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바닥문학상 1486호 “우린 정해진 멸종의 길을 걷고 있어” 이기적·근시안적 인류, 그럼에도 답을 찾겠다는 의지… ‘기후 대…

작성자 : 최고관리자    작성일시 : 작성일2023-10-31 21:02:52    조회 : 13회    댓글: 0
소설 <노 휴먼스 랜드>(김정 지음, 창비 펴냄)의 표지 그림의 일부. 일러스트레이션 김산호, 창비 제공

소설 <노 휴먼스 랜드>(김정 지음, 창비 펴냄)의 표지 그림의 일부. 일러스트레이션 김산호, 창비 제공

서울 잠실에 거대한 탑 같은 건물 하나가 우뚝 솟아 있다. 이 풍경은 현실과도 비슷해 보이지만, 건물 주변이 온통 물이라는 점이 낯설다. 건물 내부의 선착장에서 한 남자가 7살 딸 한별을 데리고 짐을 배에 싣는 중이다. 이 건물에서 나고 자란 별이가 바깥을 보고 싶어 한다며 아빠인 호주는 배를 몰고 건물을 빠져나온다. 아빠는 연고지를 찾아 딸과 정착해 살아볼 셈이다. 갈매기가 하늘을 날고(다시 한번, 여기는 잠실이다), 물 위로 우뚝 솟은 산을 지나니 온통 녹슬어 절반쯤 바닷물에 처박힌 거대한 놀이기구가 보인다. 별이가 시선을 물속으로 옮기니, 이번에는 물속에 있는 거대한 아파트 단지가 보인다.

웹툰 <물위의 우리>(스토리 뱁새, 작화 왈패)는 20년 만에 고향으로 향한 부녀를 주인공으로 하는데, 인간이 모두 물 위에 갇혔다는 설정으로 시작한다. 세상이 물에 잠긴 이유는 무엇일까. 가뭄과 전쟁이 반복되고 환경을 파괴하는 여러 일이 급속도로 진행됐다는 설정이다. 작품 중간에 나오는 한반도 모습은 가장자리부터 침수돼 앙상한 모습이다. 태백산맥을 비롯한 고지대만이 물 위로 드러나 있다.

네이버 웹툰 <물 위의 우리>. 네이버 웹툰 갈무리

네이버 웹툰 <물 위의 우리>. 네이버 웹툰 갈무리

환경재앙은 인재로 이어진다

‘멸망(대재앙) 이후’를 그리는 포스트아포칼립스물에서 환경문제로 인한 재난의 풍경은 그 자체로 볼거리가 된다. <물위의 우리> 도입부에서 거대한 아파트 단지가 물 아래 잠긴 모습을 보여줄 때가 그렇다. 해수면 급상승에 대처하기 위해 대피시설을 만들던 중 피난시설이 갖춰진 강원도에서 피난민을 학살하는 일이 발생했다는 설정은, 비단 환경 재난만이 아니라 인재야말로 많은 사람의 목숨을 앗아간 이유가 됐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무법자들의 전쟁은 더 많은 사람의 죽음으로 이어진다. 짧은 봄, 긴 여름 그리고 사라진 가을과 겨울. 환경문제의 특성 자체가 인간으로 인한 해결 불가능한 거대한 재앙이라는 점을 떠올리면, 이런 아포칼립스물이 궁극적으로 인간 사이의 갈등을 보여주는 데 주력하는 것은 놀랄 일이 아니다.

소설 <로드>(코맥 매카시 지음)에서는 아버지와 아들이 살기 위해 걷고 있다. 하늘 가득 재가 떠다니고, 태양도 보이지 않는다. 끼니 삼을 동물은 고사하고 거의 모든 생명이 멸종했다. 멸망 이후 세계는 이렇게 환경이 완전히 파괴된 상황을 전제하는 일이 많다. “하루하루가 헤아림도 없이 달력도 없이 진창을 기어가듯 지나갔다. 멀리 주간 고속도로를 따라 길게 줄지어 있는 검게 타버리거나 녹이 슨 차들. 바퀴의 드러난 테가 시커메진 철사의 고리에 둘러싸인 채, 녹았다가 다시 잿빛으로 굳은 고무 진창에 자리를 잡고 있었다. 타서 재가 된 주검은 아이만 한 크기로 줄어들어 좌석의 용수철 위에 앉아 있었다.” 환경재앙의 풍경을 생생하게 그려내는 것이야말로 이 장르의 매력이 되는데, 당연한 말이지만 이런 시각적 충격을 잘 드러내는 데는 영화나 드라마 같은 시각매체가 잘 어울린다.

‘우리는 안전하다’ 믿음에서 비롯한 볼거리

웹툰 <물위의 우리>가 물 아래 잠긴 세계를 종종 오싹하게 드러내 보여준다면, <투모로우>(롤란트 에머리히 감독) 같은 영화는 재난물 형식을 빌려 ‘진행형’으로 세계가 얼어붙는 과정을 중계하듯 보여준다. 왜 이런 일이 생겼는지 때로 장황할 정도의 설명을 덧붙이는 것도 일이다. 기후재난물에 단골로 등장하는 캐릭터가 하나 있다. 바로 기상학자다. 다른 장르에서는 주목도가 없다고 해도 무방할 이 통찰력 넘치고 잘생긴(주인공이므로) 기상학자라는 캐릭터는, 기후재난 영화에서 상황을 알기 쉽게 관객에게 설명하고, 극중 세계에서 인류가 곧 목도할 지옥의 풍경을 예언하는 역할을 맡는다.

예언자가 흔히 그렇듯 그의 말은 대부분 정치인에게 무시당하고, 그 와중에도 어떻게든 사람들을 살리기 위해 그는 동분서주한다. <투모로우>의 기상학자는 잭 홀. 남극 빙하를 연구하던 그는 급격한 지구온난화 때문에 극지방의 빙하가 녹고 바닷물 온도가 급강하하면서 해류 흐름이 바뀌리라고 전망한다. 지구가 빙하로 뒤덮이리라는 그의 예측은 비웃음만 사지만, 정말 그런 일이 벌어진다. 물바다가 되고 곧이어 모든 것이 얼어붙어버리는 미국 뉴욕의 풍경.

물론 이런 영화들이 기후위기를 인류에게 고발하는 목적이 없다고는 할 수 없겠지만, 그보다는 사실 우리가 안전하다는 확신이 있기 때문에 즐길 수 있는 장르다. 안전하다고 믿기에 이 모든 게 볼거리로서 기능하는 셈이다. (그리고 점점 그 안전거리가 좁혀지고 있다.) 설원으로 덮인 세계에서 살아남은 인류가 달리는 기차에 탑승한다는 설정의 <설국열차>(봉준호 감독) 역시 기후문제를 기본 배경에 두고 있다. <설국열차>에는 기후학자가 등장하지 않지만.

“조금만 더 일찍 태어났으면…”

웹소설 중에서는 환경문제 때문에 여러 나라가 힘을 합쳐 국제해저기지를 운영하는 설정의 <어두운 바다의 등불이 되어>(연산호 지음)가 눈에 띈다. 이 소설 속 세계에서 인류는 해산물을 섭취하지도 못하는 상황이다. 우주개발은 시체와 쓰레기만 만든다고 판단하고 공식적으로 포기했다. 환경을 보존하는 것보단 개발하는 데 도가 튼 인간은, 태평양에 이어 대서양에 돈을 쏟아붓는 중이다. 주인공 박무현은 3천m 아래 해저기지에서 일하게 된 치과의사인데, 입사 닷새 만에 해저기지에 물이 샌다. 박무현의 독백은 환경문제에 대한 세대별 차이를 슬쩍 드러내는 듯하다. “나는 운 없게도 2000년 이후 탄생자다. 개인적으로는 조금만 더 일찍 태어났으면 하는 소원은 있다. 자원을 마음대로 쓰고, 환경문제에 대해서는 모른 척하면서, 선크림을 살기 위해 바를 필요가 없는 시대에 살아보고 싶었다.”

포스트아포칼립스가 에스에프(SF)의 하위 장르이기 때문에 기후나 환경 관련 이슈를 다룬 작품을 만나고 싶다면 SF소설을 읽어보기를 권한다. 구글 엔그램에서 ‘기후변화’라는 영어 단어를 검색해보면, 해당 단어의 사용 빈도가 최근 급증하는 모습을 볼 수 있는데, 이런 위기의식이야말로 SF 작가들의 상상력을 자극하는 현실적 요소가 된다.

왼쪽부터 <지구 끝의 온실> <어두운 바다의 등불의 되어> <일인용 캡슐> 표지 이미지. 자이언트북스, 문피아, 라임 제공

왼쪽부터 <지구 끝의 온실> <어두운 바다의 등불의 되어> <일인용 캡슐> 표지 이미지. 자이언트북스, 문피아, 라임 제공

소설 <지구 끝의 온실>(김초엽 지음)의 배경은 더스트로 멸망한 세계다. 코로나19로 인한 두려움이 극심하던 때 이 소설을 구상했다고 작가가 밝히기도 했는데, 그 말처럼 재난 이후 멸망한 세계가 모습을 드러낸다. 2129년과 2058년의 지구 모습을 1장과 2장에서 차례로 보여주는데, 2058년 인류는 이미 더스트를 피해 돔 안에서 도시를 이뤄 살고 있다. (미세먼지로 인한 어려움을 겪는 한국에서 이런 설정은 지극히 현실적으로 와닿는다.) 이 작품에서 눈에 띄는 것 중 살아남은 사람들에 대한 불신의 시각이 있다. “돔 안의 사람들은 결코 인류를 위해 일하지 않을 거야. 타인의 죽음을 아무렇지 않게 지켜보는 게 가능했던 사람들만이 돔에 들어갈 수 있었으니까. 인류에게는 불행하게도, 오직 그런 이들이 최후의 인간으로 남았지. 우린 정해진 멸종의 길을 걷고 있어. 설령 돔 안의 사람들이 끝까지 살아남더라도, 그런 인류가 만들 세계라곤 보지 않아도 뻔하지. 오래가진 못할 거야.”

영화 <인터스텔라>(크리스토퍼 놀런 감독) 역시 먼지로 뒤덮인 미래 세계를 배경으로 한다. 지구가 아닌 거주 가능 행성을 찾는 이 영화에서 기후위기는 당장의 먹거리가 없는 절박한 상황을 만들어낸다. 소설 <노 휴먼스 랜드>(김정 지음)는 폭염과 폭설, 가뭄과 한파 같은 대규모 기후재난이 발생한 근미래를 무대로 한다. 식량 생산량이 급감하면서 치명적인 대기근이 닥치고 기후난민이 폭발적으로 증가한다는 설정이다. <일인용 캡슐>(김소연·윤해연·윤혜숙·정명섭 지음)은 기후위기를 소재로 한 SF 앤솔러지다. 갑작스러운 빙하기 도래, 인공지능이 관리하는 기후관리 시스템, 기후난민으로 화성 테라포밍(지구화)에 동원되는 인류 등의 이야기가 담겼다.

대재앙 그리는 작품의 공통점

기후위기를 소재로 하는 작품들의 공통점이 있다면, 지극히 사실적인 현재의 위기를 바탕으로, 예상 가능한 가장 부정적인 결과를 극적으로 연출해낸다는 점이다. 더불어, 기후위기의 근본 원인부터 파생되는 문제를 해결하는 과정에서 추가로 생겨나는 문제까지, 인류가 얼마나 이기적이고 근시안적인지, 그럼에도 답을 찾겠다는 의지를 버리지 않는 사람들이 있다. 이것이 지극히 창작물에서만 가능한 낙관주의일지 궁금해진다.


이다혜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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