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월13일 황금의 입

작성자 : 김 안나    작성일시 : 작성일2014-09-13 07:13:08    조회 : 473회    댓글: 0

◈ [인천] 2014년 가해 9월13일 성 요한 크리소스토모 주교 학자 기념일

제1독서 1코린 10,14-22

14 사랑하는 여러분, 우상 숭배를 멀리하십시오. 15 나는 여러분을 슬기로운 사람으로 여겨 말합니다. 내가 하는 말을 스스로 판단하십시오.
16 우리가 축복하는 그 축복의 잔은 그리스도의 피에 동참하는 것이 아닙니까? 우리가 떼는 빵은 그리스도의 몸에 동참하는 것이 아닙니까?
17 빵이 하나이므로 우리는 여럿일지라도 한 몸입니다. 우리 모두 한 빵을 함께 나누기 때문입니다. 18 저 이스라엘 백성을 보십시오. 희생 제물을 먹는 이들은 모두 제단에 동참하는 이들이 아닙니까?
19 그러니 내가 말하려는 것이 무엇이겠습니까? 우상에게 바쳤던 제물이 무엇이라도 된다는 말입니까? 우상이 무엇이라도 된다는 말입니까? 20 아닙니다. 사람들이 바치는 제물은 하느님이 아니라 마귀들에게 바치는 것이라는 말입니다. 나는 여러분이 마귀들과 상종하는 자가 되지 않기를 바랍니다.
21 여러분이 주님의 잔도 마시고 마귀들의 잔도 마실 수는 없습니다. 여러분이 주님의 식탁에도 참여하고 마귀들의 식탁에도 참여할 수는 없습니다. 22 우리가 주님을 질투하시게 하려는 것입니까? 우리가 주님보다 강하다는 말입니까?

복음 루카 6,43-49

그때에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말씀하셨다.
43 “좋은 나무는 나쁜 열매를 맺지 않는다. 또 나쁜 나무는 좋은 열매를 맺지 않는다. 44 나무는 모두 그 열매를 보면 안다. 가시나무에서 무화과를 따지 못하고 가시덤불에서 포도를 거두어들이지 못한다.
45 선한 사람은 마음의 선한 곳간에서 선한 것을 내놓고, 악한 자는 악한 곳간에서 악한 것을 내놓는다. 마음에서 넘치는 것을 입으로 말하는 법이다.
46 너희는 어찌하여 나를 ‘주님, 주님!’ 하고 부르면서, 내가 말하는 것은 실행하지 않느냐? 47 나에게 와서 내 말을 듣고 그것을 실행하는 이가 어떤 사람과 같은지 너희에게 보여 주겠다. 48 그는 땅을 깊이 파서 반석 위에 기초를 놓고 집을 짓는 사람과 같다. 홍수가 나서 강물이 집에 들이닥쳐도, 그 집은 잘 지어졌기 때문에 전혀 흔들리지 않는다.
49 그러나 내 말을 듣고도 실행하지 않는 자는, 기초도 없이 맨땅에 집을 지은 사람과 같다. 강물이 들이닥치자 그 집은 곧 무너져 버렸다. 그 집은 완전히 허물어져 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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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이 아닌 불행을 간절히 원하는 사람이 있을까요? 그렇지 않지요. 사람들은 모두가 행복을 간절히 원하고 있으며, 행복해지기 위해서 지금의 생활을 한다고 말을 합니다. 그런데 행복하기를 간절히 원하는데 솔직히 행복한 사람은 그리 많지 않은 것 같습니다. 하긴 얼마 전에 발표된 우리나라의 국민 행복도, 특히 직장인과 학생들의 행복도는 OECD 국가 중에서 최하위라고 하더군요. 그렇다면 우리나라에는 행복이 없는 것일까요?

몇 년 전, 저는 허리를 다쳐서 병원에 입원했던 적이 있습니다. 허리가 아프니 꼼짝 할 수 없었지요. 씻는 것뿐만 아니라, 화장실에 가는 것도 땀을 뻘뻘 흘리면서 노력을 해야 할 정도로 생활 자체가 너무나 힘들었습니다. 그때 이런 생각이 났습니다.

“아프지만 않으면 얼마나 행복할까?”

지금 현재 전혀 아프지 않습니다. 매일 매일 운동을 한 덕분에 누구보다도 튼튼한 몸을 가지고 있습니다. 따라서 저는 지금 행복하다고 말해야 합니다. 그런데 다른 문제들로 인해 ‘행복하다’고 말하지 못할 때가 많더라는 것이지요. 바쁘다고, 일이 많다고, 내 뜻대로 되지 않는다고, 사람들과의 관계가 힘들다고.... 이런 이유들을 붙여서 행복하지 못한 이유를 만들어가는 것 같습니다. 그러나 앞서 아프지 않는 것만으로도 행복할 수 있다고 스스로 말했던 것을 기억한다면 다른 이유와 조건들이 반드시 나의 행복을 가로막는 것은 아닙니다.

이런 차원에서 행복은 순간이 아닐까요? 그렇다면 행복은 내 삶 안에서 얼마든지 만들어 낼 수 있습니다. 그리고 언제든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나’라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는 것입니다.

주님께서도 우리들이 행복해지기를 원하십니다. 그래서 행복할 수 있는 많은 이유와 조건들을 보내주셨습니다. 특히 당신의 뜻에 맞게 살아갈 때 ‘참 행복’의 길로 갈 수 있음을 분명히 약속하셨지요. 그러나 우리의 모습은 그런 믿음을 갖지 못합니다. 그저 오늘 복음의 말씀처럼 ‘주님, 주님!’이라고 말할 뿐, 아무런 행동을 하지 않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자신의 말을 듣고 이를 실행하는 이는 땅을 깊이 파서 반석 위에 기초를 놓고 집을 짓는 사람과 같다고 하셨습니다. 이런 사람은 세상 사람들이 말하는 불행이라는 이유와 조건들을 맞이해도 끄떡하지 않을 것이라는 것이지요.

그에 반해서 주님의 말을 듣고도 실행하지 않는 사람은 아무런 기초 없이 맨땅에 집을 지은 사람과 같다고 합니다. 그래서 그들은 아주 자그마한 것도 불행의 이유와 조건이라고 하면서 스스로 무너지는 것입니다.

행복하기를 바라시는 주님의 사랑을 기억하면서, 내가 행복할 수 있는 이유와 조건들을 찾아보시길 바랍니다. ‘참 행복’의 길은 주님의 말씀 안에서 그리고 이 말씀의 실천을 통해서 분명히 얻을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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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지함을 두려워하지 마라. 엉터리 지식을 두려워하라(파스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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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통과 시련

프랑스의 와인은 질이 좋기로 유명합니다. 그런데 그 이유는 포도나무가 자라고 있는 자갈밭이기 때문이라고 하네요. 포도나무는 그 아래 지하수를 찾아 글쎄 뿌리를 13미터나 내린다고 합니다. 자갈과 모래로 이루어진 열악한 환경에서 물을 빨아 올려 겨우 익어 간 포도들은 가장 그윽한 향을 낸다는 것입니다. 즉, 척박한 땅에서 나는 포도일수록 맛있는 포도주를 만드는 것입니다.

배추도 그렇다고 하지요. 심은 뒤에 물을 안 주면 오히려 더 튼튼히 자란다고 합니다. 물이 없다는 것은 배추에게 위기가 될 수 있습니다. 이 위기에서 살아남기 위해 더 깊고 넓게 뿌리를 내리는 것입니다. 그래서 웬만한 바람에도 끄떡없는 단단한 뿌리를 갖게 되는 것입니다.

고통과 시련은 우리들에게도 다른 능력을 키워 줍니다. 나를 불행의 길로 인도하는 것이 아니라, 또 다른 행복의 길로 이끌어 줍니다. 그렇기 때문에 고통과 시련이 찾아와도 실망하지 말아야 합니다. 그 뒤에 있는 행복을 찾아야 합니다. 
 
- 인천교구 성소국장 조명연 마태오 신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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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청주] 황금의 입|반신부의 복음 묵상 
 
2014년 가해 9월13일 연중 23주간 토요일 (루카 6,43-49)
성 요한 크리소스토모 주교 학자 기념일

<너희는 어찌하여 나를 “주님, 주님!” 하고 부르면서, 내가 말하는 것은 실행하지 않느냐?>
+ 루카 6,43-49

황금의 입

오늘 기억하는 성인은 안티오키아에서 태어나( 349-407) 많은 설교와 저술로 그리스도인의 신앙생활을 격려하여 ‘황금의 입’ (크리소스토모, 금구)이라는 별칭을 얻었습니다. 성인은 “나는 그분의 보증을 가지고 있습니다. 나는 진정코 내 자신의 힘에 의지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분의 성경 말씀을 굳게 붙들고 있습니다. 이것이야말로 나의 지팡이요, 나의 보호이며 나의 잔잔한 항구입니다. ……나는 말씀을 읽고 있습니다. 그것은 내 성벽이요 보호체입니다. 어떤 말씀입니까? “내가 세상 끝 날까지 항상 너희와 함께 있으리라”는 말씀입니다…… ‘주여 당신의 뜻이 이루어지소서.’ 나의 뜻이 아니고 당신의 뜻이 이루어지소서. 이것은 나의 보루이고 이것은 나의 움직임이 없는 바위이며 이것은 나의 흔들림이 없는 지팡이 입니다. 하느님의 뜻이라면 그대로 이루어지소서”(성무일도독서기도). 하고 말씀하셨습니다. 성인은 성경의 말씀을 가슴에 새기고 계셨기에 황금의 입이 될 수밖에 없었습니다. 자기의 뜻이 아니라 주님의 뜻이 이루어지길 희망 하셨기에 주님께서 그를 통해 말씀하셨습니다. 그래서 그의 강론 말씀은 살아있고 힘이 있었습니다(히브4,12). 우리 모두에게 말씀 안에 머물 수 있는 은혜가 주어지기를 기도합니다.

말에서 마음이 나오는 것이 아니라 가슴에 품은 속마음이 말이 되어 나옵니다. 그리고 행동하게 됩니다. 마음에 담아둔 것은 언젠가 밖으로 나오게 마련입니다. 아무리 조심하고 마음을 닫아걸고 있어도 마음이 한번 흔들리면 속에 있는 모든 것이 쏟아져 나옵니다. 그러니 일상 안에서 마음을 잘 다스리지 못하면 낭패를 보기 십상입니다. 마음 안에 좋은 것을 담아야 좋은 것이 나오는 법입니다. 그러므로 거를 건 거르고, 삭힐 건 삭히고 담아야 하겠습니다.

율법학자들이나 바리사이들은 율법을 따르는 행동이 선한 행동이었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속마음보다 형식과 겉모양을 중시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사람의 행동은 그 사람의 내적 태도가 선할 때 선이 된다고 말씀하십니다. “선한 사람은 마음의 선한 곳에서 선한 것을 내놓고, 악한 자는 악한 곳간에서 악한 것을 내 놓는다. 마음에서 넘치는 것을 입으로 말하는 법이다”(루카6,45). 안에서 나오는 것은 곧 마음에서 나오는 것인데 불륜, 도둑질, 살인, 간음, 사기, 방탕, 중상, 교만, 어리석음…같은 여러 가지 악한 생각들인데 이런 악한 것들이 사람들을 더럽힌다(마르7,21이하).

그야말로 가시나무에서는 무화과를 따지 못하고 가시덤불에서 포도를 거두어들이지 못하는 법입니다(루가6,44). 그러므로 닦고 가꾸어야 할 것은 말보다 먼저 마음입니다. 마음을 깨끗이 닦아야 고운 말도 나오고 바른 행동도 나오는 것입니다.

어떤 사람은 개소리만 합니다. 고양이 소리만 하는 이도 있습니다. 자기 집 강아지가 얼마나 귀여운지 강아지 얘기만 합니다. 고양이 이야기만 합니다. 그 강아지나 고양이에게 마음 쓰는 만큼 사람에게 정성과 사랑을 쏟으면 그 사람도 사랑할 수 있을 터인데…. 동물 애호가 한 테는 듣기 싫은 소리겠지만 그래도 사람이 먼저입니다. 마음속에 강아지로 가득 차 있는데 어떻게 다른 사람이 보이겠습니까? 하느님의 모상을 닮은 존재자체가 사랑 받아야 할 이유입니다. 그러나 어떤 때는 짐승만도 못한 취급을 받는 사람이 있어서 안타깝습니다.

어떤 이는 남 얘기만 합니다. 자기 속을 보지 않고 남의 사생활을 속속들이 ‘콩 나라 팥 나라’합니다. 다른 사람의 부족한 점을 보고 도움을 주기는커녕 온통 남의 흉, 허물로 자기 마음을 가득 채워 놓은 이가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반석 위에 기초를 놓고 집을 지으라 하시는 데 남의 흉, 허물 위에 집을 짓고 있으니 그 집이 어찌 온전하겠습니까? 그 사람은 ‘기초도 없이 맨땅에 집을 지은 사람과 같습니다. 강물이 들이닥치자 그 집은 곧 무너져 버렸습니다. 완전히 허물어져 버렸습니다’(루가6,49).

그러므로 우리의 마음 안에 성경말씀과 말씀이 사람이 되어 우리 가운데 오신 주 예수님을 잘 모셔야 합니다. 항상 주님을 마음에 품고 있으면 기쁘거나 위기가 닥칠 때나 어느 때이든 그분 것이 우리 마음에서 나옵니다. 그러므로 “눈을 깨끗하게, 귀를 조용하게, 그리고 마음을 평온하게 지키십시오”(토마스 머튼). 잠언에서는 “무엇보다도 네 마음을 지켜라. 거기에서 생명의 샘이 흘러나온다”(잠언4,23)라고 말합니다. “네 마음을 다하여 주님을 신뢰하고 너의 예지에는 의지하지 마라. 어떠한 길을 걷든 그분을 알아 모셔라. 그분께서 네 앞길을 곧게 해 주시리라”(잠언3,5-6). 주님을 마음의 중심에 담는 하루를 축복해 주시길 기도합니다. 사랑합니다.

&&& “형제들을 위해서라면 아무리 어려운 일이라도 거절하는 일이 없어야 합니다. 아무리 어리고 약한 사람이라 하더라도, 아무리 수고로운 일이라 하더라도, 높은 산과 절벽을 기어오르는 일이라 하더라도 형제의 구원을 위해서라면 모든 것을 견디어 내야 하겠습니다”(성 요한 크리소스토모). 왜냐하면 형제란 서로에게 손발과 같이 없어서는 안 될 가까운 사이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을 형제로 모시는 사람들은 행복합니다. 여러분도 예수님의 형제로서 행복하시길 바랍니다. &&&
 
- 청주 교구 감곡 매괴 성모 성당 반 영억 라파엘 신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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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수원] 요셉 신부님의 매일 복음 묵상 - 우상은 제물로 자유를 요구한다.

2014년 가해 9월13일 연중 제23주간 토요일
성 요한 크리소스토모 주교 학자 기념일

< 너희는 어찌하여 나를 "주님, 주님!" 하고 부르면서,
내가 말하는 것은 실행하지 않느냐? >

복음: 루카 6,43-49
 
< 우상은 제물로 자유를 요구한다 >

어떤 소년이 학교에 지각을 했습니다. 평소 한 번도 지각이나 결석을 하지 않던 학생이었기 때문에 선생님은 소년에게 지각 사유를 물었습니다. 그랬더니 소년은 학교에 오는 도중 어떤 아저씨가 동전을 떨어뜨려서 그걸 같이 찾느라 고 늦었다고 말했습니다.

그래서 선생님은 물론 동전을 같이 찾아드리는 일도 좋지만, 학교에 오는 일이 더 중요하기 때문에 미안하다고 말하고 지각하지 않게 와야 한다고 타일렀습니다.

그러나 소년은 머리를 절레절레 흔들었습니다. 선생님은 또다시 그 이유를 물었습니다. 그러자 소년은 자기가 그 동전을 밟고 서 있었기 때문에 올 수 없었다고 대답했습니다. 그러니까 소년은 동전 을 떨어뜨린 아저씨가 찾기를 포기하고 갈 때까지 기다려야 했고, 그래서 지각할 수밖에 없었던 것입니다.

 우상이란 무엇일까요? 우상도 하나의 내가 섬기는 신(神)입니다. 신에게는 제물을 바쳐야 하고 또 그 신으로부터 무언가를 받아야합니다. 그 대상이 하느님이 아닐 때는 모든 것이 우상이 되는 것입니다. 우상을 섬기다보면 거기서 움직여 다른 곳으로 갈 수 있는 자유를 잃게 됩니다.

위의 어린이는 돈이란 우상을 섬기게 되었습니다. 자기의 모든 에너지를 그 우상에게 쏟아 붓습니다. 자신이 우상에게 바치는 제물입니다. 우상은 그 제물을 받고 그에게 소유욕을 충족시켜주는데 그 대가로 또한 그의 자유까지도 빼앗게 되는 것입니다. 만약 내가 이 세상 무언가로부터 자유롭지 못하다면 내가 그것들을 우상으로 만들며 살아가고 있는 것입니다.

나는 그리스도를 위해 나의 가족, 나의 재산, 나의 명예 등을 지금 당장이라도 버릴 수 있습니까? 그렇지 않으면 그것들이 어느 정도는 나의 우상이 되어버린 것입니다. 자유롭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미국 동부 어는 도시에 성공적으로 사업을 잘 하던 중년 남자가 한 사람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 사람은 어떤 이유에서인지, 몹시 고민하고 불안한 기색을 보이다가 결국 건강을 크게 해치는 단계에까지 이르렀습니다. 그래서 그의 주치의는 정신 분석 학자에게 가보라고 권했습니다.

그 정신 분석 학자는 이 사람이 너무 오랫동안 사업에만 열중하고, 한 곳에만 집착을 해서 그 병이 생겼으니 주의를 분산시키기 위해 한 젊은 여자와 사귀어 보라고 했습니다.

그러자 그 사업가는 ‘나는 내 아내만 사랑하고 그녀에게만 성실해 왔으므로 그렇게 하기는 어렵다’고 했습니다. 그러나 그 정신 분석학자는 ‘다른 것에 흥미를 가지고 새 출발해 볼 필요가 있다’고 하므로 이 사람은 다른 여자와 사귀며 재미를 보기 시작했습니다.

그러자 또 다른 고민과 죄책감이 생겼습니다. 지금까지 자수성가 하도록 고생만 해오던 아내를 생각하면 죄책감에 견딜 수가 없었던 것입니다. 고민과 불안이 더욱 커져 그는 결국 자살하고 말았습니다.

우상을 이것저것으로 옮기는 것도 해결방법이 되지 않습니다. 우상은 사람이 자신에게 집착할 수 있도록 끊임없이 색다른 제물을 줍니다. 물론 이 제물은 금방 더 큰 제물로 채워주지 않으면 배고픔에 쓰러지게 만드는 마약과도 같은 것입니다.

오늘 독서에서 바오로는 우상 숭배를 멀리하라고 합니다. 그러면서 오직 ‘그리스도의 살과 피’에 동참하라고 합니다. 우상에게 바쳐진 제물을 먹다보면 마귀와 상종하는 사람이 되어버린다고 합니다. 이 세상의 수많은 우상들이 제공하는 쾌락을 먹고 살다 보면 세상과 하나가 되어 자유를 잃게 됩니다.

“여러분이 주님의 잔도 마시고 마귀들의 잔도 마실 수는 없습니다. 여러분이 주님의 식탁에도 참여하고 마귀들의 식탁에도 참여할 수는 없습니다.”

사람이 두 주인을 섬길 수는 없습니다. 그리스도 아니면 우상입니다. 그리스도에게서 오지 않는 기쁨은 무엇이든 자신을 우상숭배자로 만듭니다. 그리고 그 우상 숭배에서 벗어나는 길은 그리스도를 만나는 것에서 충분한 만족을 얻어야만 한다는 것입니다. 우상이 주는 짧고 짜릿하지만 오랜 공허감과 죄책감을 주는 제물을 먹던가, 아니면 짧은 절제를 통해 오랜 평화와 누구도 빼앗을 수 없는 기쁨의 제물을 먹던가는 우리가 선택하는 것입니다.

요셉 신부님 미니홈피: http://minihp.cyworld.com/30joseph
 
- 수원 교구 복음화국 부국장 전삼용 요셉 신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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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타] 좋은 나무가 되십시오.

소나무 신부와 함께 하는 마음의 산책

'삶이란 가능성을 사는 것입니다.
그 가능성을 아름다운 시간으로 만들어야만 합니다.'

2014년 가해 9월13일 연중 제23주간 토요일 복음묵상
성 요한 크리소스토모 주교 학자 기념일

“좋은 나무는 나쁜 열매를 맺지 않는다. 또 나쁜 나무는 좋은 열매를 맺지 않는다.”(루카6,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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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믿어야 하는 가장 기본적인 것이 또 하나 있습니다.
그것은 모든 생명은 고유의 아름다움을 가지고 이 세상에 나온다는 것입니다.
더욱이 사람은 하느님의 모상대로 때묻지 않은 아름다움으로 이 세상에 태어납니다.
이 말은 잉태의 과정이 그 어떠하였다 하더라도, 수태된 사람의 생명은 아름다울 수밖에 없다는 뜻입니다.
그 이유는 단 한가지, 선(善) 자체이신 하느님께서 창조하셨다는 것입니다.

오늘 복음의 비유는 태어나면서부터 좋은 나무와 나쁜 나무로 갈려진다는 뜻이 아닙니다.
좋고 나쁨은 삶의 내용을 말합니다.
그리고 그 열매는 그 삶의 흔적을 말합니다.

모든 사람은 모두 아름다운 생명으로 이 세상에 나옵니다.
하지만 생명을 어떤 삶으로 이끄느냐는 각자의 선택과 실천에 달려있습니다.
이것이 생명에 관한 복음적 이해입니다.

우리는 죽는 순간까지 가능성(可能性)으로서 살면서, 무엇인가가 되어가는 삶을 살아갑니다.
가능성이란 완성된 것이 아닌 움직이고 변할 수 있음을 뜻합니다.
아름다웠다가 추해질 수도 있고, 추했다가 아름다워질 수도 있으며,

보다 아름다워질 수도 있고, 보다 추해질 수도 있는 것이 우리의 삶임을 의식해야만 합니다.

좋은 나무가 되십시오.
그래서 좋은 열매를 맺으십시오.
이것이 우리 삶의 목적이고 의미입니다.
지금의 모습이 좋은 열매로서 부족하다는 느낌이 든다면, 다시 일어서면 됩니다.
그래서 좋은 나무가 되면 됩니다.
이것이 사람이라는 나무의 허락된 숙명입니다.

똑똑한 척하면서도 누구보다도 어리석을 수 있는 존재가 사람입니다.
보이는 끝을 지금 생각하지 못할 수 있는 것이 사람입니다.
아름답게 살고 싶다는 열망을 가지십시오.
그러면 하느님께서 이끌어주실 것입니다.

좋은 열매를 위해 좋은 나무가 되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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같은 구절의 작년 묵상입니다.
https://www.facebook.com/WithfatherPinetree/photos/pb.491783984177011.-2207520000.1410509414./766152156740191/?type=3&theater
 
- 사이타마 교구 오타(太田)본당 주임 김 대열 프란치스코 사베리오 신부

https://www.facebook.com/WithfatherPinetree

소나무 신부와 함께 하는 마음의 산책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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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울] 성 요한 크리소스토모 주교 학자 기념일 
 
2014년 가해 9월13일 토요일 성 요한 크리소스토모 주교 학자 기념일

<너희는 어찌하여 나를 “주님, 주님!” 하고 부르면서, 내가 말하는 것은
실행하지 않느냐?>
+ 루카 6,43-49
 
지난 추석 연휴 중에 선배 신부님의 모친께서 하느님의 품으로 가셨습니다. 저는 20년 전에 선배 신부님께서 주임신부로 사목을 하실 때 보좌 신부로 함께 있었습니다. 당시 신부님의 모친께서는 성당에 자주 오셨습니다. 96세의 연세로 하느님의 품으로 가신 마리아 어머니께서 천상에서 영원한 삶을 사시기를 기도합니다.

장례가 나면 많은 분들이 빈소를 찾아와서 고인을 위해 기도하고, 유족들을 위로 합니다. 좀 더 가까운 인연이 있는 분들은 장례미사에 오셔서 함께 기도를 합니다. 고인의 가족, 친지, 가까운 지인들은 고인이 이 세상에서 마지막으로 가는 묘소까지 함께 할 것입니다. 저도 빈소를 찾아갔고, 장례미사까지 함께 했습니다. 아무리 가족이라 해도, 아무리 친한 사이라고 해도 고인과 함께 죽음의 여정을 같이 할 수는 없을 것입니다. 오직 하느님만이 고인과 함께 할 것입니다. 우리 보다 앞서 가신 성인, 성녀들께서 고인을 기쁘게 맞이할 것입니다.

이냐시오 성인은 ‘영신수련’에서 ‘세 가지 유형의 사람’을 이야기 합니다.

첫 번째 유형의 사람은 신앙의 열매를 맺고자 하는 열의는 있지만 행동으로 옮기지 못하는 사람입니다. 결단력이 없기 때문입니다. 세상의 것들에 대한 미련이 많이 남아 있기 때문입니다. 신앙인이 되었지만 그 목적이 하느님을 알아서 영원한 생명을 얻는데 있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직장 상사의 마음에 들기 위해서 신앙을 갖는 경우도 있습니다. 혼인을 하기 위해서 신앙을 갖는 경우도 있습니다. 이는 신앙을 갖는 목적이 자신의 뜻을 이루기 위한 것이기에 참된 신앙의 열매를 얻기 어렵습니다.

두 번째 유형의 사람은 신앙의 열매를 얻기 위해서 노력은 하지만 시련의 때가 오면, 유혹이 다가오면 하느님과 멀어지는 사람입니다. 복음서에서 우리는 그런 사람들을 볼 수 있었습니다. 가진 것이 너무 많아서 포기 할 수 없었던 부자 청년이 그랬습니다. 예수님을 자신의 뜻대로 모시려 했던 유다가 그랬습니다. 결정적인 순간에 예수님을 모른다고 했던 베드로가 그랬습니다. 어쩌면 우리들 대부분은 두 번째 유형의 신앙생활을 하는지 모르겠습니다.

세 번째 유형의 사람은 어떤 시련이 닥쳐도, 유혹이 다가와도 포기하지 않고 예수님과 함께하는 사람입니다. 추운 겨울에 더욱 푸른빛을 보여주는 소나무와 전나무 같은 사람입니다. 103위 성인과 124위 복자와 같은 분들입니다. 주님을 위해서 순교의 길을 가신 분들입니다. 그분들은 천상에서 빛나는 신앙의 별이 되셨습니다. 권위와 권력을 지녔지만 섬기는 삶을 사시는 프란치스코 교황님과 같은 분이십니다. 아프리카의 오지에서 복음을 전하였던 이태석 신부님과 같은 분입니다.

교회가 2000년 역사를 지닐 수 있었던 것은 아름다운 성전이 있었기 때문만은 아닐 것입니다. 위대한 설교자가 있었기 때문만도 아니었을 것입니다. 교리와 법을 만들어낸 신학자들이 있었기 때문만도 아니었을 것입니다. 베드로의 수위권을 이어받은 교황님들이 있었기 때문만도 아니었을 것입니다. 정말 묵묵히 자신의 자리에서 참된 신앙의 열매를 맺어온 이름 없는 순례자들이 있었기 때문이라고 행각합니다.

순교자 성월입니다.

오늘 예수님께서는 굳센 믿음을 요구하고 있습니다. 샘이 깊은 물과 같은 믿음을 가지라고 합니다. 반석위에 세운 집과 같은 믿음을 가지라고 하십니다. 그래서 그 믿음이 사랑의 열매를, 희망의 열매를 맺어야 한다고 하십니다. 나의 믿음이 흔들리는 믿음이어서는 안 됩니다. 어떤 바람에도 흔들리지 않는 굳건한 믿음으로 참된 신앙의 열매를 맺어서 이웃들에게 나누어 주면 좋겠습니다.
 
- 서울 대 교구 성소국장 조재형 가브리엘 신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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