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월28일 너면 왜 안되는데?

작성자 : 김 안나    작성일시 : 작성일2014-08-28 17:01:59    조회 : 534회    댓글: 0

◈ [인천] 너면 왜 안되는데?

2014년 가해 8월28일 성 아우구스티노 주교 학자 기념일

<너희도 준비하고 있어라.>
 + 마태오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24,42-51

“왜 하필이면 나지?”라는 질문을 던질 때가 종종 있습니다. 정말로 하기 싫은 일을 해야만 할 때, 그리고 원하지 않는 일의 주인공이 되어야 할 때 말이지요.

제가 신학생 때, 학교 학생회장 선거가 있었습니다. 그 당시 제 모습은 지금의 모습과 많이 다릅니다. 그때에는 남 앞에 서는 것을 제일 싫어했었거든요. 조용하고 내성적이었던 저는 남들 앞에 서면 다리는 사시나무 떨리듯이 떨렸고, 가슴은 터질 듯이 쿵쾅쿵쾅 뛰었으며, 목소리도 저절로 바이브레이션이 될 정도였습니다. 이러한 제가 스스로 학생회장 선거에 나갈 리가 없지요. 그런데 문제는 학생회장 선거에 나가겠다고 한 친구는 딱 한 명밖에 없었고, 선배님들이 무조건 3명 이상을 채우라는 말(강압적인)에 반회의를 통해 2명의 후보를 뽑았는데 그 중 한 명이 바로 저였지요. 아마도 저를 후보로 내세운 것은 나가봐야 100% 떨어질 것으로 생각했기 때문이 아닐까 싶습니다.

그때 얼마나 싫었는지 모릅니다. 5명밖에 되지 않았던 인천교구생, 사람들 앞에서 말도 잘 하지 못하는 저를 보면 당연히 떨어지겠지만, 그래도 앞에 나가서 정견발표도 해야 하고 선거 운동도 해야 한다는 사실 자체가 싫었습니다. 동창들이 걱정하지 말라고, 자기들이 다 도와주겠다고 말은 했지만 정말로 싫은 시간이었습니다. 그래서 그 당시 주님께 던졌던 질문은 이것입니다.

“왜 하필이면 접니까?”

그러던 어느 날 성체조배를 하면서 주님께 “왜 하필이면 접니까?”라고 질문을 던졌는데, 가슴 깊은 곳에서 이러한 소리가 들리는 것 같았습니다.

‘너면 왜 안 되는데?’

받아들이지를 못해서 힘들었는데, ‘그래, 나는 왜 안 되는데?’라는 질문을 던져보니 충분히 받아들일 수 있음을 깨달을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이때의 체험들이 지금의 저를 만들었음을 깨닫습니다.

고통과 시련이 오히려 선물이었고, 많은 것들을 배울 수 있는 기회였습니다. 우리에게 역경이 찾아올 때 힘든 이유는 이것을 해결해야 할 문제로만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배움의 시간이며, 주님의 특별한 선물이라는 생각을 가질 때에는 여기에 복잡한 생각이 사라집니다. 단지 그냥 선택하기만 하면 되는 것이니까요.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언제 올지 모를 주인을 위해 ‘늘 깨어 준비하고 있어라.’고 하십니다. 깨어 준비하는 모습은 바로 주님의 뜻을 받아들이는 모습이라고 생각합니다. ‘왜 하필이면 저입니까?’하면서 부정하고 뒤로 미루는 모습이 아니라, ‘나는 왜 안 되는데?’라는 마음으로 주님의 뜻에 순명하는 모습이 깨어 준비하는 모습인 것입니다.

어렵고 힘든 시간들이 우리에게 자주 찾아오지요. 이제는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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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기가 얼마나 자주 타인을 오해하는가를 자각하고 있다면 누구도 남들 앞에서 함부로 말하지는 않을 것이다(괴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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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년의 한 마디(‘좋은생각’ 중에서)

론과 리사, 그리고 여섯 살배기 아들 셰인은 ‘벨커’라는 개를 애지중지하며 키웠다. 그런데 벨커가 암에 걸리자 수의사는 더는 손쓸 수 없는 상태라며 안락사를 제안했다.

결국 론과 리사는 안락사를 결정했고 셰인이 수술을 지켜보는 게 좋을 것 같다고 판단했다. 그들은 셰인이 그 경험을 통해 무언가를 배울 거라 생각했다.

수술 당일, 셰인은 마지막 인사라는 걸 아는 것처럼 차분하게 벨커를 쓰다듬었다. 몇 분 뒤, 벨커는 평화롭게 잠들었다. 그리고 수의사와 부모는 왜 동물이 사람보다 수명이 짧은지 모르겠다는 말을 나눴다. 그러자 곁에서 조용히 듣고 있던 셰인이 말했다.

“사람은 어떻게 하면 착하게 살 수 있는지 배우려고 태어나잖아요. 어떻게 하면 사람들을 사랑하고, 친절하게 대할 수 있는지를 배우려고요. 그렇죠? 그런데 개들은 원래 다 알고 있거든요. 그래서 사람처럼 오래 머물 필요가 없는 거예요.”

- 인천교구 성소국장 조명연 마태오 신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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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수도회] 깨어 있어라 - 이수철 프란치스코 신부님 (요셉 수도원) 

(십자성호를 그으며)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2014년 가해 8월28일 목요일
성 아우구스티노 주교 학자(354-430) 기념일
1코린1,1-9 마태24,42-51

<너희도 준비하고 있어라.>
+ 마태오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24,42-51

깨어 있어라.

새벽2시 반 강론을 쓰는 자리는 스페인 땅, 지비리 알베르게 순례자 숙소입니다.

미사는 새벽5시,
여기 식당에서 아침 식사전 봉헌할 예정이며 미사 후 6시에는 또 순례길에 오르게 됩니다.
하느님은 때와 자리를 가리지 않고 언제 어디서나 우리와 함께 계십니다.
미사를 통해 은혜로이 깨닫는 진리입니다.

어느 때는 방이, 식당이, 휴게실이, 안내실의 탁자가, 제대가 되곤 합니다.
하여 모든 곳이 하느님의 제대가 되는 거룩한 땅임을 깨닫습니다.

얼마전 피레네 산맥 중턱 산장에서 미사를 봉헌할 때는
피레네 산맥을 제대로 하여 피레네 산맥과 함께 미사를 봉헌하는 느낌이었습니다.

영성생활의 궁극목표는 '오늘 지금 여기'에 깨어 있는 것입니다.
바로 오늘 지금 여기가 하느님을 만나는 자리요,
믿는 이들에겐 영원한 오늘, 영원한 현재만 있을뿐입니다.

"깨어 있어라. 너희의 주인이 어느 날에 올지 너희가 모르기 때문이다."
"너희도 준비하고 있어라. 너희가 생각지도 않은 때에 사람의 아들이 올 것이기 때문이다."

'주인'이나 '사람의 아들' 대신 '죽음'을 넣어도 그대로 통합니다.

기다릴 대상이 있을 때, 깨어 준비합니다.
기다릴 분이 있는 이들은 행복합니다. 과연 누구를 기다립니까?
궁극의 기다릴 분은 주님뿐입니다.
파수꾼이 새벽을 기다리기보다 주님을 더 기다리는 영혼은 행복합니다.
저 역시 새벽에 깨어 일어나 주님을 기다리며 강론을 씁니다.
진정 깨어 준비하며 주님을 기다이는 이들은 행복합니다.

"주인이 종에게 자기 집안 식솔들을 맡겨 그들에게 제때에 양식을 내주게 하였으면,
어떻게 하는 종이 충실하고 슬기로운 종이겠느냐?
행복하여라, 주인이 돌아와서 볼 때에 그렇게 일하고 있는 종!"

우리에게 영성이 있다면, 종(servant)의 영성, 섬김(service)의 영성만이 있을뿐입니다.
언제나 제자리에서 주어진 일에 충실하고 슬기로운 종으로 살 때 구원의 행복입니다.
저와 함께 순례중인 두 도반이 그러합니다.
순례생활이 때로는 깨어 싸워야 하는 전투와 같고 도반은 전우와 같습니다.
신속히 떠나야 하고 남은 자리는 잘 살펴봐야 합니다.
'말'로만 살다가 이젠 '몸'으로 현장 체험을 통해 깨달으며 살라고 순례를 보내신 하느님 같습니다.

"신부님의 순례를 도와 드리고자 '순례 도우미'로 왔습니다."

한 도반의 말에 감격했습니다.
'순례 도우미'란 말이 참 아름답게 느껴졌습니다.
과연 복음의 충실하고 슬기로운 종답게 순례가이드 및 봉사 역할에 최선을 다하는 도반입니다.

또 하나, 신자는 아니지만 신자 이상으로 착한 분(홍수진)을 소개 합니다.
서울 대림동에서 혼자 배낭을 메고 와,
10시간 걸려 피레네 산맥을 넘은 미혼의 자매인데 두려움이 전혀 없는 평화로운 모습이었습니다.
이어 우리 일행을 위해 저녁 식사를 해줘 참 오랜만에 충만한 행복을 누렸습니다.

어제 순례중 만난 한국인이 무려 9명인데 참 씩씩하고 용감해 보였습니다.
이 또한 국력의 반영입니다.
주님 안에 머무를 때 오늘 지금 여기서 깨어 충실하고 슬기로운 종으로 살 수 있습니다.
이 또한 주님의 은총입니다.
바오로를 통한 다음 주님 말씀은 그대로 우리를 향합니다.

"나는 하느님께서 그리스도 예수님 안에서 여러분에게 베푸신 은총을 생각하며,
여러분을 두고 늘 나의 하느님께 감사를 드립니다.
여러분은 어느 모로나 풍요로워졌습니다.
어떠한 말에서나 어떠한 지식에서나 그러합니다."

하느님은 성실하신 분이십니다.
그분께서 당신의 아드님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와 친교를 맺도록 우리를 불러주셨습니다.
그분께서는 또한 우리를 끝까지 굳세게 하시어,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날에 흠 잡을 데가 없게 해 주실 것입니다.

주님은 이 거룩한 미사은총으로 우리 모두 깨어 살게 하시고 당신과의 친교를 깊게 해 주십니다.
이 거룩한 미사를 통해
하느님 우리 아버지와 주 예수 그리스도에게서 은총과 평화가 우리에게 내리기를 빕니다.

"주님, 영영 세게 당신 이름을 찬미하나이다."(시편145,1ㄴ참조).
아멘.
 
- 이수철 프란치스코 성 요셉 수도원 원장 신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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