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월10일 오로지 주님만을 향한 사랑으로

작성자 : 안나    작성일시 : 작성일2016-08-10 06:19:51    조회 : 347회    댓글: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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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2016년 8월10일 수요일 [(홍) 성 라우렌시오 부제 순교자 축일] [수도회] 생명을 위한 생명의 봉헌 - 기경호 프란치스코 신부 작은형제회(프란치스코회) ○ 제1독서 2코린 9,6-10 † 복음 요한 12,24-26 라우렌시오 성인은 스페인의 우에스카에서 태어났다. 로마 교회의 일곱 부제 중 수석 부제였던 라우렌시오의 임무는 교회의 재산을 관리하고 빈민들을 구호하는 일이었다. 로마의 발레리아누스 황제의 박해 때, 박해자들이 교회의 보물을 바치라고 하자 라우렌시오 부제는 교회의 재산을 남몰래 가난한 사람들에게 나누어 준 뒤 그들을 박해자들 앞에 데려갔다. “이들이 교회의 재산입니다.” 이에 분노한 박해자들은 라우렌시오 부제를 불살라 처형하였다. 258년 무렵이었다. 라우렌시오 부제는 가난한 이들이 바로 교회의 보물임을 일깨워 준 성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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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오늘의 묵상 “밀알 하나가 땅에 떨어져 죽지 않으면 한 알 그대로 남고, 죽으면 많은 열매를 맺는다.” 오늘 예수님의 이 말씀을 통해 몇 가지 진리를 깨달을 수 있습니다. 먼저, 생명은 죽음을 통해서만 온다는 점이지요. 새싹이 나오려면 씨앗이 죽어야만 합니다. 씨앗이 죽는다고 해서 씨앗의 형태가 없어지는 것은 아니지요. 씨앗의 형태가 새싹의 형태로 변화되는 것뿐입니다. 만일 씨앗이 말라 뒤틀어졌다면 싹이 나오기나 하겠습니까? 새롭고 건실한 싹으로 다시 태어나고자 내 안에 깃든 악의 경향들을 죽여야 합니다. 그럴 때 비로소 생명의 힘, 선한 마음이 충만해질 것이 아닙니까? 개인적인 야심과 욕망을 묻을 때만 비로소 하느님께서 쓰실 만한 재목이 될 것입니다. 그러기에 생명을 버림으로써 오히려 생명을 얻는다는 예수님의 말씀에 주목해야만 합니다. “자기 목숨을 사랑하는 사람은 목숨을 잃을 것이고, 이 세상에서 자기 목숨을 미워하는 사람은 영원한 생명에 이르도록 목숨을 간직할 것이다.” 만일 개인의 욕망을 버리고 이웃과 사회를 위해 온 생애를 헌신한 분들이 없었더라면 세상은 지금보다 더욱 어두웠을 것입니다. 그러기에 예수님께서 말씀하십니다. “누구든지 나를 섬기려면 나를 따라야 한다.” 오늘날 우리는 눈에 보이는 박해가 없는 세상에 살고 있습니다. 그렇지만 예수님을 따르려면 많은 것을 포기해야 하지 않습니까? 오늘 이 점에 대해 묵상했으면 합니다. - 매일 미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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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인천] 주님만을 향한 사랑으로 2016년 8월10일 수요일 [(홍) 성 라우렌시오 부제 순교자 축일] 제1독서 <하느님께서는 기쁘게 주는 이를 사랑하십니다.> ○ 사도 바오로의 코린토 2서 말씀입니다. 9,6-10 복음 <누구든지 나를 섬기면 아버지께서 그를 존중해 주실 것이다.> † 요한이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12,24-26 얼마 전에 제가 아는 청년이 결혼식 주례를 부탁하러 왔습니다. 다음 달에 결혼을 한다면서 청첩장을 들고 왔더군요. 이 둘은 상당히 오랫동안 연애를 했습니다. 물론 중간에 싸우기도 많이 했지만 그래도 상대방에 대한 믿음과 사랑으로 드디어 결혼을 하게 되는 것이지요. 이 둘이 결혼한다는 이야기를 들으면서 세상의 모든 사랑에는 선택이 필요함을 생각하게 됩니다. 저를 찾아왔던 청년은 오랫동안 사귀었던 자신의 여자 친구에게 어느 날 사랑한다고 고백하면서 아내가 되어 달라고 청혼했습니다. 이 말의 뜻은 무엇일까요? 당신을 사랑하지만, 다른 여자 역시 사랑하겠다는 뜻이 아닙니다. 바로 당신만을 사랑하고, 당신을 나의 소중한 반쪽으로 여기겠다는 뜻입니다. 즉, 그녀 외에는 다른 모든 이들을 거절하겠다는 뜻이 담겨 있는 것입니다. 이렇게 사랑에는 분명한 선택이 필요합니다. 그런데 분명한 선택을 피하는 사람들이 너무나 많은 것 같습니다. 특히 주님과 세상의 물질적인 것들에 대한 선택에서 갈등을 겪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가요? 분명히 기도 중에는 “주님, 사랑합니다.”를 끊임없이 외치고 있습니다. 그러나 실제로는 어떻습니까? 입으로만 사랑을 고백하고 있을 뿐, 실제로는 세상에서 중요하다고 여기는 돈과 명예를 더 사랑하고 있지 않습니까? 남녀 간에 사랑한다는 말은 양다리 걸친다는 의미가 아니라고 말씀드렸습니다. 마찬가지로 주님께 사랑한다는 말이 세상의 것과 함께 양다리 걸친다는 의미가 되어서는 안 됩니다. 오로지 주님만을 첫째 자리에 모실 수 있는 진정으로 주님을 사랑하는 우리가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사실 주님께서 먼저 우리에게 사랑으로 다가오셨습니다. 당신의 능력으로 충분히 세상의 부귀영화를 누릴 수 있음에도 다 포기하고, 우리의 구원을 위해 한 알의 밀알이 되셨습니다. 이 밀알이 많은 열매를 맺기 위해 죽어야 하는 것처럼, 주님께서도 사랑이라는 크고 많은 열매를 맺기 위해 스스로 십자가의 죽음을 선택하셨습니다. 배신하지 않는 주님의 사랑을 보면서 과연 우리는 어떤 사랑을 따라야 할까요? 오늘 우리가 축일로 지내는 라우렌시오 부제 순교자 역시 세상 것에 대한 사랑보다는 주님께 대한 사랑을 따랐습니다. 그래서 주님께서 맡기신 가난한 사람들을 위해 사랑을 실천하면서 살았고, 화형이라는 가장 괴롭고 힘든 죽음의 순간에서도 주님께 대한 사랑을 잊지 않으셨습니다. “주님, 사랑합니다.”라는 고백이 양다리 걸치는 사랑이 아니라, 오로지 주님만을 향한 사랑이 될 수 있었으면 합니다. 세상의 물질적이고 세속적인 것들에 대한 관심을 끊고 대신 주님을 향한 사랑으로 영원한 생명에 이르는 우리가 될 수 있었으면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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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우리 마음대로 사랑하면 행복할 것 같아도 우리 마음대로 못하는 그 무엇이 있어 비로소 사랑은 아름답습니다(박해선).
20160810_01.jpg 성 라우렌시오 부제 순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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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진정한 호의 시어머니께서 직장 생활하는 아들과 며느리를 도와주고 싶어서 미리 알리지 않고 집을 방문했습니다. 그리고 집안을 청소해주고 맛있는 반찬을 해서 냉장고를 채워주었습니다. 직장 일로 바쁜 아들 내외도 자신의 이 배려에 너무나 좋아하는 것 같았습니다. 그래서 더 자주 방문하면서 집안일을 대신해주고, 심지어 집안의 인테리어를 모두 바꿔준 적도 있었지요. 그런데 점점 더 며느리의 표정이 안 좋은 것입니다. 굳은 얼굴, 기대보다 못한 감사의 표현과 표정을 보면서 ‘내가 누구를 위해서 이렇게 고생하는데…….’라는 불만과 서운함이 쌓여집니다. 이런 감정이 누적되면서 ‘미움’이 생기게 되었고, 서서히 불편한 관계가 되었습니다. 시어머니의 사랑에 감사할 줄 모르는 며느리의 문제일까요? 바로 경계의 침범 때문에 생긴 관계의 문제인 것입니다. 며느리도 자신만의 공간이 있지요. 그 공간에 시어머니가 들어와서 다 바꿔버리니 편하지 않은 것입니다. 처음에는 바쁜 생활에 도움을 주시는 어머니께 감사했겠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자신의 경계를 침범했다는 생각에 좋은 마음으로 받아들일 수가 없는 것입니다. 아무리 호의를 가지고 한 행동이라고 해도, 상대방이 원하지 않는 호의는 이렇게 더 큰 거부감을 가져올 수도 있는 것입니다. 즉, 내가 원하는 것을 해주는 것이 아니라, 상대방이 원하는 것을 해줘야 합니다. 지금의 이해되지 않는 상황에 대해 불평불만을 주님께 던지는 분들을 종종 봅니다. 그런데 대부분 기도하지 않고 던지는 불평불만입니다. 주님께서 알아서 해줘야 한다고 생각하는 것이지요. 그러나 주님께서는 우리가 진정으로 원하는 것을 해주시는 분이십니다. 주님의 호의는 당신께서 원하는 것을 해주시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원하는 것을 해주시는 것에서 나옵니다. 주님을 따른다고 말하는 우리이지요. 그렇다면 우리는 나의 이웃들에게 어떤 모습으로 나아가야 할까요? 내가 원하는 것을 해주는 것은 절대로 호의가 아닙니다.
20160810_02.jpg 이렇게 더운 여름날에도 순례를 많이 오십니다.
  • - 인천교구 갑곶 성지 조명연 마태오 신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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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수도회] 생명을 위한 생명의 봉헌 - 기 프란치스코 신부 2016년 다해 8월10일 수요일 성 라우렌시오 부제 순교자 축일, 요한 12,24-26 “자기 목숨을 미워하는 사람은 영원한 생명에 이르도록 목숨을 간직할 것이다.”(요한 12,25) Saint Laurentius of Rome, (died 258) 생명을 위한 생명의 봉헌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말씀하십니다. "밀알 하나가 땅에 떨어져 죽지 않으면 한 알 그대로 남고, 죽으면 많은 열매를 맺는다.”(12,24) 한마디로 잘 살려면 잘 죽어야 하고, 잘 죽으려면 잘 살아야 한다는 말씀이지요. 이는 모든 삶의 차원에 연관된 근원적인 삶의 원리, 행복의 원리라 할 것입니다. 다른 사람보다 더 많이 소유하고 더 힘 있고, 더 아름다워지기 위해 치열하게 경쟁하는 오늘의 사회에서 이런 가르침대로 살 수 있을까요? 신앙인들은 그와는 전혀 달리 오히려 더 많이 포기하고 소유보다는 물질이 주지 못하는 가치를 추구하며, 잘 죽을 수 있어야 영원히 살 수 있으니 거꾸로 가는 인생인 셈입니다. 개인 차원에서도 포기와 희생을 통하여 자기애와 자기중심주의에서 벗어나지 않는다면 인간적, 신앙적인 관점에서 성숙할 수 없을 것입니다. 이는 타인과의 관계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자기 것만 챙기고 다른 이를 위해 자신을 내놓지 않는다면 어떤 사회나 공동체도 성장할 수 없을 것이 뻔합니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십니다. "자기 목숨을 사랑하는 사람은 목숨을 잃을 것이고, 이 세상에서 자기 목숨을 미워하는 사람은 영원한 생명에 이르도록 목숨을 간직할 것이다.”(12,25) 하느님과 이웃을 자신보다 더 사랑하고, 다른 이들을 위해 자신의 시간과 재능과 재물을 내놓고 나누는 것을 지고의 가치로 삼는 사람이 참 행복을 누리게 된다는 말씀입니다. 오늘 우리가 기념하는 라우렌시오 성인(†258)은 예수님을 본받아 죽음을 통해 영원한 생명으로 가는 길을 보여주었습니다. 그는 로마 교회의 일곱 부제 중 수석 부제로서 교회의 재산을 관리하고 지극한 사랑과 관대함으로 가난한 이들을 보살폈습니다. 그는 더 많이 나누려고 심지어 성작까지 팔 정도였습니다. 라우렌시오 성인은 로마의 발레리아누스 황제의 박해 때,식스토 2세 교종이 사형선고를 받고 사흘 안으로 자신도 순교하리라 예언하자 기뻐하며 교회 재산을 팔아 가난한 이들에게 나누어주었습니다. 이를 알게 된 로마 황제는 그에게 교회 보물을 가져오라고 명령합니다. 그러자 라우렌시오 성인은 교회의 보물을 모으려면 사흘 정도 걸린다는 말을 하고 돌아와서는 재물을 고아와 가난한 이들, 소경과 절름발이들에게 나누어주어 버립니다. 그리고는 황제에게 가난한 이들을 데리고 가서 “이들이 교회의 보물입니다."라고 하자, 몹시 분노한 황제는 그에게 갖은 고문을 가한 뒤 석쇠 위에 눕혀 불살라 죽였습니다. 이렇듯 성인은 “생활에서 그리스도를 사랑했고 죽음에서 그리스도를 본받았습니다.”(성 아우구스티누스의 설교에서) 그의 죽음과 모범은 로마의 회개와 이교의 종말을 고하는 직접적인 동기가 되었습니다. 우리도 목숨을 바쳐 사랑을 실천했던 라우렌시오 성인을 본받도록 합시다. 오늘도 자기만 생각하고 자신만 살려고 몸부림치는 어리석음에서 벗어나 기꺼이 썩는 한 알의 밀알이 되어 다른 이들과 이 사회와 교회에 생명의 숨결을 불어넣는 우리가 되도록 힘써야겠습니다. 어떻게 잘 죽어 참으로 아름답게 살아갈지를 고민하는 행복한 용트림이 이어지는 오늘이길 소망합니다. - 기경호 프란치스코 신부 작은 형제회)(프란치스코회) 강론채널 주소 : story.kakao.com/ch/francesco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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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수도회] 알타반의 말씀사랑 2016년 다해 8월10일 수요일 성 라우렌시오 부제 순교자 축일 <누구든지 나를 섬기면 아버지께서 그를 존중해 주실 것이다.> (요한 12,26) 누군가가 나를 극진히 대해 준다면 나는 그를 위해 내가 해줄 수 있는 모든 것을 해주고 싶을 겁니다. 내가 해줄 수 없는 것이라면 그것을 해줄 수 있는 사람에게 부탁드려서라도 해주고 싶을 겁니다. 그러니 우리는 사람을 극진히 섬겨야 합니다. 어떤 사람을 섬겨야 할까요? 지금 가진 것이 많고 힘있는 권력자를 극진히 섬겨야 할까요? 예. 이 힘든 세상을 좀 편안히 살기 위해서는 그럴 필요도 있겠지요? 하지만 지금은 별로 힘도 없어보이고 가진 것도 많아 보이지 않지만 정말 내가 존경하고 싶은 사람을 섬기는 것이 훨씬 값지지 않을까요? 그가 하느님의 사람이라면 인간이 줄 수 없는 더 큰 축복과 영원한 생명을 얻게 해 줄 수도 있으니 말입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존경하고 그분을 극진히 섬겨야 하는 이유가 바로 그 때문이겠지요? 여러분은 누구를 가장 극진히 섬기시나요? 물론 예수님을 그렇게 섬기실 테죠. 그분을 섬긴다는 것은 부자와 권력자를 섬기지 않고 예수님처럼 하느님의 가난한 의인들을 섬기는 것이랍니다. 오늘 나는 누구를 섬기고 있나? 왜 그를 섬기고 있나? 화두로 삼아보시기를 바랍니다. - 프란치스코회 성심원 원장 오상선 바오로 신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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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수도회] "누구든지 나를 섬기면 아버지께서 그를 존중해 주실 것이다."(요한 12, 26) 한상우 바오로 신부 |오늘의 강론 묵상 2016년 다해 8월10일 수요일 성 라우렌시오 부제 순교자 축일. "누구든지 나를 섬기면 아버지께서 그를 존중해 주실 것이다."(요한 12, 26) 예수님을 향한 신뢰없이는 예수님을 온전히 섬길 수 없습니다. 섬긴다는 것은 우리의 자아를 내려놓는 것입니다. 자아를 내려놓는 사람만이 온전히 예수님을 섬길 수 있기 때문입니다. 내려놓을 때 예수님처럼 우리또한 하나가 될 수 있습니다. 믿음의 삶은 밀알처럼 많은 열매를 맺는 변모의 삶입니다. 아버지 하느님께서 이 모든 열매를 예수 그리스도처럼 맺게하시기 때문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보여주신 삶이란 끊임없이 아버지 하느님을 향해 열려있는 삶이었습니다. 열매는 아버지 하느님과 함께하는 기쁨의 열매였습니다. 기쁨의 열매는 부활의 삶이기 때문입니다. 우리를 존중하시기에 우리또한 부활에 참여하게 하십니다. 참된 존중은 부활의 삶이기 때문입니다. - 구속주회 한상우 바오로 신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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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서울] 성 라우렌시오 부제 순교자 기념일 2016년 8월10일 수요일 [(홍) 성 라우렌시오 부제 순교자 축일] <누구든지 나를 섬기면 아버지께서 그를 존중해 주실 것이다.> † 요한 12,24-26 교우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국립극장 해오름 극장에서 연극 ‘햄릿’을 보았습니다. 교구장님과 교구청의 사제들이 함께 보았습니다. 문화 활동까지 할 수 있도록 배려해 주시는 교구장님께 감사드립니다. 신학교에 다닐 때, 연극을 했었습니다. 여왕 크리스티나, 결혼, 데미안을 무대에서 만났습니다. 무대를 만들고, 의상을 구하고, 대사를 외우던 기억이 있습니다. 제 안에도 뜨거운 열정이 있었던 것 같습니다. 연극을 마치면 아쉬움과 후련함이 찾아왔습니다. 함께 했던 동료들과 뒤풀이를 하며 연극보다 더 진한 이야기를 나누었던 기억도 있습니다. 이번 연극을 보면서 3가지 감동을 했습니다. 첫째는 출연 배우들의 나이입니다. 평균나이가 68세라고 합니다. 나이는 숫자에 불과한 것 같습니다. 열과 혼을 다해서 연기하는 배우들에게 진심어린 박수를 보내고 싶었습니다. 주어진 역할에 최선을 다하는 모습은 아름다웠습니다. 처음부터 길이 있는 것은 아니었을 것입니다. 춥고 배고플지라도 묵묵히 걷다보니,그분들이 존경받는 길이 된 것입니다. 둘째는 주옥같은 대사였습니다. ‘사느냐 죽느냐 그것이 문제로다.’ 햄릿은 시작부터 이 문제를 고민하고 있습니다. 인간의 욕망, 배신, 좌절, 분노, 원망‘이 드러나고 있습니다. 삶의 험난한 파도를 넘어야하는 인간의 고뇌를 표현하고 있습니다. 원망을 원망으로 갚아서는 해결 될 수 있는 것이 없습니다. 오늘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것처럼 모든 것을 내려놓고,버려야만 희망의 꽃이 피는 것입니다. 셋째는 무대연출입니다. 기존의 연극은 무대가 있고, 객석이 있기 마련입니다. 이번 연극에서 객석은 모두 비워 있었습니다. 같은 무대에 배우와 관객이 함께 있었습니다. 관객은 배우들의 모습을 가까이에서 볼 수 있었습니다. 배우들은 관객과 함께 호흡을 하며 연기할 수 있었습니다. 연극이 끝나고, 막이 올랐을 때 텅 빈 객석이 눈에 보였습니다. 연출자는 마치 이렇게 이야기하는 것 같았습니다. ‘이제 세상이라는 무대에서 여러분들이 살아야 합니다.’ 무대가 객석이었고, 세상이 무대였음을 말하려는 것 같았습니다. 어쩌면 우리가 살아가는 이 세상은 작은 객석일지 모릅니다.우리가 살아야할 무대는 하느님과 함께하는 영원한 세상이라는 생각입니다. 억울하게 누명을 쓴 사람도, 이별의 슬픔을 안고 쓸쓸히 죽어간 사람도,불의의 폭력에 희생된 사람도, 피어나지 못하고 시들어버린 꽃처럼 세상을 떠난 사람도 하느님의 사랑으로 다시 살아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오늘 예수님께서 하시는 말씀도 그런 것 같습니다. 지금은 희미하게 보이지만 그때는 모든 것이 명확하게 보일 것입니다. 지금 우리가 죽는 것처럼 보이지만 그때 우리는 하느님의 영광을 볼 것입니다.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 서울 대교구 성소 국장 조재형 가브리엘 신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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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서울] 내 목숨유효기간 결정은 지금! 2016년 다해 8월10일 (수) 성 라우렌시오 부제 순교자 축일 내 목숨유효기간 결정은 지금! 내 목숨의 가치는 본인이 정할 일이며 정할 수 있는 유효기간은 지금! 유효기간 결정 스티커는 딱 2중 1선택(디지털식). 품질은 있겠지만요. 목숨 가치를 하늘인정과 하늘거부로 죽기 전까지 반드시 정해야 되요. 세상에 자유를 지니고 태어난 인간이라면 이것 모르면 절대 안 됩니다. 이 당연진리에 무관심 맘대로 사는 사람들 이거 미친 물건들 맞습니다. 선택 유효기간은 지금 살아있을 때이고 죽으면 선택 불가능상태입니다. “자기 목숨을 사랑하는 사람은 목숨을 잃을 것이고, 이 세상에서 자기 목숨을 미워하는 사람은 영원한 생명에 이르도록 목숨을 간직할 것이다. (요한 12,25)” 하늘거부 목숨은 이미 따놓은 지옥행이라 마귀친구들과 세상 뒹굴고요. 겉보긴 같은 사람이지만 하늘인정 목숨은 천사친구들과 힘들여 삽니다. - 서울 대교구 이기정 사도요한 신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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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청주] 하느님의 더 큰 영광을 위하여 |반신부의 복음 묵상 2016년 8월10일 수요일 [(홍) 성 라우렌시오 부제 순교자 축일] <누구든지 나를 섬기면 아버지께서 그를 존중해 주실 것이다.> † 요한 12,24-26 하느님의 더 큰 영광을 위하여 “봄에 씨 뿌리지 않으면 가을에 거둘 것이 없습니다.”고 했습니다. 그리고“적게 뿌리는 사람은 적게 거두고 많이 뿌리는 사람은 많이 거둡니다”(2고린9,6). 그러므로 우리는 우리가 가진 것, 소유한 것이 무엇이든지 하느님 앞에 씨를 뿌려야 하겠습니다. 주님께서 주신 탈랜트, 시간을, 능력, 재능을, 물질을, 믿음을 심어야 합니다. 그러면 그것을 몇 갑절로 늘려 주셔서 열매를 풍성히 맺게 해 주실 것입니다. 주 하느님께서 주신 것을 하느님의 더 큰 영광을 위해서 사용하는 데 어찌 열매가 풍성하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하나의 밀알을 심는 것은 열매를 희망하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풍성한 열매를 맺기 원하면 그만한 정성과 사랑으로 씨앗을 심어야 합니다. 그리고 밀알이 땅속에 묻히면 죽어서 싹을 틔우게 됩니다. 만약에 씨앗이 땅속에 묻히길 거절한다면 아마도 새한테 먹히거나 짐승한테 밟혀 으깨어지고 말 것입니다. 그러므로 묻혀야 합니다. 밀알이 땅속에서 사라지는 것은 없어짐을 뜻하지 않고 생명을 낳기 위하여 뿌리를 내림을 뜻합니다. 사실 죽는다는 것은 곧 새롭게 사는 것입니다. 따라서 얻기를 원하는 만큼 심어야 합니다. 얻기를 원하는 만큼 죽어야 합니다. 주님께서 말씀하십니다.“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밀알 하나가 땅에 떨어져 죽지 않으면 한 알 그대로 남고, 죽으면 많은 열매를 맺는다"(요한 12,24). 예수님의 죽음은 생명을 위한 죽음이었습니다. 진정한 생명을 위하여 감당한 죽음입니다. 그러므로 주님을 따르는 사람들은 영원한 생명을 위하여 그리고 더 높은 가치 때문에 지상의 생명을 거부해야 합니다. 무엇보다도 주님과 그분의 나라 때문에 지상의 매력에 집착된 욕심을 버려야 합니다. 그리고 일상의 삶 안에서 이웃을 위하여 나 자신을 포기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래야 새 생명의 기쁨이 더해집니다. 주님께서는 “누구든지 나를 섬기려면 나를 따라야 한다. 내가 있는 곳에 나를 섬기는 사람도 함께 있을 것이다. 누구든지 나를 섬기면 아버지께서 그를 존중해 주실 것이다”(요한12,26). 하고 말씀하셨습니다. 이 말씀은 우리는 예수님의 모범을 따라야 하고 결국 그리하면 아버지 하느님께서 영광의 자리에 함께해 주시고 또 영광스럽게 해 주신다는 약속입니다. 그러므로 지금 감당하고 있는 모든 일상의 삶을 기왕이면 밀알의 삶이 되도록 해야 하겠습니다. 순명으로 하면 주님의 일이 되고 하고 싶은 대로 하면 내일일 뿐입니다. 오늘 기억하는 라우렌시오 성인은 “로마 교회의 부제직을 수행하고 거기에서 거룩한 피의 봉사자로 일하다가 마침내 그리스도의 이름을 위해 피를 흘렸습니다"(성 아우구스띠노). 그는 모진 박해를 예상하고 교회의 모든 재산을 가난한 사람들에게 나눠주었으며 총독에게 “나는 주 하느님을 경배하며 그분만을 섬기니, 네 잔인한 고초를 두려워하지 않는도다.”하며 믿음을 증거 하였습니다. 결정적으로 총독이 라우렌시오를 불타고 있는 장작더미 위에 눕혔는데 오랫동안 고통을 겪은 후 "모든 것이 잘 구워졌으니, 뒤집어서 잡수시오!" 하고 말했답니다. 바로 그 믿음의 씨앗이 오늘 우리에게 신앙의 열매로 주어진 것입니다. 과연 “순교자의 피는 믿음의 씨앗입니다” (성 예로니모). 일상 안에서의 삶을 생각해 봅니다. 우리가 상대를 위한 배려를 하다가 그만 지칠 때가 있습니다. 그래서 “이젠 당신도 바뀔 때가 되었지 않느냐! 이제는 철이 들 때가 되었지 않느냐! 왜 나만 양보해야 하느냐! 이제는 당신차례야!”하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한 알의 밀알이 된다는 것은 남에게 미뤄야 할 것이 아닙니다. 내가 묻혀 썩어야지 남이 대신 해 줄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밀알 하나가 땅에 떨어져 죽지 않으면 한 알 그대로 남고, 죽으면 많은 열매를 맺습니다”(요한12,24). 그렇다면 열매를 맺고 안 맺고는 나의 죽음에 달려 있습니다. 이제 우리차례입니다. 각자의 삶의 자리에서 한 알의 밀알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이제 할 만큼 했다고 생색을 내지 말고 끝까지 항구하시기 바랍니다. 아버지 하느님께서 영광스럽게 해 주시는 그날까지 결코 좌절하거나 실망하지 말고 최선에 최선을 다하는 기쁨을 차지해야하겠습니다. 지금은 미약하게 보일 지라도 풍성하게 해 주시는 주님을 믿고 밀알의 두려움을 극복하십시오.“하느님은 당신의 호의에 따라 여러분 안에서 활동하시어, 의지를 일으키시고 그것을 실천하게도 하시는 분이십니다” (필리2,13). 그러므로 “하느님의 은총을 헛되이 받는 일이 없게 하십시오”(2코린 6,1). 미루지 않는 사랑을 희망하며 더 큰 사랑으로 사랑합니다. - 청주교구 반영억 라파엘 신부 -
10_1.gif ♬ Me and Bobby Mcgee/Kris Kristofferson ♬

댓글목록

작성자: 미리내님     작성일시:

세상에 태어나서 자신이 선택한 길을 걸어가는 사람처럼
행복한 사람은 없겠지요^^
오후엔 극장에 가서 '덕혜옹주'를 보았답니다
세월이, 시간이 덧없이 흘러갔다는 말은 이분을 두고
하는 말이겠지요.
징용으로 끌려갔던 우리백성들의 삶 또한 고달팠구요
새삼 지금 이 시간을 살아가는 것이
축복이란 생각을 한답니다
한동안 내마음속엔 욕심은 자리잡지 않을 듯 합니다

작성자: 안나님     작성일시:

나라의 운명에 어쩔수 없이 자기의 운명을 맡길 수 밖에 없었던
'덕혜옹주' ~
나라를 굳건히 지켜야하는 것도 신앙인의 믿음이겠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