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려움을 이기는 길

작성자 : 최고관리자    작성일시 : 작성일2021-01-08 19:24:39    조회 : 217회    댓글: 0

[강우일 칼럼] 두려움을 이기는 길

등록 :2021-01-07 16:00수정 :2021-01-08 11:20

지구 생태계는 영겁의 세월을 두고 조금씩 공들여 빚어낸 창조주의 조화로운 작품이지만, 그중에서 인간은 진화의 마지막 단계에서 최고의 솜씨와 사랑으로 창조된 걸작 중의 걸작이다. 한 사람 한 사람이 다 최고의 걸작이다. 창조주께서 그토록 오래 준비하시고 빚으시고 가꾸신 걸작을 함부로 쓸어버리지 않으리라. 지나친 두려움은 허구다.
강우일ㅣ베드로 주교
2020년은 한 해 내내 코로나바이러스 때문에 온 세상이 두려움에 사로잡히고 불안에 시달렸다. 눈에 보이지도 않지만 지구 전체를 휘젓고 다니는 바이러스에 언제 어디서 감염될지 몰라 전전긍긍하며, 방역 전문가들의 조언, 행정당국과 언론이 반복적으로 제공하는 경고와 주의, 시시각각 휴대전화를 통해서 전달되는 코로나 관련 안전정보에 우리들의 일상생활이 완전히 포위되고 점령되었다. 많은 이들이 일자리를 빼앗기고, 경제활동이 거의 마비 상태에 이르렀다. 어디에 가든 마스크를 써야 하고, 보고 싶은 사람 방문도 삼가야 하고, 반가운 사람을 만나도 멀찍이 서서 손도 잡아보지 못하고, 인정과 선의가 꽃피는 얼굴을 보고도 서로 환하게 웃어줄 수 없으니 세상이 삭막함과 고립감과 우울감에 짓눌려, 최악의 미세먼지가 가득한 뿌연 하늘보다 더 짙은 암흑 속에 갇힌 것 같았다. 우리를 이렇게 가라앉게 하고 침울하게 만든 원인은 무엇일까? 개인이든 집단이든 사람을 가장 두렵게 하는 것은 무엇일까?사람을 가장 크게 압도하고 위협하는 것은 죽음의 공포다. 철학자들은 ‘사람은 태어나면서부터 죽음을 향해 내던져진 존재’라고 할 정도로 우리는 매 순간 죽음과 대면하며 살아간다. 죽음을 의식 밖으로 밀어내고 회피하여도 죽음은 인간 존재의 가장 깊은 내면에 뿌리를 내리고 있다. 그러니 죽음은 나와는 무관한 것이라고 외면하거나 죽음에서 되도록 멀리 도피하려 하지 말고 죽음을 정면에서 마주하고 직시할 때 오히려 우리는 불안과 공포에서 자유로울 수 있지 않을까?나는 생애 여러 길목에서 죽음의 그림자를 보았다. 여섯 살 때 6·25 전쟁이 터졌다. 전쟁이 무엇인지 아무것도 몰랐지만, 어느 날 갑자기 온 가족이 짐도 제대로 챙기지 못하고 허둥지둥 피난길에 나섰던 일은 내 존재 전체를 뒤흔든 두려움이었다. 피난 가서 등굣길에 야전병원 천막 옆을 지나곤 했다. 전선에서 실려 온 부상병들이 통증에 짓눌려 울부짖는 신음은 내 어린 가슴을 꿰뚫었다. 부상당하여 팔다리가 잘려나간 상이군인들이 대문을 두드리며 도움을 청할 때마다 무서움과 연민이 뒤엉킨 마음으로 문을 조심스레 열었다.초등학교 3학년 때는 원인 모를 열병에 걸려 한 달 넘게 집에서 요양했다. 열이 내리지 않아 음식을 거의 먹지 못하고 주사로 연명했다. 동네 사람들은 “저 집 아이 얼마 못 살겠다”고 수군거렸다. 어머니의 극진한 간호로 기사회생했다. 그 후로도 체력을 회복하기 위해 2년이나 한약에 의지했다.중학교 3학년 때 4·19를 맞았다. 대학생들과 젊은이들이 경무대 쪽으로 가 시위를 하다가 경찰의 발포에 여러 명이 죽거나 중상을 입었다. 잘 모르지만 어리다고 그냥 가만히 있어서는 안 되겠다는 느낌이 들어 학교 파한 후 집에 가방을 갖다 놓고 다시 종로에 나갔다. 나도 모르게 대통령 하야를 외치는 시위 군중에 끼어들었다. 평소 자동차만 다니던 대로 한복판을 시위대와 함께 걸으며 함성을 올리니 해방감이 밀려왔다. 그런데 탱크가 굉음을 내며 시위대를 향해 전진하다가 하늘을 향해 기관포를 쏘았다. 어둑어둑할 무렵이어서 포탄이 폭죽처럼 벌건 불꽃을 튀기며 하늘로 발사되는 모습에 시위 군중은 공포감으로 모두 썰물처럼 양쪽 골목으로 흩어져 도망쳤다.나는 설악산을 좋아해서 계절 따라 산행을 즐겼다. 어느 한겨울에 오색에서 출발하여 대청봉을 거쳐 설악동으로 산행 일정을 잡았다. 새벽에 출발할 때 눈발이 조금씩 날리기 시작했으나 쌓이지 않았다. 대청봉에 이르니 눈이 무릎까지 왔다. 그러나 하산을 시작하며 계곡으로 들어서니 상황이 완전히 달라졌다. 계곡 양쪽에 쌓였다가 흘러내린 눈이 계곡으로 밀려 내려 등산로가 사라졌다. 허리까지 쌓인 눈을 사력을 다해 헤치며 하산했으나 평소 같으면 오후 3시에 설악동에 도착하는 길을 밤 11시까지 걸어도 반밖에 못 내려왔다. 온몸에 기력이 다 빠져나가 산행을 계속하면 고통 없이 눈 속에 잠들 것 같았다. 어쩔 수 없이 하산을 멈추고 모닥불을 피워 제자리걸음을 하며 밤을 지새웠다. 이튿날 해가 뜨자 다시 하산을 계속하고 점심때가 되어서야 설악동에 도착했다. 도착 후 발바닥이 너무 아파 등산화를 벗어보니 36시간 넘게 아이젠을 차고 걸음을 계속하여 발바닥이 시퍼렇게 멍이 들어 있었다. 그날 산악구조대는 울산바위 쪽에서 추락사한 등산객 2명의 시신을 수습했다.가톨릭에서 성직자로 서품을 받는 사람은 성경의 짧은 성구를 좌우명으로 택한다. 나는 주교 서품 때 다음 성구를 택했다. “네 생명, 주님께 맡기고 그를 바라라!” 제주에서는 한라산을 끼고 남북을 가로지르는 길에 급경사가 여러 곳 있다. 해마다 브레이크 파열로 사고가 난다. 나는 내리막을 달릴 때마다 혹시라도 어느 부품 하나가 탈 나지 않을지 무섭기도 하고, 경사를 다 내려오면 안도와 감사의 한숨을 쉰다.해마다 우리나라에서 각종 암으로 세상을 떠나는 이들이 8만여 명 정도이고 2019년 교통사고로 죽은 이들이 3349명이다. 2019년의 사망자 총수는 29만5100명이다. 그러나 이 많은 사람이 목숨을 잃어도 대부분의 죽음은 일상화되어 언론도 보도하지 않고, 정부도 대책본부 차려 대응책을 마련하지도 않는다. 죽음이란 언젠가 모두가 필연적으로 가야 하는 길임을 아무도 의심치 않기 때문이다. 그런데 코로나 감염증과 관련된 정보와 소식은 좀 과하게 느껴질 정도로 날마다 수시로 전달된다. 시시각각으로 어느 지역에 몇 명이 확진되었고, 몇 명이 사망했는지 휴대전화 문자 착신음이 들린다. 지난해의 코로나 전체 확진자가 6만여 명이고, 세상을 떠난 이는 900명 정도다. 그런데 2019년 독감을 앓고 진료를 받은 사람이 54만 명이 넘었고 사망자가 720명이었음을 감안하면 코로나에 대한 현재의 두려움, 불안, 고립, 우울 증세는 왜 이렇게 유별날까 하는 생각이 든다.137억년 전 대폭발로 무에서 우주가 생성된 후, 아득한 세월을 두고 헤아릴 수 없이 수많은 별들이 생겨났다. 지구는 45억년 전에 탄생하였고, 처음 불덩어리였다가 서서히 식으면서 온갖 물질과 생명들이 차례로 탄생하였다. 10만년 전에 이르러서야 인류의 조상이 등장하였고 인류의 문명이 시작된 것은 1만년도 채 안 되었다. 지구 생태계는 아득한 영겁의 세월을 두고 조금씩 공들여 빚어낸 창조주의 아름답고 조화로운 작품이지만, 그중에서 인간은 진화의 마지막 단계에서 최고의 솜씨와 사랑으로 창조된 걸작 중의 걸작이다. 한 사람 한 사람이 다 최고의 걸작이다. 창조주께서 그토록 오래 준비하시고 빚으시고 가꾸신 걸작을 함부로 쓸어버리지 않으리라. 지나친 두려움은 허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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