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월31일 나를 행복으로 이끌어 주는 것들

작성자 : 안나    작성일시 : 작성일2016-07-31 06:05:40    조회 : 498회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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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2016년 7월31일 주일 [(녹) 연중 제18주일] [수도회] 나를 행복으로 이끌어주는 것들 - 기경호 프란치스코 신부 작은형제회(프란치스코회) ○ 제1독서 코헬 1,2; 2,21-23 ○ 제2독서 콜로 3,1-5.9-11 † 복음 루카 12,13-21 오늘 복음의 비유에 나오는 어리석은 부자처럼, 사람의 생명이 재산에만 달려 있는 듯 탐욕에 사로잡혀 돈이 최고라고 믿고 사는 이들이 있습니다. 그리스도인들은 이 세상의 욕망과 이기심에서 벗어나 하느님 아버지께서 보시기에 가치 있는 것들을 추구하여야 합니다. “모든 것이 허무로다!” 하고 뒤늦게 후회하지 말고 하느님 앞에서 부유한 사람이 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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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오늘의 묵상 모든 사람은 근본적으로 삶의 확실한 안전판을 갖고자 합니다. 죽는 날까지 편안한 삶을 누리면서 자신의 존재를 기댈 수 있는 든든한 기둥을 마련하고 싶어 합니다. 그리고 재산을 많이 모아 둠으로써 이것이 가능하다고 믿기에 돈에 대한 욕심을 버리지 못합니다. 또한 돈은 인간에게 권력을 주기도 합니다. 돈을 가진 자는 그것을 이용해 원하는 모든 것을 할 수 있고, 그래서 자고이래로 돈이 권력이 되고 우상이 됩니다. 돈에 대한 갈증은 사람과 사람 사이를 갈라놓고, 이웃을 형제가 아니라 극복하고 제거해야 할 대상으로 만들어 버립니다. 그래서 유산을 나누는 것 또한 가족들에게 쉽지 않은 일이며, 때로는 유산으로 가족이 분열되기도 합니다. 오늘 복음에서 어떤 사람이 예수님께 유산의 분할에 관한 재판을 해 주시라고 청합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그런 재판관이 되는 것을 거부하십니다. 그리고 삶의 확실한 기초는 재산이 아니라 생명을 주관하시는 하느님께 있다는 것을 가르쳐 주십니다. 하느님 안에서만이 재산의 사용도 진정한 의미를 갖게 됩니다. 하느님께서 만들어 주신 모든 재화는 개인주의로 인한 분열의 도구가 아니라 하느님 안에서 나눔으로써 친교를 이루는 데 그 의미가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 신앙인은 하느님 앞에서 부유한 사람이 되도록 초대받은 사람들입니다. 하느님의 선물인 재산을 움켜쥐지 않고 손을 펴 가난한 이들과 나눌 때, 하느님만이 주시는 참된 부를 갖게 될 것입니다. - 매일 미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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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인천] 사랑 실천 2016년 다해 7월31일 연중 제18주일 제1독서 <그 모든 노고로 인간에게 남는 것이 무엇인가?> ○ 코헬렛의 말씀입니다. 1,2; 2,21-23 제2독서 "여러분은 저 위에 있는 것을 추구하십시오. 거기에는 그리스도께서 계십니다." ○ 사도 바오로의 콜로새서 말씀입니다. 3,1-5.9-11 복음 <네가 마련해 둔 것은 누구 차지가 되겠느냐?> † 루카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12,13-21 이 세상에서 돈을 버는 일에만 모든 관심을 가지고 있었고, 사랑의 실천에 대해서는 거의 관심이 없었던 사람이 있었습니다. 그는 그저 사람들이 하는 것을 보면서 눈치껏 약간의 나눔을 실천할 뿐이었지요. 이런 그 역시 먼 훗날 죽어 하늘 나라에 가게 되었습니다. 베드로는 그를 맞이하면서 앞으로 당신이 살 집에 함께 가자면서 안내를 해주었습니다. 살아생전에 으리으리한 집에 살았던 그였기에 그는 ‘하늘 나라에서는 어떤 집에서 살까?’하면서 베드로를 쫓아갔지요. 그런데 베드로가 데리고 가서 보여준 집은 너무나 보잘 것 없는 작은 집인 것입니다. 더구나 이 집은 주위에 있는 대저택들에 에워싸여 있어서 더욱 더 보잘 것 없어 보였지요. 그는 말했습니다. “저는 저런 곳에서 살 수 없어요. 차와 집은 줄일 수 없다고 하지 않습니까? 저는 이제까지 이렇게 작은 집에 살아본 적이 없습니다.” 그러자 베드로 사도는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죄송합니다. 하지만 저 집은 당신이 하늘 나라에 보내 준 자재들을 가지고 그나마 가장 낫게 지은 것이랍니다.” 이 이야기를 보면서 여러분 스스로를 한 번 생각해보십시오. 여러분이 하늘에 보낸 자재로는 어떤 집이 나올까요? 솔직히 사람이 죽을 때 이 세상에서 모은 것을 가지고 가지 못합니다. 왜 그럴까요? 하늘 나라에서는 이 세상의 물질적인 것들이 필요 없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하늘 나라에서의 영원한 삶을 위해서 우리가 구해야 할 것은 무엇일까요? 탐욕을 불러일으키는 돈이 아니라 덕행을 사랑하는 마음을 구해야 합니다. 그래야 하늘 나라에서 내가 살 집을 지을 좋은 자재들을 보낼 수 있기 때문입니다. 오늘 복음을 보면 어떤 사람이 예수님께 유산분배의 중재를 서 달라는 부탁을 합니다. 이 부탁에 예수님께서는 큰 실망을 하신 것 같습니다. “왜 내게 쓸데없는 것을 부탁하느냐?”라는 것이지요. 생각해보세요. 주님께서는 우리들의 구원, 즉 하늘 나라에서의 영원한 생명을 누릴 수 있도록 이 땅에 오셨습니다. 그런데 탐욕을 불러일으키는 돈이 구원에 영향을 미칠까요? 당연히 아닙니다. 예수님께 부탁드려야 할 것은 이 세상 안에서 내 탐욕을 채울 수 있는 것이 아니라, 내 영혼의 구원이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지금 우리들의 기도 내용을 잘 따져 보았으면 좋겠습니다. 혹시 주님께서 크게 실망할 기도를 하고 있었던 것은 아닐까요? 주님께서 그토록 강조하셨던 사랑을 실천해서 하늘 나라에 보낼 훌륭한 자재를 만들 수 있는 우리가 되어야 합니다. 그리고 주님께서 듣고 싶어 하시는 기도, 주님께서 실망하지 않을 기도를 바칠 수 있어야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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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사랑은 눈 먼 것이 아니다. 더 적게 보는 게 아니라 더 많이 본다. 다만 더 많이 보이기 때문에, 더 적게 보려고 하는 것이다 (랍비 줄리어스 고든),
20160731_01.jpg 하늘 나라에 재물을 쌓아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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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고(故) 강석규 박사의 '어느 95세 어른의 수기' 중에서 나는 젊었을 때 정말 열심히 일했습니다. 그 결과 나는 실력을 인정받았고 존경을 받았습니다. 그 덕에 65세 때 당당한 은퇴를 할 수 있었죠. 그런 내가 30년 후인 95세 생일 때 얼마나 후회의 눈물을 흘렸는지 모릅니다. 내 65년의 생애는 자랑스럽고 떳떳했지만, 이후 30년의 삶은 부끄럽고 후회되고 비통한 삶이었습니다. 나는 퇴직 후 '이제 다 살았다. 남은 인생은 그냥 덤이다.'라는 생각으로 그저 고통 없이 죽기만을 기다렸습니다. 덧없고 희망이 없는 삶... 그런 삶을 무려 30년이나 살았습니다. 30년의 세월은 지금 내 나이 95세로 보면... 3분의 1에 해당하는 기나긴 시간입니다. 만일 내가 퇴직할 때 앞으로 30년을 더 살 수 있다고 생각했다면 난 정말 그렇게 살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그때 나 스스로가 늙었다고, 뭔가를 시작하기엔 늦었다고, 생각했던 것이 큰 잘못이었습니다. 나는 지금 95살이지만 정신이 또렷합니다. 앞으로 10년, 20년을 더 살지 모릅니다. 이제 나는 하고 싶었던 어학 공부를 시작하려 합니다. 그 이유는 단 한 가지..... 10년 후 맞이하게 될 105번째 생일에 95살 때 왜 아무것도 시작하지 않았는지 후회하지 않기 위해서입니다. 95세 어른의 수기를 읽으면서 참으로 많은 생각을 하게 됩니다. 문득 이런 생각을 해 봅니다. 후회하는 삶을 살고 있는 이유는 어떤 일을 했기 때문이 아니라, 할 수 있는 일을 하지 않았기 때문이라는 것을 말이지요. 각종 이유를 들어 하지 않은 것들이 늘어날수록 우리의 후회는 늘어만 갈 것입니다. 따라서 우리의 삶을 그래도 의미 있는 삶을 만들고자 한다면 이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무엇이든 해야 합니다.”
20160731_02.jpg 세상 것에 대한 지대한 관심으로 후회를 또 만들고 있는 것은 아닐까요?
  • - 인천교구 갑곶 성지 조명연 마태오 신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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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수도회] 나를 행복으로 이끌어주는 것들 - 기 프란치스코 신부 2016년 다해 7월31일 연중 제18주일 루카 12,13-21 “아무리 부유하더라도 사람의 생명은 그의 재산에 달려 있지 않다.” (루카 12,15) Parable of the rich fool 나를 행복으로 이끌어주는 것들 코헬렛이 말합니다. "허무로다, 허무! 모든 것이 허무로다!”(1,2) 이는 의미 없는 허무주의를 강조하는 것이 아닙니다. 인생에 이룰 것 다 이루고 넘치도록 풍부한 재물을 지니고 높은 지위에 올라 기쁨을 맛본다 하여도 하느님 안에서가 아니라면, 주님과 무관한 것이라면 세상 모든 것은 다 헛되다는 뜻입니다. 제 아무리 성공하고 스스로 만족을 느낀다 하여도 자신이 주인이 되어 주님을 잊고 살아간다면 그 인생은 쓸모없고 비참한 인생일 수밖에 없음을 지적한 것입니다. 이런 진리의 말씀을 잘 알면서도 하느님과 무관하게 살아가는 이들이 있습니다. 이들은 하느님께 인색한 어리석은 사람들입니다. 그들은 진정한 아름다움이 아니라 거짓 아름다움에 현혹되고, 존재의 근원인 주님과의 일치를 추구하기보다는 소유와 탐욕에 젖어 헛된 인생을 살아갑니다. 심각한 방향착오를 하며 사는 것이지요. 오늘 복음에 나오는 부자가 바로 이런 방향착오를 한 사람입니다. 그는 그렇게 눈앞에 보이는 소출에 눈이 멀어 그것을 어디에 쌓아놓을지에 대해서만 신경을 쓰고 있습니다. 사람이 돈과 재물과 권력에 애착을 갖기 시작하면 신앙도 가족도 친구도 다 눈에 들어오지 않습니다. 그러나 소유하려 하면 할수록 영원한 생명과는 거리가 멀어지며, 사람은 애착을 두는 것들을 닮아간다는 변함없는 진리를 깊이 새길 필요가 있습니다. 행복은 더 많이 소유하는데서 오는 것이 결코 아닙니다. 오히려 하느님께서 주신 것을 되돌리고 기꺼이 나누면 나눌수록 백배의 상급을 주시는 하느님이십니다. 행복한 삶을 위하여 정작 중요한 것은 재물 자체가 아닙니다. 어디에 마음을 두고 어떤 관계를 맺느냐 하는 것이 행복과 불행, 생명과 죽음을 갈라놓습니다. 하느님께 마음을 두고 산다면 많은 재물이 생겨도 그것을 하느님의 뜻대로 어떻게 나눌지 고민할 것입니다. 따라서 하느님의 마음과 시선을 늘 지녀야겠지요. 바오로 사도는 권고합니다. "그리스도와 함께 다시 살아났으니, 저 위에 있는 것을 추구하십시오.”(콜로 3,1) 재물도 나의 능력도 하느님 안에서 하느님을 위해서 쓰인다면 늘 선이 될 수 있습니다. 하느님을 삶의 중심과 첫 자리에 모시고, 그 안에서 생겨나는 모든 것과 맺게 되는 온갖 관계야말로 우리를 행복으로 이끄는 지름길입니다. 따라서 우리는 모든 탐욕을 경계해야 합니다. 아무리 부유하더라도 사람의 생명은 그의 재산에 달려 있지 않기 때문이지요(루카 12,15). 우리가 지녀야 할 재물은 따뜻한 말 한마디, 관대한 배려, 아낌없는 나눔, 차별 없는 환대, 사회적 차별과 불의로 고통 받는 이들과 정의를 위해 연대하고 헌신하는 자세와 같은 것들이겠지요. 이런 것들이 영원 생명을 가져다주고 세상에 빛을 밝히는 등불이 될 것입니다. 오늘도 주님과 무관한 현세재물에 대한 애착을 버리고 하느님 보시기에 좋은 썩지 않는 재화를 쌓은 지혜로운 사람이 되었으면 합니다. - 기경호 프란치스코 신부 작은 형제회)(프란치스코회) 강론채널 주소 : story.kakao.com/ch/francesco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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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수도회] 알타반의 말씀사랑 2016년 다해 7월31일 연중 제18주일 "허무로다, 허무! 코헬렛이 말한다. 허무로다, 허무! 모든 것이 허무로다!" (코헬렛 1,2) 우리 주위에 죽어가는 지인들을 바라보면 참으로 사는 게 허무하구나 생각됩니다. 사는 게 별거 아닌데 뭘 그리 아웅다웅하며 사는지... 부귀도 영화도 성공도 사랑도 결국 순간의 즐거움일 뿐 늙고 병들면 모두가 다 허망한 일이지요. 사실 젊음도 한 시절이요. 일도 사랑도 한 때일 뿐입니다. 그런데도 그것을 쟁취하기 위해 온갖 애를 다 쓰고 서로 아귀다툼하고 미워하고 증오하고 심지어 죽이기도 하는 인생사가 무섭기조차 합니다. 그렇다고 우리가 허무주의자로 살아야 할까요? 아니지요. 그렇기 때문에 한번 주어진 인생 멋지게 살다가 가야겠지요. 신앙인은 멋지고 아름다운 인생, 후회없고 보람된 인생을 사는데 촛점을 맞추는 사람이라고 할까요? 부질없고 허망한 것을 좇아서 헤메이며 인생 낭비하지 말고 우리 가운데 와 있는 멋진 하느님 나라를 만들어 가는데 투신해야 하지 않을까요? 멋지고 아름다운 인생을 위해 아낌없이 주는 나무처럼 그렇게 뿌듯한 오늘 만드소서~~ - 프란치스코회 성심원 원장 오상선 바오로 신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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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수도회] "모든 탐욕을 경계하여라."(루카 12, 15) 한상우 바오로 신부 |오늘의 강론 묵상 2016년 다해 7월31일 연중 제18주일. "모든 탐욕을 경계하여라."(루카 12, 15) 탐욕으로 눈이 멀어버린 우리들입니다. 우리의 탐욕으로 돌아가야 할 길을 잃어버린 우리의 삶입니다. 악착같이 손에 모은 지폐가 우리를 구원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를 태어나게 하신 하느님께서 우리를 구원하는 것입니다. 하느님으로부터 시작되어 하느님께로 다시 돌아가는 우리의 삶입니다. 욕망할수록 생명은 빛을 잃게 됩니다. 하느님께로 돌아가야 할 시간은 아무도 알 수 없습니다. 우리 자신이 누구인지를 모르기에 하느님을 찾지 않는 것입니다. 우리모두는 떠나가야 할 존재들입니다. 그 누구도 피할 수 없는 우리의 죽음이기 때문입니다. 너무나도 짧은 시간을 살아가는 우리들입니다. 언제가는 우리모두 이 세상에서 사라질 존재들이기 때문입니다. 무엇을 위해 살아야 할지를 고민하는 시간이 되기를 기도드립니다. 가장 나빴던 탐욕을 통해 가장 좋은 시간으로 나아가는 은총의 주일되시길 바랍니다. 예수님께 물음을 다시 던집니다. "삶이 무엇입니까?" - 구속주회 한상우 바오로 신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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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수도회] 여기 있으나 거기 있으나 2016년 다해 7월31일 연중 제18주일 <네가 마련해 둔 것은 누구 차지가 되겠느냐?> † 루카 12,13-21 여기 있으나 거기 있으나 언젠가 오래되고 아름답기로 유명한 한 고도(古都)를 다녀왔습니다. 당대 왕들이며 귀족들이 얼마나 공을 들였으면 수 천 년 세월이 흘렀건만 아직도 찬란한 유적들이 잘 보존되고 있었습니다. 그중에서 제 눈길을 확 끈 것은 엄청난 규모의 봉분들입니다. 어떤 왕들은 살아생전 자신의 무덤을 준비했습니다. 그리고 놀라운 일은 신하나 종들 가운데 자신이 죽으면 함께 무덤에 함께 묻힐 사람들의 명단, 이른바 ‘순장조’(殉葬組) 명단까지 미리 확보했습니다. 해도 해도 너무한 것은 신하나 종들 가운데 수명이 다하지도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본인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함께 묻혔다는 것입니다. 당대 권세가 하늘을 찌르던 왕이며 황제들 역시 죽음 앞에 한 인간이었습니다. 홀로 떠나기가 너무나 두려워 애꿎은 살아있는 신하들이나 종들과 함께 그 길을 갔습니다. 죽음이 두렵긴 두려웠나 봅니다. 이런 면에서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얼마나 행복한 사람들인지 모르겠습니다. 주님께서 우리에게 명명백백하게 말씀하셨습니다.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다. 나를 믿는 사람들은 영원히 죽지 않을 것이다.” 우리에게 죽음은 그간 쌓아올린 공든 탑이 와르르 무너지는 날이 절대 아닙니다. 두려워서 부들부들 떨 순간도 아닙니다. 기를 쓰고 도망갈 대상도 아닙니다. 오히려 오랜만에 찾아온 절친한 친구 같은 대상입니다. 그 친구가 다가올 때 조금은 아쉽기도 하겠지만 그렇게 슬퍼할 일도 아닙니다. 여기보다 더 아름다운 희망과 영생의 땅으로 삶의 자리를 옮기는 것뿐입니다. 따라서 대성통곡을 터트리며 억지로 떠나는 여행이 아니라 오래 기다렸던 수학여행 떠나듯이 그렇게 홀가분히 떠날 일입니다. 말은 그럴싸한데 사실 그것이 그리 쉽지 않습니다. 그 이유는 뭐겠습니까? 평소에 떠나는 연습이 충분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일상 안에서 내려놓은 작업을 자주 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이 자리가 영원할 것처럼 여기며 살았기 때문입니다. 바오로 사도처럼 살아생전 매일 매 순간 혼신의 힘을 다해 달릴 곳을 다 달린 사람들은 더 이상 지상에 아쉬움이 없습니다. 여기(地上) 있으나 거기(天上) 있으나 마찬가지입니다. 바오로 사도의 권고말씀처럼 우리는 세례를 통해 그리스도와 함께 진정으로 다시 살아났으니, 이제부터라도 이 아래가 아니라 저 위에 있는 것을 추구해야겠습니다. 보다 자주 위에 있는 것을 생각하고 땅에 있는 것들에 대한 미련과 애착을 끊어나가야겠습니다. 지상에서 죽기 살기로 발버둥치지만 그런 노력이 무엇을 위한 것인지 잘 헤아려봐야겠습니다. “허무로다, 허무! 모든 것이 허무로다!” 라고 외치는 욥의 음성처럼 무로 돌아갈 것들을 그렇게 애지중지하고 집착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모르겠습니다. 우리가 작열하는 태양 아래에서 애쓰는 그 모든 노고와 근심의 결과는 무엇인지 살펴봐야겠습니다. 죽기 살기로 모아들이는데 혈안이 되다보면 정작 중요한 것들 다 놓쳐버리기 마련입니다. ‘영혼이나 신앙, 사랑이나 우정이 밥 먹여 주냐?’며 정신없이 허상만을 쫓아다니던 우리에게 어느 순간 청천벽력 같은 주님의 말씀이 현실이 되고 말 것입니다. “어리석은 자야, 오늘 밤에 네 목숨을 되찾아 갈 것이다. 그러면 네가 마련해 둔 것은 누구 차지가 되겠느냐?”(루카복음 12장 20절) 시편작가의 강조처럼 천 년도 당신 눈에는 지나간 어제 같고, 한 토막 밤과도 같습니다. 세상의 논리와 그저 육(肉)에 따라 사는 사람들은 아침에 든 선잠 같고, 사라져 가는 풀과 같습니다. 아침에 돋아나 푸르렀다가, 저녁에 시들어 말라 버릴 것입니다. - 살레시오회 양승국 스테파노 신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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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서울] 연중 제18주일 2016년 다해 7월31일 연중 제18주일 <네가 마련해 둔 것은 누구 차지가 되겠느냐?> † 루카 12,13-21 창문을 열면 들리는 소리가 있습니다. 매미의 노래입니다. 사랑하는 짝을 찾기 위해서 부르는 노래입니다. 소리가 조금 크지만 매미의 삶을 보면 이해가 됩니다. 매미는 땅 속에서 길게는 17년을 지낸다고 합니다. 어두운 땅 속에서 17년을 지냈으니 하고 싶은 이야기도 무척 많았을 것입니다. 어른이 된 매미는 이제 한여름 밤의 꿈을 꾸고 삶을 마감한다고 합니다. 우리의 삶도 어쩌면 그런 것이 아닌가 싶습니다. 그래서 옛 선인은 이렇게 노래했습니다. “오백년 도읍지를 필마로 돌아드니 산천은 의구한데 인걸은 간데없다 어즈버, 태명연월이 꿈이런가 하노라” 짧은 생을 살면서 우리는 너무나 많은 것들을 추구하는 것 같습니다. 대표적인 것이 재물, 명예, 권력이라는 욕망의 불꽃입니다. 그 불꽃은 화려해 보이지만 너무 가까이하면 우리의 몸과 마음은 큰 상처를 받게 됩니다. 그래서 오늘 제1독서는 그런 것들이 모두 헛된 것이라고 이야기 합니다. 잘나가는 검사가 재물에 대한 집착 때문에 넘어지는 것을 봅니다. 많은 박수를 받던 연예인이 욕망을 조절하지 못해서 추락하는 것을 봅니다. 권력을 놓고 싶지 않아서 양심을 속이고, 사람을 배신하는 것을 봅니다. 그 끝은 초라할 뿐입니다. 예전에 ‘부고’라는 시를 읽은 적이 있습니다. 가끔씩 신문에 나는 부고를 보면서 시인이 느낌을 적었습니다. 사고로 세상을 떠나는 사람, 병을 얻어 세상을 떠나는 사람, 노환으로 세상을 떠나는 사람, 아직 피워보지도 못하고 시드는 꽃처럼 어린나이에 세상을 떠나는 사람, 스스로 목숨을 끊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세상에 태어나는 모습은 다들 비슷합니다. 눈도 뜨지 못하고, 가녀린 모습으로 누군가가 돌봐주지 않으면 하루도 살 수 없을 것 같은 모습으로 태어납니다. 하지만 세상을 떠나는 모습은 여러 가지입니다. 하늘이 주신 수명을 다하고, 가족들의 기도를 받으며, 긴 투병생활 없이 세상을 떠나는 것이 우리들의 바램입니다. 시인은 세상을 떠나는 것을 하늘나라에 들어가는 것으로 비교하면서 이렇게 표현하였습니다. 노환으로 정해진 수명을 다하고 세상을 나는 것은 ‘정시모집’이라 하였습니다. 갑작스럽게 세상을 떠나는 것은 ‘특채’라고 하였습니다. 사고로 여러 사람이 함께 세상을 떠나는 것은 ‘수시모집’이라고 하였습니다. 전쟁과 같은 재난으로 대규모로 세상을 떠나는 것은 ‘공채’라고 하였습니다. 우리 모두는 언젠가 하느님나라로 들어갈 것입니다. 세상에서의 취직은 필요한 것이 많습니다. ‘자격증, 외국어, 좋은 학력, 업무처리 능력’등이 있어야 합니다. 재물이 많다는 것은 세상에서의 삶을 풍요롭게 하고, 편안하게 합니다. 하지만 하느님나라는 삶의 기준이 다를 것 같습니다. 오늘 제1독서는 이 세상에서의 기준은 하느님나라에서는 필요 없다고 말을 합니다. ‘재능, 능력, 재물, 명예, 권세’와 같은 것들이 하느님나라에서는 필요하지 않기 때문에 ‘헛되고 헛되다.’라고 말을 합니다. 그런 것들은 썩은 동아줄과 같아서 아무 짝에도 쓸모가 없다고 말을 합니다. 춘천교구 소속인 동창신부가 이런 이야기를 하였습니다. 포천 가기 전에 송우리라는 동네가 있습니다. 동창신부가 그쪽 지역 본당신부로 가게 되었습니다. 20년간 신자들은 정성껏 성전 신축기금을 모았습니다. 필요한 돈은 30억인데, 모은 돈은 10억이었다고 합니다. 부족한 돈을 구하기 위해서 방법을 찾던 중에 본당 신자들이 교우 중에 한분을 소개하였습니다. 그분은 70대 노인이신데, 자녀가 없이 부부가 함께 산다고 하였습니다. 그 형제님은 그 동네에서는 재력이 상당한 분이라는 것입니다. 신부님께서 한번 만나시면 도움을 줄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신부님은 혹시 하는 마음으로 그 형제님을 찾아갔습니다. 집은 오래되어서 낡았고, 차도 없어서 자매님께서 병원에 가려면 버스를 타고 가야 할 정도였습니다. 신부님은 별로 기대를 하지 않았고, 혹 여유가 있으시면 성전 신축을 위해서 도움을 주시기를 청하였습니다. 신부님이 예상한대로 형제님은 돈이 없다고 말을 하였습니다. 신부님도 그럴 것이라 생각하고 돌아왔습니다. 그런데 한 달 정도 후에 형제님께서 신부님을 찾아왔습니다. 그리고 작은 봉투를 드리면서 성전신축에 도움이 되면 좋겠다고 하였습니다. 신부님도 큰 기대를 하지 않았고, 사제관에 와서 봉투를 열어 보았습니다. 그리고 신부님은 크게 놀랐다고 합니다. 성전신축에 필요한 나머지 금액인 20억 원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동창신부님은 나중에 성전신축이 다 되면 그 형제님을 위해서 감사패를 드리겠다고 말을 하였습니다. 평생 검소하게 사신 형제님은 이제 자신이 가진 재물을 써야할 때를 찾았고, 아무 주저함 없이 기꺼이 성전신축을 위해서 봉헌하였습니다. 형제님은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것처럼 하늘에 재화를 쌓은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런가 하면 썩어 없어질 재물을 얻기 위해서 사랑도, 우정도 배반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자신의 잘못을 감추기 위해서 친구에게 누명을 씌우기도 합니다. 자신은 더 많은 재산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친구의 작은 재산을 가로채기 위해서 친구를 감옥으로 보내기도 합니다. 욕심 때문에 평생 헌신해 온 아내를 헌신짝처럼 내 팽개치기도 합니다. 이런 이야기는 소설에 등장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 주변에서 벌어지는 일들입니다. 예전에 이런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KTX'가 막 운행을 했을 때입니다. 사람들은 모두 부산으로 가는 열차를 탔습니다. 그런데 검표원이 오면서 이렇게 말을 하였습니다. 이 열차는 광주로 가는 열차입니다. 사람들은 자신들이 기차를 잘못 탄 것으로 알고 모두 내리려고 하였습니다. 그런데 승객 중에 한명이 이렇게 말을 하였습니다. 우리 모두는 부산가는 표를 샀고, 이 열차는 부산으로 가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혹시 검표원이 열차를 잘못 타신 것은 아닙니까? 그러자 검표원이 자신이 기차를 잘못 탄 것을 알았습니다. 검표원은 광주로 가는 기차를 타야 했는데 그만 부산으로 가는 기차를 탄 것입니다. 결국 기차에서 내려야 할 사람은 검표원이었습니다. 우리 모두는 하느님나라를 향하는 기차를 타고 있습니다. 누가 와서 우리를 유혹하고, 내리라고 해도 우리의 자리를 굳게 지켜야 합니다. 바오로 사도는 우리가 버려야 할 것과 지켜야 할 것을 분명하게 말해 주고 있습니다. ‘여러분 안에 있는 현세적인 것들, 불륜, 더러움, 욕정, 나쁜 욕망, 탐욕을 죽이십시오. 탐욕은 우상숭배입니다. 여러분은 옛 인간을 그 행실과 함께 버리고, 새 인간을 입은 사람입니다. 그리스도만이 모든 것이며, 모든 것 안에 계십니다.”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 서울 대교구 성소 국장 조재형 가브리엘 신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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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서울] 부모말 들어 괴물되면 부모에게 덤벼요. 2016년 다해 7월31일 연중 제18주일 부모말 들어 괴물되면 부모에게 덤벼요. 예수님은요, 황금만능주의를 몹시 경고하셔요, 이 시대가 곧 그렇지요. 세상에서 영영 죽지 않을 자신 있는 사람들은 무시 하셔도 좋습니다. 모두 죽을 거라고요? 그럼 죽음 전후세계 자유왕래자님 말씀 들어야죠. 들어도 마음 안 내킨다고요? 어린이들도 공부하란 말 안 내키거든요? 일등하는 사람보다 착한사람 되라고 하늘과 대자연님이 알려주거든요. 하늘자연님의 말 안듣고 부모말만 듣고서 괴물 되면 부모에게 덤비죠. “그리고 나 자신에게 말해야지. ′자, 네가 여러 해 동안 쓸 많은 재산을 쌓아 두었으니, 쉬면서 먹고 마시며 즐겨라.’ 그러나 하느님께서 그에게 말씀하셨다. ‘어리석은 자야, 오늘 밤에 네 목숨을 되찾아 갈 것이다. 그러면 네가 마련해 둔 것은 누구 차지가 되겠느냐?’(루카 12,19~20)” 공부벌레로 자라 돈 잘 벌어 갑질하는 습관들면 부모들이 결국 당합니다. 아이들이 신앙교육 받고 성경 잘 읽어 깨달으면 못난 부모들 들통나고요. - 서울 대교구 이기정 사도요한 신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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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_1.gif ♬ Music: Pauline Viardot Tsvetok (The Flower) - Ina Kancheva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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