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월23일 세상의 빛이 되어

작성자 : 안나    작성일시 : 작성일2018-12-24 07:39:37    조회 : 244회    댓글: 0

▣ 2018년 나해 12월23일 [(자) 대림 제4주일]

제1독서 미카 예언서 5,1-4ㄱ
제2독서 히브리서 10,5-10
복음 루카 1,39-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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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울] 대림 제4 주일

2018년 다해 12월23일 학생 때의 기억입니다. 기차를 타고
수학여행을 갔습니다. 기차는 밝은 곳을 향해 달리지만, 가끔 터널을
지날 때가 있습니다. 터널에서는 밖이 보이지 않습니다. 그러나 곧
밝은 빛이 보이고, 아름다운 경치를 볼 수 있습니다. 터널이 끝이
없다면 답답할 것입니다. 여행의 재미도 느끼기 어려울 것입니다.
오늘은 대림 제4주일입니다. 우리는 대림 시기에 4개의 터널을 지나는
것 같습니다. 오늘은 주님의 탄생을 기뻐하며 지나온 대림 시기의
터널을 돌아보고 싶습니다. 

대림 제1주일은 ‘깨어 있음’을 이야기하였습니다. 하늘에서 비가
내려도 그릇을 뒤집어 놓으면 그릇에는 비가 고이지 않습니다.
냉장고도 텔레비전도 전기가 연결되지 않으면 그 기능을 다 할 수
없습니다. 깨어 있다는 것은 단순히 눈을 뜨는 것을 의미하는 것은
아닙니다. 깨어 있음은 하느님의 뜻이 무엇인지 찾는 것입니다.
하느님의 뜻은 기도를 통해서 알 수 있습니다. 기도하는 사람은 깨어
있는 사람이며, 기도하는 사람은 영적인 마음으로 세상을 보는
사람입니다. 예수님께서는 깨어 있는 사람의 모습을 이야기하십니다.
“여러분은 스스로 조심하여, 방탕과 만취와 일상의 근심으로 마음이
물러지는 일이 없게 하십시오. 사람의 아들 앞에 설 수 있도록 늘
깨어 기도하십시오.” 세상에는 깨어 있는 사람이 많습니다. 성공을
위해서, 권력을 위해서, 명예를 위해서 깨어 있는 사람이 있습니다.
깨어 있으므로 이웃의 마음을 아프게 하고, 깨어 있으므로 양심을
속이고, 깨어 있으므로 죄를 짓기도 합니다. 예수님께서는 깨어
있으라고 하십니다. 깨어 있음의 목적은 기도입니다. 기도는 하느님과
일치를 이루는 것입니다. 하느님과 일치를 이루는 사람은 거룩한 삶을
살 것이며 그것이 순례자의 삶입니다. 

대림 제2주일은 ‘공동선’을 이야기하였습니다. 이사야 예언자는
그것을 아름답게 표현하였습니다. “골짜기는 메워지고, 높은 산은
깎여질 것입니다. 굽은 데는 곧아지고 거친 길은 평탄하게 될
것입니다. 그리하여 모든 사람이 하느님의 구원을 볼 것입니다.
그날이 오면 늑대가 새끼 양과 함께 살고, 표범이 새끼 염소와 함께
지낼 것입니다. 암소와 곰이 나란히 풀을 뜯고, 사자가 소처럼 여물을
먹고, 젖 떨어진 아이가 살무사 굴에 손을 디밀 것입니다.” 초대교회는
이런 모습을 보여 주었습니다. “신자들은 모두 함께 지내며 모든 것을
공동으로 소유하였다. 그리고 재산과 재물을 팔아 모든 사람에게
저마다 필요한 대로 나누어 주곤 하였다. 그들은 날마다 한마음으로
성전에 열심히 모이고 이 집 저 집에서 빵을 떼어 나누었으며, 즐겁고
순박한 마음으로 음식을 함께 먹고, 하느님을 찬미하며 온 백성에게서
호감을 얻었다. 주님께서는 날마다 그들의 모임에 구원받을 이들을
보태어 주셨다.”(사도 2, 44-47) 

대림 제3주일은 ‘가난한 이들을 위한 우선적인 선택’입니다. 세례자
요한은 ‘우리가 어떻게 하면 됩니까?’라는 사람들의 질문에 이렇게
대답하였습니다. “옷을 두 벌 가진 사람은 못 가진 이에게 나누어
주십시오. 먹을 것을 가진 사람도 그렇게 하십시오. 정해진 것보다 더
요구하지 마십시오. 아무도 강탈하거나 갈취하지 마십시오. 여러분의
봉급으로 만족하십시오.” 예수님께서는 ‘착한 사마리아’사람의
비유를 들어서 말씀하셨습니다. 하느님의 자녀가 되는 것은 혈통이나,
직책이 아니라고 하셨습니다. 지금 강도에게 모든 것을 빼앗기고,
길에 쓰러져 있는 사람에게 실질적으로 도움을 주는 사람이 하느님의
자녀가 된다고 하셨습니다. 쓰러져 신음하는 사람을 못 본 척하고
스쳐 지나간 사람들은 하느님의 자녀가 될 수 없다고 말씀을
하셨습니다. 우리는 마태오 복음 25장에서 유명한 ‘최후의 심판’
이야기를 들을 수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놀라운 말씀을 하십니다.
‘너희 중에 가장 보잘것없는 사람에게 해 준 것이 바로 나에게 해 준
것이다.’ 가난하고, 헐벗고, 병든 사람에게 해 준 것이 바로 하느님께
해 준 것이라고 말씀하십니다. 하느님께 그렇게 따뜻하게 해
드렸으니, 천상의 잔치에 초대받을 것이라고 이야기하십니다. 자선은
나를 하느님 나라로 이끌어 주는 길이라고 말씀을 하십니다. 

대림 4주일을 지내면서 하느님의 아들이 사람이 되시는 ‘신비’를
묵상했으면 좋겠습니다. 하느님의 아들이 사람이 되시는 것은 바로
나를 위한 것입니다. 부족하고, 죄를 많이 지었고, 별로 잘한 것도
없는 나를 구원하기 위해서 모든 권능과 모든 권세를 가지진 분이
아주 연약한 아이의 모습으로 비천한 마구간에 태어난다는 것을
생각해야 합니다. 

예쁜 꽃이 그 고운 모습을 세상에 드러내기 위해서는 어두운 땅속에서
끊임없이 양분과 물을 찾아 고생하는 뿌리의 수고와 노력이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건강 할 수 있었던 것은, 우리가 기쁘게 생활 할
수 있었던 것은, 우리가 주님의 성탄을 이렇게 잘 준비할 수 있었던
것은 말없이 우리를 도와주고 우리를 위해 기도해 주시고, 우리를
사랑한 고마운 이웃들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오늘 우리가 함께 모여
기도하고, 주님께서 하신 약속들이 꼭 이루어지리라고 믿는다면,
주어진 하루하루를 감사하며, 기쁘게 생활한다면 바로 이곳에도
분명 주님께서는 오실 것입니다. 2000년 전에 엘리사벳과 마리아를
사랑하셨던 그 주님은 이 자리에 있는 우리도 사랑하시기 때문입니다.

“행복하십니다. 주님께서 하신 말씀이 이루어지리라고 믿으신 분!”

- 서울 대교구 조재형 가브리엘 신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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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수원] 요셉 신부님의 매일 복음 묵상 - 행복하려거든 부모를
믿지 마라.

2018년 다해 12월23일 대림 제4주일

<행복하려거든 부모를 믿지 마라>

복음: 루카 1,39-45
   
제목을 보시고 깜짝 놀라실 수도 있을 것 같아서 미리 말씀드리는
것인데, 여기서 말하는 ‘부모’란 아직 올바른 신앙을 가지지 못한
부모를 의미하는 것입니다. 그런 부모들은 자녀들에게 행복하려면
우선 돈이 충분히 있어야 한다고 가르칩니다. 하지만 돈은 세 끼니만
먹을 수 있다면 행복에 아무런 영향을 미치지 못한다는 것이 모든
과학적 연구의 결과입니다. 

이를 위해 진화론을 믿는 ‘서은국’ 교수가 쓴 것이지만, ‘행복의
기원’이란 책의 ‘행복은 아이스크림이다’라는 소제목의 한 챕터를
정리해 보도록 하겠습니다. 진화론을 믿는다면 행복을 위해 돈을 많이
소유하는 것이 유리하다고 써야하지만 연구들은 그것과 반대의
결과를 내어놓기 때문에 그도 어쩔 수 없이 행복은 재물의 소유와
상관이 없이 마치 아이스크림처럼 시간이 지나면 사라져버리는 것에
불과하단 결론을 내어놓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여러 연구 결과에 의하면 인생의 여러 조건들, 이를테면 돈, 건강,
종교, 학력, 지능, 성별, 나이 등은 행복의 개인차의 10~15% 정도밖에
영향을 주지 못한다고 말합니다. 그럼에도 대부분의 사람들이 미래의
이 10%의 행복을 위해 지금 행복할 수 있음에도 그 90%의 행복을
포기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예일 대학 경제학자 로버트 레인(Robert Lane) 교수에 의하면 지난
50년간 미국의 평균 가계소득은 약 2배로 증가했지만, 미국인 중
‘매우 행복하다’는 답변을 한 사람은 1957년에는 53%, 2000년에는
47%로 행복지수가 오히려 감소했다는 것입니다. 덴마크, 스웨덴,
노르웨이 같은 스칸디나비아 국가들의 행복지수가 높기 때문에
소득과 비례한다고 믿겠지만 오히려 그들보다 부강한 일본의
행복도는 그 국가들에 비길 바가 못 됩니다. 그들이 행복한 이유는
보장된 자유, 타인에 대한 신뢰, 그리고 인간에 대한 존중이 바탕이
되어있기 때문입니다. 

이밖에도 여러 연구 결과들을 소개하는데, 한 예로 미국 일리노이
주에서 지금의 화폐가치로 약 100억 원의 상금을 받았던 복권
당첨자들에 대한 연구입니다. 복권 당첨 1년 뒤, 21명의 당첨자들과
주변 이웃의 행복감을 비교했더니 놀랍게도 별 차이가 없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도 한국 대학생들이 행복하기 위해 가장 기대하는
것이 10년 넘게 변함없이 복권당첨이라고 합니다. 

그렇다면 복권 당첨, 새 집, 월드컵 4강의 환희 등의 행복감은 어느
정도 지속될까요? 저자가 대학생들을 대상으로 2년 동안 추적 조사해
본 결과 그들이 일상에서 겪는 좋은 일들(새로 생긴 남자친구, 대학원
입학 등)과 나쁜 일들(결별, F학점 등)이 행복에 미치는 영향은 약
3개월이었다고 합니다. 물론 얼굴이 잘 생기고 못 생기고도 행복에
영향을 못 미치고, 이런 예는 수도 없이 많아서 일일이 다 열거할
수도 없습니다. 

더 중요한 것은 복권 당첨과 같은 행복을 추구하면 얻기도 어렵지만
비록 그 행복을 얻는다고 해도 사람들은 그 짜릿함을 맛보았기
때문에, 일상의 소소한 행복을 느끼지 못해 더 불행해진 경우가
많다는 것입니다. 큰 차를 몰던 사람이 첫 차로 작은 차를 구입한
기쁨을 느낄 수 없는 것과 같습니다. 예를 들어 ‘음식과 맛’이라는
제목으로 한 연구에서 대학생들이 초콜릿을 먹도록 하고, 한
집단에다가는 선명한 돈 사진을 한 장 은근슬쩍 보여주게 했는데,
돈을 본 학생들은 초콜릿을 먹는 둥 마는 둥 별 맛을 느끼지 못하며
먹었지만, 돈을 보지 못한 학생들은 웃고 떠들며 초콜릿 맛을
음미하며 먹었다는 결과가 있습니다. 돈을 바라면 일상의 행복을
잃습니다. 

하지만 지금 부모들은 아이들에게 어떻게 가르칩니까? 좋은 대학
가야, 돈을 많이 벌고 성공해야, 결혼을 꼭 해야, 주위에 친구가
많아야 등의 자신의 생각을 아이들에게 행복이라고 주입하지
않습니까? 아이들은 부모가 자신들을 키워준 덕분으로 부모의
말이라면 스펀지처럼 흡수하고 믿어버립니다. 이렇게 3개월의 행복을
위해 평생을 소진하며 살아가게 되는 것입니다. 

오늘 복음에서 성모 마리아는 엘리사벳에게 이런 인사를 듣습니다.

“행복하십니다, 주님께서 하신 말씀이 이루어지리라고 믿으신 분!”

왜 성모님은 부모를 믿지 않고 하느님의 말씀을 믿으셨을까요? 부모의
말을 믿으셨다면 어떻게 되셨을까요?

“여자는 예쁘게 자라서 훌륭한 신랑감을 만나 아들 딸 잘 낳고
신앙교육 잘 시키며 사는 게 제일 행복하단다.”

이런 말을 믿었다면 진정 하느님의 어머니가 될 수 있다는 천사의
말을 믿으실 수 있으셨을까요? 아마도 즈카르야처럼 의심하셨을
것입니다. 성모님의 믿음은 인간이 하느님처럼 행복할 수 있도록
창조되었다는 믿음이었습니다. 하느님은 복권의 행복을 추구하지
않으십니다. 베드로가 물 위를 걸을 때 느꼈던 바로 그 행복을
추구합니다.

베드로 사도도 부모의 말을 믿고 인간은 물 위를 걸을 수 없다고
믿었다면 예수님이 걸으신다고 감히 자신도 걷겠다고 말하지는
못했을 것입니다. 하지만 베드로 사도는 예수님이 인간 이상의 행복을
우리가 누리기를 원한다는 것을 믿었습니다. 하느님이 우리를
사랑하시면 당신처럼 행복하기를 바라신다는 것을 믿은 것입니다.
그래서 주저 없이 물로 뛰어내린 것입니다. 물 위를 걷는 행복, 이는
인간은 그럴 수 없다고 믿고 있었던 나머지 사도들은 느낄 수 없는
행복이었습니다. 그 행복의 시작이 교회의 시작이 되었던 것입니다. 

행복은 이렇게 누군가에 의해 주입되고 그것을 믿으면 나의 행복이
됩니다. 보통은 부모가 자녀들에게 ‘너는 이만큼 행복할 수 있어!’
라는 믿음을 줍니다. 돈을 벌어야 행복할 수 있다고 말하는 부모는
자녀에게 더 큰 행복을 추구할 수 없도록 믿음의 금을 그어놓는
것입니다. 그러면 자녀는 자신이 그 정도 주제밖에 되지 않는다고
믿어버리고 더 큰 행복의 기회가 와도 잡지 못합니다. 

유튜브에 책을 소개하는 유명 유튜버 중 ‘김새해(잔다르크)’라는 분이
있습니다. 그녀는 스스로 초등학교 때부터 총 7차례의 성추행을
당했다고 말합니다. 자신이 예뻐 보이지 않으면 그런 상처를 입지
않을 것이라고 여겨 폭식증을 10년 넘게 앓고 그러면 안 된다고
생각하여 거식증도 함께 앓았다는 것입니다. 매우 가난하여
아르바이트를 하며 남이 남겨 놓은 음식을 몰래 비닐에 싸 냉장고에
얼려놓고 그것을 녹여 먹어가며 산 세월이 길었습니다. 그때 그녀는
돈이 생의 전부였고 그 돈을 벌기 위해 발버둥 치다가 결국 신장에
문제가 생겨 죽을 위험에 놓였습니다. 병원에 1년 동안 입원해
있었다고 합니다. 

죽음 앞에서 모든 것을 내려놓고 하느님께 모든 것을 맡기며 계속
‘감사합니다. 사랑합니다.’만 중얼거렸습니다. 그러자 삶이
바뀌었습니다. 어떠한 상황에서도 행복할 수 있음을 믿은 것입니다.
그러자 자기 자신이 소중하게 여겨지고 더 행복해질 수 있다는 것도
믿게 되었습니다. 그렇게 죽음의 위기에서 다시 건강을 찾게 되었고
지금은 유명 유튜버로 상당한 액수의 돈을 벌고 있습니다. 돈을 쫓는
게 아니라 자신을 찾아오게 만들어야 한다고 말합니다. 지금은
결혼하여 행복한 가정을 꾸리며 살고 있고 자녀도 3명씩이나 낳아서
잘 키우고 있습니다. 

자신의 행복은 자신이 결정하는 것입니다. 그 결정해 놓은 대로
살아갑니다. 그리고 나쁜 일이 일어나면 ‘거봐 맞잖아. 내 팔자에 뭔
행복이 있겠어!’라고 자신이 정해놓은 행복을 합리화하며 살아갑니다.
지금 우리가 불행하다면 누군가 그런 나의 행복의 수준을 믿게 한
것이고 그 믿어버린 것이 맞도록 살아가는 것뿐입니다. 물론 행복한
사람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는 “너는 하느님의 자녀고 하느님이야, 하느님이 될 수 있어.
그리고 하느님이 누리는 행복을 누릴 수 있어.”라고 말씀하시는
하느님의 행복을 믿어야합니다. 이것이 겸손입니다. 나는 끝까지
인간이라고 말하며 하느님의 말씀을 믿지 않는 것이 교만입니다.
하느님의 어머니가 될 수 있다는 천사의 말을 믿으신 성모님이
교만하신 것이 아니라, 우리가 그렇게 될 수 없다고 믿는 것이
교만입니다. 그리고 믿는 만큼만 행복하게 돼 있습니다. 

우리는 물 위를 걸을 수도 있고 그리스도께서 누린 행복을 똑같이
누리며 살 수 있는 존재들입니다. 내가 더 행복할 수 있는 사람이라고
끊임없이 되뇌고 믿읍시다. 그러면 오늘 성모님께서 들으신 그 말씀을
우리도 듣게 될 것입니다.

“행복하십니다. 하느님의 말씀이 이루어지리라 믿으신 분!”

- 수원교구 전삼용 요셉 신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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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수원] 이웃 사랑의 실천으로 성탄을 준비하자. /
조욱현 토마스 신부 강론
 
2018년 다해 12월23일 대림 제4주일: 다해: 이웃 사랑의 실천으로
성탄을 준비하자.

“주님의 어머니께서 나를 찾아주시다니 어찌된 일입니까?”
(루가 1,43). 엘리사벳의 이 말은 주님을 기다리는 교회의 느낌을 잘
대변해 주고 있다. 그러면서 오늘의 전례는 깨어 기다림의 표본이
되시는 마리아의 모습을 제시하고 있다. “저는 주님의 종입니다.
말씀하신 대로 저에게 이루어지기를 바랍니다.”(루가 1,38)라고 복음
전 노래를 부른다. 이 마음의 자세는 새로운 강생의 기적이 우리
안에서도 이루어지도록 하기 위해 필요한 자세이다. 사실, 주님께서
우리의 마음속에 태어나시지 못한다면 이 성탄은 나에게 있어 아무런
의미가 없다.

복음: 루카 1,39-45: 주님의 어머니께서 나를 찾아 주시다니...

오늘 복음에는 마리아와 엘리사벳 모두가 아기의 출산을 간절히
기다리고 있는 두 여인의 모습으로 나타난다. 그러나 그 내용은
마리아의 태중에 있는 아기에게 집중되고 있다. 세례자 요한이
태중에서 뛰었다는 것은 역사가 이미 그리스도를 중심으로 움직이고
있다는 것이다.

마리아가 서둘러 간 ‘유다 산악 지방에 있는 한 고을’(29절)은
나자렛에서 150km 이상 되는 예루살렘 서쪽 6km 지점에 있는
‘아인카림’(Ain-Karim)이다. 마리아가 이 긴 여행을 할 수 있었던 것은
사랑과 봉사의 정신이 컸었음을 말해준다.

마리아가 걸음을 서둘러 길을 떠난 것은, “그 예언을 의심해서이거나
천사가 알려준 내용이 불확실해서거나 그 증거에 대한 의심이
생겨서가 아니라, 하느님께서 그녀에게 하신 약속 때문에 기뻤고 바로
그 내적인 기쁨에서 오는 열정에 따라 자신이 해야 할 일을
헌신적으로 수행하고자 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성령의 은총으로
서두르지 않을 수가 없었던 때문이다”(S. Ambrosius, In Lucam 2,19).

곧 해산하게 될 늙은 친척을 돕기 위한 이 먼 여행의 의미는
그리스도께서 강생을 통해 자기 자신을 낮추고 봉사하기 위해
겪어야 했던 보다 힘든 여정에 대한 완곡한 표현이라고 할 수 있다.
엘리사벳은 성령을 가득히 받아(41절) 이러한 사실을 알아차렸기
때문에 마리아를 만났을 때는 이미 마리아를 ‘주님의 어머니’로
인식하고 있었다(43절). 그리고 성서는 그리스도를 잉태한 마리아를
구약의 계약의 궤와 같이 하느님의 현존으로 보고 있다는 것이다. 즉
엘리사벳은 자기 집으로 그 하느님의 현존이 옮겨와 있다는 사실에
놀라며 큰 소리로 마리아께 “여인들 가운데에서 가장 복되신”(42절)
분이라고 찬양한다.

마리아가 이렇게 위대하게 된 것은 그녀의 신적인 모성(母性)이다.
그러나 이러한 영광이 주어질 수 있었던 근본적인 이유는 주님의
말씀에 대한 그녀의 완전한 신앙이다. 마리아는 자신의 신앙으로
‘계약의 궤’가 되었고 ‘주님의 어머니’가 되셨다. 여기서 엘리사벳은
최초로 축복의 인사를 한다. “행복하십니다, 주님께서 하신 말씀아
이루어지리라고 믿으신 분!”(45절).

이제 아브라함으로부터 예언자를 거쳐 마리아에 이르기까지 흘러
내려온 이 신앙을 우리가 본받아야 한다. 하느님의 위대한 뜻이
이루어지기 위해서는 마리아와 같이 ‘말씀하신 대로’(루가 1,38)
우리에게 행하시도록 그분께 온전히 맡겨드림에서 이루어질 수
있다는 사실을 우리는 언제나 알고 또 그렇게 실천하여야 한다.

제2독서: 히브 10,5-10: 하느님, 저는 당신 뜻을 이루려고 왔습니다

더 나아가 그리스도께서는 마리아보다도 더 온전히 당신을 아버지께
의탁하시고 십자가 위에서 모든 것을 다 바치시기까지 하셨음을
2독서에서 저자는 말하고 있다. 히브리서 저자는 그리스도께서 자신의
뜻을 항구히 아버지께 봉헌함으로써 가장 이상적인 희생을
실현시켰는지를 알려주고 있다. 예수께서는 당신의 몸을 “단 한번
바쳐짐으로써 우리가 거룩하게 되었습니다.”(10절).

주님께서 사람이 되신 것은 바로 이 희생을 위한 것이기 때문에, 곧
다가오는 성탄의 축제를 통해 거행하게 될 강생의 신비는 근본적으로
파스카 신비에 정향되어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마리아께로부터
받은 육은 성금요일의 희생적 봉헌을 위한 것이며, 부활 날 다시금 그
몸을 둘러싸게 될 영광을 위한 것이다.

우리는 이제 그리스도를 받아들임으로써 마치 엘리사벳이 한 것처럼
마리아도 받아들이게 된다. 마리아를 받아들이고 그분의 삶을 본받을
수 있을 때, 즉 ‘길을 떠나 서둘러’(39절) 이웃으로 향할 수 있을 때,
비록 그 여정이 험하고 고통을 수반하겠지만, 참된 그리스도인으로서
세상의 구원을 위한 그리스도, 즉 사랑을 낳아줄 수 있는 자가 될
것이다.

이 여정에서 우리는 또한 십자가의 신비와 파스카의 기쁨도 아울러
충만히 체험할 수 있게 될 것이다. 이러한 기쁨 때문에 우리는 더욱
주님의 오심을 간절히 기다릴 수 있고 사랑의 삶을 살 수 있는 것이
아닐까? 마리아께서 아들을 잉태하시고 낳아 주실 수 있었던 그 삶을
묵상하면서 우리도 그 삶을 본받아 실천하도록 주님의 은총을 청하자.

- 수원교구 조욱현 토마스 신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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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청주] 누구 다른 사람없소 |반신부의 복음 묵상
 
2018년 다해 12월23일 대림 제4주일(루카1,39-45)

누구 다른 사람 없소.

찬미예수님, 사랑합니다. 하느님께서는 우리를 사랑하십니다. 우리에
대한 하느님의 사랑은 한이 없으십니다. 당신의 사랑을 한없이 주고
싶어서 외 아들을 세상에 보내주셨고 그 아들을 통하여 구체적인
사랑을 체험케 해 주셨습니다. 그런데 사랑으로 우리에게 오시는
주님은 마리아라는 한 인간의 믿음에 따르는 순명을 통해서
오셨습니다. 이 시간 믿음에 관해 묵상하는 가운데 우리 마음 안에
주님을 새롭게 받아들일 수 있기를 바랍니다.

여러분은 성탄 준비를 다 하셨습니까? 트리를 만들고 구유장식을
하였고, 카드를 보내고 선물 준비를 했다고 성탄준비가 끝났다고 할
수 있나요? 아직도 마음 안에 시기, 질투, 미움, 원한을 품은채로
이기적이고 자만심이 가득 찬 채로인데....그 안에 예수님께서 편안히
머무실 수 있을까요? 열심히 일을 했지만 하느님의 일을 하지 않고
내가 하고 싶은 일만 했는데...희생, 봉사, 사랑의 실천에
소홀하였는데 어떻게 그 안에 주님께서 기쁘게 거처하실 수 있을까
생각해 봅니다. 외부를 화려하게 장식하는 것보다 맑고 깨끗이
정돈된 마음, 죄악으로부터 해방된 마음을 주님께서 원하신다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하겠습니다.

우리가 믿음의 조상으로 부르는 아브라함은 믿음이 있었기 때문에
아들 이사악을 제물로 바쳤습니다. 이사악은 외아들 이었고 그를 두고
하느님께서는 “이사악을 통하여 후손들이 너의 이름을 물려받을
것이다.” 하고 약속까지 해 주신 아들이었지만 그를 기꺼이
바쳤습니다.(히브11,17) 하느님을 믿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거기서
하느님을 만났습니다.

번제물을 바치러 산으로 올라가는 도중에 아들 이사악이 “아버지!
불씨도 있고 장작도 있는데, 번제물로 드릴 어린양은 어디 있습니까?”
하고 묻습니다. 참으로 가슴이 메어지는 물음입니다. 아들을 제물로
바치려 하는 데 아들이 그 제물이 어디 있느냐고 묻는 것입니다. 그때
아브라함은 차마 ‘제물은 바로 너다’ 하고 말하지 못합니다.
‘번제물로 드릴 어린양은 하느님께서 손수 마련하신단다’ 하고
대답했습니다. 그런데 바로 그 말씀을 아들을 제물로 바치는 그
자리에서 체험케 되었습니다.

창세기 19장에 보면 소돔의 멸망과 롯의 구원이야기가 전개 됩니다.
주님께서는 롯에게 자비를 베푸셔서 천사들을 통해 그 가족들의
살길을 알려줍니다. 롯의 사위들은 그 소리를 우습게 여겼고,
천사들은 결국 롯과 그의 아내와 두 딸의 손을 잡고 성읍 밖으로
데리고 나와 말했습니다. “달아나 목숨을 구하시오. 뒤를
돌아보아서는 안 되오. 이 들판 어디에서도 멈추어 서지 마시오.
휩쓸려가지 않으려거든 산으로 달아나시오”(창세19,17). 마침내
소돔과 고모라에 유황과 불이 퍼부어졌고 온 성읍들과 온 들판들이
땅 위에 자란 모든 것들이 멸망에 이르렀습니다. ‘그런데 롯의 아내는
뒤를 돌아보다 소금 기둥이 되어버렸습니다’(창세19,26). 돌아보지
말라고 했으면 돌아보지 말아야죠. 왜 돌아봅니까? 믿지 못하기
때문이지요. 하느님께서 살려주신다고 길을 알려주었는데 그대로
하지 않고서는 하느님께서 벌을 내렸다고 원망을 합니다. 하느님께서
벌을 내리신 것이 아니라 내가 죽음을 자초한 것입니다.
자업자득입니다.

민수기 21장4절 이하에는 구리뱀 이야기가 나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갈대바다로 가는 길에 들어서서 하느님과 모세에게 불평을
합니다. “당신들은 어쩌자고 우리를 이집트에서 올라오게 하여, 이
광야에서 죽게 하시오? 양식도 없고 물도 없소. 이 보잘 것 없는
양식은 이제 진저리가 나오.”(21,5) 그러자 주님께서 불 뱀을 보내어
그것들이 백성들을 물어 이스라엘 백성들이 많이 죽게 되었습니다.
백성들이 모세에게 와서 간청했습니다. “우리가 주님과 당신께
불평하여 죄를 지었습니다. 뱀을 치워주시도록 주님께 기도해
주십시오.” 그래서 모세가 기도하자 주님께서 “너는 불 뱀을 만들어
기둥 위에 달아놓아라. 물린 자는 누구든지 그것을 보면 살게 될
것이다.” 그리하여 모세는 구리 뱀을 만들어 그것을 기둥에
달아놓았습니다. 뱀이 사람을 물었을 때, 그 사람이 구리 뱀을
쳐다보면 살아났습니다.(21,9) 그러나 보지 않은 사람은 죽었습니다.

믿음은 그렇다고 아는 것이 아니라 그렇게 하는 것입니다. 주님의
말씀을 따라 그대로 하는 사람은 새로 태어나게 되고 그렇게 하지
않는 사람은 죽게 되는 것입니다. 이 죽음 역시 하느님의 벌이 아니라
스스로 선택한 것입니다.

등산을 좋아하는 한 젊은이가 산에 올랐다가 어둠을 맞게 되었습니다.
서둘러 내려가려다가 그만 발을 헛디뎌 벼랑아래로 미끄러졌습니다.
가까스로 작은 나뭇가지 하나를 붙잡고 매달렸습니다. 그는 겁에
질려 소리쳤습니다. 위에 누구 없소? 누가 날 좀 구해줘요! 하며
소리쳤습니다. 그때 한 음성이 들려왔습니다. “내가 여기 있다. 나는
너의 하느님이다. 내가 너를 구해주리라.” 젊은이는 이제 살았구나!
하며 “당신이 거기 계시니 정말 기쁩니다.” 하고 소리쳤습니다.
그러자 하느님께서 “네가 잡고 있는 나뭇가지에서 손을 떼거라”
하였습니다. 그러니까 젊은이가 긴장하며 “그렇지만… 하느님..…”
주저하는 젊은이에게 하느님께서 물으셨습니다. “너는 나를 믿느냐?”
그러자 젊은이가 “예, 하느님, 당신을 믿습니다. 제가 당신을 믿기
때문에 매주 성당에도 나가고 성경공부도 하고 매일 기도시간도
가집니다”. 하고 대답하였습니다. 하느님께서 다시 말씀하셨습니다.
“믿는다면 그 나뭇가지에서 손을 떼어라.” 잠시 침묵이 흐르는가
싶었는데 젊은이가 아주 큰 소리로 외쳤습니다.
“거기 누구 다른 사람 없소?”

주님의 가르침은 이해하는 것이 아니라 그대로 하는 것입니다. 정말
믿는 대로 행동한다는 것이 쉽지 않습니다. 그러나 믿음에 행동이
따르지 않는 다면 그것은 죽은 믿음입니다. 마리아는 주님께서 천사를
통해 하신 말씀을 그대로 받아들였습니다. 이해하기 어렵고 목숨을
내놓아야 하는 처지를 알면서도 “저는 주님의 종입니다. 말씀하신대로
저에게 이루어지기를 바랍니다”(루카1,38). 하고 말하였습니다. 종은
주인의 뜻대로만 움직여야 합니다. 종에게는 주인에 대한 의무만 있을
뿐 권리가 없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종을 자처하였습니다. 그것은
주님을 믿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마침내 주님을 잉태하게 되었고
빛이신 주님께서 탄생하셨습니다.

성모님은 엘리사벳이 말한 대로 “주님께서 하신 말씀이 꼭
이루어지리라고 믿었기에” 행복하신 분이십니다. 많은 사람은
성모님을 예수라는 훌륭한 아들을 낳아서 젖을 먹인 여인이기 때문에
행복한 분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더 근원적인 것은 하느님의
말씀을 듣고 그 말씀에 순종하였기 때문에 행복합니다. 어떤 여자가
목소리를 높여 예수님께 “선생님을 배었던 모태와 선생님께 젖을
먹인 가슴은 행복합니다.”하고 말했을 때 예수님께서 분명하게
말씀하셨습니다. “하느님의 말씀을 듣고 지키는 사람들이 오히려
행복하다.”(루카11,29)

믿음은 이리저리 계산하고 이해하려는 것이 아니라 그냥 그대로
받아들이고 행하는 것입니다. 말씀대로 사는 것입니다. 그 때
상상하지 못했고, 기대하지 못했던 일이 일어납니다. 하느님의 능력을
보게 됩니다. 그런데 실제 행하지는 않으면서 능력을 먼저 보려고
하니 안타까울 뿐입니다.

여러분은 먼저 하느님의 말씀을 믿으십시오. 그리고 믿는 바를
행하십시오. 그리하면 하느님의 능력을 보게 될 것입니다. 2독서
히브리서 10장 9절의 말씀대로 “보십시오. 하느님, 저는 당신의 뜻을
이루러왔습니다.” 하고 고백하며 ‘굳건히 서서 흔들리지 말고
언제든지 주님의 일을 하십시오. 주님을 위해 노력하는 수고는 결코
헛되지 않습니다.’(1코린 15,58) 우리의 어머니 마리아께서 주님의
말씀이 꼭 이루어지리라는 믿음 안에 주님의 탄생을 가져왔듯이 이제
우리의 믿음으로 이 세상에 구세주 예수님을 낳아드려야겠습니다.
주님의 성탄을 기다리는 만큼 우리 모두가 믿음의 사람, 그래서
행복한 사람이 될 수 있기를 희망합니다. 가정이건 직장이건 어디에
서 있든 “저는 당신의 뜻을 이루러 왔습니다.” 하고 고백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더 큰 사랑으로 사랑합니다.

@@ 어느 시골 마을에 스스로 자기자신을 못된 사람이라고 생각하는
아이가 있었습니다. 성탄절이 다가오자 그 아이도 선물을 받고
싶었습니다. 그런데 자기가 착한 사람이 아니기 때문에 선물을 못
받으면 어쩌나 걱정이 되었습니다. “나만 못 받으면 왕따가 되는
데….” 그러다가 예수님께 편지를 쓰기로 했습니다. “예수님, 제가
앞으로 착한 아이가 될 테니 선물을 꼭 보내주세요!” 그렇지만
싸우거나, 거짓말을 안 할 자신이 없었습니다. 결국 쓰던 편지를 찢어
버리고 성당으로 갔습니다. 성당을 한참 돌아보다 작은 성모님상을
훔쳐 달아나서 편지를 다시 쓰기 시작했습니다. “ 예수! 내 말을 잘
들어라. 협박용이 아니라 실제 상황이다. 지금 내가 네 어머니를
인질로 잡고 있다. 그러니 네 어머니를 살리고 싶거든 24시간 이내에
선물을 보내라. 선물을 보낼 장소는 000이다.”

우리는 때때로 믿음으로 기도하지 못하고 협박하고, 흥정하고 달라고
떼를 씁니다. 예수님께서 “너희가 기도하며 구하는 것이 무엇이든지
그것을 이미 받았다고 믿기만 하면 그대로 이루어질 것이다”
(마르11,24) 라고 말씀하시지만 믿음을 가지고 기도하기가 너무
어렵습니다. 이번 성탄의 아기예수님께 드리는 선물은 빛의 삶을 사는
자기 자신의 모습으로 했으면 좋겠습니다. 여러분이 세상의 빛이 되어
또 하나의 작은 예수님이 되십시오! @@
 
- 청주교구 반영억 라파엘 신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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