. 결국 그는 나주의 거의 모든 땅의 소유주가 되어 땅귀신이란 별명까지 얻게 됩니다.

그가 이렇게까지 한 것은 아버지의 인정을 받기 위해서였습니다. 그러나 아버지는 강동원이 자신의 적자를 살해했음을 알고 있었고 결코 강동원을 아들로 인정하려 하지 않습니다. 이에 분개한 강동원은 아버지까지 살해하게 됩니다. 그리고는 가난에 찌든 민심에 의해 비참한 죽임을 당하게 됩니다.

이 영화에서 강동원은 누구도 이길 수 없는 무예를 지니고 있었고 누구도 가지지 못한 지혜로 자신의 지역에 있는 모든 땅의 소유자가 되었지만 그의 삶은 결코 행복하지 못했고 끝은 더욱 불행했습니다. 세상 사람들은 돈을 모을 수 있는 이런 삶을 지혜 있다고도 말할 수 있겠습니다. 그러나 그의 지혜는 한 치 앞도 보지 못하는 세상의 지혜였습니다. 행복을 아버지로부터 인정을 받는 것과 세상의 재물로 여겼기 때문입니다. 머리가 좋다고 지혜가 아니고 참 행복의 길을 볼 수 있는 것이 지혜입니다.

잠언은 ‘참 지혜’에 대해 말하고 있습니다. 참 지혜란 ‘행복해지는 길’입니다. 행복해지는 길이란 ‘하느님께 인정받는 것’입니다. 하느님께 인정받으면 그분이 주시는 사랑으로 행복해지는 것입니다.

이 참 지혜는 세상의 지혜와 너무도 달라서 많은 이들은 세상의 지혜가 참 지혜라 착각하며 평생을 한 치 앞도 보지 못한 채 어둠 곳에서만 헤매다 끝을 맺게 됩니다.

오늘 독서 잠언에서 말하는 행복의 길은 ‘가진 것을 나누라’는 것입니다. 이웃에게 가진 것을 나누는 사람이 올곧은 사람이고 하느님은 그 올곧은 사람에게 복을 내리신다고 합니다.

할 일을 모두 끝낸 농부가 흔들의자에 느긋하게 앉은 채 저녁에 배달된 신문을 읽고 있었습니다. 신문을 읽던 농부의 시선이 한 곳에서 멈췄습니다. 그곳에는 새로운 옥수수 종자가 개발되었다는 기사가 실려 있었습니다. 농부는 다음날 날이 밝기가 무섭게 종묘 가게로 달려가서 그 씨앗을 구입했습니다. 씨앗을 밭에 뿌리고는 한 해 동안 정성을 다해서 재배했고, 결과는 대풍작이었습니다. 그것을 본 이웃의 농부가 찾아와서 새로운 옥수수 종자를 조금만 팔라고 사정했습니다. 그러나 농부는 경쟁력을 잃을까봐 한마디로 거절했습니다. 기회가 있을 때마다 이웃집 농부가 찾아와서 부탁을 했지만 대답은 달라지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다음해가 되어 수확을 하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어쩐 일인지 수확이 별로 좋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그 다음해에도 수확은 더욱 더 줄어들었습니다. 농부는 옥수수의 수확이 줄어드는 원인을 밝혀내려고 온갖 노력을 다 기울였습니다. 비싼 값을 치르고 구입한 종자가 한 해밖에 효과를 내지 못한 게 너무 억울했기 때문이었습니다. 수소문을 하던 농부는 결국 그 원인을 찾아냈습니다. 새로운 옥수수 종자는 이웃에 있는 옥수수 밭에서 바람을 타고 날아온 나쁜 옥수수 종자의 꽃가루 때문에 본래의 열등한 종자로 바뀌어 버렸던 것이었습니다.

그리스도께서 태생소경에게 눈을 만들어 주신 이유는 보라고 하시는 것입니다. 그 볼 수 있는 눈이 지혜입니다. 장님이 아니라면 남이 불행해지면 자신은 절대 행복할 수 없음을 볼 수 있어야합니다. 내가 행복해지기 위해 다른 사람을 행복하게 해야 하는 것이 지혜입니다. 창문과 거울의 차이점은 수은이 칠해져 있느냐 없느냐에 있습니다. 그 수은, 즉 나의 욕심이 나를 장님으로 만드는 것입니다. 나의 행복을 위해서라도 남을 행복하게 합시다. 남을 행복하게 하려면 나의 것을 나누어야만 합니다.
 
요셉 신부님 미니홈피: http://minihp.cyworld.com/30joseph
 
- 수원 교구 복음화국 부국장 전삼용 요셉 신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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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울] 속속들이 아실 겁니다.
 
2014년 가해 9월22일 연중 제25주간 월요일

<등불은 등경 위에 놓아 들어오는 이들이 빛을 보게 한다.>
+ 루카 8,16-18

속속들이 아실 겁니다.

‘낮 말은 새가 듣고 밤 말은 쥐가 듣는다.’는 격언에 때론 놀라기도 했습니다..
그래서 ‘남 몰래’라는 말로 ‘쥐도 새도 모르게’라고 말 하겠지요.
그래도 언젠가는 드러나게 되어 쥐구멍으로 들어가고 싶을 때도 있습니다.

사람들의 조건은 세상 물질조건이기에 쥐나 새 정도 피하려는 거겠지요.
시공을 초월한 상태가 영의 세계라니까 세상 물질조건에 매이진 않지요.
하늘의 힘님이신 하느님이나 영들은 당연히 우리를 속속들이 아실 겁니다.

“숨겨진 것은 드러나고 감추어진 것은 알려져 훤히 나타나기 마련이다.
(루카 8,17)”

- 서울 대교구 이기정 사도요한 신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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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청주] 하느님을 차지하라|반신부의 복음 묵상
 
2014년 가해 9월22일 연중 제25주간 월요일(루카8,16-18)

<등불은 등경 위에 놓아 들어오는 이들이 빛을 보게 한다.>
+ 루카 8,16-18

하느님을 차지하라.

신앙의 열매는 손발에서 맺어진다고 합니다. 하느님의 말씀을 듣고 들은 바를 가슴에 담고 가슴에 담은 것을 실행함으로써 비로소 열매가 맺어지기 때문입니다. 믿음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그 믿음을 고백하지 않고 생활화하지도 않으며 다른 사람에게 전하지 않는다면 그 믿음은 공허한 믿음이요, 죽은 믿음(야고 2,17)입니다.

“등불은 등경 위에 놓아 들어오는 이들이 빛을 보게 합니다”(루카8,16). 당연한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빛을 주는 하느님의 말씀을 받아들인 사람은 그 빛을 다른 사람에게 비춰야 하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믿는 이들에게 “너희는 세상의 빛이다…너희의 빛이 사람들 앞을 비추어, 그들이 너희의 착한 행실을 보고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를 찬양하게 하여라”(마태5,16).하고 말씀하셨습니다. 이미 받은 빛으로 다른 사람을 위해 희생으로 봉사하고 섬김으로써 하늘 아버지를 찬양해야 하겠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아직 믿음이 약하다고 고백합니다. 그러나 믿음을 성장시키기 위한 노력은 게을리 합니다. 기도를 하거나 성경을 읽고 미사참례를 하며 영적성장을 위해 정성을 기울이지 않으면서 주님의 은총을 희망하는 것이 얼마나 부끄러운 일인지 모릅니다. 사실, 복음의 지식을 생활화하고 다른 사람에게 전함으로써 오히려 지식과 믿음이 더욱 성장하게 됩니다. 그러나 구체적으로 실천하지 않고 살지 않으면 이미 받은 믿음의 은총도 시들해집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가진 자는 더 받고, 가진 것이 없는 자는 가진 줄로 여기는 것마저 빼앗길 것이다”(루카8,18). 하고 말씀하셨습니다. 간수하지 않으면 잃어버리는 것입니다. 많은 사람이 제대로 간수하지 않고 하느님께서 은총을 거두어가셨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하느님께서 한 번 주신 은총이나 선택의 은총은 다시 거두어가지 않습니다”(로마11,29). 다만 내가 잃어버릴 뿐입니다.

그러므로 “여러분은 여러분이 받은 은총의 선물이 무엇이든지 그것을 가지고 남을 위해 봉사하시기 바랍니다”(1베드4,10). “하느님께서는 질그릇 같은 우리 속에 당신의 보화를 담아 주셨고”(2고린4,7) 당신의 빛을 나를 통해서 드러내시길 원하십니다. 부디 우리의 관심사와 모든 행동이 주님을 담아내기를 기도합니다. 주님의 뜻을 헤아려 행동하면 할수록 더 견고한 믿음의 열매를 맺게 된다는 것을 기뻐하시기 바랍니다. 여러분은 등경 위의 등불이기 때문입니다.

세상에서는 채우면 채울수록 많아져 부자가 된듯하지만 하늘에서는 세상 것을 버려야 부유한 사람이 됩니다. 비워야 하느님으로 채워지게 됩니다. 그러니 세상 것을 움켜잡고 그것을 가진 줄로 여기고 있는 사람은 사실은 가진 것이 전혀 없을 수 있습니다. 배부르고 등 따뜻하면 근심걱정이 없고 하느님이 다 뭐냐? 하고 외면할 수 있습니다. 영적으로 빈곤한 사람입니다. 그러나 하느님께 마음을 둔 사람은 세상에서 비록 가진 것이 없어 보여도 아무 것도 부러울 것이 없는 사람입니다. 아우구스띠노 성인은 말합니다. “하늘과 땅에 있는 모든 것을 알되 하느님을 알지 못하는 사람은 불행하며, 이 모든 것을 모르나 하느님을 아는 사람은 참으로 행복합니다.”하느님을 차지하면 모든 것을 차지한 것입니다. 하느님을 소유해서 행복하시기 바랍니다. 사랑합니다.
 
- 청주 교구 감곡 매괘 성모 성당 반 영억 라파엘 신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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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수도회] 곱게 물들어가는 단풍을 볼 때처럼
 
2014년 가해 9월22일 연중 제25주간 월요일

<등불은 등경 위에 놓아 들어오는 이들이 빛을 보게 한다.>
+ 루카 8,16-18

곱게 물들어가는 단풍을 볼 때처럼

참으로 아름다운 모습을 볼 때가 있습니다. 곱게 물들어가는 단풍을 볼 때처럼 달릴 곳을 다 달린 선배 수도자들의 기도하는 모습에서입니다. 노화로 인한 소멸의 과정을 하느님 안에서, 신앙 안에서,기도 안에서 묵묵히 수용하고 견뎌나가는 모습에서 큰 감동을 받습니다.

후배들에게 그리고 자녀들에게 물려줄 수 있는 가장 큰 유산이 무엇일까 자주 생각해봅니다. 충분히 축척된 재산도 중요하겠습니다. 다양한 삶의 지혜도 필요하겠습니다. 건강한 몸과 마음도 빼놓을 수 없습니다.

그런데 더 중요한 것이 한 가지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반석 위에 지어진 집과 같은 ‘튼튼한 신앙’입니다. 돈이라는 것 마치도 손에 움켜쥔 물과도 같습니다. 한번 빠져나가기 시작하면 순식간입니다.다른 세상적인 것, 물질적인 것도 마찬가지입니다. 유통기한이 오래가지 않습니다. 얼마간 세월이 흐르면 우리 손을 떠나갑니다.

‘제대로 된’ 신앙이 좋은 이유는 너무나도 명료합니다. 나약한 인간이기에 언젠가 반드시 실패와 좌절을 체험합니다. 원치도 않았는데 삶은 우리를 바닥으로 내동댕이칩니다. 꽃다운 시절이 가고 어느새 급격한 내리막길을 걷게 됩니다.

그때 신앙을 가진 사람과 그렇지 못한 사람의 차이가 극명하게 드러납니다. 신앙을 가진 사람은 한 가지 특별한 희망을 지니고 살아갑니다. 이 세상이 지나가면 또 다른 세상이 있다는 희망 말입니다.그런데 우리를 기다리고 있는 또 다른 세상은 이 세상보다 훨씬 풍요롭고 아름다운 세상입니다. 사랑 자체이신 하느님과 함께 하는 불멸의 세상이요 영원한 생명이 보장되는 세상입니다. 그 희망으로 인해 신앙인들은 현실의 혹독함, 나 자신의 비참함을 이겨낼 수 있는 것입니다.

우리가 지녀야 할 신앙을 점검해볼 필요가 있습니다. 우리가 믿는 바가 우리 안에서 간직되고 있다면 그것은 반쪽짜리 신앙입니다. 참 신앙은 증거되는 신앙입니다. 성장하는 신앙입니다. 선포되는 신앙입니다. 생활화되는 신앙입니다. 이 신앙이 너무 좋아 가까운 이웃에게 자랑하고 권장하는 신앙입니다.

이토록 가치 있는 등불(예수 그리스도)인 우리의 신앙을 그릇으로 덮어놓거나 침상 밑에 감추어둬서는 안되겠습니다. 세상 사람들이 이토록 가치 있는 보물을 원 없이 바라보도록 등경 위에 올려놓아야겠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우리만이 꼭 움켜쥐고 있어야 할 대상이 절대로 아닙니다. 점점 더 커지셔야 할 하느님, 세상의 끝, 방방곡곡까지 알려지고 전해져야할 만민의 하느님이십니다.

나 홀로 마음으로만 신앙을 간직하고 있는 것은 부족합니다. 내 신앙을 당당하고 명백하게 세상 사람들 앞에서 고백하고 증거 할 줄 알아야 합니다. 신앙을 자꾸 감추는 사람은 그 신앙을 잃어버릴 위험이 큽니다. 반대로 자신의 신앙을 떳떳이 만천하에 드러내는 사람의 신앙은 무성한 나무처럼 날로 자라날 것입니다.

참 신앙은 두려움이 없습니다. 망설이거나 주저하지 않습니다. 풍성함과 부유함, 충만함과 부지런함, 활기와 생명력으로 넘칩니다.
 
- 살레시오회 한국관구 관구장 양승국 스테파노 신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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