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월1일 우리를 위하여, 우리의 구원을 위하여 계신 분

작성자 : 안나    작성일시 : 작성일2020-01-01 01:48:38    조회 : 191회    댓글: 0

~▣ 2020년 가해 11월1일 수요일.


[(백) 천주의 성모 마리아 대축일 (세계 평화의 날)]

 

제1독서 민수기 6,22-27
제2독서 갈라티아서 4,4-7
복음 루카 복음 2,16-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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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울] 천주의 성모 마리아 대축일 (세계 평화의 날)

 

2020년 가해 1월1일 천주의 성모 마리아 대축일 (세계 평화의 날)

 

2020년 새해가 시작되었습니다. 하느님의 사랑이 새해를 시작하는
모든 분과 함께 하시기를 기도합니다. 언제나 저희를 위하여 빌어
주시는 성모 마리아의 전구로 저희가 생명의 근원이신 성자,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따라 살 수 있기를 청합니다. 새해를 시작하는 모든
분의 소망이 하느님의 자비하심으로 이루어지기를 청합니다. 새해에는
만나는 모든 분에게 믿음과 희망 그리고 사랑을 나눠주면 좋겠습니다.

새해를 시작하면서 예수님께서 태어나신 베들레헴 성전의 문에 있던
글을 함께 나누고 싶습니다.


“If you enter here as a tourist,
we are hoping that you would exit as a pilgrim.
If you enter here as a pilgrim,
we are hoping that you would exit as a holier one.
(만일 여러분이 여행자로 이곳에 오셨다면, 순례자가 되어서 나가기를
희망합니다. 만일 여러분이 순례자로 이곳에 오셨다면 거룩한 사람이
되어서 나가기를 희망합니다)”

 

이냐시오 성인은 3가지 유형의 사람에 관해서 이야기했습니다. 첫 번째
유형은 하느님의 뜻을 따른다고 하지만 세상의 유혹에 쉽게 넘어가는
사람입니다. 언제나 결심은 하지만 지키지 못하는 사람입니다. 마치
길가에 뿌려진 씨와 같습니다. 땅에 뿌리를 내리지 못하고, 싹을 내지
못하고 사라지는 씨와 같습니다. 이 세상에 왔지만, 그 이유와 목적을
모르고 사는 사람과 같습니다.

 

두 번째 유형은 하느님의 뜻을 따른다고 하지만 고통과 좌절 앞에
무너지는 사람입니다. 삶의 십자가를 두려워하는 사람입니다. 가시밭에
뿌려진 씨와 같습니다. 어렵게 뿌리를 내리지만 가시를 견디지 못하고
시드는 싹과 같습니다. 이 세상에 온 이유와 목적은 알지만, 그것을
이루기 위해서 희생하지 못하는 사람과 같습니다.

 

세 번째 유형은 하느님의 뜻을 따르기 위해서 희생과 고통을 기꺼이
받아들이는 사람입니다. 자신의 십자가는 물론 이웃의 십자가도 지고
가는 사람입니다. 좋은 땅에 뿌려진 씨와 같습니다. 땅속에서 양분을
얻고, 햇빛을 받아 열매를 맺는 나무와 같습니다. 하느님의 영광을
위해서 부귀보다 가난을 택하기도 하고, 건강보다 질병을 택하기도
하고, 오래 살기보다 일찍 죽는 것을 택하기도 하는 사람입니다. 이미
이 세상에서 하느님 나라를 사는 사람입니다. 이 세상에서 이미 거룩한
삶을 사는 사람입니다.

우연히 책에서 보았던 글도 함께 나누고 싶습니다.


“Life is not about waiting for the storm to pass.
Life is about learning to dance in the rain.
(인생은 폭풍우가 지나가기를 기다리는 게 아닙니다. 인생이란 폭풍우
속에서도 춤추는 걸 배우는 겁니다)” 이제 막 시작하는 2020년에도
시련의 폭풍우가 있을 겁니다. 좌절의 바람이 불 겁니다. 고독이 심하게
밀려올 겁니다. 그러나 그럴 때일수록 포기하기보다는 새로운 길을
찾으면 좋겠습니다.

 

성서는 삶의 시련을 이겨내고 새로운 길을 찾았던 이야기를 전해주고
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소중하게 여기는 출애굽의 이야기입니다.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은 쉽게 주어지지 않았습니다. 광야에서 40년 동안
정화의 시간을 가졌습니다. 하느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이 살아야 할
계명을 주셨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은 40년의 폭풍우 속에서 하느님의
계명을 따르는 법을 배웠고, 약속의 땅으로 들어갈 수 있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광야에서 40일 동안 단식하셨습니다. 사탄의 유혹을
받으셨습니다. 돌을 빵으로 만들어 보라는 유혹을 받았습니다. 모든
인간이 원초적으로 가지는 재물에 대한 유혹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사람은 빵으로 사는 것이 아니라 하느님의 말씀으로 살아야 한다고
하셨습니다. 높은 데서 뛰어 내려보라는 유혹을 받았습니다. 명예에
대한 갈망은 누구에게나 있습니다. 남보다 높아지려는 교만한 마음도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하느님을 시험하면 안 된다고 하셨습니다.

 
무릎을 꿇으면 세상의 권력을 주겠다고 유혹했습니다. 권력의 단맛이
워낙 중독성이 강하기에 거부하기 힘든 유혹입니다. 예수님께서는
하느님만을 섬겨야 한다고 하셨습니다. 십자가 없는 부활은 없습니다.

오늘 우리는 예수님의 탄생에 관한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세상에서 아기 예수님을 처음 받아 준 손은 목수 요셉의 거친 손이었고,
그분을 처음 맞아들인 장소는 누추한 구유였습니다. 그분께 찬미와
찬양을 드린 첫 번째 사람도 밤을 지새우던 가난한 목자들이었습니다!”

 
예수님 강생의 짧은 이야기는 약하고 보잘것없는 곳, 비천한 사람들
안에 우리가 믿고 있는 신앙의 핵심 진리가 있음을 전하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 가까이에 있는 가장 보잘것없는 사람들, 그들 가운데
단 한 사람만이라도 내 안에 깊이 받아들이고 사랑할 수 있는 장소가
있다면, 그곳이 나를 구원할 내 ‘인생의 구유’입니다.

 

“우리들의 보호자 성모님 불쌍한 저희를 위하여 빌어주시어 귀양살이
끝날 때 당신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뵙게 하소서. 천주의 성모님
저희를 위하여 빌어주시어 영원한 생명을 얻게 하소서.”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 서울 대교구 조재형 가브리엘 신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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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울] 평생 하느님을 찬양하며 산 사람.

 

2020년 가해 1월 1일 천주의 성모 마리아 대축일

 

평생 하느님을 찬양하며 산 사람

 

“그때에 목자들이 베들레헴으로 서둘러 가서, 마리아와 요셉과 구유에
누운 아기를 찾아냈다. 목자들은 아기를 보고 나서, 그 아기에 관하여
들은 말을 알려 주었다. 그것을 들은 이들은 모두 목자들이 자기들에게
전한 말에 놀라워하였다. 그러나 마리아는 이 모든 일을 마음속에
간직하고 곰곰이 되새겼다. 목자들은 천사가 자기들에게 말한 대로
듣고 본 모든 것에 대하여 하느님을 찬양하고 찬미하며 돌아갔다.
(루카 2,16~20)”

 

목자들은 시골일반인이었지만 천사의 설명 듣고 확인했고 전했습니다.
목자들은 요셉과 마리아에게 알렸고 동네사람들에게도 전했을 겁니다.
목자들은 평생 하느님을 찬양하며 산 사람이었겠다고 절로 느껴집니다.

우리는 하늘 뜻이나 소식 이웃에 알리고 하느님 찬양하며 살았는지요.
아마 우리는 세상 상식들 배워 알리며 세상행복 받으라하진 않았는지.
예수님 탄생 2020년이니 우리는 목동들보다 2020배 키웠어야 됐겠죠.

새해 2020년간 퍼진 목동의 알림 따라 예수님 찾고 하늘 찬양합시다.
세상것들 많이 배웠어도 목동소식에 관심 더 두며 하늘나라 찾읍시다.

 

- 서울 대교구 이기정 사도요한 신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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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수원] 요셉 신부님의 매일 복음 묵상 - 성모 마리아의 일생은
“찬미 예수님!”이었다

 

2020년 가해 1일1일 천주의 성모 마리아 대축일

 

<성모 마리아의 일생은 “찬미 예수님!”이었다.>
복음: 루카 2,16-21

 

2019년 가해 천주의 성모 마리아 대축일 – 성모 마리아의 일생은
“찬미 예수님!”이었다.

 

허윤석 신부님은 평화방송 ‘성모 마리아는 누구의 어머니신가’란
제목으로 한 영성특강에서 당신의 성모 마리아에 대한 체험을
말씀하셨습니다. 그 내용을 간단히 간추려봅니다.  

허윤석 신부가 어렸을 때 동생이 성당에 복사를 서기 위해 가다가
무면허 운전기사가 모는 트럭에 다리를 깔려 수십 번의 수술을 받아야
했다고 합니다. 그 때문에 허 신부의 어린 시절은 오락실과 가출한
아이들과 노는 것이 전부였습니다. 집이 비어있으니 가출한 아이들의
거처가 되었다고 합니다.

 

중학생 때 허 신부도 취객이 던진 소주병에 머리를 맞고 생사의
길목에서 사경을 해매야 했습니다. 의식은 흐려지고 손발이 차가와지고
죽음의 공포와 고통이 몰려와 분명 죽음에 임박했음을 느꼈습니다.
그런데 꺼져가는 의식 속에서 아주 작고 온화한 빛이 점차 커지더니
성모 마리아께서 나타나셨습니다. 그리고 허 신부의 머리에 강복해
주시고 손을 잡아주셨다고 합니다. 며칠 동안의 혼수상태 끝에 허
신부는 깨어났고 그때 성모님께 자신도 모르게 “어머니!”라 불렀던
것을 기억했습니다. 어머니의 모든 조건을 다 갖춘 분이라 누구라도
성모 마리아를 만나면 어머니라 부를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허 신부는
그때부터 손에서 묵주를 놓지 않고 어머니가 함께 계심을 믿으며
기도하는 학생으로 변했습니다.

  

한 번은 새 어머니에게 매일 구타당하는 것이 싫어서 가출한 친구와
함께 자게 되었습니다. 그 친구가 다음 날 자기 생일인데 돌아가신
어머니가 보고 싶다며 묘지에 함께 가자고 했습니다. 허 신부는 신자도
아닌 그에게 묵주를 쥐어주며 함께 묵주기도 하자고 했습니다. 그
친구는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자신의 어머니는 땅 속에 묻혀 있는데
어디 또 어머니가 있느냐는 것이었습니다. 그 친구의 유일한 관심사는
자신의 친어머니가 천국에 계실 것이냐는 것이었습니다. 허 신부는
루르드 성모님의 메시지를 인용하며 누구도 회개하고 용서하지 않으면
천국에 들어갈 수 없다고 말하며 함께 묵주기도를 바치자고 하였습니다.

그날 함께 자고 다음 날 학교에 갔습니다. 그 친구와 같은 반이었는데
점심시간에 갑자기 그 친구의 새 어머니가 교실로 들어와 아이의 뺨을
때리기 시작하였습니다. 왜 가출해서 새엄마 걱정을 끼치느냐는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그 친구는 손에 어제 받은 묵주를 꼭 쥐고
“죄송해요. 다시는 가출 안 할게요. 그리고 다 용서하고 미워하지
않을게요. 미워하면 엄마를 볼 수 없대요.”라고 말했습니다. 이 말을
듣자 새 어머니는 그만 주저앉고 말았습니다. “나도 이러려던 게
아니었어. 나도 이러려던 게 아니었어.”하며 울었고 그 친구와 허
신부도 울고 담임선생님도 울었습니다. 새어머니도 아버지에게 매를
많이 맞으며 자라서 그러려고 하지 않았는데 그렇게 되어버렸다는
것입니다.

  

허 신부의 친구는 성모 마리아를 사랑했던 제자의 이름인 요한으로
세례를 받았고 새 어머니는 마리아라는 이름으로 세례를 받았다고
합니다. 친구는 그 사건 이후로 새 어머니를 어머니로 받아들여 행복한
가정이 되었고 지금은 사회적으로도 성공했습니다. 새 어머니도
돌아가셔서 친어머니 옆에 나란히 묻혀있고 그 중간엔 성모상이 세워져
있습니다.

 

성모 어머니가 하느님의 어머니가 되신 이유는 하느님을 낳으셨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하느님이십니다. 하느님은 또한 자비이고
용서이고 평화이십니다. 따라서 누군가에게 하느님의 자비와 용서와
평화를 전해준다면 그 사람은 성모님처럼 하느님을 낳아 전해주는
역할을 하는 또 다른 성모님이 됩니다.

  

오늘 복음에서 성모 마리아는 손님을 맞이합니다. 가난한 목자들입니다.
성모 마리아는 당신이 낳으신 하느님을 소개시켜 드립니다. 목자들은
하느님을 찬미하며 평생을 살아갑니다. 하느님의 어머니는 또한
목자들의 어머니가 되셨습니다. 왜냐하면 그들을 당신 아드님을 통해
예수 그리스도를 찬미하는 하느님의 자녀들로 새로 태어나게 하셨기
때문입니다.

 

허윤석 신부님도 성모 마리아와 같은 경험을 한 것입니다. 우선 가정
안에 닥친 어려움 때문에 비뚤어질 수 있었는데도 성모 마리아를 통해
새로 태어났습니다. 그리고 자신 안에 잉태된 자비와 용서를 친구에게
전해주었습니다. 그 자비와 용서가 아기 예수님입니다. 친구도 그
자비와 용서를 보고 믿고 새로 태어났습니다. 결국 예수 그리스도를
찬미하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친구는 또 자신의 새어머니를 새로
태어나게 하였습니다. 자신이 낳은 자비와 용서로 새어머니의 성모
마리아가 된 것입니다.

  

어떤 신자분은 자신의 가게에 들어오는 모든 사람에게 요한 바오로
2세의 인사처럼 “찬미 예수님!”이라고 인사하여 1년에 30명 이상을
선교하였다고 합니다. 자신이 찬미하는 예수님을 통해 또 누군가가
그리스도를 찬미하게 만든 것입니다. 이렇게 예수 그리스도를 찬미하고
또 예수 그리스도를 찬미하게 하는 삶이 성모 마리아의 삶이고
어머니가 되는 길입니다.

  

성모 마리아께서 하느님의 어머니이시지만 우리도 성체성사를 통해
하느님을 잉태한 것이나 다름없습니다. 우리도 하느님의 새로운 자녀를
낳을 수 있습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성모 마리아께서 평생을 예수님을
찬미하게 하려는 마음으로 사셨듯이 우리도 예수님을 찬미하게 하려는
마음으로 살아야합니다. 먼저 찬미하고 찬미하게 해야 합니다. 성모
마리아의 모성을 닮는 길은 온 삶이 “찬미 예수님!”으로 집중되는
삶이어야 합니다.

 

- 수원 교구 전삼용 요셉 신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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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수원] 천주의 성모 마리아 대축일|조욱현 토마스 신부 강론

 

2020년 가해 1월 1일 천주의 성모 마리아 대축일

 

새해 첫 날이 밝았다. 오늘은 천주의 성모 마리아 대축일이며, 세계
평화의 날이다. 지금 시기는 성탄시기로 전례의 중심은 주님이시다.
그러나 아들을 기억할 때는 어머니도 기억하는 것이다. 왜 성모
마리아가 평화와 축복과 관계가 있느냐 하는 것은 ‘지극히 높으신
분’의 선물로서 ‘평화’가 마리아의 태중에서 봉오리를 맺고,
‘우리의 평화’이시며 하느님과 인간들 사이를 “원수가 되어 갈리게
했던 담을 헐어버리신”(에페 2,14) 그리스도께서 바로 마리아를 통해
오셨기 때문이다.

 

복음: 루카 2,16-21: 여드레 째 되는 날, 그 이름을 예수라고 하였다

8일은 깊은 의미를 갖고 있다. 하느님의 1주간이 꽉 찬 것이다. 이것은
주일로부터 주일로 부활주일로 완성된 모습이다. 이 8일이 된 날
할례를 통하여 아기가 하느님 백성의 구성원이 된 날이다. 그리고 그
이름을 예수“Jeshua'-Jah, 야훼는 구원이시다”라고 하였다.

 

“예수 그리스도는 구원에 있어서 우리의 어제이며, 우리의 오늘이고,
또한 영원히 같은 분이시여라”라고 하고 있다. 그분은 “우리를 위하여,
그리고 우리의 구원을 위하여 계신 분”으로 항상, 그리고 오늘 여기서
주어지는 분이다. 단 말씀을 받아들이고, 성찬을 모시고, 마음의 할례
즉 회개를 할 때, 그분은 우리를 복된 교회의 지체가 되게 하신다.

 

오늘 복음에서 천사들의 말대로 된 것을 확인하고 믿었던 목동들은
하느님의 영광을 찬양하며 돌아갔다. 이것은 말씀대로 이루어진 것을
보고 하느님께 찬미와 감사를 드린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에게도
말씀이 살아있을 때에 감사와 찬미가 나올 수 있으며, 그 안에 평화가
있다. 이 평화는 바로 구원이다.

 

목동들이 예수님을 본 순간 평화 즉 구원을 맛보고 돌아간다. 하느님께
그 평화에 대한 찬미와 감사를 드리면서 돌아갔다. 우리가 평화를
누리기 위해서는 부단한 노력이 필요하다. 주님을 만나 뵈옵기 위한
노력이다. 마치 천사의 말을 믿고 달려가는 목동들과 같이 말씀을 들은
즉시 실천하려고 하는 마음이다. 자신의 생각이나 뜻을 죽일 수 있는
그런 삶이 평화를 구원을 느낄 수 있다.

 

그러므로 우리가 하여야 할 일은 우리의 모습이 마리아의 모습, 즉
말씀을 잉태하여 낳아주는 마리아의 모습이 되어야 한다. 그래서 모든
이가 하느님을 “압바, 아버지!”로 부를 수 있을 때 참 평화-구원이 있을
것이다. 천주의 성모 마리아 대축일의 의미가 여기에 있다. 하느님의
어머니는 하느님의 말씀이 인간이 되셨다는 면에서 하느님의
어머니이다. 이제는 하느님의 말씀이 우리를 통해, 지금 여기서
태어나실 수 있어야 한다.

 

여기서 우리가 묵상할 것이 있다. 그것은 마리아가 스스로 하느님의
뜻을 자유롭게 받아들여(루카 1,38 참조) 당신 자신이 하느님의
어머니가 되신 신비로써 ‘구원’과 ‘평화’에 이바지하셨다는 것이다.
우리가 알아야 할 것은 다른 사람들을 위한 선물이 되지 못하는
‘모성’은 없다는 것이다. 우리와 같은 사람으로서 마리아에게서 이 같은
일이 나타났다면 모든 여인에게서도 마찬가지로 참된 사실이다.

 

모성은 결코 개인적인 것이 아니다. 이 때문에 낙태가 허용된 나라처럼
태아를 살해하도록 합법화하는 행위는 근본적으로 평화를 파괴하는
전쟁의 행위와 다를 것이 없다. 어머니와 자녀, 더 나아가 아직 태어나지
않아서 더욱 보호가 필요한 자녀와의 사이에 평화가 없다면 과연 어디에
평화가 있을 수 있겠는가?

 

그래서 성 바오로 6세께서는 1977년 ‘세계 평화의 날’의 주제로 이렇게
말씀하셨다. “당신이 진정 평화를 원한다면 생명을 보호하라. 생명은
처음부터 마지막 순간까지 누구에 의해서든지, 또한 전쟁, 테러,
무죄하고 아무런 힘도 없는 태아에 대한 어머니나 의사들의 폭력 등
어떠한 방법에 의해서도 침해되지 않도록 항상 보호되어야 한다.
생명을 거스르는 모든 범죄는 평화를 침해하는 행위이다.

 

특히 낙태로써 태어나려는 생명을 없애는 것처럼 오늘날 무섭게 또
때로는 합법적으로 국민 대중의 습성을 썩게 하는 행위는 더욱
그렇다...인간 생명은 잉태되는 순간부터 그 타고난 생을 다하는 마지막
순간까지 신성한 것이다. ‘신성하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 것일까?
그것은 곧 생명이 어떤 억압도 받지 않도록 되어있으며, 이해할 수 없는
것이며, 모든 존경과 배려와 정당한 희생을 받을 가치가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1976. 12. 8. 성 바오로 6세의 메시지).

 

오늘 이 축일을 지내는 것은 그러기에 마리아가 당신의 아들 그리스도를
우리에게 주신 당신의 모성으로써 이 세상에 이루신 생명과 구원과
평화의 선물에 대해서 묵상하고 깊이 사색하도록 할 뿐 아니라
그리스도의 강생 순간부터 그분의 생명과 밀접히 결합되어 변모된 모든
생명의 품위를 깨닫도록 촉구하고 있다는 것을 우리는 알아야 한다.

 

이러한 가운데 참 평화를 간직한 즉 구원의 기쁨을 가진 우리가 이 때
진정으로 남에게 복을 빌어줄 수 있으며, 그 복은 복을 빌어주는
이들에게, 그리고 우리들에게 되돌아오며, 서로를 하나가 되게 해주고,
그것은 성자를 통하여 아버지께 올려지는 것으로 이것이 참된 감사의
생활이며, 이 생활을 통해 우리는 평화를, 기쁨을, 구원을 항상 맛보며
살 수 있게 될 것이다. 먼저 평화를 맛보고, 그 평화를 빌어줄 수 있는
우리가 되도록 이 시간에 기도하자.

 

오늘은 새해 첫 날이기에 큰 희망과 부푼 꿈을 가질 수 있는 그러한
날이다. 첫 날이기에 의미를 지니는 날이며, 이 날 이 한해를 하느님께
바치자. 첫 날이므로 성경의 말씀대로 하느님께 바치고 한 해를 하느님
앞에 보다 성실하게 살도록 다짐하자. 이러한 지향이 중요하다. 비록
오늘 짧은 시간이지만 기도와 미사를 통하여 1년의 계획을 압축하여
설계하며 하느님께 온전히 바쳐야 하겠다. 그래서 복음에 나타난
목자들과 같이 우리도 언제나 하느님께 찬미와 영광을 드리는 삶을
살아가자.

 

- 수원 교구 조욱현 토마스 신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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