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월12일 죽은 후 지옥가기 딱 좋은 인생

작성자 : 안나    작성일시 : 작성일2018-09-12 07:02:08    조회 : 220회    댓글: 0

▣ 2018년 나해 9월12일 [(녹) 연중 제23주간 수요일]

제1독서 1코린 7,25-31
복음 루카 6,20-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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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울] 연중 제23주간 수요일

2018년 나해 9월12일 연중 제23주간 수요일

현대인들은 물질적인 풍요를 누리고 있지만, 정신적인 면에서는 많은
어려움을 겪고 있습니다. 생활에 편리한 도구들이 주변에 있지만,
영적인 갈증을 풀어줄 쉼터가 별로 없습니다. 빛의 속도로 정보를
주고받지만, 밭에 묻힌 보물을 찾기는 더욱 힘들어지고 있습니다.
한국인의 사망원인 중에 자살이 높은 순위를 차지하고 있습니다. 경쟁
사회가 주는 압박감이 있으며, 함께 고민을 나눌 친구가 없으며,
정신적인 스트레스를 많이 받기 때문입니다. 

30일 피정을 하면서 늘 강조하는 것이 중용입니다. “하느님의 영광을
위해서라면 오래 사는 것보다 일찍 죽는 것을 택할 수 있고, 부유한
것보다 가난한 것을 택할 수 있고, 건강한 것보다 아픈 것을 택할 수
있다.”라고 이야기합니다. 순교자들, 성인과 성녀들은 모두 중용의
삶을 살았습니다. 세상의 욕망과 세상의 가치를 따르지 않았고,
하느님의 영광이 이루어지기를 바랐습니다. 오늘 바오로 사도는
중용의 삶이 중요하다고 이야기합니다. 결혼하는 것도, 헤어지는
것도, 재혼하는 것도, 혼자 사는 것도 그 자체로는 큰 의미가 없다고
합니다. 중요한 것은 그런 모든 행위의 중심에 하느님의 영광이
있어야 한다고 말을 합니다. 지금 눈에 보이는 세상은 언젠가 우리가
만나야 할 세상을 향해 들어가는 문이기 때문입니다. 

장자는 중용의 삶을 ‘빈배’라는 글에서 잘 보여주고 있습니다.

“건너편의 배가 다가오면 소리를 칠 것입니다. 부딪칠 위험이 있기
때문입니다. 소리를 쳐도 계속 다가오면 욕을 할 것입니다. 배가
부딪치면 물에 빠질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그 배에 아무도
없으면 소리치지도 않고, 욕을 하지도 않을 것입니다. 빈배이기
때문입니다. 인생의 강을 건너는 그대의 배를 빈배로 만들 수 있다면
누구도 소리치거나 욕하지 않을 것입니다.” 우리가 중용의 삶을 살지
못하는 것은 ‘시기, 질투, 분노, 원망, 교만’의 파도가 가득하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오늘 복음에서 참된 행복을 이야기하십니다. 어쩌면
그것은 중요의 삶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 서울 대교구 성소국장 조재형 가브리엘 신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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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울] 죽은 후 지옥가기 딱 좋은 인생

2018년 나해 9월12일 연중 제23주간 수요일

“행복하여라, 지금 굶주리는 사람들! 너희는 배부르게 될 것이다.
행복하여라, 지금 우는 사람들! 너희는 웃게 될 것이다. 사람들이
너희를 미워하면, 그리고 사람의 아들 때문에 너희를 쫓아내고
모욕하고 중상하면, 너희는 행복하다! 그날에 기뻐하고 뛰놀아라.
보라, 너희가 하늘에서 받을 상이 크다. 사실 그들의 조상들도
예언자들을 그렇게 대하였다.(루카 6,21~23)”

지금과 그 때는 세상서 살 때와 죽음 후 인데 참 실감나는 알림입니다.
어쩜 이렇게 실황을 보듯 사실적으로 표현하셨는지 이건
놀라야합니다. 죽음 후를 이렇게까지 생생하게 설명하신 분 인류사상
예수님뿐입니다.

자신의 죽음과 부활상황 자세히 알려주셨는데 그대로였으니 더
놀랍죠. 이런 말씀 하신 예수님을 십자가죽음과 부활보며 절대
인정해야합니다. 이런 예수님을 불신무시하고 살면 죽은 후 지옥가기
딱 좋은 인생인데.

내 인생 내 맘대로가 절대 아니고 예수님의 가르침대로 살아야
됩니다. 가톨릭만이 예수님을 정확히 알리는 참 종교임 인터넷교리가
알립니다.

- 서울 대교구 이기정 사도요한 신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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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수원] 요셉 신부님의 매일 복음 묵상 - 광대의 눈물

2018년 나해 9월12일 연중 제23주간 수요일

<광대의 눈물>

복음:루카 6,20-26

어느 나라에 아주 예쁜 공주가 살고 있었습니다. 하루는 공주가
왕에게 달을 따다 달라고 보채기 시작했습니다. 왕과 왕비는 공주에게
“달은 딸 수 없는 거란다.” 하면서 설득했습니다. 그러나 공주는 들은
채도 하지 않고 졸라댔습니다. 끝내는 병적인 증세까지 보이게
되었습니다. 왕은 유명한 학자나 의원을 불러들이는 등 온갖 노력을
다하였습니다.

학자들은 “공주님 달은 너무 멀리 있어 가까이 다가설 수도 없습니다.
달은 너무 커서 가까이 갔다 하더라도 따올 수 없습니다. 더 이상 달을
생각하지 마십시오.”라고 설득하였습니다. 그러나 공주는 자기의 뜻을
굽히지 않았고 조금씩 죽어가기 시작했습니다.

이때 공주와 친하게 지내던 광대가 나타나 전후 사정을 알고는 몇
가지 질문을 하였습니다.

“공주님! 달은 어떻게 생겼습니까?”
“달은 동그랗게 생겼지 뭐.”
“그럼 달은 얼마나 큰가요?”
“바보 그것도 몰라? 달은 내 손톱만하지. 손톱으로 가려지잖아.”
“그럼 달은 어떤 색인가요?”
“달이야 황금빛 나지.”
“알겠습니다. 그럼 제가 가서 달을 따올 테니 조금만 기다리십시오.”

공주의 방을 나온 광대는 손톱 크기만 한 동그란 황금 구슬을 만들어
공주에게 가져다주었습니다. 공주는 곧 병이 나았습니다.  

광대는 남을 웃기기 위해 눈물을 흘리는 사람입니다. 남을 행복하게
하기 위해 자신은 피눈물을 흘릴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비웃기보다는
공감하고 기쁘기보다는 눈물을 흘리기를 선택한 광대만이 공주의
병을 고칠 수 있었습니다. 그래서 광대의 눈물은 기쁨으로 바뀝니다.
참다운 광대는 눈물을 흘리기는 하지만 기쁘기 위해 우는 사람입니다.

인생은 반전의 연속입니다. 그러니 지금 슬퍼하는 사람이 기쁠 준비가
된 사람입니다. 항상 웃고만 있을 수 없기 때문에 지금 웃는 사람은
슬퍼질 준비가 된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조금은 억지 같지만 항상
기쁘고 싶다면 항상 슬프면 됩니다. 너무 기뻐하지 마십시오. 주위엔
슬픈 사람들이 너무 많습니다. 나의 웃음소리가 그들에게 더 큰
상처를 줄 수도 있습니다.

하느님도 우리에겐 광대이십니다. 하느님은 인간을 행복하게 하시기
위해 눈물을 흘리시는 분이십니다. 그렇다고 하느님이 불행한 분은
아니십니다. 하느님은 행복 자체이십니다. 참 사랑을 위해 눈물 흘릴
줄 모르는 사람이 참으로 불행한 사람입니다.

대부분 말의 실수는 웃고 떠들 때, 기분이 좋을 때 나옵니다. 이때는
교만해져 있는 때입니다. 남이 나를 좋게 말할 때도 그렇습니다. 이때
교만해지면 무슨 말이 나올지 모릅니다. 너무 기분이 좋아지지 않는
연습도 필요합니다. 많은 이들이 지옥으로 떨어지고 그 중에 우리
가족이나 친척, 친구들도 있는데 무엇이 그렇게 기쁘겠습니까?
게다가 나도 그렇게 잘 살지 못하는데 몇 마디 칭찬을 들어서
기뻐한다면 그들이 정말 얼마나 우습게보겠습니까?

항상 슬퍼할 필요가 있습니다. 그러나 슬퍼하려고 해도 마음 안에서
솟아나는 기쁨을 어찌할 수 없을 것입니다. 기쁨은 그것 하나로
충분합니다. 기쁨은 성령께서 주시는 것이어야지 사람들에게서 오는
것이어서는 안 됩니다. 세상 사람들의 말에 휘둘리는 사람은 참으로
가벼운 사람입니다. 예수님도 그리 많이 웃지는 않으셨을 것입니다.
그분 앞에는 항상 십자가가 놓여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오늘
복음에서는 “행복하여라, 지금 우는 사람들! 너희는 웃게 될 것이다.”
라고 말씀하십니다. 이것이 복음입니다. 오늘 독서에서 바오로
사도는 사라져가는 이 세상에서 이런 자세로 살라고 충고합니다.

“이제부터 아내가 있는 사람은 아내가 없는 사람처럼, 우는 사람은
울지 않는 사람처럼, 기뻐하는 사람은 기뻐하지 않는 사람처럼,
물건을 산 사람은 그것을 가지고 있지 않은 사람처럼, 세상을
이용하는 사람은 이용하지 않는 사람처럼 사십시오. 이 세상의 형체가
사라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http://www.수원교구영성관.com/
 
- 수원 교구 전삼용 요셉 신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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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수원] 행복한 사람들 / 조욱현 토마스 신부|오늘의 강론 묵상
 
2018년 나해 9월12일 연중 제23주간 수요일

복음: 루카 6,20-26: 행복하여라, 마음이 가난한 사람들

오늘 복음은 참된 행복을 가르쳐 주신다. 루카는 여덟 가지 복을 네
가지로 표현하고 있다. “행복하여라, 가난한 사람들!”(20절) 이것은
가난하다고 해서 모두 행복한 것은 아니다. 가난한 사람이 선할 수도
악할 수도 있다. 여기서 가난한 사람은 죄에서 가난한 사람, 악덕에서
가난한 사람, 세상 우두머리에게 빼앗길 것이 없는 가난한 사람이다
(요한 14,30 참조). 부유한 분이셨지만 우리를 위해 가난해지신
그분처럼(2코린 8,9 참조) 가난한 사람이 행복하다.

여기서 예수님께서 가르쳐 주시는 내용을 요약한다면, “우리가 몸과
마음, 모든 힘을 다하여 또 가진 것을 다해서 하느님께 충실하고
불우한 이웃을 사랑하는 그리스도의 정신으로 생활을 한다면 우리는
여러 가지 어려움에 빠질 것이다. 그러나 그것은 세상살이의 가치
기준으로 판단했을 때에 불행하고 바보스럽게 보일 뿐이다. 이
세상에서 보상받지 못한 것은 영원으로 그리스도께서 책임지고
갚아주실 것이기 때문이다”라는 것이다.

물론 현세의 삶이 풍요롭고 행복한 것은 좋은 것이고 하느님께서도
원하시는 것이다. 문제는 하느님과 세상의 행복을 놓고 그 마음에
어떠한 순서로 정리되어있느냐에 달려있는 것이다. 항상 하느님께서
우리의 첫 자리를 차지하고 계시다면 모든 것은 잘 되어있는 것이다.
반대로 재물이 첫 자리를 차지한다면, 하느님께나 인간에게나 제대로
사랑을 실천할 수 없다는 것이다.

우리의 삶의 자세가 하느님을 향하여 가난하고 굶주리고, 진정으로
울 줄 아는 사람, 하느님의 아들 때문에 박해도 당할 수 있는 사람의
삶을 살아야 한다. 하느님 앞에 가난하고 굶주리는 사람들은 언제나
하느님을 모시고 살 수 있다. 그리고 우는 것도 자신의 잘못 때문에,
나의 잘못으로 하느님을 떠나는 나 자신을 위하여 진정으로 울고,
다른 사람의 잘못을 울어줄 수 있는 그러한 삶은 얼마나 아름다운가!

부유하다는 것은, 그 마음이 세상의 일로 차 있기 때문에 하느님이 그
안에 들어가실 수 있는 여지가 없다는 것이다. 이렇게 세상의 일에 즉
하느님의 뜻에 역행하는 것을 추구하는 사람들은 자신이 선택한 그
삶 때문에 결정적으로 슬픔을 맛보게 되리라는 말씀이다. 복음에
나오는 불행은 그들을 기다리고 있는 형벌을 뜻하며, 애통하여
소리친다는 뜻이다.

우리 신앙인들의 바람직한 태도는 나쁜 일을 하지 않는데 있는 것이
아니라, 부자 청년의 비유에서 보듯이, 어렸을 때부터 계명을 잘
지켰던 것으로 만족하는 것이 아니라, 가서 있는 것을 다 팔아 가난한
사람들에게 나누어주고 예수님을 따르라고 했던 것처럼, 우리의 삶을
통해서 적극적으로 다른 사람을 용서하며 선행을 하는데 있는 것이다.
이러한 삶을 통하여 진정으로 하느님 앞에 행복한 우리가 되도록
주님의 도우심을 구하자.
 
- 수원 교구 조욱현 토마스 신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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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타] 불평과 원망의 40년

2018년 9월12일 수요일

오늘은 “불평과 원망의 40년”라는 내용으로 은혜의 시간이
되겠습니다.

신명기 1장 37절 말씀에 “여호와께서 너희 때문에 내게도 진노하사
이르시되 너도 그리로 들어가지 못하리라”라고 말씀을 하십니다.

여기 말씀에서 거대한 이스라엘 백성들을 이끌고 가나안땅으로
데려가는 모세도 이스라엘 백성들의 불평을 제대로 대처하지 못해
본인도 가나안땅으로 들어가지 못할 것이라는 말씀입니다.

여기에서 정말 지도자의 언어나 마음이나 행동이 얼마나 중요한지 잘
알 수 있습니다. 그 험악한 애굽의 종살이를 벗어나 가나안땅으로
들어가는 이 거대한 대 이동을 주도했던 모세가 본인은 가나안땅에
들어가지 못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참으로 얼마나 어처구니없는 일이겠습니까? 40년 동안을 가나안땅을
바라보며 온갖 고생을 다 했는데 정작 그 리더 모세가 들어가지
못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여러분이라면 어떻게 생각을 합니까? 평생을 고생해도 좋은 날 한번
못 본다면 얼마나 참 안타까운 일이겠습니까? 바로 이렇게 된 것은
이스라엘 백성들의 그 원망과 불평 때문에 같이 분노했기 때문입니다.

그 한 번의 분노가 모세의 삶을 결정짓고 말았던 것입니다. 여러분도
믿음의 승리자로 나아가길 원한다면 분노하지 마십시오.

할렐루야!

- 인천 부평 사랑밭 교회 권태일 목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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