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양업 신부 탄생 200주년 미사 봉헌

작성자 : 최고관리자    작성일시 : 작성일2021-02-24 21:45:42    조회 : 239회    댓글: 0

최양업 신부 탄생 200주년 미사 봉헌

기사작성 : 2021년 02월 22일 10시 36분 06초

천주교 첫 신학생

천주교회 두 번째 사제 봉양 배론 성지 순교

배론 성지 탄생일 다음달 1일 시복시성 미사

 

다음달 1일 한국 천주교회 두 번째 사제이자 첫 신학생인 가경자 최양업 신부가 탄생 200주년을 맞는다.

한국천주교주교회의는 이를 기념하기 위해 오는 28일 한국의 모든 본당에서 최 신부의 시복시성 기원 미사를 봉헌한다. 최 신부가 잠들어 있는 제천시 봉양읍 구학리 배론 성지에서는 원주교구 주관으로 탄생일인 31일 기념 미사를 올린다. 기념사업도 병행한다. 기념 미사와 행사는 코로나19 감염 예방을 위해 현장 참석 인원을 엄격히 제한해 진행된다. 원주교구는 최 신부의 묘소가 있는 배론 성지에서 오전 11시 시복시성 기원 미사와 묘소 참배를 거행한다.

원주교구는 이와는 별도로 오는 20일부터 28일까지 최양업 신부님 시복시성 기원 9일 기도를 연다. 교구 평신고사도직협의회와 복음화사목국은 신자들이 최 신부를 기리며 신앙을 굳건히 하도록 독려하고자 독서감상문 공모전과 필사 및 암송 운동을 벌인다. 최 신부 서간집 너는 주추 놓고 나는 세우고독서감상문 공모는 최 신부 탄생일인 다음달 1일부터 선종일인 615일까지 이어진다. 일반부와 청소년부가 대상이다. 최 신부가 번역한 교리서 천주교요리문답필사 및 암송 운동은 오는 930일까지 실시한 뒤 1023일 교구 필사본 전시 및 암송 대회를 가진다.

최 신부는 182131일 충남 청양 다락골 인근에서 태어났다. 1835년 말 프랑스 선교사들에 의해 한국 최초 신학생으로 선발돼 1836123일 김대건·최방제 등과 함께 마카오 유학길에 올랐다. 1849년 사제품을 받은 뒤 밀사들의 도움을 받아 귀국한 뒤 1850년 초부터 116개월간 전국을 돌며 미사를 집전하고 고해성사를 주었다

.

최 신부는 지금처럼 포장된 길이 아닌 흙길·산길을 짚신을 신고 다녔다. 걸어 다닌 거리가 1년 평균 2800인 것으로 전해졌다. 이 와중에도 한문 교리서와 기도서를 번역했고 순교자들의 기록을 수집했다. 선교사들의 입국을 돕고 조선 신학생들을 유학 보내기도 했다.

최 신부는 1861615일 경남 지방 사목방문을 마친 뒤 베르뇌 주교에게 결과를 보고하러 서울로 가던 중 과로에 장티푸스가 겹쳐 40세의 나이로 배론 성지에서 순교했다. 한국 천주교회는 당대 유일한 한국인 사제로서 신자들을 위해 조선 팔도를 누빈 최 신부를 땀의 순교자라 부른다.

최 신부가 잠들어 있는 가톨릭 성지인 배론은 충북도 기념물 제118호로 지정돼 있다. 천주교 원주교구에서 소유·관리하고 있다. ‘배론은 이곳의 지형이 배 밑바닥과 같은 모양이어서 붙여진 이름이다. 천주교 박해시대의 교우촌이다. 조선 후기 천주교도 황사영(黃嗣永·17751801)이 머무르며 백서(帛書)를 썼던 토굴과 최양업(18211861) 신부의 묘가 있다. 국내 최초로 천주교 성 요셉 신학교가 세워진 곳이다.

지난 1801(순조 1) 신유박해(辛酉迫害)가 일어나자 천주교 박해는 시작됐다. 권철신(權哲身이가환(李家煥이승훈(李承薰정약종(丁若鍾주문모(周文謨) 등이 처형됐다. 이때 많은 천주교도가 구학리 배론 산골에 숨어살았다. 배론에 숨어 있던 황사영은 조선교회의 박해 사실을 자세히 기록하고 신앙의 자유와 교회의 재건 방안을 호소하는 백서를 썼다. 백서는 황심(黃沁옥천희(玉千禧)에게 주어져 베이징(北京) 주교에게 전달하려다 발각됐다. 배론의 토굴에서 쓴 밀서를 황사영백서라고 한다.

지난 1856(철종 7)에는 프랑스 신부들이 이곳 배론에 한국 최초의 신학교인 성 요셉 신학교를 세우고 성직자를 양성했다. 1866년 병인박해(丙寅迫害)로 신부들이 처형당하고 신학교가 폐쇄됐다. 배론은 전국 각지의 성지순례 신자들이 끊임없이 찾는 한국 천주교의 성지이다. /최경옥기자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