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월4일 헌신적인 삶을 통한 전인적 신앙고백

작성자 : 안나    작성일시 : 작성일2016-08-04 06:16:50    조회 : 511회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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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2016년 8월4일 목요일 [(백) 성 요한 마리아 비안네 사제 기념일] [수도회] 헌신적인 삶을 통한 전인적 신앙고백 - 기경호 프란치스코 신부 작은형제회(프란치스코회) ○ 제1독서 예레 31,31-34 † 복음 마태 16,13-23 요한 마리아 비안네 성인은 1786년 프랑스 리옹의 근교에서 태어났다. 1815년 사제품을 받은 그는 시골 마을 아르스의 본당 사제로 활동하면서 겸손하고 충실한 목자로 존경받았다. 그의 고행과 성덕이 널리 알려지면서 여러 곳에서 몰려드는 사람들에게 요한 마리아 비안네 신부는 정성을 다하여 영적 가르침과 고해성사를 베풀었다. 평생을 아르스에서 겸손하고 가난한 삶을 산 그에게 해마다 2만여 명이 고해성사를 받고자 찾아왔다고 전해진다. 1859년 선종한 요한 마리아 비안네 사제를 1925년 비오 11세 교황이 시성하고, 4년 뒤에는 ‘본당 사제들의 수호성인’으로 선포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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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오늘의 묵상 오늘 복음을 보면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질문하십니다. “너희는 나를 누구라고 하느냐?” 제자들을 대표하여 시몬 베드로가 “하느님의 아드님 그리스도”이시라고 고백하자, 예수님께서는 베드로에게 하늘 나라의 열쇠를 주겠다고 하십니다. 예수님을 주님으로 고백하는 사람들의 모임이 교회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베드로 사도를 교회의 우두머리로 뽑으셨고, 당신의 전권을 그에게 위임하셨지요. 그 전권은 베드로 사도의 후계자인 교황님을 통해 계속하여 교회 안에 내려오고 있습니다. 교황님이 이끄시는 교회는 우리가 영원한 생명을 얻을 수 있도록, 여러 가지 지침을 내려 주고 있습니다. 특히 우리가 신앙생활에서 오류나 이단에 빠지는 일이 없도록 판단하여 줍니다. 이는 하늘 나라의 열쇠를 주겠다고 하신 예수님의 말씀에 근거한 것이지요. 이러한 교회의 가르침을 충실히 따라야 하겠습니다. 오늘날 예수님께서는 우리에게도 질문하십니다. “너희는 나를 누구라고 하느냐?” 우리도 베드로처럼 “예수님은 주님이십니다.”라고 자신 있게 대답하지요. 예수님께서는 다시 질문하십니다. “너는 너 자신을 누구라고 생각하느냐?” “저는 저 자신을 예수 그리스도의 제자라고 생각합니다.” 이렇게 응답하는 우리에게 예수님께서는 마지막으로 물으실 것입니다. “그렇다면 너희는 어떤 삶을 살아야 하겠느냐?” 이에 대한 답을 오늘 진지하게 생각했으면 합니다. - 매일 미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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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인천] 나의 관심사는 무엇입니까? 2016년 8월4일 목요일 성 요한 마리아 비안네 사제 기념일 제1독서 <나는 새 계약을 맺고 죄를 기억하지 않겠다.> ○ 예레미야서의 말씀입니다. 31,31-34 복음 <너는 베드로이다. 나는 너에게 하늘 나라의 열쇠를 주겠다.> † 마태오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16,13-23 어제는 서울 명동에서 가정선교회 특강이 있었습니다. 시간 맞춰서 명동의 가톨릭회관에 들어가니 저를 알아보는 분들이 계십니다. 제 앞으로 오셔서는 “빠다킹 신부님 맞죠? 텔레비전에서 많이 뵈었습니다. 신부님 글을 계속 보고 있습니다.”라는 말씀들을 하시더군요. 쑥스러우면서도 저를 알아보는 분들이 많아서 이제 밖에 나가서도 잘 살아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그런데 그 중에서 한 분이 제게 갑자기 이런 말씀을 하시는 것입니다. “신부님, 택배비 3,000원 쓰셨죠?” 이 말씀에 주위에 계시던 다른 분들이 다들 무슨 말인가 하십니다. 저 역시 ‘무슨 말이죠?’라는 표정을 짓자, 그분께서 다시 말씀하십니다. “오늘 새벽 묵상 글에 택배비 3,000원 쓰셨잖아요.” 어제 묵상 글을 보신 분은 아시겠지만, 제가 책을 출판했는데 갑곶성지에서 책을 구입해주시면 성지개발에 큰 도움이 되겠다는 말을 썼습니다. 그러면서 이런 글도 덧붙였지요. “세 권 이상을 구입하시면 택배비를 받지 않도록 하겠습니다 (택배비는 3,000원입니다).” 택배비는 3,000원이라는 말이 나온 출처였습니다. 그런데 재미있는 것은 어제 묵상 글에 다른 내용도 많았고 택배비 3,000원이 핵심 주제도 아니었는데(가로로 묶여 있을 정도로 참고 사항일 뿐입니다), 이분은 ‘택배비 3,000원’라는 말만 기억하고 있는 것입니다. 왜 그럴까요? 듣고 싶은 말만 들린다는 말이 있습니다. 자신에게 인상 깊은 말이 때로는 핵심 주제도 아니고 말하는 사람이 전하고자 하는 뜻도 아니었어도 자신이 지금 관심 있는 어떤 말만 들리고 기억되는 것이지요(이분은 왜 택배비만 기억하셨을까요? 혹시 묵상 글을 보실 때 택배가 왔을까요? 잘 모르겠네요).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사람의 아들을 누구라고들 하느냐?” 라고 물으십니다. 그러자 제자들은 ‘세례자 요한, 엘리야, 예레미야나 예언자 가운데 한 분’ 등 사람들이 말을 예수님께 전했지요. 그러자 “그러면 너희는 나를 누구라고 하느냐?”라면서 예수님께서 직접 당신의 신원을 제자들에게 묻습니다. 생각을 해야 하는, 그래서 충분히 망설일 수 있는 순간입니다. 하지만 베드로가 “스승님은 살아 계신 하느님의 아드님 그리스도이십니다.”라고 정답을 말하지요. 어떻게 곧바로 정답을 말할 수 있었을까요? 자신이 평상시에 늘 관심 있게 생각했던 문제였고 그렇기 때문에 자신의 문제에 대해 스스로 찾은 답을 곧바로 말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바로 주님께 대한 관심이 답을 주님께서 청하실 때 망설이지 않고 말할 수 있는 것입니다. 나의 관심사를 잘 생각해보았으면 합니다. 혹시 그 관심사가 주님과 전혀 연관이 없다면 분명 주님의 질문에 망설이고 아무 답도 하지 못하게 될 것입니다. 그러나 내 관심사가 바로 주님이라면 곧바로 대답하는 우리가 될 수 있겠지요. 나의 관심사는 무엇입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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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삶을 튼튼하게 하는 것은 야망이나 욕심이 아니라 사명감 실천이다. 만일 일할 때 사명감을 느낀다면 그것은 인생을 풍요롭고 가치 있게 만든다(이원락).
20160804_01.jpg 성 요한 마리아 비안네 사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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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어디에 관심을 갖고 있는가? 옛날에 토끼랑 거북이가 있었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토끼와 거북이가 크게 싸운 것입니다. 화가 난 토끼는 거북이를 한 대 때렸지요. 분노의 펀치를 날려서 그럴까요? 거북이는 한참을 날아가 버렸습니다. 그리고 거북이는 아무런 소식이 없었습니다. 이렇게 싸움이 끝나고 10년 뒤, 토끼는 결혼을 해서 토끼 같은 새끼들을 낳고 잘 먹고 잘 살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갑자기 집 문이 열리면서 거북이가 두 눈을 부라리며 이렇게 말하는 것입니다. “야, 토끼! 너 나 쳤어?” 10년 동안 복수의 칼을 갈았던 거북이의 모습이 이 세상을 살아가는 우리들의 모습과 비슷하다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특히 자신이 당한 상처의 아픔 때문에 과거를 잊지 못하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습니까? 그 무거운 마음에 지금이라는 현실에서도 제대로 살지 못하곤 합니다. 이런 모습에서 벗어나기 위해서는 어떤 곳에 관심을 두어야 하는지가 중요합니다. 나를 때린 토끼라는 과거의 아픔과 상처를 동반한 사건에 관심을 두는 것이 아니라, 지금을 어떻게 더 행복하게 살 것인가에 관심을 두어야 하는 것입니다. 모두 지금의 행복에 관심을 갖고 그 행복을 향해 나아갔으면 좋겠습니다.
20160804_02.jpg 지금 저의 관심사입니다.
  • - 인천교구 갑곶 성지 조명연 마태오 신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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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수도회] 헌신적인 삶을 통한 전인적 신앙고백 - 기 프란치스코 신부 2016년 다해 8월4일 연중 제18주간 목요일 성 요한 마리아 비안네 사제 기념일 마태 16,13-23 “너희는 나를 누구라고 하느냐?”(마태 16,15) Peter's confession about Jesus 헌신적인 삶을 통한 전인적 신앙고백 예수님께서는 갈릴래아와 그 주변에서의 활약상을 마무리하시면서 제자들에게 “너희는 나를 누구라고 하느냐?” 하고 묻습니다. 이 질문 앞에 제자들은 아마도 두려움마저 느꼈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그것은 지금까지 보고 체험한 예수님의 정체성에 관한 근원적인 질문이나 자신들의 신원에 대한 고백을 요구하는 질문이기 때문입니다. 이에 베드로가 “스승님은 살아 계신 하느님의 아드님 그리스도이십니다" 하고 고백합니다(16,15-16). 곧 예수님은 생명 없는 우상들과는 달리 생명을 주시는 분이시며, 당신 백성을 구하기 위하여 역사 속에 개입하시고 하느님과 지극히 가까운 분이시라는 고백입니다. 이에 예수님께서는 베드로에게 “너는 행복하다! 살과 피가 아니라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께서 그것을 너에게 알려 주셨기 때문이다.” (16,17) 하고 축복하십니다. 베드로가 축복을 받은 것은 미약한 인간이 아니라 하느님의 계시로 그런 고백을 했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그리스도로 고백하는 것이야말로 가난한 이들의 행복이지요. 이어 그 위에 당신의 교회를 세우고 하늘 나라의 열쇠를 주겠다고 하십니다(16,18-19). 예수님께서는 베드로의 고백과 신앙이 아니라 그의 인격 위에, 하느님께서 새롭게 불러 모으신 그리스도인들의 모임인 교회를 세우고자 하신 것입니다. 아울러 베드로에게 하느님 백성에 대한 교도권을 약속하십니다. 그런데 다가올 당신의 수난을 예고하시자 베드로가 그런 일은 결코 일어나지 않을 것이라고 반박합니다(16,22). 하느님의 계시로 예수님을 ‘살아계신 하느님의 아드님 그리스도’라 고백하여 축복받은 그가 한순간에 사람의 일만 생각하는 ‘사탄’으로 불리고 예수님의 걸림돌이 되고 맙니다(16,23). 그렇다면, ‘나를 누구라고 하느냐?’라는 예수님의 질문에 대한 나의 답은 무엇입니까? 그에 대한 답은 내 생각이나 교리 지식에서 나오는 것일 수 없습니다. 온전히 주님을 사랑하고 그분과 일치함으로써 주님의 영의 이끄심으로 고백되어지는 것이어야 할 것입니다. 예수님이 누구이신가 하는 고백은 내가 누구인가 하는 문제와 깊이 연관되어 있습니다. 타인이 나에게 전달해 준 지식이 아니라 하느님과 일치된 내 삶에서 우러나온 전인적인 고백이어야 할 것입니다. 나 자신은 물론 우리 사회나 신앙공동체도 베드로 사도처럼 예수님을 “살아계신 하느님의 아드님 그리스도”라고 고백할 수 있을까요? 그러려면 예수님을 내 삶의 방편이나 우상으로 삼거나, 내 삶과 무관하고 공동선과 모두의 행복과 상관없는 관념적 존재로 여기지 말아야 할 것입니다. 한마디로 예수님을 나의 삶에서 어떠한 위치에 놓고 살아가고 있는지 우리 각자 예수님의 물음에 진지하게 답해야겠습니다. 오늘도 각자의 삶과 공동체와 사회가 생명 넘치고 사랑 가득한 상태가 되도록 헌신함으로써 예수그리스도야말로 살아계신 하느님의 아드님이심을 증거해야겠습니다. 예수님으로부터 눈을 떼고 하늘나라를 위한 수난을 회피하는 순간 우리 또한 베드로처럼 주님의 참 제자가 아니라 ‘사탄’으로 불릴지도 모릅니다. - 기경호 프란치스코 신부 작은 형제회)(프란치스코회) 강론채널 주소 : story.kakao.com/ch/francesco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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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수도회] 알타반의 말씀사랑 2016년 다해 8월4일 목요일 성 요한 마리아 비안네 사제 기념일 "주님의 말씀이다. 나는 그들의 허물을 용서하고, 그들의 죄를 더 이상 기억하지 않겠다." (예레 31,34) 우리 인간은 때론 참 불쌍한 존재입니다. 엎질러진 물은 다시 주워담을 수 없기에 이미 저질은 죄와 허물 때문에 늘 괴로워하고 부끄러워하고 죄스러워하니 자유롭지도 못하고 온전한 기쁨도 누릴 수가 없으니 말입니다. 여러분도 그러시나요? 아무리 안 그런 것처럼 외면하거나 무시해도 내 맘속 깊이에서부터 그것을 지워낼 수는 없겠지요? 그런데 그런데 말입니다. 그 방법이 있답니다. 우리 인간은 그 방법이 없지요. 그것을 주워담을 수 없기 때문이지요. 그런데 하느님만은 그것을 원래대로 되돌릴 수 있답니다. 오늘 하느님께서 계약을 맺자 하시네요. 내 법을 너희 가슴에 새겨줄테니 내가 너희의 하느님이 되고 너희는 내 백성이 될테냐? 그렇다면 나는 너희의 허물을 용서하고 니희의 죄를 더이상 기억하지 않겠다 하시네요. 어떻게 생각하세요? 믿져야 본전 아니겠습니까? 아니 이보다 더 좋은 계약 조건이 있을 수 있나요? 새 스마트폰 사전예약 조건보다 훨 좋은 조건 아닌가요? 그렇다면 두 말할 필요 없이 질러야지요. 계약기간이 오늘 중이랍니다. 하느님의 법을 우리 가슴에 받아들이기만 하면 우리의 모든 죄와 허물을 용서받는 이 멋진 계약에 서명하시고 맘껏 자유와 해방을 누리시길 축원합니다. - 프란치스코회 성심원 원장 오상선 바오로 신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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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수도회] "너는 하느님의 일은 생각하지 않고 사람의 일만 생각하는구나!"(마태 16, 23) 한상우 바오로 신부 |오늘의 강론 묵상 2016년 다해 8월4일 목요일 성 요한 마리아 비안네 사제 기념일. "너는 하느님의 일은 생각하지 않고 사람의 일만 생각하는구나!" (마태 16, 23) 사제란 어떤 사람인가를 다시 묻게 됩니다. 사제는 가장 우선적으로 하느님을 찾는 사람입니다. 누군가를 돕는 사람이 가장 아름답고 행복한 사람일 것입니다. 모두가 사랑이 필요한 사람들입니다. 사랑은 비안네 사제처럼 시련을 통해 하느님의 일을 배우게됩니다. 성 요한 마리아 비안네 사제의 마음을 사로잡으신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그를 낯선 길로 이끌었습니다. 그 낯선 길이 삶의 방향을 바로잡아주는 가장 아름다운 길이 되었습니다. 하느님의 일은 하느님의 사랑으로 우리의 이웃들을 끌어안는 것입니다. 하느님의 길은 사랑으로 다시 돌아가는 길임을 깨닫게됩니다. 가장 사제다운 사제는 끝까지 그 어떤 상황에서도 하느님을 향한 사랑을 저버리지 않는 사제임을 배우게됩니다. 사랑을 노래하는 곳이 하느님 백성들의 모임인 교회이기 때문입니다. 이 시대의 마지막 보루는 신앙인들입니다. 믿음은 알고 있는 것이 아니라 성 요한 마리아 비안네 사제처럼 아는 것을 진실로 실천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욕심과 아첨 이기적인 욕망이 아니라 다시금 낮은 곳을 향하는 사제이기를 기도드립니다. - 구속주회 한상우 바오로 신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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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서울] 성 요한 마리아 비안네 사제 기념일 2016년 8월4일 목요일 성 요한 마리아 비안네 사제 기념일 <너는 베드로이다. 나는 너에게 하늘 나라의 열쇠를 주겠다.> † 마태 16,13-23 ‘동전의 양면’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동전은 앞면과 뒷면이 모두 있어야 비로소 ‘가치’를 지니게 됩니다. 우리가 사용하는 화폐에는 가치를 드러내는 숫자가 표시되어 있습니다. 나라를 구했던 장군, 학문을 사랑한 선비, 백성을 사랑한 왕, 어진 어머니의 모습을 표현하고 있습니다. 화폐를 경제적인 가치로만 이해하기보다는, 화폐의 문화적인 가치를 함께 보자는 취지일 것입니다. 삶은 죽음이 있기에 소중한 것이기도 합니다. 빛은 어둠이 있기에 더욱 밝게 보이는 것입니다. ‘살아있는 하느님의 아들 그리스도’라고 고백하는 예수님에 대해서도 다양한 모습이 있습니다. 그분의 권능과 영광을 추구하는 교회는 세상의 권력과 손을 잡기도 했고, 교회가 권력이 되기도 했습니다. 그분이 보여주신 표징과 말씀은 교회의 제도와 법이 되기도 했습니다. 피라미드식 교계제도가 질서와 권위의 상징이 되기도 했습니다. 웅장하고, 화려한 교회의 모습으로 드러나기도 했습니다. 서구 문화에 커다란 영향을 주기도 했습니다. 그분의 수난과 죽음은 교회의 영성이 되었습니다. 비움과 나눔은 가난한 이들을 우선적으로 선택하는 교회의 모습이 되기도 했습니다. 하느님의 보다 큰 영광을 위해서라면 부귀보다 가난을 택할 수도 있고, 건강보다 질병을 택할 수도 있고, 오래 사는 것보다 단명 하는 것을 택할 수도 있었습니다. 어두운 땅 속에서 한 송이 꽃이 아름답게 피듯이, 박해와 시련 속에서도 신앙의 꽃들이 피었습니다. 예전에 한 자매님이 제게 말씀하였습니다. ‘사제 생활 할 만하십니까?’ 자매님의 이야기를 듣고 생각했습니다. ‘과연 사제 생활 한 만한가?’ 예수님의 사랑받던 제자인 베드로 사도는 오늘 예수님께 칭찬을 받았지만, ‘사탄’이라는 말을 들을 정도로 호된 질책을 받았습니다. 오늘은 ‘본당신부의 수호성인’ 요한 마리아 비안네 신부님의 축일입니다. 사제는 첫째, 기도하는 사람이어야 합니다. 아무리 유능하고, 박사학위가 많아도, 친화력이 좋고, 강론을 잘해도 기도하지 않는 사제는 곧 지치고, 시련과 고난 앞에 좌절하게 됩니다. 아침 일찍 일어나 주님께 기도하는 사제, 조용한 성당에서 조배하는 사제는 든든한 바위와 같아서 흔들리지 않습니다. 둘째, 사제는 책을 가까이 해야 합니다. 신학적인 지식은 새로운 것들이 등장합니다. 사제는 시대의 흐름을 알아야 하고, 현대인들이 추구하는 가치를 볼 줄 알아야 합니다. 모든 것을 다 경험할 수는 없지만 책을 통해서 사제는 간접적으로 알 수 있습니다. 특히 인류의 지성들이 남겨준 인문학 서적은 사제들의 친구가 되어야 합니다. 셋째, 사제는 건강관리를 잘해야 합니다. 사제가 해야 할 업무가 많습니다. 단체들과 만남, 봉성체, 연도, 반모임, 면담, 성사집전과 같은 일들은 건강해야 수행할 수 있습니다. 건강하지 못한 사제는 매사에 자신이 없고, 신자들의 요청을 다 수락할 수 없습니다. 그러기에 사제는 꾸준한 운동으로 자신의 몸을 관리해야 합니다. 넷째, 사제는 재정에 투명해야 합니다. 본당의 헌금, 교무금은 모두 신자들의 정성어린 마음입니다. 본당의 예산은 특히 가난한 이들, 어려운 이웃을 위해서 쓰이도록 해야 합니다. 공사를 시작할 때는 신중하게 신자들과 상의를 해야 합니다. 다섯째, 사제는 강론 준비를 성실하게 해야 합니다. 강론은 사제의 특권이자, 의무입니다. 매일 강론, 주일 강론을 성실하게 준비해야 합니다. 성서 말씀을 잘 묵상하고, 그것을 시대의 흐름에 맞게 해석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자신의 권위와 자신의 재능이 드러나기 보다는 하느님의 뜻과 하느님의 영광이 드러날 수 있도록 강론을 준비해야 합니다. 모든 사제들이 악의 유혹에 넘어가지 않도록, 건강한 몸과 마음으로 기쁘게 사제의 직무를 수행 할 수 있도록 기도 중에 기억해 주시기 바랍니다. “영원한 사제이신 예수님! 주님을 본받으려는 사제들을 지켜주시어 어느 누구도 그들을 해치지 못하게 하소서. 주님의 영광스러운 사제직에 올라 날마다 주님의 성체와 성혈을 이루는 사제들을 언제나 깨끗하고 거룩하게 지켜주소서. 주님의 뜨거운 사랑으로 사제들을 세속에 물들지 않도록 지켜주소서. 사제들이 하는 모든 일에 강복하시어 은총의 풍부한 열매를 맺게 하시고 저희로 말미암아 세상에서는 그들이 더없는 기쁨과 위안을 얻고 천국에서는 찬란히 빛나는 영광을 누리게 하소서.”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 서울 대교구 성소 국장 조재형 가브리엘 신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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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서울] 교회는 2000년 이상 왔잖아요. 2016년 다해 8월4일 (목) 성 요한 마리아 비안네 사제 기념일 교회는 2000년 이상 왔잖아요. 예수님은 애매하고 흐지부지하신 분 아니십니다. 확실한 분이십니다. 예수님은 계획이나 약속에 확실하시고 잘못에는 단호하게 야단치셨죠. 그런 모델로 사도 베드로가 등장했죠. 반석-사탄, 사랑-거부 등등이죠. 그래도 예수님은 항상 베드로와 함께 하셨다는 점 성경서 확인됩니다. 베드로는 1대 교황님이셨고 그 교회가 지금 266대까지 온 걸 보세요. 세상 어느 국가도 수백 년 못 갔지만 가톨릭은 2000년 이상 왔잖아요. “또 나는 너에게 하늘 나라의 열쇠를 주겠다. 그러니 네가 무엇이든지 땅에서 매면 하늘에서도 매일 것이고, 네가 무엇이든지 땅에서 풀면 하늘에서도 풀릴 것이다.”(마태오 16,19)” 100년도 못가는 내 생각 거두고 2000년 가톨릭 진리 가르침 배웁시다. 돈도 건강도 미모도 권력도 힘도 재주도 기술도 전부 흙속에 묻힐거죠. - 서울 대교구 이기정 사도요한 신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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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청주] 주님께서 원하시는 나 |반신부의 복음 묵상 2016년 8월4일 목요일 성 요한 마리아 비안네 사제 기념일 <너는 베드로이다. 나는 너에게 하늘 나라의 열쇠를 주겠다.> † 마태 16,13-23 주님께서 원하시는 나 비안네 신부님은 당시 프랑스 혁명으로 정상적인 초등교육을 받지 못했고 대신학교에서도 학과 성적이 모자라 많은 어려움을 겪으셨습니다. 그러나 지도교수 아베발레 신부님의 지속적인 도움으로 사제 서품을 받을 수 있었습니다. 그는 영적지도에 뛰어 났는데 특히 훌륭한 강론과 고해신부로 대단한 명성을 얻었습니다. 연2만여 명이 그에게 고해성사를 받았고 하루18시간이나 고해성사를 줄 정도였다고 합니다. 인간적으로 생각하면 공부도 못하고 그야말로 바보였는데 그 어떤 훌륭한 신부보다도 더 큰 하느님의 일을 하셨습니다. 신부님께서 가장 두려워하는 것은 존경받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그가 아무리 두려워해도 사람들은 신부님을 존경했습니다. 참으로 하느님이 하시는 일은 놀랍기만 합니다. 오늘복음을 보면 예수께서는 “스승님은 살아계신 하느님의 아드님 그리스도 이십니다.”(마태16,16) 라고 고백한 베드로를 꾸짖습니다. “사탄아 내게서 물러가라. 너는 나에게 걸림돌이다. 너는 하느님의 일은 생각하지 않고 사람의 일만 생각하는구나!”(마태16,23). 예수님께서 수난과 죽음을 예고하였지만 그런 일은 주님께 결코 일어나지 않을 것이라고 말하며 받아들이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베드로에게 있어서 예수님께서 고난을 받고 죽어야 한다는 것은 상상할 수도 없는 일이었습니다. 베드로는 예수님의 운명에 대해서 아는 것도 없었고 또 그 신비를 이해하려고 하지도 않았습니다. 다시 말하면 베드로가 생각하고 고백한 그리스도상과 당신의 수난과 부활을 예고하시는 예수님과는 너무 동떨어져 있었던 것입니다. 그러니 꾸지람을 듣는 것은 당연합니다. 베드로가 하느님의 뜻을 받아들여 이해하려고 하기보다는 인간의 원의를 내새우려 했다는 것은 바로 우리의 모습입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구세주로 고백하면서도 사실은 ‘그분이 원하는 나’를 추구하기 보다는 ‘내가 원하는 주님’을 만들어 가려고 하고 있으니 말입니다. 예수님을 따르는 제자라면 그에 걸 맞는 모습, 제자다운 모습을 갖도록 해야 합니다. 그러나 우리는 참으로 많은 약점을 안고 살아갑니다. 그래서 그것이 그리스도를 따르는데 걸림돌이 되기도 합니다. 특별히 성직자의 허물은 용납할 수 없는 것처럼 생각되기도 합니다. 그렇지만 하느님은 그의 약점까지도 당신의 일을 하는데 쓰십니다. 그러므로 하느님의 일을 생각하지 않고 사람의 일만을 생각하여 이러쿵 저러쿵 흉을 보거나 잘못을 들추어내어 그리스도의 길을 가로막는 사탄이 되어서는 안 되겠습니다. “하느님께서는 항상 일하시나 조용히 하십니다. 그러나 사람들은 얼마나 말이 많은지?”-아우구스티누스- 하느님께서는 어제도 오늘도 내일도 당신의 일을 하십니다. 그러나 인간을 도구삼아 하십니다. 부족함과 허물이 많은 인간을 통해서 하십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매순간 하느님께서 나를 통해서 무엇을 이루시고자 하는가를 찾아야 합니다. 내 원의를 내세우지 말고 주님의 원의를 찾는 일을 할 수 있기를 희망합니다. “그러므로 사랑하는 형제 여러분, 굳건히 서서 흔들리지 말고 언제든지 주님의 일을 열심히 하십시오. 주님을 위해서 하는 노력은 결코 헛되지 않다는 것을 명심하십시오”(1고린15,58). 잠깐사이에 천국과 지옥을 넘나드는 베드로의 모습이 바로 우리의 현주소입니다. 하느님의 뜻을 실행하는 가운데 삶의 자리를 천국으로 만드시기 바랍니다. 미루지 않는 사랑을 희망하며 더 큰 사랑으로 사랑합니다. - 청주교구 반영억 라파엘 신부 -
10_1.gif ♬ 가톨릭 성가 332번. 봉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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