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월28일 주님과의 깊어지는 만남

작성자 : 안나    작성일시 : 작성일2016-10-28 06:32:19    조회 : 371회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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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2016년 다해 10월28일 금요일 [(홍) 성 시몬과 성 유다(타대오) 사도 축일] [수도회] 열린 공동체의 사랑의 일꾼 - 기경호 프란치스코 신부 작은 형제회(프란치스코회) ○ 제1독서 에페 2,19-22 † 복음 루카 6,12-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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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오늘의 묵상 예수님께서는 하느님의 구원 계획에 따라 흩어진 옛 이스라엘의 열두 지파를 새롭게 일으킬 새 이스라엘의 열두 제자들을 뽑으시려고 산으로 나가십니다. 그리고 밤을 새우며 하느님께 기도하십니다. 예수님께서는 무엇을 고민하시며 하느님께 청하셨을까요? 그것은 열두 제자들의 출신과 성분을 보면 압니다. 먹고사는 일에 매달린 어부들, 민족주의적 열혈당원 시몬, 외세에 힘입어 사는 세리 마태오, 예수님을 배반할 유다. 열두 제자들은 결코 하느님 나라를 세우는 데 특별한 능력과 재주를 가진 이들도 아니었고, 사회적 명망이 높거나 배운 지식층도 아니었습니다. 예수님께서 세우신 새로운 하느님 백성 공동체는, 신분과 출신, 능력과 재주와 무관하게 어떠한 차별도 없이, 모퉁잇돌이신 예수님을 중심으로 성령의 인도를 받아 하느님의 한 가족으로 서로 잘 결합된 거룩한 성전입니다. 새 이스라엘로 상징되는 교회는 바로 이런 예수님의 뜻 안에서 세워졌습니다. 하느님의 계획은 능력과 재주가 탁월한 이들이 중심이 되어 선택된 민족이라는 자긍심을 갖고 이방인과 외국인을 몰아내던 옛 이스라엘 공동체의 복원이 아니었습니다. 하느님께서 믿음의 사람 아브라함을 부르시고, 그에게 하늘의 별만큼 많은 후손을 약속하신 것은, 세상의 모든 이가 어떤 차별도 없이 하느님의 구원 계획에 초대되어 있음을 알려 주신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선택된 이스라엘과의 옛 계약을 폐기하시고, 새 이스라엘 백성인 교회를 통하여 하느님의 보편적 사랑의 새 계약을 세우십니다. 열두 제자는 바로 이런 교회의 초석입니다. 오늘 기념하는 열혈당원 시몬과 용감한 타대오 역시 차별 없이 모든 이를 사랑하시는 하느님께 자신을 바친 이들임을 기억합시다. (송용민 사도 요한 신부) - 매일 미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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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인천] 주님께서는 우리들이 변화되기를 간절하게 원하십니다. 2016년 다해 10월28일 금요일 성 시몬과 성 유다(타대오) 사도 축일 제1독서 <여러분은 사도들의 기초 위에 세워진 건물입니다.> ○ 사도 바오로의 에페소서 말씀입니다. 2,19-22 복음 <예수님께서는 제자들 가운데에서 열둘을 뽑아 사도라고 부르셨다.> † 루카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6,12-19 우리 몸의 세포는 매순간 다시 죽고 태어나기를 반복한다고 합니다. 그래서 피부 세포는 28일 만에 모든 세포가 바뀌고, 손발톱은 180일, 피 속의 적혈구는 120일, 그리고 뼈와 근육계통은 200일 정도면 새로운 세포로 완벽하게 변화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지금 몸이 7개월이 지나면 완전히 다른 새로운 몸으로 바뀐다고 할 수 있습니다. 이 말을 들으니 조금 이해되는 부분이 있습니다. 정말로 오랜만에 만난 사람을 보면 어떻습니까? 상당히 낯선 느낌을 받게 되지요. 계속해서 몸의 세포가 바뀌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렇다면 부부생활을 하시는 분들은 몸 자체만을 놓고 본다면 거의 7개월이 지나면 새로운 배우자를 만나서 사는 것이 아닐까 라는 우스운 상상을 해보게도 됩니다. 이렇게 내 몸은 계속해서 변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옛날의 내 몸이 좋다면서 세포를 바꾸지 않겠다고 말해도 내 몸은 나도 모르게 계속해서 변하고 있습니다. 내 의지와 상관없이 무조건 변하고 있으며 또 그렇게 변해야만 합니다. 이런 몸의 변화를 떠올리다보니 문득 내 머릿속 생각은 왜 바뀌지 못할까 싶습니다. 강산이 변한다는 10년이 지나도 그 머릿속 생각을 바꾸지 못해서 여전히 내게 상처를 준 사람을 용서할 수 없다고 말할 정도로 우리의 생각을 잘 바꾸려하지 않습니다. 편견과 고정관념에서 변하지 않으려는 우리의 생각입니다. 하지만 우리 몸이 계속해서 변하는 것처럼 우리의 생각도 보다 더 좋은 쪽으로 변화될 수 있어야 합니다. 더 좋은 생각과 긍정적인 마음으로 주님의 사랑을 따르는 우리가 되어야 합니다. 성 시몬과 성 유다 사도 축일을 맞이해서 복음은 12사도를 뽑으시는 예수님의 모습을 보여줍니다. 이 부르심을 받았을 때의 제자들의 모습은 사실 아주 형편없었지요. 단점들이 너무나도 많이 보이는 왜 저런 사람들을 제자들로 뽑았을까 라는 의구심이 들기에 충분합니다. 그러나 이들은 예수님의 뜻에 맞게 변화됩니다. 단 한 사람, 그 변화를 거부했던 사람이 하나 있었습니다. 바로 유다 이스카리옷이었습니다. 그 변화를 거부했기에 그는 결국 주님을 팔아넘기고 자기 스스로 목숨을 끊었던 것입니다. 주님께서는 우리들이 변화되기를 간절하게 원하십니다. 물질적이고 세속적인 욕심과 이기심을 채우는 쪽으로 변화되는 것이 아니라, 주님께서 늘 강조하셨던 사랑의 실천을 행하는 그래서 주님의 뜻을 철저하게 실천하는 우리의 변화를 원하십니다. 이 주님의 바람을 얼마나 따르고 있는 우리였을까요? 그 변화를 거부한다면, 또 나쁜 쪽으로의 변화만을 추구한다면 우리 역시 예수님을 팔아넘긴 유다 이스카리옷과 같은 불행한 최후를 맞이할 수도 있음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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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가장 건강한 마음이란 쉽게 상처받는 마음이다. 세상의 기쁨과 고통에 민감할 때 우리는 가장 건강하다(김연수).
20161028_01.jpg 사도 성 시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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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말 버스 맨 뒷자리에 남학생 넷이 앉아 있었습니다. 그런데 한 배짱 좋은 여학생이 남학생 사이를 비집고 들어와서 덜컥 앉는 것입니다. 그러자 한 명의 남학생이 슬쩍 비꼬면서 말합니다. “개밥에 도토리가 끼었네.” 다른 남학생들은 재미있다고 큰소리를 내면서 웃었지요. 하지만 이 여학생은 한마디 대꾸도 못하고 그냥 앉아만 있었습니다. 그러다가 드디어 내릴 때가 되었나 봅니다. 자리에 일어나 내리면서 이렇게 말하더랍니다. “개밥들아 잘 가라. 이 도토리 내린다.” 여학생을 비꼬는 말이 결국은 자기 자신에게 돌아오는 나쁜 말이 되고 말았습니다. 어떤 말을 하면서 살고 있는가를 생각하게 됩니다. 남에게 힘을 주는 말인지, 아니면 남의 힘을 빼는 말인지를 말입니다. 그런데 남의 힘을 빼는 말은 부메랑이 되어서 결국 나의 힘을 빼는 치명적인 말이 될 수도 있음을 잊어서는 안 될 것입니다. 한번 떠나면 다시는 절대로 돌아올 수 없는 세 가지가 있다고 하지요. 첫째는 한번 지나면 다시는 돌아올 수 없는 기회이고, 둘째가 활의 시위를 떠난 화살이며, 셋째가 우리 입에서 떠난 말이라고 합니다. 이렇게 말이란 일단 내게서 떠나면 나 자신에게 영향을 줄 뿐 아니라 다른 사람에게도 지대한 영향을 미치는 되돌릴 수 없는 것입니다.
20161028_02.jpg 사도 성 유다(타대오).
  • - 인천교구 갑곶 성지 조명연 마태오 신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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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수도회] 열린 공동체의 사랑의 일꾼 - 기 프란치스코 신부 2016년 다해 10월28일 금요일 성 시몬과 성 유다(타대오) 사도 축일 “예수님께서는 제자들 가운데에서 열둘을 뽑아 사도라고 부르셨다.” (루카 6,13) 열린 공동체의 사랑의 일꾼 예수님께서는 바리사이들과 율법학자들과의 대립과 갈등이 첨예해져 그들이 당신을 처치하려고 모의까지 하는 시점에서, 밤을 새워 기도하신 다음 제자들 가운데에서 열둘을 사도로 뽑으십니다(6,12). 죽음으로 치닫는 길목에서 하느님 나라를 선포하려는 열정을 더욱 불태우신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의도하신 공동체는 어떤 공동체였을까요? 무엇보다도 그 공동체는 기도 안에서 하느님의 뜻에 따라 수난의 사랑을 위해 부르신 공동체입니다. 따라서 그 안에 살아 숨 쉬는 것은 이기적인 목표나 이상이 아니라 하느님의 사랑이었습니다. 또한 예수님께서는 오직 하느님의 뜻을 이루시려고 재능이나 지식, 부와 권력, 인품과 성격 등에 상관없이 하느님께서 원하시는 사람들을 뽑으셨습니다. 하느님의 영이 작용하는 열린 이 공동체의 구성원은 모두가 동등한 부르심에 사랑의 사도가 됩니다. 주님께서 뽑으신 사도들은 개방성과 동등성을 특징으로 하는 예수님의 학교에서 사랑을 체득했습니다. 그들의 일상은 기도와 말씀의 경청, 치유와 용서 체험, 함께 생명을 나누는 식사와 대화였습니다. 그렇게 그들은 수난의 사랑을 살아낼 준비를 했던 것입니다. 하느님의 뜻에 따라 형성된 이 공동체는 예수님을 모퉁잇돌로 하여 사도들과 예언자들의 기초 위에 세워진 거룩한 성전, 하느님의 거처입니다(에페 2,20). 따라서 이 공동체는 예수님을 중심으로 성장하는 사랑의 배움터요 은총의 샘입니다. 예수님의 제자들은 누구나 하느님의 집이 되어 모든 이를 그리로 인도해야 할 사랑의 소명을 받았습니다. 사랑을 위해 뽑힌 이들은 인간적인 부족함과 다양성에도 사랑 실천을 통해 예수님과 하나 되었습니다. 성 시몬과 성 유다도 사랑의 길을 항구히 걸었던 열두 사도의 일원이었습니다. 사도 시몬은 로마의 지배에 맞서 민족 해방을 위해 싸운 열혈당원이었는데(루카 6,15), 페르시아 지방에서 선교하다가 톱으로 몸이 잘리는 형벌을 받아 순교했다고 전해집니다. 한편 ‘타대오’(마르 3,18)라고도 불리는 유다 사도는 서기 70년 예루살렘 멸망 후 페르시아 지방에서 선교하다 순교했다고 전합니다 (시몬과 유다의 수난기). 그들은 사랑으로 불러주신 예수님을 따라 목숨을 바쳐 사랑의 절정을 보여줌으로써 부르심에 충실하였습니다. 우리 또한 사도들을 본받아 예수님을 관계의 중심, 공동체의 중심에 모시고 온힘과 온 마음을 다해 죽기까지 사랑을 실천해야겠습니다. 사랑을 위해 차별과 배척과 단절의 문을 열고, 사랑 때문에 모든 것을 내놓는 열정이 타올랐으면 합니다. 그 길은 내가 죽어야 남을 살릴 수 있기에 쉽지 않은 길이지요. 그렇지만 하느님의 사랑의 부르심을 기억하고 묵묵히 그분의 뜻을 실천해 나가야 할 것입니다. 또한 사랑 실천이라는 공통의 목표 앞에 모두를 받아들이고, 공동의 선을 실현해가는 진정한 ‘사랑의 일꾼’이 되어야겠지요. 오늘 이 사회가 병들고, 그래서 세상살이가 힘들어도 내 마음 속에, 그리고 너와 나 사이에 예수님을 모퉁잇돌로 모시고, 성령 안에서 일치하여, 담대하게 주님의 길을 가는 오늘의 사도들이 되었으면 합니다. 하느님 나라의 시민인 우리가 다른 이들을 기쁨과 평화가 넘치는 주님의 성전으로 인도하는 쓸모 있는 도구이길 희망합니다. - 기경호 프란치스코 신부 작은 형제회)(프란치스코회) 강론채널 주소 : story.kakao.com/ch/francesco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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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수도회] 알타반의 말씀사랑 2016년 다해 10월28일 금요일 성 시몬과 성 유다9타대오) 사도 축일 "그 무렵 예수님께서는 기도하시려고 산으로 나가시어, 밤을 새우며 하느님께 기도하셨다." (루카 6,12) 살아가노라면 중대한 결정을 내려야 할 때가 있습니다. 그런 상황이 닥치면 누구나 깊은 고민에 빠지게 됩니다. 내 머리로는 답이 나오지 않는다면 다른 사람의 조언을 구하기도 하지요. 그러나 사실 가장중요한 것은 조용히 기도하며 하느님께서 원하시는 것이 무엇인지 찾는 일입니다. 내 머리와 인맥과 지식을 총동원하여 얻은 결론이라 하더라도 그것이 하느님께서 바라시는 것이 아니라면 헛수고만 한 것이 아닐까요? 오늘 예수님께서도 12명의 사도들을 선발하시면서 무척 고민이 많았나 봅니다. 아마도 당신이 작성한 명단이 있었을 겁니다. 그러나 하느님의 뜻을 알아보기 위해 기도를 시작했는데 하느님께서는 다른 몀단을 자꾸만 말씀하시는 거예요. 예수님은 그 사람은 도저히 아니라고 말씀드리지만 하느님께서는 끝까지 우기시는 겁니다. 밤새 고민하며 기도하며 결국 내뜻대로가 아니라 하느님의 뜻대로 명단을 발표합니다. 장고 끝에 악수인가요? 그 명단 끝에는 차마 뽑고 싶지 않았던 "유다 이스가리옷"이라는 이름이 들어갑니다. 결국 예수님의 생각이 맞지 않았나요! 예수님은 내뜻이 아니라 아버지의 뜻을 찾기 위해 늘 고민하셨고 그래서 중요한 일을 앞두고는 밤새워 기도하시곤 하셨지요. 그런데 우리는 기도하면서 아버지의 뜻보다는 내뜻이 이루어지게 해달라고 아버지께 땡깡을 부리는 경우가 많은 것 같습니다. 오늘은 내 생각과 뜻을 잘 정리하되 적어도 하느님께서 그것을 원하시는지 제발 여쭈어나 봅시다. 다른 사람의 조언은 잘도 구하면서 정작 중요한 하느님의 조언을 구하지 않다니요! "아버지의 뜻이 하늘에서와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소서. 아멘!" - 프란치스코회 성심원 원장 오상선 바오로 신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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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수도회] 은혜로운 참 만남 2016년 다해 10월28일 금요일 성 시몬과 성 유다(타대오) 사도 축일 <예수님께서는 제자들 가운데에서 열둘을 뽑아 사도라고 부르셨다.> † 루카 6,12-19 은혜로운 참 만남 예수님께서 친히 뽑으신 열두 사도들의 명단 안에는 두 명의 시몬이 등장합니다. 수제자가 된 어부 출신의 시몬 베드로, 그리고 전직 ‘열혈당원’ 시몬. 예수님을 만나기 전까지 열혈당원 시몬의 삶은 이름에 걸맞게 유다 독립을 위한 목숨 건 투쟁의 삶이었습니다. 비록 계란으로 바위치기지만 작은 힘이라도 보태 이 불의하고 암담한 현실을 한번 바꿔보고 싶었습니다. 로마 식민통치의 종식을 위해서라면 이 한 목숨 바쳐도 아깝지 않았습니다. 이를 위하 군사훈련도 열심히 참여했습니다. 테러와 살상을 위한 예행연습에도 충실했습니다. 당시 열혈당원들이 지니고 있었던 조국의 독립을 향한 열정과 과격함은 기록에도 잘 나와 있습니다. 당시 저명한 유다 역사학자 요세푸스에 의하면 그들에게 있어 조국의 독립은 모든 것이었습니다. 그 어떤 것도 정당화되었습니다. 따라서 살상도 파괴도 서슴지 않았습니다. 특히 그들은 로마황제와 타협하던 이들, 우리로 치면 친일파 매국노들을 잔혹하게 살해하며 응징했습니다. 당시 열혈당원들은 이렇게 외쳤습니다. “우리에게 있어 유일하며 영원한 왕은 하느님 한 분 뿐이십니다. 로마 황제는 죽었다 깨어나도 우리의 왕이 될 수 없습니다. 따라서 로마가 요구하는 세금을 바쳐서는 안 됩니다. 그들의 법규도 인정할 수 없습니다.”라고 주장하며 끝까지 저항했습니다. 예루살렘 함락이후 열혈당원들은 그 유명한 마사다 요새로 올라가 끝까지 항전하다가 숨졌습니다. 이런 열혈당원 시몬이 기적처럼 예수님을 만납니다. 예수님과의 만남은 그의 인생을 완전히 뒤바꿔놓는 터닝 포인트가 되었습니다. 예수님께서 세상적인 분노와 열정, 넘치는 에너지로 가득 찬 열혈당원 시몬을 물끄러미 바라보십니다. 이윽고 따뜻한 사랑의 손길을 그에게 건네십니다. 적개심과 폭력성으로 가득했던 그의 마음을 어루만지십니다. 마침내 한 마리 순한 양처럼 변화되었습니다. 조국의 독립을 위해 무장 투쟁까지 불사하던 그가 이제는 사랑과 자비의 열혈당원으로 탈바꿈했습니다. 매국노를 향해 끓어오르는 분노를 참지 못하던 그가 이제 예수 그리스도와 복음 선포자로서의 열정으로 끓어오르게 되었습니다. 자신이 지니고 있던 강렬한 애국심과 저항정신은 이제 스승 예수 그리스도를 향한 뜨거운 사랑으로 변환되었습니다. 결국 유다 독립을 위해 목숨까지 바치려던 그는 이제 방향을 바꾸어 스승 예수 그리스도를 위해 목숨을 바쳤습니다. 이렇게 예수님과 한 인간의 만남은 그의 삶 전체를 송두리째 흔들어놓습니다. 상상을 초월하는 혼동으로 우리를 몰아넣습니다. 그리고 자신의 내면 안에 무엇이 더 중요한지? 어떤 것이 더 큰 것인지? 삶의 질서를 잡게 도와주십니다. 마침내 이승에서는 도저히 불가능해보이던 삶의 전환을 가능하게 만드십니다. 예수님과 한 인간의 ‘참 만남’은 이렇게 큰 은총과 선물로 다가옵니다. 오늘 우리는 어떻습니까? 우리는 예수님과의 그 은혜로운 ‘참 만남’을 이뤄냈습니까? 그리고 그 ‘참 만남’ 이후 실제적인 삶의 전환을 이뤄냈습니까? - 살레시오회 양승국 스테파노 신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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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서울] 성 시몬과 성 유다(타대오) 사도 축일 2016년 다해 10월28일 금요일 성 시몬과 성 유다(타대오) 사도 축일 <예수님께서는 제자들 가운데에서 열둘을 뽑아 사도라고 부르셨다.> † 루카 6,12-19 지난 수요일에 멀리 시애틀에서 손님이 오셨습니다. 40년 전에 미국으로 떠났던 분입니다. 명동까지 저를 찾아오신 이유는 저의 묵상 글을 읽었기 때문입니다. 한국을 방문하여 성지순례를 하였고, 저를 만나고 싶어서 방문을 하셨습니다. 사무실에서 담소를 나누었고, 교구청 소개를 해 드렸고, 다음에는 시애틀에서 만날 것을 이야기하며 헤어졌습니다. ‘펜은 칼보다 강하다.’는 말이 있습니다. 세상을 움직이는 것은 칼과 총이 아니라, 문학과 철학 그리고 예술입니다. 매일 묵상 글을 적는 것은 저 자신의 성찰을 위한 것이지만, 그것이 누군가에게 도움이 되었다면 감사할 일입니다. 밤을 새워 기도하신 예수님께서는 함께 복음을 전할 사도들을 선발하셨습니다. 오늘은 시몬과 유다(타대오) 사도 축일입니다. 동창 신부님 중에 시몬은 2명입니다. 한 분은 오랜 시간 군 사목을 하였고, 지금은 본당에서 사목을 하고 있습니다. 다른 한 분은 신학교에서 영성지도를 하였고, 저와 함께 신학생들을 위한 30일 피정 지도를 하였습니다. 지금은 상설고해 사제로 사목을 하고 있습니다. 축일을 지내는 동창 신부님들이 모두 건강하기를 바랍니다. 축일을 맞이하시는 모든 분들에게 하느님의 사랑이 함께 하시기를 기도합니다. 교구청에는 추기경님과 더불어 15명이 함께 지내고 있습니다. 추기경님께서는 저를 성소국장으로 임명하셨습니다. 제게 바라는 것은 무엇일까를 생각합니다. 외적인 능력을 바라실 것입니다. 성소개발을 위한 프로그램을 개발하고, 조직관리를 효율적으로 하고, 능력과 영성을 겸비한 학생들을 선발하여 신학교에 입학 시키는 일일 것입니다. 제가 주관하는 행사들을 원만하게 진행하는 것일 것입니다. 성소국의 소식지를 새로이 개편하였고, 사제 양성을 위한 다큐멘터리를 제작하고 있으며, 예비 신학생을 위한 교재를 제작하고 있고, 예비 신학생을 위한 기숙사를 운영하고 있고, 본당 성소 후원회 방문을 하고 있습니다. 외적인 능력과 더불어 내적인 힘을 바라실 것입니다. 말과 행동을 신중하게 하고, 기도와 묵상을 깊이하고, 직원들과 원만하게 지내고, 겸손한 모습을 보이기를 원할 것입니다. 교구청의 동료 사제들과 원활하게 지내기를 바라실 것입니다. 지난 3년을 돌아보면 부족함이 많았습니다. 직원들에게는 4가지 유형의 지도자가 있다고 합니다. 가장 힘들어하는 지도자는 멍청한데 부지런한 지도자입니다. 이런 지도자와 함께 일하면 뒷감당을 하기 힘들어지기 때문입니다. 선택하고, 결정한 일들이 수시로 변경되고 바뀌기 때문입니다. 직원들에게 인내와 지혜가 필요할 것입니다. 다음으로 힘들어 하는 지도자는 똑똑하고 부지런한 지도자입니다. 이런 지도자와 함께 일하면 매일 야근을 해야 할 것입니다. 새로운 것들을 기획하고, 제품을 만들어야 하기 때문에 여유로운 시간을 가지기 힘들 것입니다. 시간이 지나면서 직원들의 능력도 커지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아마도 예수님께서 이런 지도자였을 것 같습니다. 다음으로 좋아하는 지도자는 멍청하고, 게으른 지도자입니다. 당장은 편하고 좋지만 이런 지도자와 함께 일을 하면 능력을 키우기 힘들 것입니다. 기회도 도전도 없기 때문입니다. 추운겨울을 맞이해야하는 베짱이처럼 어려운 상황이 생기면 직장을 잃어버릴 수 있습니다. 가장 좋아하는 지도자는 똑똑하지만 약간 게으른 지도자입니다. 앞날을 내다볼 수 있기 때문에 운영에는 지장이 없습니다. 결과와 성과에 얽매이지 않기 때문에 복지와 휴가를 즐길 수 있습니다. 시간이 허락하면 여행도 하고, 문화행사도 하고, 저녁이 있는 삶을 추구할 수 있습니다. 직원들에게 저는 어떤 모습으로 보일지 궁금합니다. 우리를 하느님께로 이끌어 주는 것들은 ‘기도, 희생, 나눔, 봉사’와 같은 것들입니다. 그런 것들은 말초신경을 자극하지 않아서 재미있지는 않지만 우리 영혼을 맑게 하고, 세상의 어둠을 밝게 비추는 빛이 됩니다. 기도는 향기가 되어 지친 이들에게 위로가 됩니다. 나눔은 알찬 열매를 맺어 더 큰 축복으로 돌아옵니다. 사랑은 깊은 샘물 같아서 할수록 더 큰 사랑이 솟아납니다. 오늘 바오로 사도는 이렇게 이야기 합니다. ‘여러분은 이제 더 이상 외국인도 아니고 이방인도 아닙니다. 성도들과 함께 한 시민이며 하느님의 한 가족입니다. 여러분도 그리스도 안에서 성령을 통하여 하느님의 거처로 지어지고 있습니다.’ 마치 연어가 모진 고생을 하면서도 다시금 삶의 원천인 강가로 돌아오듯이 우리는 험한 세상을 살아가지만 그리스도께서 맺어주신 그 사랑으로 살아가야 한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우리 모두가 돌아가야 할 곳은 하느님의 사랑이라고 말을 하고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불러 주셨던 제자들은 모두 예수님께서 보여주신 길을 따라 갔고, 주님의 품을 그리워하며 거친 세상에서 빛과 소금이 되었습니다. 사랑하고 살기에도 부족한 인생입니다. 나누고 살기에도 바쁜 인생입니다. 늘 감사드리고, 항상 기도하고, 언제나 기뻐하며 살아야 하겠습니다.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 서울 대교구 성소 국장 조재형 가브리엘 신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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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청주] 주님과의 깊어지는 만남|반신부의 복음 묵상 2016년 다해 10월28일 금요일 성 시몬과 성 유다(타대오) 사도 축일 <예수님께서는 제자들 가운데에서 열둘을 뽑아 사도라고 부르셨다.> † 루카 6,12-19 주님과의 깊어지는 만남 축일을 맞이한 모든 이에게 축하의 인사를 드리며 굳건한 믿음과 사도적 열성을 더해 주시길 기도합니다. 예수님께서는 제자들 중에 열둘을 따로 뽑아 사도로 세우셨습니다. 그냥 뽑으신 것이 아니라 밤을 새우시며 기도한 다음 뽑으셨습니다. 그 기도의 열매는 확실했습니다. 혁명당원 시몬과 세리 마태오를 비롯하여 배반자 유다까지도 그 대열에 속해 있었습니다. 시몬 베드로도 “비록 모든 사람이 주님을 버릴지라도 저는 결코 주님을 버리지 않겠습니다”(마태26,31)하고 장담했지만 죽음 앞에서는 “나는 그 사람을 알지 못하오”(마태26,72)하고 세 번씩이나 주님을 배반했습니다. 개별적으로 볼 때 별 볼일 없는 사람들, 나약한 사람들이 뽑힌 것입니다. 이것이 밤새껏 기도한 결과입니다. 그냥 뽑았으면 잘나고 똑똑한 사람들이 뽑혔을 텐데 아버지 하느님의 뜻을 헤아렸기에 장차 당신을 배반할 배반자들까지도 뽑으셨습니다. “너희가 나를 선택한 것이 아니라 내가 너희를 택하여 내세운 것이다. 그러니 너희는 세상에 나가 언제까지나 썩지 않을 열매를 맺어라” (요한15,6). 이것이 스승의 참 모습입니다. 내가 그분을 멀리할 뿐이지 그분의 품에 들어가지 못할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제자들은 부족함 투성이였지만 예수님을 만나 새 삶을 살게 되었습니다. “과거 없는 성인 없고 미래 없는 죄인 없다”는 진리를 깨우쳐 주었습니다. 잘못을 범한 베드로는 으뜸제자로서 역할 다하고 십자가에 거꾸로 매달려 죽음을 맞이했습니다. 혁명당원 시몬은 늘 전투만을 생각하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러나 전투와는 상관없는 예수님의 사랑을 살았고 또 전했습니다. 죄인 취급 받던 마태오도 재산을 가난한 사람에게 나눠주고 새 삶의 기쁨을 누렸습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유다는 잘못은 뉘우쳤지만 죄책감을 극복하지 못하고 스스로 목숨을 끊고 말았습니다. 아직 사랑이 여물지 못했습니다. 변화된 삶을 살면 행복이 오고 변하지 않으면 끝이 불행합니다. “여자는 결혼 후 남자가 변하길 바라지만 남자는 변하지 않는 답니다”. 아니 오히려 기대와는 반대로 변한답니다. 또한 “남자는 결혼해도 여자가 변하지 않길 바라지만 여자는 변한답니다”. 여자도 역시 남자가 기대하는 바와는 다르게 변한답니다. 집에서는 체육복을 입고 그야말로 아줌마가 된답니다. 서로 서로 부족함을 채워주는 방향으로 끊임없이 변해야 하는데 부족함에 대해 서로 잔소리만 늘어가면 불행합니다. 변하되 상대를 바꾸려 하지 말고 내 자신이 먼저 변해야 하겠습니다. 신앙생할도 마찬가지 입니다. 세례전이나 세례 후나 변한 게 없으면 불행합니다. 세월이 갈수록 예수님과의 만남이 깊어져야 행복합니다. 사도들이 주님을 만나 새 삶을 살았듯이 우리도 새 삶을 살아야 하겠습니다. 참된 스승 앞에 참된 제자로서 살아가시기 바랍니다. 혹시라도 함께 어울리기 힘들어 하는 사람이 있다면 상대방과의 다름을 생각하고 극복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리스도께서는 만물을 당신께 복종시킬 수 있는 능력을 가지고 오셔서 우리의 비천한 몸을 당신의 영광스러운 몸과 같은 형상으로 변화시켜 주실 것입니다” ( 필립3,21). 미루지 않는 사랑을 희망하며 더 큰 사랑으로 사랑합니다. - 청주교구 반영억 라파엘 -
♬ Josef Locke - Cara Mia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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